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밤중의 꿈
싸리문도 없는 울타리에 둘러싸인 삼간 집 굴뚝에서 아침 연기가 바람을 타고 솔솔 올라오고 있는 가운데 박징걸은 지게를 지고 집을 나선다.
박 징걸은 늘 처럼 그 날도 나무를 하러 집을 나섰지만 엊저녁에 마누라와 다툰 일이 마음에 걸렸다.
징걸이 마누라는 원래 몸이 튼튼하였으나 아이 하나 용진 이를 낳고는 산후바람으로 인해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서 해마다 봄만 되면 한 달간은 누워서 지나는 형편이다.
전날 징걸은 모처럼 친구인 김 덕배를 만나서 술을 한잔 먹다 보니 오랜만에 먹는 술이어서 그런지 취한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 왔다.
돌아와 보니 마누라가 누워있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자 왜 남편이 왔는데도 일어나지를 않느냐는 말을 한 것이 마누라를 노엽게 하여 고만 싸움이 되고 말았다.
사실 박징걸의 마누라는 원래 물레방아 집 과부의 딸 셋 중의 막내로 자랐으나 소문에 따르면 삼형제의 씨는 다 다르지만 눈썰미가 있는 재주덩이라고 하였는데 둘째 언니 때문에 마음에도 없던 박 징걸이와 혼사도 치르지 않은 상태에서 살림을 차렸다.
마누라는 남편이 몸이 아픈 자기를 괄시를 하는 게 너무도 분해서 조반도 하지 않는 바람에 징걸은 맹물만 두어 사발 들여 마시고 산으로 향하였다.
길을 가다 생각해 보니 문득 며칠 전에 이 주사 아버지께서 논도랑을 쳐내는 일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생각이 나자 박징걸은 급히 발길을 이 주사 댁으로 돌렸다.
이 주사는 그때 군청 공무원이었고 순갑이라는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박징걸의 아들과 같은 1학년이었다.
이주사네는 워낙 농토가 많아서 가을 타작을 하는 날이면 온 동리 사람들이 몰려와서 자기네 집 타작을 하듯 일을 거들었으며 타작 밥도 온 식구들이 번갈아 와서 먹곤 하였다.
이 주사 댁에는 손님도 자주 찾아왔으며 명절 때에는 의례히 마당에다 차일을 치고 오신 손님에게 떡국과 술을 대접하였는데 이날이야말로 이 주사 댁은 하루 종일 동네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았다.
이토록 이주사댁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그만큼 이주사의 인품이 빼어나고 여러 사람들에게 신용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 주사 아버님 되시는 순갑이 할아버지의 평소의 인맥이 넓게 작용을 한 것도 원인이라고 할 것이다.
이 주사네가 잘 살게 된 것은 아버지인 이 갑동 어르신이 젊었을 때부터 목상을 하여 돈을 많이 벌어들였기 때문이다.
그때야말로 정부수립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미확인 산림이 많은데다가 목상도 많지 않을 때여서 산림에 대한 상식이 없는 사람은 접근도 할 수 없다보니 이 갑동 목상은 기회를 잘 타고났다고 할까 아무튼 사업을 벌리기만 하면 돈이 뭉텅이로 들어왔다.
이렇게 돈을 많이 벌게 되자 이 갑동 목상은 농토를 많이 장만하였으며 집도 동리에서는 제일 잘 짓고 살았지만 한 가지 걱정은 슬하에 자손을 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집안은 조상 대대로 자손이 귀한 집인데다 가 이 갑동 또한 외아들로 자라는 가운데 일찍 장가를 들었지만 갓 서른을 넘어도 자식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집안에서는 조강지처를 버리고 새장가를 들어야한다느니 첩이라도 들여서 대를 끊지 말아야 한다는 둥 말이 많았지만 이 갑동은 그런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산판에만 정력을 쏟으며 다녔다.
어느 해 가을 막 단풍이 들을 무렵인 새벽에 이 갑동은 그 날도 산판엘 가려고 대문간엘 나섰는데 길옆에 보지 않던 바구니가 놓여 있어 무심코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으니 그 안에는 사내아기가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기를 보고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서 일단 방안으로 안고 들어가니 아내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놀랐다.
이 갑동이 자초지종을 말하자 아내는 처음에는 소태 씹은 상을 하였으나 워낙 심성이 착한 여자라 일단 받아서 뉘이곤 미음을 쑤어서 먹이고 또 한편으로는 아기의 주인을 수소문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달포가 지나도 아기 주인이 나타나지를 않게 되자 내외는 고심을 하기 시작하였으니 이 아기를 장차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의탁해서 기르라고 하자니 선뜻 나타날 사람도 있을 것 같지 않자 그야말로 이 갑동은 이일로 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것이 이 아이를 아주 자기네 호적에 입적을 시켜 떳떳하게 길러 보자는 생각을 하고 부인의 의견을 들어보니 부인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실 이 갑동의 부인이야말로 이 집으로 시집을 온 이래 아이를 낳지를 못하게 되자 집안의 대를 끊어놓고 있다는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고 또 한편으로는 조상에게 대죄를 지은 사람처럼 괴로웠는데 아이를 기르게 되었으니 한시름을 덜게 되었다.
