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이 개학을 하고 지방학생들은 방을 못구해 방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고 있습니다.
아래 글 내용은 몇 년전 사회적 이슈로 대두 되었던 것을 근거로 쓴 글입니다.
여자분 룸메(룸메이트) 구합니다. A대 근처∼. 전 25세 남자구 대학생입니다.
방은 원룸이고 전세입니다. 룸메를 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사이의 믿음이라고 합니다.”
“여자분 룸메로 모십니다. 26세 B대생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메일을 쓩∼ 하고 날리세요.”
“정말 저렴한 대학생임다∼∼∼. 하숙집 아줌마와 트러블이 있어서…. 관계는 여성분 원하시는 쪽으로 해드리고요….”
인터넷 동거 카페 게시판에는 대딩(대학생)들이 올리는 글이 하루에도 수없이 올라온다. 조건만 맞으면 누구와도 동거할 수 있다는 이야기.
예전엔 그래도 사귀다가 살았다지만 이제는 살면서 사귀는 시대가 왔다.(이상은 세계일보 기사에서 발취)
몇 년전 모 방송에서 시작부터 관심을 모았던 신세대 동거를 다룬 “옥탑방 고양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이야기 주제는 세상의 모든 가치를 초월한 사랑, 그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현실의 결혼이라는 것은 그렇게 로맨틱하거나, 완벽한 행복의 시작이 아니다.
결혼은 희생으로 살아가겠다는 약속이며, 각종 의무와 책임이 무한대로 존재하는, 그야말로 사랑이 현실의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과 이제 결혼이라는 틀은 더 이상 사랑의 완성을 의미하지 않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있는 사랑이다. 라고 하는 새로운 생각으로 젊은이들의 사랑과 그들이 찾아낸 새로운 행복의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해마다 고학력 실업자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긴 커녕 밥벌이할 직업을 찾아 전전긍긍하는 젊은이들, 삶의 미로 속에서 자신의 꿈을 지켜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젊은이들의 꿈과 목표를 찾아가는 밝고 건강한 모습을 작가는 보여주려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통적 가족제도를 지켜왔고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혼전 순결을 신성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혼전 동거라는 드라마 주제와 요즘 젊은이들의 계약된 동거는 전통적 가족제도의 가치관이 뿌리체 흔들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옥탑방 고양이라는 연속극이 방영된 몇 년 후 지금 대학가의 문화는 성개방 풍조를 타고 인터넷에 노골적인 언사로 혼전동거 파트너를 구한다는 문구가 뜨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 형태가 빠르게 변해가는 요즘 가장 현실적으로 사는 그들의 의식구조를 이해해야할 부분도 있겠지만 나이든 나로선 그들의 신가족문화가 충격적인 것은 사실이다.
우리 젊은 시절 연애비용은 대부분 남자가 냈었다.
그래서 용돈이 궁한 사람들은 부담이 많이 갔지만 그 후 계산은 나눠서 내자는 “더치페이”라는 합리적인 방법이 생겨 서로 부담을 줄여 왔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생활비도 적게 들고 살아봐야 상대를 안다는 이유로 혼전 동거를 하는 젊은이들이 특정지역에 부락을 이루고 있다.
자신의 문제를 책임질 성인 남녀들이 합의하에 이뤄지는 것이기에 뭐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당사자 부모들이 찾아와 울고불고 데려가려는 것을 보면 젊은이들의 문제로만 나두기에는 아직 전통적 가족제도가 혼전 동거를 곱게 봐주지는 않는가 보다.
내가 알기로는 미국 및 유럽에도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혼전동거가 유행처럼 번졌고, 혼전동거는 행복과 거리가 있다고 밝혀졌는데 우리는 선진국의 문화를 선호하듯 지금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동거에 대한 논제를 반대하면 반(反)개혁 반페미즘적이라고 따돌림을 당할지 모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더라도 인생이 걸려있는 중요한 결정을 유행하듯 결정하여 동거하는 것은 한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내세우는 “살아봐야 상대를 알 수 있다”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성격차이로 이혼이 급증하는 현실을 보더라도 “살아봐야 상대를 알 수 있다”라는 이유는 젊은이들의 사이에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동거커플은 생활 형편과 건강정서가 불안전하고 바람도 더 피운다는 영국 사회조사연구소의 발표가 있었고, “결혼문제”의 저자 제임스윌슨은 동거커플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혼 부모 아이들보다 공부도 못하고 비행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적하는 보고서중에 첫 동거의 지속기간이 2년에 불과하며 동거커플 중 결혼에 골인한 사람은 열명 중 여섯인데 이들 중 35%가 10년 안에 헤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동거커플이 이혼할 확률은 동거 없이 결혼한 부부보다 서너배가 높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더라도 행복의 질이 아닌 것이 확실한데 얼마전 TV를 보니 혼전 동거에 대한 찬반의 시비가 사회적으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아마 지금 동거를 통해 결혼하여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 부부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커플은 혼전 동거에 대해 찬성할 줄은 모르겠으나 중요한 것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결혼이란 제도는 이어져왔고 아직도 결혼을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렇게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나 또 다른 신성한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 후 이혼을 줄이자는 명분을 내세워 동거에 들어가는 젊은이들,
“남녀가 한방에서 기거하는 것은 안 된다는 규제는 누가 만들어 낸 것인가”라고 항변하는 젊음이들,
경제적 이유로 자연스럽게 동거하는 젊은이들,
하지만 여성전용 인터넷 사이트에는 동거 실패 후 상실감을 달래려고 쓴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는 것을 보면 동거가 해피엔딩만으로 끝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요즘 사회에서 일고 있는 신세대들의 새로운 문화에 대해 내가 이렇다 저렇다 할 위치에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인생의 선배로서 한마디 할 것 같으면
결혼은 남자들이 군에 가서 사회요령을 배우듯 하는 것이 아니며 결혼은 서로를 알아가며 인내하고 상대를 배려하며 사는 것이다.
만약 동거에서 생에 대한 요령만을 배워 결혼 한다면 또 다른 이혼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그들이 내세우는 이혼을 줄이기 위해 동거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들은 신세대다운 의식으로 “동거는 선택이고 자유다”라고 외치고 있지만 문란한 성관계로 동거 중 아이를 낙태하고 임신중절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성인으로서 책임이 따르지 않는 동거는 방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