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
제15회 작품상
류현서
제철공장의 고로 하나가 사라진다. 반세기 가까이 견디며 보수를 거듭해오다가 생명이 한계에 다다랐나 보다. 세월 앞에는 사람도 노쇠老衰하고 쇠도 산화된다. 고로도 사람의 육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고로는 잡다한 쇠붙이들을 열로 보듬는다. 보기 좋은 것도 흉한 것도 품어 안고 융화시켜 준다. 고로를 거쳐 나온 쇳물은 사물로 다시 태어난다. 고로는 쇠붙이의 자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뜨거운 쇳물을 끌어안는 동안 쇠붙이로 된 몸도 서서히 닳고 삭아진다.
나의 고로는 토함산 자락의 마을에서 시작됐다. 산은 그렇게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질펀한 능선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차츰 준엄한 형상을 드러냈다. 길고 짧은 골들은 청옥색 하늘을 이고 신묘한 입체화를 이루었다. 그런 입체화가 펼쳐지는 마을에서 어머니는 태어나서 자랐다.
말랐던 풀들도 일어서는 봄날, 열여덟 살 어머니는 이웃 마을에 사는 아버지를 만나 백년해로의 가약을 맺었다. 그 후, 두 분은 제철소의 쇠와 로고처럼 서로를 품기도 하고 녹이기도 하며 어른을 섬기고 형제들을 보살폈고 자식을 생산해 품어 키우느라 몸과 마음을 녹였다. 특히 어머니는 제철소의 고로처럼 가정의 중심이었고 자식들의 안식처였다.
쇠를 녹이는 고로가 뜨겁다한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보다 더 뜨거울 수 있을까. 혈육에서 우러나오는 정은 온도로 책정할 수 없다. 혈로 반죽되어 고로를 거쳐 나온 생명체는 떨어뜨리려 해도 떨쳐지지 않는다. 고로는 배출해 낸 살붙이와 피붙이들을 위해 살아왔다.
곰곰이 짊어보면 어머니의 생도 내적 외적 고달픔도 있었지만 기쁨과 흐뭇함도 없지 않았다. 권속들을 보살피며 살아온 어머니의 한 생애, 종갓집 종부로서 소임을 다하느라 승새 굵은 삼베치마 허리춤까지 땀에 적시고 또 적셨다. 일 년에 열 번씩 다가오는 봉제사 접빈객에 손끝이 물마를 새가 없었고 할아버지를 찾아 사랑채를 드나드는 손님에게 정성을 다하느라 늘 바빴다. 가족 중 누가 아프다고 하면 어머니 가슴에서는 가을 모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순이 넘도록 종종걸음을 치며 그렇게 살아왔다. 흐르지 않는 물이 없듯이 붙잡지 못하는 게 세월이다. 어머니의 구십 성상星霜도 하루하루 사는 동안 물같이 흘러버렸다.
구순을 갓 넘긴 어머니가 갑자기 위독해졌다. 어둠이 점점 짙게 맥질되는 시각에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짚불이 사그라지듯 어머니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별들이 숨을 죽였고 늦게 뜬 그믐달도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어머니도 달도 구름에 밀려 한마디 말도 없이 조용히 떠나갔다.
인생이란 그 자체가 구름이다. 비단 어머니뿐이겠는가. 역사의 이름을 남긴 구국 영웅이든, 숨이 넘어가던 사람을 살려준 의인이든, 수많은 일터를 제공하여 나라의 부흥을 일으킨 사람이든, 구름 같은 이 길은 갔다하면 못 오는 길인 것을.
멀리로는 적은 군사로 많은 적을 무찔렸던 장수도 한번 가면 끝이었다. 글을 만들어 문명을 밝혔던 학자도 어두운 곳도 마다치 않고 대중들을 위해 자신을 다 바친 성인이든, 어느 항구에서 한 소절의 노랫말 같은 인생을 풀어낸 성격이 털털한 선인도 이 길은 갔다 하면 다시 돌아왔다는 소리는 아직 못 들어 봤다. 동네 어귀에서 마을의 액운을 막아주던 아름드리 거목도 쓰러져서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영웅은 영웅으로만 부자는 부자로만 봤다. 명함 그 자체로만 봤던 거였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이름도 명예도 다 허무로 보인다. 누구나 한번 가면 다시 못 오는 것을 어머니의 죽음에서 간절히 실감한다.