다음날 이 갑동은 다시 한 번 생각을 거듭한 끝에 이 아이를 정식으로 입적을 시키면서 잘 자라주기만을 마음속으로 기원하였다.
이 아기는 이 집으로 들어와서는 미음도 잘 먹고 밥도 잘 먹으면서 병치레도 없이 무럭무럭 잘도 자랐다.
게다가 커갈수록 아버지 모습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보니 동리에서는 아무래도 다른 곳에다 딴 살림을 차린 게 아닌가 하는 화제가 수다스런 여자들의 구설수에 오르내리기도 하였다.
아이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제대한 후 군청에서 시행하는 면서기 시험에 가까스로 합격을 해서 근무를 하게 되자 동리 사람들은 이 댁에 경사가 났다며 좋아들 하였다.
몇 년간 면서기로 있다가 다시 군청의 주사자리로 옮기게 되고 군에서 오랫동안 요직을 두루 걸쳐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아들이 요직에 있게 되자 이 갑동 목상은 세상에 없는 아들을 얻은 양 한껏 자랑스럽고 대견하여 이따금씩 직원들을 초대해서 저녁을 대접을 하였던 것인데 그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였다.
사실 지난날을 회고해보면 그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이 집안의 내력에 대해서 가타부타 하는 경우도 있었고 아이의 어미가 어디에 산다느니 하는 낭설까지 퍼질 정도로 세상의 관심이 이 집안에 쏠려 있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 아이를 입적까지 시키고 난 이후 더구나 수무 살도 채 되지 않아서 장가까지 보내고 이어서 사내아이인 순갑이를 낳았으니 이제 지나간 일들은 개울물에 흘러가듯이 잠잠해지고 말았다.
한편 박 징걸은 순갑이 아버지인 이 주사네 와는 거리가 좀 떨어진 곳에 살면서 나무를 해서 팔거나 남의 땅 소작을 얻어서 농사를 지어오고 있었는데 그 중에도 이 주사네 땅을 제일 많이 부쳤다.
어느 해 가을 가뭄이 들어 온 동리 사람들이 수확을 내지 못하게 되자 장리쌀을 먹게 되었는데 장리쌀을 제일 많이 내는 이 주사 댁에서 얻을 수밖에 없었다.
장리 쌀 하면 가을에 양식이 모자랄 때 미리 빌려서 먹고 그 다음해엔 이자를 처서 갚아 나가는 제도인데 이 갑동 목상은 장리쌀을 내주되 이듬해 이자는 거의 받지 않고 원금만 받았으며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원금까지 받지 않을 만큼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었는데 특히 박 징걸이 혜택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어느 동리에서나 흔히 볼 수 있듯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제일 말이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박징걸 이었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을 때에는 새침댁이처럼 말을 하지 않다가도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기만 하면 할 말 못할 말 자제하지를 못해서 동리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사기가 일쑤였다.
더구나 박 징걸은 이 주사네 일을 많이 하고 신세를 지면서도 술을 마시게 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 싶게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격으로 이 갑동 목상이 자기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였다.
그런데 속담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과 같이 어느 날 이 갑동 목상의 귀에 박 징걸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귀를 달고 들어갔던 모양이었다.
사실 이 갑동은 젊어서부터 산판에서도 별별 사람을 다 다룬 경험도 있지만 워낙 계산이 빠르고 까다로운 사람이라고까지 평을 받으면서도 솔직하고 너그러운 편이어서 남의 사정을 잘 돌봐주는 사람으로서 정평이 나 있었다.
박 징걸이 자기에 대해서 험담을 한다는 말을 듣고 보니 좀은 언짢은 생각도 들었지만 워낙 없이 살다 보면 별 말을 다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별로 마음을 쓰지 않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이른 봄 밭갈이를 시작하게 되자 박징걸에게 일을 시킬 양으로 불렀던 것이다.
평상시에도 박징걸은 이 갑동 목상 어르신을 어렵게 대했지만 그 날은 어쩐지 공기가 좀 이상하다싶어 조심스럽게 인사를 드렸다.
“ 이제 논밭을 갈 때도 되어서 불렀는데 언제 밭갈이를 해줄 수 있겠는가?”
“어르신 말씀인데 아무 때고 해야 합지요. 네.”
박 징걸이 대답을 하곤 처다 보았는데 이 갑동 목상의 인상이 평상시와는 조금 다른 어조로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다.
“간혹 우리 집의 일을 할 때 노랭이 짓을 한다고 불평을 하는 사람이 있다며.”
이 갑동 목상은 “자네가 불평을 많이 한다지.” 하고 싶었지만 돌려서 한마디를 하였다.
박 징걸은 이 말씀을 듣자 어느 누가 자기의 말을 일러바친 것 같아서 얼굴이 확확 닳아 오르는 기분이었다.
자신이야말로 술을 마시면 실수를 이따금 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긴 하지만 어르신이 이런 말씀을 하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던 박 징걸 이었다.
