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세한도(歲寒圖)(1)
고 오주석(吳柱錫)미술사가)
화발에 담긴 세월의 쓸쓸함
<세한도(歲寒圖)는 ‘추운 시절을 그린 그림’이다. 시절이 추우면 추울수록 사람들은 더욱 따스함을 그리워한다. 그리하여 조그만 온정에도 마음 깊이 감사하게 되니, 이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할 것이다. <세한도>는 당대의 통유(通儒)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1844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로 제주도에서 5년째 유배 생활을 하던 중에, 그의 제자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이 자신을 대하는 한결같은 마음에 감격하여 그려보낸 작품이다. 추사는 그림 왼편에 화발(畵跋) 공간을 따로 마련하여 엄정하고도 칼칼한 해서체(楷書體)로 작품을 그리게 된 연유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대가 지난해에 계복(桂馥) <만학집(晩學集)>과 운경(?敬)의 <대운산방문고(大運山房文藁)> 두 책을 부쳐주고, 올해 또 하장령(賀長齡)이 편찬한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 120권을 보내주니, 이는 모두 세상에 흔한 일이 아니다. 천만 리 먼 곳에서 사온 것이고, 여러 해에 걸쳐서 얻은 것이니, 일시에 가능했던 일도 아니었다.
지금 세상은 온통 권세와 이득을 쫓는 풍조가 휩쓸고 있다. 그런 풍조 속에서 서책을 구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힘들이기를 그같이 하고서도, 그대의 이끗을 보살펴줄 사람에게 주지 않고, 바다 멀리 초췌하게 시들어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을 마치 세상에서 잇속을 쫓듯이 하였구나!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이 말하기를 “권세와 이득을 바라고 합친 자들은 그것이 다하면 교제 또한 성글어 진다.”고 하였다. 그대 또한 세상의 도도한 흐름 속에 사는 한 사람으로 세상 풍조의 바깥으로 초연히 몸을 빼내었구나. 잇속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태사공의 말씀이 잘못되었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소나무, 잣나무는 본래 사계절 없이 잎이 지지 않는 것이다.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도 같은 소나무, 잣나무요. 추위가 닥친 후에도 여전히 같은 소나무, 잣나무다. 그런데도 성인(공자)께서는 굳이 추위가 닥친 다음의 그것을 가르켜 말씀하셨다.
이제 그대가 나를 대하는 처신을 돌이켜보면 그 전이라고 더 잘한 것도 없지만, 그 후라고 전만큼 못한 일도 없었다. 그러나 예전의 그대에 대해서는 따로 일컬을 것이 없지만, 그 후에 그대가 보여준 태도는 역시 성인에게서도 일컬음을 받을 만한 것이 아닌가? 성인 특히 추운 계절의 소나무, 잣나무를 말씀하신 것은 다만 시들지 않는 나무의 굳센 정절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역시 추운 계절이라는 그 시절에 대하여 따로 마음에 느낀 느끼신 점이 있었던 것이다.
아아! 전한(前漢) 시대와 같이 풍속이 아름다웠던 시절에도 급암(汲?)과 정당시(鄭當時)처럼 어질던 사람조차 그들의 형편에 따라 빈객(賓客)이 모였다가는 흩어지곤 하였다. 하물며 하규현(下?縣)의 적공(翟公)이 대문에 써붙였다는 글씨 같은 것은 세상 인심의 박절함이 극에 다달은 것이리라. 슬프다!
완당노인이 쓰다.
* 독특한 시각으로 옛 그림을 읽어 독자를 사로잡던 오주석 선생이 서세한지 벌써 몇 해가 지난것 같습니다. 옛그림 속에는 역사가 있고, 자연이 있고, 마음이 있다고 갈파하며 고미술 애호가들을 사로 잡던 그는 홀연히 자신의 작업을 마치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그의 수작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에서 추사 선생의 세한도를 함께 읽고 싶어 전재합니다. 많은 애독을 바라며.... 무림
첫댓글 감사합니다 무림선생님...평온한 휴일 되세요...
고맙습니다.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추사 선생에 관한 글을 함께 읽고 싶어 올립니다.
감사하고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시어 감사합니다.
오랫만에 꼬리글 답니다. 귀한 자료 잘보고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하얀 눈이 겨울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눈이 많이 내렸지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동하님 감사합니니다. 올 세한의 추운 겨울을 보내면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瑞雪도 내렸으니 기대도 됩니다. 건강하십시오.
귀한 자료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송곡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