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장례 치른 지 다섯 달 만에
친구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장례식장에 갔다
흰 국화 한 송이 제단에 올리고
목례를 하는 동안
혹 눈앞의 고인보다 엄마 생각에 울컥할까
조바심을 냈는데
무심한 듯 초연한 듯 조문을 마치고
흰 쌀밥 우거지국에 수육을 얹으며
소주 몇 잔 훌쩍거렸다
지하 2층이지만 나무 창살이 지상인 듯
밝은 빛살을 보내는 곳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데
입구에 즐비한 근조화환을 보고
울컥하며 죄스러움이 가슴을 누르기 시작했다
살아계셔도 꽃 한 번 제대로 선물하지 못했고
돌아가셔도 미어터지는 화한 다발 안기기 못한
참으로 몹쓸 이 놈이
나무를 말하고 꽃을 말하는 이 현재의 삶이
장례 끝나면 흩어지는 저 국화꽃 같아 보여
꾹꾹 바위로 소리 없이 가슴을 쳤다
인식은 비교가 만들어주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인식이
참 행복이라는 말을
언제 나는 인식할까
2차로 흘러든 어느 수제 맥주집 앞에
검게 웅크린 단풍나무 너머 아파트를 보며
삶은
무겁게 흔들리는 나뭇가지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우리 삶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 오늘의 필사 시(詩)
그대 생의 솔숲에서
나도 봄산에서는
나를 버릴 수 있으리
솔이파리들이 가만히 이 세상에 내리고
상수리나무 묵은 잎은 저만큼 지네
봄이 오는 이 숲에서는
지난날들을 가만히 내려 놓아도 좋으리
그러면 지나온 날들처럼
남은 생도 벅차리
봄이 오는 이 솔숲에서
무엇을 내 손에 쥐고
무엇을 내 마음 가장자리에 잡아두리
솔숲 끝으로 해맑은 햇살이 찾아오고
박새들은 솔가지에 솔가지로 가벼이 내리네
삶의 근심과 고단함에서 돌아와 거니는 숲이여
거기 이는 바람이여
찬서리 내린 실가지 끝에서
눈뜨리
눈을 뜨리
그대는 저 수많은 새 잎사귀들처럼
푸르게 눈을 뜨리
그대 생의 이 고요한 솔숲에서
(김용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