“ 일꾼들이 우리 일을 하면서 불평을 한다던데 자네도 혹 그 말을 들었는가 말이네.”
말씀은 부드러운 것 같았지만 그 속에는 뼈가 스며있는 것처럼 들려 오금이 저려 왔다.
‘어르신께서 내가 한 말을 누구에게 들으셨단 말인가?’.
그런 생각에 미치자 얼른 김 덕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김 덕배는 박 징걸 과는 동갑인데다 가 윗말에 사는 어부로서 그는 강물에서 고기를 잡아서 생을 유지하면서도 때로는 동리에서 농사일이 바쁘다고 하면 아무 때고 와서 일을 거들어주는 친구이기도 하였다.
그와는 자주 접촉하는 중에 어떤 때 메기나 가물치 또는 뱀장어라도 잡으면 귀한 고기를 잡았다고 해서 막걸리를 함께 나누는 것은 일상의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술이 거나하게 취하다 보면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하게 마련인데 워낙 말을 많이 하는 박 징걸이라는 것을 김 덕배도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밤중에 술이 취해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그 날도 큰 소리로 무슨 말을 한 것 같은데 박 징걸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도통 기억을 할 수가 없었지만 그것이 마음에 걸리었다.
그 때 혹 이 주사네 말을 한 것을 김 덕배가 듣고 고기를 순갑이 할아버지께 갔다 드리다가 전달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김 덕배가 틀림없다는 지목이 가는 것이었다.
“ 맞아 어디 두고 보자 이놈. 그래도 친구라고 여기고 어떤 때는 제 잘못을 감싸주기도 하였는데 그런 말을 함부로 전하였단 말이야.”
박 징걸은 순간 김 덕배를 만나면 그냥 두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씀을 올렸다.
“일꾼들이 일을 하다가 술 한 잔을 마시다보면 무슨 말씀인들 못하겠습니까요. 그런 말씀일랑 귀에 담지 마세요. 어르신.”
박 징걸은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을 억지로 용기를 내서 하였다.
사실 이 갑동 목상은 젊어서부터 모든 일을 대담하고 적극적으로 하는 성격으로 무슨 말이든지 옳지 않은 소리는 하지 않는 분이긴 하지만 지금은 연세도 있고 해서 옛날의 성격은 다 접어둔 채 남에게 싫은 소리를 전혀 하지 않는 가운데 살아왔지만 그 날만은 한마디를 하고 넘어갔다.
“앞으로 혹 나에 대해서 언짢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거들랑 자네가 만류를 해주어야겠어.”
이 갑동 목상은 현재까지 보지 못하던 모습으로 한 말씀하시고는 바람처럼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박 징걸은 그제야 지금까지 길을 펴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앞으로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자신의 주둥아리를 손바닥으로 아프도록 탁탁 때렸다.
‘이놈의 주둥아리.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아.’
집으로 돌아가려던 박 징걸은 순간 발길을 돌려 김 덕배를 바로 만나기 위해 그의 집으로 힁해서 내달렸다.
김 덕배네 집은 박 징걸의 집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는 산모롱이를 돌아서 있었는데 박 징걸이 걸음도 빠르게 집으로 가서 김 덕배를 부르니 그날따라 김 덕배는 집에 없었다.
‘이놈이 어디를 갔단 말이야. 내 그냥 둘 줄 알아.’
박 징걸은 은근히 화가 나서 싸리문을 걷어 내차면서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득 김 덕배가 고기를 잡으러 나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강으로 향하였다.
한참을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강 가운데서 덕배가 막 그물을 치고 있었다.
“ 김 덕배. 빨리 나와 이놈아. 너 오늘 나에게 죽을 줄 알아. “
강폭이 넓어서 그런지 김 덕배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물만 느리고 있었다.
“ 야! 덕배야. 얼른 나오란 말이야. 그동안에 귀가 다 처먹었냐. 이 오라질 놈아.”
박 징걸은 두 번이나 재차 산이 들썩하도록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덕배는 무슨 소리를 들은 양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이쪽을 보긴 하였지만 그물을 계속해서 놓고 있었다.
징걸은 화를 참지 못해 돌맹이라도 하나 집어 던지려는데 덕배는 나올 생각도 하지를 않았다. 그물을 놓기 시작하였으니 그 그물을 다 놓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날은 차고 강바람까지 세게 불고 있는 가운데 덕배가 그물을 놓는 것을 한참동안이나 보고 있자니 고기를 잡으면서 살아간다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박 징걸도 없이 살고 있지만 김 덕배 또한 넉넉지 못한 살림 속에서 아직 장가도 가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만나면 한판 해주려던 마음이 늦봄에 눈 녹듯이 슬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자기의 처신을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의 생활보다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덕배를 혼내 주겠다던 마음은 이제 동정하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었으니 박 징걸은 자기의 마음이 왜 갑자기 변하고 있는 것인지 이상할 정도였다.
‘그래 내가 잘못 생각한 거야. 하기사 이 목상 어른께 김 덕배가 내 말을 전했다 손치더라도 내 허물이 있었기에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박 징걸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오히려 김 덕배에게 술을 사주어야 할 사람은 자기라고 생각을 하였다.