어머니와 함께한 지난날이 허허롭기 그지없다. 태산이 높은 것이 아니고 만경들판이 넓은 게 아니었다. 내게는 어머니의 가슴팍이 어느 산보다도 듬직했고, 어느 평야보다 더 넓었던 거였다. 날숨이 길게 나오면서 온몸에 맥이 빠진다. 팔다리가 마치 아이들이 오래 주물인 헝겊 인형처럼 힘없이 걷는다. 이런 걸 보니 어머니는 생전에 내겐 만상의 근원이었고, 내 육체의 원기며 기氣를 살리는 생성원리였다.
이제까지 때로는 충고를 더러는 칭찬을 받으며 살아왔다. 어머니가 내게 준 염려도 힘이요 충고도 힘이고 칭찬은 더 큰 힘이 되었다.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들을 조각보처럼 꿰매본다. 다 읽지 못할 기억 책들을 오늘밤도 펼치다가 접었다 한다. 언제라도 찾아뵈면 “아야 배고프지 어서 밥 먹어라, 맛있을 때 많이 먹어라.”연달아 잉잉댄다. “많이 먹고 아프지 마라.”귀에 익은 목소리를 붙들려면 달아나고 달아났다가는 되돌아온다. 기억은 시간의 흐름을 정지시키기도 하고 세월의 순서를 바꾸어 놓기도 한다.
소리 없는 기억을 더듬다가 눈을 뜬다. 거실 유리창에 가늘게 휘어진 반쪽 달빛이 어려 있다. 유난스레 외로워 보이는 오늘의 저 달은 무엇을 생각할까. 우리가 겪는 희로애락을 구경하고 있을까. 어머니는 당신의 영혼을 저 달 속에 깊숙이 새겨두고 떠났을까. 그래서 달빛이 어머니의 영혼을 받아들여 희끄무레한지도 모른다. 넓고 넓은 하늘에 홀로 떠 있는 달은 누구나 혼자 떠나야 한다는 걸 암시하는 건지도…. 상처의 아픔은 육체적 고통이고 이별의 아픔은 정신적 고통이다. 떠나는 길을 동행할 수 없기에 그 심정은 가눌 길이 없다.
근 반세기 전, 철광석을 녹여낸 포항제철의 고로가 원화로 불을 지핀 후 1,000도가 넘는 열기로, 짙은 황금색 액체를 뿜어냈다. 그로 인해 조선과 자동차 산업의 발판이 된 제 1고로였다. 우리나라를 산업 메카로 발돋움시키고 서서히 장막을 거두었다.
어머니도 연세가 들면서 병원에 가는 날이 가지 않는 날보다 더 많았다. 제철공장의 고로가 낡아서 보수해가며 써 왔듯이 어머니의 건강도 그러하였다. 어머니를 두고 장수했다고 덕담처럼 말하는 분들도 있다. 요즘 백세 시대로 치면 장수라고 할 수 없다는 게 뒤에 남은 자식의 마음이다. 무병장수를 바랐으나 ‘극병장수’에 그쳤다. 기울어지는 달은 다시 차오르지만, 어머니의 쇠잔해진 기운은 다시 실해지지 않았다. 세월은 무심해도 인간사는 유심하다. 철광석을 녹여낸 고로도 나를 낳아 평생 감싸주던 어머니도 끝내 퇴역을 거부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고통도 무상이고 기쁨도 무상임을 나에게 알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품에 안아 키워주던 부모도, 마주 보고 살아온 사람도 끝끝내 함께할 수가 없고, 피를 나눈 수족 같은 형제도 동행하지 못한다. 모든 게 무상이라고 인생은 혼자가 되기까지 아프고 슬프고 기쁘고 행복해하면서 무상을 향해 가는 거라고……….
녹슨 쇠를 보듬은 고로처럼, 어머니는 곰살갑게 대해주는 자식이든 비포장도로를 굴러가는 소달구지마냥 털털거리는 자식이든, 하물며 질병이라는 불순물까지 다 껴안았는지도 알 수 없다.
어느 어머니인들 자식을 품고 자신을 희생하지 않겠는가. 내 어머니만은 그런 것이 아닐 테지만, 소리 없이 뜨겁게 생명을 다한 고로 앞에 숙연해진다. 벽에 걸린 어머니의 사진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히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