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진보)의 태동 유래 와 그 본성 >>>
"좌파(좌익)"과 "우파(우익)"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유래한 개념입니다. 이 개념이 현재에도 쓰이고 있죠.
좌익은 의회의 왼쪽에, 우익은 의회의 오른쪽에 앉았었던 것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당대 좌익의 대표적인 인물이 '로베스 피에르'이며, 우익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콩도르세입니다.
(예수님 생애 당시 유대의 최고법정이었던 산헤드린 공회에서 유죄로 확정된 사람은 왼편에 세우고, 무죄로
선고된 사람은 오른편에 세우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것 또한 우연이었을까요?)
좌익은 "진보주의"이며, '성장' 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분배'만을 중요시합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을 보다 중요시하며, 자본가가 더 내라 즉, 있는 사람이 더 세금 내라라는 강제적인 주장을 펴죠.
이에 반해 우익은 "보수주의"이며, 성장에 거점을 둔 평화적인 분배 를 주장합니다.
좌익을 태동시킨 장본인이자 좌익의 조상인 '로베스 피에르' 라는 프랑스사람이 좌익 으로서 한 짓 들과 그 사상의 본질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만 합니다.
왜냐면, 그 사상의 본질은 민중을 위한다는 거짓 명분으로 '혁명'을 일으켜 실제로는 살인과 잔인한 공포정치를 실행했으며 모든 권력을 본인만이 거머쥐는 데만 몰두하는 아주 저질적이고 이기적이고 사악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김일성 좌파정권 처럼 말입니다.
'로베스피에르'는 1758년5월6일 북프랑스의 아라스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였으며
17세 때에는 루이16세 가 루이르그랑을 방문시 생도대표로 환영사를 한 적도 있었으나,
후에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급진파의 중심에 서서 프랑스 루이16세 에게 죄를 씌워 죽이는 장본인이 되고 맙니다.
1791년 의 헌법으로는 왕은 주권자로서 불가침의 권한을 가졌기 때문에 법리적으로 왕이 내란이나
외환을 시도하지 않은 이상, 통치를 잘못했거나 국민이 증오한다는 이유로 탄핵처벌할 수는 없었으며,
루이16세가 외국세력을 끌어들여 혁명정부를 뒤엎으로 했다는 혐의는 입증할 근거가 부족했지만,
결국 로베스피에르 의 다음과 같은 주장이 먹혀 들어 왕을 탄핵시키고 죽이는 데 성공합니다.
"왕은 무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를 무죄라고 선언하는 순간 혁명이 유죄가 된다. 이제 와서 혁명을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러니 왕을 죽여야 한다.
혁명이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1793년 1월 19일, 재판은 끝났다. 그리고 이틀 뒤 단두대가 루이 16세의 피를 맛보았으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에 방해가 되는 사악한 반혁명분자들을 철저히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민공회에 노동자들을 난입시켜
의원들을 반혁명분자라고 끌어내고 루이16세를 처형시켰던 그 단두대에 올려 죽입니다. 이로써 막이 오른 '공포정치'는
1년 사이에 1만7천명을 단두대로 보냈고 지방반란진압과정에서 따로 3만명을 학살합니다.
지방에서의 ‘반혁명파 박멸’ 과정은 단두대보다 더 화끈해서, 사람들을 수백명씩 구덩이에 몰아넣고는 대포알 세례를 퍼부었습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숫자지만, 반정부 운동의 중심이었던 방데가 일시적으로 진압되었을 때에는 한꺼번에 25만 명이 학살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의 공포정치에 질려버린 국민들에 의해 권력을 독점하던 그 역시 그가 만든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로베스피에르 [Maximilien François Marie Isidore de Robespierre] - 프랑스의 혁명가 (인물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