한참 후에 덕배가 배에서 나오는 것을 보니 옷은 다 젖어 있고 얼굴은 새파랗게 변한 채 덜덜 떨고 있어 징걸은 얼른 윗옷을 벗어서 덕배 어깨 위에 걸쳐 주는데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적시고 있었다.
“ 네가 웬 일이냐. 나를 다 찾아오고. 혹시 주인을 이르러 온 것은 아니냐.”
“ …………….”
“ 울고 있지 않아.”
“ 아니야 너를 보니 갑자기 불쌍한 생각이 드는구나.”
“ 내가 왜 불쌍해.”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참동안이나 부둥켜안았다.
박 징걸은 날도 추우니 막걸리나 한 잔 하자면서 덕배의 손을 잡고 주막으로 들어갔다.
조철한 안주 한 접시에 막걸리가 들어오자 박 징걸은 김 덕배에게 잔을 건네주었다.
“ 내일은 서쪽에서 해가 뜨는 것 아니야.”
김 덕배는 한껏 기분 좋은 마음으로 술잔을 받아서는 한 여름에 들에 매놓았던 황소가 강물을 들이키듯이 꿀꺽 꿀꺽 마시었다.
“ 징걸아. 세상에서 이렇게 맛있는 술은 생전 처음 마셔 본다.”
“ 정말이냐. 고맙다.”
그 날 두 사람은 저녁 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일어섰다.
박 징걸이 술값을 치르려 하자 김 덕배가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를 지른다.
“우리 집에 온 손님이니 술은 내가 대접해야 되는 거야.”
“ 아니야. 오늘만은 내가 너에게 술을 사주어야 해. 아무소리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야가 오늘 왜 이런지 알다가도 모르겠네. ”
덕배는 진심으로 마음에서 울어 나오는 말을 하였다.
이날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면서도 다른 때와는 달리 서로의 단점을 들추지 않았다.
김 덕배는 그 날 박 징걸이 모처럼 자기에게 찾아 온 이유가 따로 있을 텐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간 것이 이상하였지만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원래 박 징걸이와 이 주사 간에는 나이가 10여세나 차이가 지지만 공교롭게도 아들들이 한동갑으로 학교를 다니다 보니 어떤 때 학교의 부형회의가 있으면 순갑이 아빠인 이 주사는 공직에 있음으로 해서 참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그때마다 이 주사는 순갑이에 대한 모든 일을 용진이 아버지인 박 징걸에게 위임하였다.
게다가 이 주사는 박 징걸을 형님이라 불러왔고 그만큼 박 징걸도 이 주사네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하는 편이었다.
한번은 박 징걸이 가을일을 늦게까지 하고 있는데 퇴근을 하던 이주사가 손에 들고 오던 물건을 짚더미에다가 놔두었다가 일이 끝나자 그것을 박 징걸에게 주었는데 그것은 그가 좋아하는 양주 한 병이었다.
웬 양주냐고 하자 이 주사는 형님 드리려고 우정 사왔다면서 오늘은 사실 기분 좋은 일이 있었는데 형님 생각이 났다고 하였다.
박 징걸이야 말로 비록 술을 좋아하고 이따금 입을 잘못 놀리는 것이 험이긴 하지만 일 한가지만은 잘 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 처지였다.
이주사도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박 징걸이 없이 사는 것이 못내 안타까워서 속으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도와주었으면 하는 궁리를 하다가 한번은 아버지에게 땅을 몇 마지기라도 아주 주고 모든 농사일을 박징걸에게 맡기면 어떠냐고 말씀을 드렸다.
그렇지 않아도 농토 관리문제에 있어서 아들은 공직에 있으니 농사를 맡길 수는 없고 자신이 농사를 짓자니 나이도 많고 관리하기도 쉽지 않자 나름대로의 어떤 궁리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 갑동도 아들의 생각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동리에서는 일을 잘 한다는 박 징걸이지만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는 것이 못내 불쌍하여 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 이 갑동 목상은 마침내 마음을 정하고 박 징걸을 조용히 불렀다.
“ 오늘 자네를 특별히 부른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불렀으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어보게나.”
어르신이 말씀을 하시자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박 징걸 이었다.
“ 혹시 자네에게 누가 땅을 몇 마지기 주고 평생을 그 집의 농사를 지어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나?”
그렇지 않아도 가을걷이도 다 하고 지금은 별로 할 일이 없을 텐데 어르신이 부르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꼈던 박 징걸이라 하시는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며 들어보니 자신과 관련이 있는 중대한 문제일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그러면서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호박이 덩굴 채로 구른다는 말과 같이 자기의 집안은 팔자를 펴는 순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이르자 가슴이 후당당 두방망이질을 하는 것을 억지로 자제를 하였다.
“ 금방 말하기 곤란할 테니 생각해보고 답변을 해줄 수 있겠지?”
사실 박 징걸은 처음에는 어르신의 말씀의 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하였는데 평생을 살아도 지금의 형편으로는 땅 한 마지기는커녕 집안 식구들의 입에 풀칠하기도 쉽지 않은 판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듯 농사지을 땅을 주실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으니 ‘그저 어르신 말씀을 잘 알겠습니다.’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정작 식은땀만 흘리면서 물러 나왔던 것이다.
