공이 돌아가시던 날 밤에 천로가 울며 곡하다가 기절했는데 마치 꿈같이 공이 관복 차림으로 손에 홀을 들고 평상에 걸터앉아 있으신 것을 보았다 공이 말하길 이리 오너라 천로야 운로야 내가 저승길에 나갔더니 으뜸가는 대관이 책상에 기대어 성이 나서 큰 소리로 말하기를 너는 어찌하여 문장을 두 아이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부질없이 이곳까지 가져왔느냐 빨리 가서 나누어주라 라고 하기에 내가 잠시 온 것이다 라고 말하고는 이내 품고 있던 것을 옥처럼 빛나고 소반처럼 생긴 큰 물건을 속에서 꺼내어 말하길 이에 이것이 문장이다 라고 하면서 손으로 두 쪽으로 갈라서 형제에게 나눠주었다 형제가 꿇어앉아 받고서 엎드렸는데 홀연히 보이시지 않으셨다 드디어 천로가 깨어났다 천로의 문장은 큰 강물의 물줄기처럼 흐름이 광활하고 성대하여 고운 채색 비단처럼 아름다워 잠깐 사이에 천만 마디가 물 대듯이 쏟아져 나오고 비록 수십 명이 손으로 받아쓰더라도 미처 다 쓰지 못할 정도였으니 한번 붓을 들면 다시 첨가하거나 지우지 않아도 더욱 기이하게 더 나아졌다 운로는 주역을 깊이 공부하였는데 두루 깊고 오묘하게 통하여 그 글을 지을 때 초고도 없이 종이를 펴자마자 써내려 가는데 물 뿌리듯 번개와 바람이 치고 몰아가듯 곧바로 써내려 가는데도 모두 웅장하고 확실하였다
이 성어는 조선 중기의 문신 어우당 류몽인(於于堂 柳夢寅1559~1623)선생이 증 예조참판 행 평해군수 차식선생의 신도비명을 쓴 내용 중에서 일부를 발췌하였는데 비문의 주인공 이재 차식(頤齋 車軾 1517~1575)선생은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숙(敬叔)이며 부는 광운(廣運)이며 부인은 아주 이씨(牙州李氏)이계천(李繼天)의 딸로 부인과의 사이에 5남 3녀를 두었는데 천로(天輅)와 운로(雲輅)의 아버지이다 중종 32년(1537)에 진사시에 합격 1543년 식년문과에 급제 후 성균관 호조 예조 봉상시 교서감 승문원등의 좌랑 주부 교리 교감을 지방관직으로는 통진 항주 해주 평해 고성의 현감 군수를 역임하였으며 선조 8년(1575) 평해군수를 지내다가 상한(傷寒)으로 사망하였으며 발췌문 신도비문에 의하면 그는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 경사에 널리 통했으며 특히 문장에 능하였다고 전하며 아들인 천로 운로와 더불어 송나라의 삼소(三蘇)에 비유되기도 했으며 문집 5~ 6권을 남겼으나 병화에 소실되었다고 한다 아들 오산 차천로(五山 車天輅1556~1615)선생은 자는 복원(復元) 호는 오산 외 귤실(橘室) 청묘거사(淸妙居士) 송도(松都) 출신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고 선조 10년(1577)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개성교수를 지내고 1583년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고 1586년 정자(正字)로서 고향 사람 여계선(呂繼先)이 과거를 볼 때 표문(表文)을 대신 지어주어 장원급제시킨 일이 발각되어 명천에 유배되었다가 1588년 문재(文才)가 있다는 이유로 용서되었으며 이듬해 통신사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일본에 다녀왔는데 그 때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었으나 4,000∼5,000수의 시를 지어 일인들을 놀라게 하였으며 또 명나라에 보내는 대부분의 외교문서를 담당하여 문명이 명나라에까지 떨쳐 동방문사(東方文士)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특히 명사(明使)들이 문장의 속작을 실험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시에 거침없이 수응(酬應)하여 이름을 더욱 떨쳤으며 봉상시판관을 거쳐 1601년 교리가 되어 교정청의 관직을 겸임하고 광해군 때 봉상시첨정을 지냈으며 한호(韓濩) 권필(權韠) 김현성(金玄成)과 더불어 서격사한(書檄詞翰)이라 하였으며 특히 시에 능해 한호의 글씨 최립(崔岦)의 문장과 함께 송도 삼절(松都三絶)이라 일컬어졌으며 가사와 글씨에도 뛰어나고 저서로 오산집(五山集) 오산설림(五山說林) 작품으로 강촌별곡(江村別曲)등이 있다 창주 차운로(滄州車雲輅(1559~1637)선생은 자는 만리(萬里) 차천로(車天輅) 아우이고 선조 13년(1580) 생원 진사 양시(兩試)에 장원으로 합격선조 16년(1583) 알성문과에 장원하고 내자시정 사옹원정 공조정랑 시강원필선 개성부교수 어천도찰방 풍기 금성 군수 황간현감 금성부사 봉상시판관 첨정 등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당대 사람들로부터 비록 문벌(門閥)은 미천하였으나 형 천로(天輅)와 함께 문장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문집인 창주집(滄洲集)을 남겼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두루 깊고 오묘하게 통하다 라는 오늘의 성어 파통온오(頗通蘊奧)가 되기 위해 비록 되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더 부단히 학습에 임하다보면 근처에라도 가겠지라고 믿으면서 발췌문에 천로와 운로에게 문장을 주고 가셨다는 다소 허황된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이 비명의 글을 필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전적으로 믿으며 파통온오(頗通蘊奧)를 휘호하고 성어문집에 담는다
첫댓글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