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호숫가에
오늘도 폭우(暴雨)가 쏟아질 것이라는 예보(豫報)가 뜹니다. 우산을 배낭에 챙겨넣고 아파트 현관을 나옵니다. 폭우를 동반한 폭염(暴炎)은 여름에는 흔히 찾아오는 연례행사(年例行事)입니다, 겨울에는 강추위와 폭설(暴雪)로 인간들은 몸과 마음이 얼어붙기도 합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만물(萬物)이 소생(蘇生)하는 화사한 봄날이 희망을 노래하게 합니다. 가을 바람이 스치면 푸르던 나뭇잎은 낙엽이 되어 발길에 채입니다. 아름답게 만발한 꽃닢은 떨어져 버리고 내년을 기약해야 합니다. 이렇듯이 일년 열두살 365일도 똑 같은 날씨는 하루도 없습니다. 꽃이 만발했다고, 시원한 가을 바람이 부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고 약속을 저버리며 가야 할 여행길을 되돌리는 어리석은 바보는 없을 것입니다. 비가 오면 방바닥에 코 박고 있는 방콕의 노예가 되라는 법칙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찾을 수 없습니다. 매주(每週) 일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걷거나 산행한다고 햐여도 1,040번이 전부일겝니다. 70대 중반에 접어든 노객들이 앞으로 20년( 1년 52주 × 20년 = 1,040 )을 버틸 수 있다는 가정(假定)할 때의 경우입니다. 꿈도 야무지다 못해 뜬 구름 잡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꿈이 없는 인생은 삶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입니다. 황혼(黃昏)의 노을 속에 서서 노객(老客)들의 시계(時計)는 숨 가쁘게 쉬임없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멀고도 먼 저 높은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비구름을 벗 삼아 배낭을 메고 경의중앙선 운정역으로 향합니다. 경기도 파주시의 운정신도시의 중심에 자리한 운정호수공원을 순회(巡廻)할 예정입니다. 위짜추 씨모우와 운정역 1번 출구를 빠져 나옵니다. 하늘에는 비구름이 낮게 깔리고 연신 빗방울이 무더위를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우산을 썼다 벗었다를 반복하면서 소라천을 따라서 걷습니다. 개울에는 물오리들이 여유롭게 자맥질을 하며 유영(遊泳)을 하고 있습니다. 개울가에는 씀바귀가 군락(群落)을 이루며 노객들의 손길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경의로가 통과하는 밑으로 들어서니 잔잔한 호수 물결이 시야를 시원하게 합니다. 호수 가운데에는 커다란 황조롱이를 형상화(形狀化)한 작품으로 띄워 놓았습니다. 잠시 오리가 아닌가 하는 착각도 불러 일으킵니다. 호수 주위로는 산책로가 잘 구비되여 있습니다. 인공(人工)으로 조성된 공릉폭포 앞에서 폰으로 지기(知己)들의 멋진 폼을 입력합니다. 폭포수(瀑布水))는 고사(姑捨)하고 물 한방울 떨어지지 않는 바위로 쌓아 올린 방벽(防壁)의 모습입니다. 호수공원을 가로 지르는 스카이브릿지(Sky bridge)가 이채롭기도 합니다. 호수경관 사진을 전시(展示)하고, 호수에 서식하고 있는 민물고기들도 좁디 좁은 수족관에 갇히어 있습니다. 전시와 학습 체험을 위한 에코토리움이라는 공간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전시물을 관람하는 사람은 단지 노객 세명 뿐입니다. 쓸쓸함 마저 감도는 호수공원을 일렁이는 물결만이 작은 파문(波紋)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신도시 개발 이전부터 있던 소규모의 저수지들과 소라천을 연계하여 본래의 자연생태를 훼손치 않고 조성한 친환경적인 호수공원입니다. 면적은 약 74만 ㎡로 평상시에는 친수(親水) 도시공원으로 장마철에는 홍수를 조절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이처럼 큰 호수공원(湖水公園)을 개발하려면 막대한 시민들의 혈세(血歲)가 투입되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투자에 비례하여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이용을 하며 호응을 받고 있는지 모르게씁니다. 시원스럽고 편안한 넓은 공원 한 바퀴를 여유있게 돌아서 운정역으로 원위치(原位置) 합니다. 어느덧 비는 말끔히 가시고 오후 2시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경의중앙선 전철에 다시 몸을 실었습니다. 역촌역 근처에 있는 K 장어 전문식당에서 노오랗게 익어가는 장어의 졸깃한 맛이 발걸음을 바쁘게합니다. 간만에 들어서는 노객들을 주인장 주모가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시원한 쐬주 막걸리가 술잔에 넘치고 권주가의 목청이 장어를 흔듭니다. 명이나물을 비롯하여 참나물 된장찌게 양파 상추 깻닢 등등 반찬이 깔끔하게 마음에 듭니다. 못 다 채운 알콜의 농도는 맥주집 2층으로 올라가서 또 한병의 맥주를 추가합니다. 내일을 위한 아쉬움을 가슴에 품고 전공노가 되어 각자의 둥지로 향합니다. 운정호수공원 문제만이 아니라 국가나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사업들이 좀 더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예산이 집행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가당치도 않은 노객만의 걱정을 노파심에서 곱씹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17년 8월 26일 무 무 최 정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