박 징걸도 따지고 보면 부모 잘못 만나 배우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속이 차지 못하고 세상만사를 넓게 보지 못하긴 하지만 마음씨만은 비단결같이 곱고 착한 사람이었다.
그가 집에 돌아와서 자초지종의 말을 부인에게 하자 부인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다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었다. 사실 박 징걸이를 만나기 전에 이 처녀는 물레방아간의 심부름을 하던 김 종성이를 흠모하였는데 나중에 언니가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한동안은 언니가 미워서 집을 나가 헤매다가 평소에 자기에게 눈독을 드리고 있다던 뚝건달의 아들이라고 하는 박 징걸에게 운명을 맡겼던 것인데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그리고 며칠 후에 어르신께서 급히 부르신다는 전갈이 와서 갔더니 거기에는 이주사가 함께 자리를 하고 있었다.
“ 그래 일전에 내가 한말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는가? ”
박 징걸은 어르신을 만날 때마다 늘 어렵고 송구스런 마음이 생겨 얼른 대답이 나오지를 않아서 잠자코 있자 이번에는 이주사가 아버님의 하신 말씀을 다시 하였다.
“ 형님 마음의 결정을 하셨나요.”
박 징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대답을 하였다.
“어르신 분부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만 너무 황송하여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요.”
“ 그래 알겠네, 이제 이야기지만 앞으로 자네를 내 식구처럼 믿어봄세. ”
이 갑동 목상은 기분이 좋은 듯 껄껄 웃으시자 이주사도 한껏 기분이 좋아서 박 징걸의 손을 잡으며 “ 잘 되었습니다 형님” 하였다.
“ 이것이 논 열 마지기 땅 문서인데 이제는 자네의 재산이 되었네.”
순갑이 할아버지께서 서류를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었다.
순간 어르신을 바라보던 박 징걸의 눈에서는 기쁨의 눈물이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남의 집 고용살이를 할 때에 징걸은 동네아이들에게 매도 많이 맞고 울기도 많이 하였다.
어떤 때는 나무를 해서 시장에서 팔고 오다가 아이들에게 돈까지 빼앗긴 적도 있었지만
징걸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른이 되어 장가를 든 후에는 그런 일은 없어졌지만 좀처럼 살림은 쪼들리기만 하였던 것인데 이제 박 징걸 생전에 땅문서를 그것도 열 마지기나 되는 많은 땅을 갖는 순간이니 그야말로 박 징걸은 몸 둘 바를 모르고 자리를 물러 나왔지만 속으로는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예부터 아무리 땅이 많은 부자라 할지라도 친 형제간이라 할 지라도 이렇게 많은 땅을 나누어준다는 일은 드문 일일 것이다.
또 한편 이 갑동 부자는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일로서 혹여 박 징걸의 마음이 중간에 변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박 징걸은 이후 한 치의 차질 없이 순갑이네 할아버지와 이 주사를 하늘처럼 섬기며 해마다 농사를 잘 지어 드렸는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일이 벌어진 것이니 그래서 인생살이에는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게 마련인 모양이다.
그 문제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고 이주사가 어느 날 군청에서 근무를 하다가 갑자기 음식을 잘못 먹은 것이 원인이 되어 병원으로 실려 가는 불상사가 생겼던 것이며 병원의 진단결과는 급성폐렴으로 장기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주사는 평소 건강하여 술도 많이 하였지만 원래 책임감이 강하여 한번 맡은 일은 철저하게 처리하는 모범 관리였다.
직장에서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은 대부분 가정일 에는 소홀하기가 쉬운데 이 주사는 가정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부모님의 일을 돌보아 드렸다.
이처럼 자기 관리며 가정에 충실하다 보니 때로는 마음에 걸리는 일도 많고 업무 처리하는데도 애로가 많다 보니 자연히 담배를 많이 피우게 되었다.
이 주사는 때로는 불면증이 오기도 하여 약방에서 약을 지어다 먹어도 낫지를 않았는데 그러한 것이 누적되다 보니 어떤 때는 온몸이 노곤하여 꼼짝하기가 싫은 때도 있었고
그런 일로 해서 자기도 모르게 한번 쓰러진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의사의 말로는 과로는 만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입원 중에 다시 검사를 한 결과 당뇨까지 겹쳐 부득이 장기 요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진단이었다.
그런 중에 의사의 지시에 따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병이 다소 호전되기는 하였으나 점차 식욕이 떨어지고 때로는 우울증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을 하였다.
약은 계속해서 먹는데도 병이 낫기는커녕 점차 상태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게 되자 가족들은 걱정으로 날을 보내게 되었다.
공직에 들어온 이래 한 번도 신병을 이유로 결근을 해보지 않은 모범공무원인 이 주사였다.
그런데 한참 일할 나이에 병이 길어져 병원 침대에서 시간과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생각할수록 이 주사의 마음은 괴롭기만 하였다.
이 주사가 누워 있는 동안 갖은 몽상이 일어나는가 하면 자기의 몸이 왜 이리 피폐해 졌는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 원인을 곰곰이 따져서 보니 군청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면서기를 하다가 군청으로 들어갔을 때의 업무는 농산 계원으로서 군의 농지관리는 물론 농산물 재배에서 수확물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통계와 비료 보급량의 확보 등에 대해서 까지 일일이 관리를 할 정도로 업무량이 너무나 방대하였다.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일 보따리를 매일같이 집으로 싸 가지고 가서는 밤을 새워서 일을 하였지만 좀처럼 일의 양은 끝이 나지 않았는데 일에 방해되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은 그의 상관인 김 계장으로 인함이었다.
김 계장은 나이도 40이 넘었지만 성격도 원만하여 부하 직원들이 부담 없이 근무하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는데 는 남다른 면이 있어서 부하 직원들이 다 좋아하는 편이었다.
특히 개인의 신상에 대해서도 어려운 점이 있으면 철저하게 해결해 주었다.
더구나 부하직원의 생일날이 돌아오게 되면 꽃다발을 주거나 고기 근이나 사도록 봉투까지 만들어 주기까지 하는 성격이었다.
이러다 보니 부하직원들이 월급만 타면 김 계장을 대접을 하게 되고 이런 회식 자리가 자주 있게 되었다. 김 계장의 주량은 늘고 그것이 일상화되다 보니 업무가 끝나기만 하면 거의 매일이다 싶이 술집으로 향하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김 계장은 술집으로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직속 부하인 이 주사를 반듯이 데리고 다녔다
이 주사는 그때마다 그것이 싫었지만 윗사람이 가자는 데 그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없어서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고 따라가서는 분위기를 맞추다 보니 어떤 때는 김 계장보다도 더 많은 술을 먹게 되었다.
김 계장이 거의 매일이다 싶이 술집을 드나들게 되자 술집마다 김 계장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고 그가 가는 집마다 환영을 받는 것은 그가 다니는 집에는 외상값을 한 푼도 지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 주사가 술값을 지불하였기 때문이다.
이 주사가 술값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은 김 계장이 모든 술값은 자기가 책임을 진다고 하면서 업무 비에서 충당하라고 하였지만 이 주사는 공금에다 손을 댔다가는 어떻게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 일체의 비용은 개인 호주머니에서 지출을 하였다.
어떤 때 이 주사가 계산을 해보면 봉급의 반 이상이 지출될 때도 있어 화가 나는 때도 많았으나 어쩔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그 날도 김 계장은 업무가 끝나자 이 주사에게 눈짓을 하면서 먼저 나갈 테니 따라오라고 하였다.
이주사가 일을 끝내고 김 계장이 잘 가는 술집 대문엘 들어서니 집안이 왁자지껄하고 서로 악다구니를 하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김 계장과 어떤 젊은이가 말다툼을 하는가 싶더니 젊은이는 김 계장의 멱살을 잡고는 얼굴을 때려 귀밑이 찢어져 피가 터진 상태였다.
이 주사는 이런 때는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지 금방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우선 젊은이를 뜯어말리려고 어깨를 잡았던 것이다.
그러자 젊은이는 지금까지 붙들고 있던 김 계장의 멱살을 놓음과 동시에 이 주사를 향하여 주먹을 날리었다.
이 주사는 너무도 엉겁결에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지를 못하고 한 대 맞은 것이 코피가 터지고 말았다.
“ 네가 뭔데 남 시비하는데 대드는 거야.”
젊은이는 눈을 똑바로 뜨고는 이 주사에게 재차 주먹을 휘두르려 하였다.
그러나 평소 운동으로 단련된 몸의 이 주사가 청년의 주먹을 맞고 그냥 있을 리가 없었다.
“무엇이 어쩌고 어째.”
이 주사도 한마디를 함과 동시에 상대방의 얼굴을 향해 억센 주먹을 날렸는데 이게 웬일인가. 그렇게 거들먹거리던 청년은 “어이쿠” 하더니 쭉 뻗으면서 눈을 허옇게 뒤집으며 나가자빠졌다.
금시에 사람들이 삥 둘러서더니 저마다 한마디씩을 하며 고소해 하였다.
“이 동네의 골치를 썩이던 놈이 오늘서야 단단히 임자를 만났구먼.“
“저런 놈은 이런 기회에 아주 동네에서 내쫓아야 하는 거야.”
“ 이주사가 역시 멋쟁이라니까.”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사이에 이주사의 주먹 한대에 뻗었던 청년이 억지로 일어나더니 “나를 때렸어 어느 놈이야.” 중얼거리면서 비실비실 술집대문을 나갔다.
“호호, 하하. 저 꼴 좀 보라니까.”
술집 아가씨들이 간드러지게 웃으면서 마루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김 계장의 말을 들으니 방으로 들어가자 아무 이유도 없이 멱살을 잡는데 어찌나 기운이 센지 꼼짝도 하지 못했다면서 평소 안면이 있는 놈팡이인데 그 사람만 나타나면 모든 사람들이 피하는 처지인데 김 계장이 잘 못 걸렸던 모양이라고 하였다.
하기야 술집이라는 곳에서는 술 먹던 사람들이 자주 싸우는 일이 있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지만 그 일로 해서 이 주사는 그때부터 몸조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 후의 일이다.
출근을 해서 업무를 시작하자 경찰에서 전화가 왔는데 며칠 전에 술집에서 있던 일로 해서 고소가 접수되었으니 출두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주사는 김 계장으로 해서 일이 잘못 꼬여 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경찰서 수사과엘 들어가니 고소 내용은 폭력으로 인해 피해자가 입원하고 있으며 합의를 해주지 않으면 입건 대상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정당방위를 하였는데 폭력으로 입건되다니 이 주사는 그것이 부당하다는 말을 하였지만 사건이 발생한 뒤에는 공무원이기에 불리하게 되어 있고 해결하는 방법은 합의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당장의 생각으로는 공무원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끝까지 부당함을 맞고소해서라도 싸움을 하고 싶었지만 군청의 윗분이나 집안의 아버지를 생각하니 도저히 그럴 수도 없어 이주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를 해주고 말았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언제 어느 때 어떤 불행이 닥칠지 알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 때에 이 주사에게 닥친 일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기에 이 주사로서는 두고두고 감정이 상하는 일이었다.
한편 이런 일이 있자 김 계장은 자기로 해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 이 주사에게 극구 미안해하면서 더욱 이 주사를 믿는 나머지 모든 업무를 이 주사에게 맡기다 싶이 하였다.
이 주사가 이렇게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업무는 훤하게 꿰뚫게 되고 이후 이 주사는 계장을 거쳐 현재는 과장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자 이 고장에서는 장래성이 있는 사람은 이주사라고까지 평이 날 정도로 이 주사는 어느새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그러던 이 주사에게 병명도 불분명한 것으로 인해 장기간 입원을 하게 되고 이제 와서는 공직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병이 낫지를 않게 되었으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 갑동 아버지는 백방으로 아들의 병을 고치려고 애를 썼지만 효험은 없었다.
그럭저럭 이 주사가 입원한지도 어느 듯 6개월이 넘었는데도 병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이 주사의 생각은 줄곧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머리에 떠올랐다.
이 주사가 입원할 당시만 해도 군의 간부들이 뻔질나게 병문안도 오고 속히 완쾌하라는
위로의 말도 자주 했으나 지금은 그런 사람도 없거니와 이주사가 결재 처리할 업무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일을 맡아서 하는 직원이 서툴러서 업무의 차질을 자주 빚는다는 소문까지 들리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이 주사로서는 어떤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조바심이 생기고 결국은 그 직을 고만두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렇게 마음이 굳어지자 이 주사는 어느 날 아버지가 병문안을 오시자 자신의 생각과 군청의 현실을 감안해서 아무래도 사표를 내야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이 갑동 목상 또한 올곧은 분인 데다가 아들의 의사를 모르는 배도 아니어서 고심 끝에 아들의 요청을 승낙하였다.
그러면서 이 갑동은 아들에게 너무 섭섭해 하지 말고 병이나 얼른 나으면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자며 아들을 위로하였다.
이 주사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고 이 갑동 아버지의 노쇠한 눈에서도 눈물이 엇 빛이기는 마찬가지였다.
40대 후반에 들어서 한창 일을 할 나이에 공직을 고만두게 되었으니 본인인들 얼마나 상심하였을 것이며 아까운 나이에 병원 침대에서 시간과 싸워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으니 생각할수록 이주사의 마음은 괴롭기 한량없었다.
더구나 늙으신 부모님 뵙기가 너무 민망하여 하루속히 툭툭 털고 일어나고 싶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였다.
처음에 아들이 입원을 할 때만 해도 이 갑동 목상은 젊은 사람이니까 쉽사리 병이 나을 것이라고 낙관을 하였으나 병은 낫지를 않고 드디어는 공직까지 고만두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자 아버지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이 병에 걸린 것도 그렇지만 잘만하면 얼마 안 있어 군수 자리 하나쯤은 치고 나갈 줄 알았는데 군수는 고사하고 아들의 건강이 너무 좋지를 않으니
부모의 가슴은 타들어 가는 것이었다.
사실 이 갑동 목상이 아들을 끔찍이 사랑했던 것은 자기 생전에 아들로 인해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이것이 빗나가고 있었던 것이니 늙은 부모의 고민 또한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어르신마저 몸져눕게 되었으니 이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이 갑동 목상은 아들이 입원 후부터 극도로 쇠약해진 탓으로 거동도 불편해 하고 식사도 거른 때가 많았는데 이러한 원인이 겹쳐서 나중에는 기력까지 잃으셨으니 돈도 명예도 다 소용이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이 갑동이야말로 젊어서는 일류 목상으로서 온 세상을 자기 세상처럼 누비고 다녔는가 하면 가는 곳마다 사업이 마음먹은 대로 잘 되어 한때 항간에서는 이 목상은 떠다니는 돈을 갈퀴로 긁어모은다고까지 소문이 난적도 있을 만큼 사업이 번창하였다.
농토를 장만하고 마을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앞장을 서서 해결을 해나갔으며 아들 또한 착하게 자라고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여 동리에서는 본받을 집안이라고까지 소문이 나기도 하였던 것인데 아들 하나 병중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보니 아버지로서는 도저히 이 일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순갑이 할아버지가 제대로 식사도 하시질 못하자 집안에서는 용한 의원을 모셔다가 진맥을 하고 약을 지어서 다려드리는가 하면 병원에 입원을 시켜드리기도 하였지만 좀처럼 이 목상의 병환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 중에 뜻밖에도 어느 날 병원에서는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니 댁으로 모셔 가라는 기별이 왔다.
집에서는 부랴부랴 순갑이 할아버지를 댁으로 모셔 와서는 미음을 끓여드리기도 하고 청심 원을 갈아 드리기도 하였지만 입으로 겨우 넘어간 것은 두어 숟갈뿐 전부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눈을 감으신 순갑이 할아버지는 입까지 꼭 담으시고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은 채 이틀이 지난 날 새벽에 갑자기 호흡곤란이 오는가 싶더니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하시고 할아버지는 사랑스런 가족을 뒤로 하고 90을 바라보는 연세에 눈을 감으셨다.
동리 사람들은 너무도 갑작스런 비보에 애석해 했으며 그 중에도 박 징걸네 식구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슬픔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였다.
게다가 이주사도 병환중이니 어르신의 장례의 모든 절차는 박 징걸이 맡아서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게 되자 박 징걸은 김 덕배를 불러 장례를 함께 모시자고 부탁을 하였다.
초저녁부터 밤늦게까지 조문객이 밀려들어오자 박 징걸은 이 주사를 대신해서 조문을
받았으며 김 덕배는 외지에서 들어오는 떡시루를 일일이 제상에 받치고 오는 손님들을 대접하는데 소홀함이 없도록 하였다.
동네의 아낙네들은 너 나 없이 장사 댁에 와서 밤늦도록 음식을 장만하고 청년들은 마당에다 황닥불을 해놓고는 번 갈아서 밤을 새웠다.
5 일장을 치르는 출상 날 새벽 먼동이 터 오자 이미 마당에는 상두꾼들이 조반을 먹기 시작하고 또 한쪽에서는 상여 틀을 손질하느라 분주하였다.
마침내 요령소리가 들리면서 머리에 흰 수건을 질끈 동여맨 상두꾼들이 상여를 메고 발인제를 지내고 나서는 바깥마당을 돌아나가기 시작을 하였다.
명정(酩酊)과 공포(功布)를 앞세운 상여 뒤로는 복인(服人)들이 길게 줄을 이었고 울긋불긋한 색깔의 만장이 뒤를 따르니 그 행렬은 자못 장관이었다.
가족들의 오열 속에 순갑이 할아버지를 모신 상여가 동리에서 좀 떨어진 선영으로 떠나자 동리 사람들이 나와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는데 날씨 또한 궂으면서 가랑비를 뿌리기 시작하였다.
“워남처 워워”
“워남처 워워”
“이 세상에 나온 사람 뉘 덕으로 나왔는가. 석가여래 공덕으로 아버님 전 뼈를 빌고 어머님 전 살을 빌어 칠성님 전 명을 빌고 제석님 전에 복을 빌어 이 내 일신 탄생하니 한두 살에 철을 몰라 부모은공 알을 손가. 어이없고 애닲구나…….“
요령 잽이 선소리꾼의 구슬픈 소리에 이은 상두꾼들의 상여 소리는 신작로를 지나면서 점차 작아지고 있었다.
“ 그렇게 마음씨 착한 양반이 아들이 병이 들자 만날 근심걱정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상심하셨으면 그렇게 가셨겠어.”
“ 이 주사도 건강이 좋지 않다던데 줄초상이나 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동리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순갑이 할아버지가 애처롭게 돌아가신 데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였다.
“ 사람이 한평생을 사는 동안에 저런 악상(惡喪)은 당하지 말아야 해.”
“ 자손이 없다가 아들이 생겨 그렇게도 좋아하시더니 아들 덕은 보지도 못한 채 돌아가신 것이 너무도 억울하고 불쌍해요.”
동리의 할머니들이 이구동성으로 눈물을 흘리며 하시는 말씀이었지만 순갑이 할아버지야말로 끝내는 자손의 복은 애당초에 없던 것과 마찬가지로 눈을 감으신 것이니 어찌 이리도 운명이라는 것이 박복하단 말인가.
순갑이 할아버지의 상여가 산모롱이를 돌아서 보이지를 않자 대문 밖에서 의자에 앉은 채 창백한 몰골로 아버지의 상여를 한없이 바라보던 아들의 눈에서는 폭포수 같은 눈물이 옷섶을 적시고 있었다.
“이 못난 자식 때문에 아버지를 편히 모시지 못하였으니 불효 망극한 이아들을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 “
어쩌면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혈기왕성한 젊은 날의 자신을 떠올려보기도 하였겠지만 이제 아버지마저 가셨으니 모든 것은 한밤중의 꿈이었던 것인가. 끝.
金 斗 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