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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09
경기 성남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이 정국을 흔드는 가운데 청와대가 의혹 제기 한 달여 만에 “엄중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입장을 처음 내놓았다. 논란이 여야 정치권과 법조계, 언론계로 크게 확산되자 더는 ‘정치적 중립’ 기조만으로 방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입장처럼 표명해 수위는 조절했지만 명백히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표현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과 경찰 측은 정부 조율이 가능한 합동특별수사본부 구성을, 국민의힘은 특별검사 도입을, 법무부는 현 수사 기조 유지를 각각 주장하는 가운데 최종 결정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카드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여론의 최대 관심사다. 청와대의 최종 선택에 따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방어 전략과 차기 대선 구도가 요동을 칠 것으로 보인다.
靑 ‘대장동 의혹’ 첫 입장...“엄중하게 지켜보고 있다”
지난 5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야당이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침묵한다는 공세를 펼치는데 입장이 있느냐’는 물음에 “청와대는 엄중하게 생각하고 지켜보고 있다”고 답했다. 기자들이 답변을 기대도 안 한 대장동 의혹 관련 질문에 청와대가 불현듯 첫 입장을 낸 것이다. 이 관계자는 다만 ‘엄중하게 지켜보는 대상이 무엇이냐’ ‘문 대통령의 관련 발언이 있었느냐’는 추가 질문에 “엄중하게 생각하고 지켜보고 있다는 문장 그대로 이해해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청와대는 이전까지 대장동 의혹에 철저히 거리를 두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달 23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대장동 의혹에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청와대를 거론했는데 침묵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자 “그걸 왜 청와대에 묻느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박 수석은 당시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며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청와대와 정부는 철저히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가운데 방역과 경제회복 등 현안과 민생이 집중하라”는 문 대통령의 7월5일 참모회의 지시를 상기시키며 “청와대와 대통령을 대선판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뿐 아니었다. 청와대는 지난달 14일에는 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대장동 의혹 관련 글을 이틀 만에 비공개로 돌리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달 3일에도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야당이 주장하는 특검에 대해서도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언급을 피했다.
그랬던 청와대가 이날은 이례적으로 야당 측 비판에 대응하는 형식으로 입장을 냈다. 내부 기류가 바뀌었음을 암시한 것이다. 같은 날 윤 전 총장 캠프의 이상일 공보실장은 “문 대통령의 침묵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엄정한 단죄를 원하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자 책임 방기”라고 비판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도 국회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정의, 공정을 가치로 외치던 문 대통령은 지금도 침묵하고 있다”고 압박했다. 청와대 측은 7일에도 ‘문 대통령이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추가적으로 내놓은 발언이 있느냐’는 물음에 “엄중하게 생각하고 지켜보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 지난 9월29일 오전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경기도 성남시 화천대유자산관리 사무실 입구 모습. / 연합뉴스
‘부동산 투기’ 참지 못한 文···정치적 해석 피해 일단 ‘수위 조절’
청와대가 야당 공세에 반응한 것은 관련 논란이 단순히 선거나 정치 문제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진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청와대의 공식 입장이 문 대통령 의중과는 무관하게 나오기는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통령의 심경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특히 의혹이 부동산 투기와 연계됐다는 점이 문 대통령의 인식을 바꾼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현 정부가 지금껏 부동산 가격 급등을 투기꾼과 토건세력의 문제로 지적해 왔기에 이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느꼈을 것이란 추정이다. 실제로 대장동 의혹에는 천문학적인 금액과 함께 여야 정치인들은 물론 고위급 판·검사 출신 인사들까지 줄줄이 엮여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당초 문 대통령이 일찌감치 ‘철저한 수사’ 지시를 검토했다는 얘기도 돌았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 ‘부동산 투기’ 문제는 정권 내내 민심의 발목을 잡아 온 문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과 일부 정치인들의 땅 투기 의혹은 4·7 재보궐 선거의 여당 참패로도 이어졌다. 대장동 의혹 문제를 서둘러 털고 가지 않으면 이재명 지사 본인은 물론 대선 전체에도 악영향이 끼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상당수 청와대 참모들은 다만 ‘대선에 영향을 미칠 메시지를 내서는 안된다’며 ‘철저한 수사 지시’에 부정적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기관의 독립된 수사를 지켜보는 자세부터 취해야 한다는 뜻에서다. “엄중 주시” 메시지는 참모들의 만류로 나온 일종의 절충안으로 평가됐다.
청와대 역시 최근 입장 발표가 부동산 문제 차원에서 이뤄졌을 뿐 정치적 해석을 남긴 건 아니라고 거듭 선을 그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서울경제와의 전화 통화에서 “청와대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해석할 문제는 아니다”라며 “'부동산 문제'에 대해 국민이 느낄 허탈함을 고려해 입장을 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는 이를 두고 8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2018년 이후 정책 실패로 집값이 솟아 민간사업자 이익이 1,800억원에서 4,000억원대로 늘어난 것”이라며 “나는 노스트라다무스가 아니어서 수년 후 집값이 오를지 내릴지 몰랐다”고 항변했다. ‘정책 실패’라는 표현으로 초과 이익 문제가 자신의 실책이나 무능이 아닌 문재인 정부의 실패임을 에둘러 강조한 것이다.
이낙연·이재명·경찰 “합수본” vs 박범계 “현상유지” vs 野 “특검” 대충돌
대장동 의혹 수사 방법과 관련해서는 정치권에서도 서로 다른 주장으로 크게 충돌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가 입장을 낸 뒤부터는 그 강도가 더 거세지는 분위기다.
이 지사의 라이벌인 이낙연 민주당 후보 측과 여권 일각에서는 현 정부 사정기관이 대거 참여하는 합수본 구성을 거듭 제안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로 분산된 수사를 한 데 모아 더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캠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인 우원식 의원도 지난달 30일 "이낙연 후보께서 제안한 대로 검찰·경찰·국토교통부·금융감독원 등 유관기관이 모여 합수본를 구성해 즉각 단호한 수사를 진행할 것을 요청한다”며 정면 돌파 의지를 내비쳤다. 김창룡 경찰청장도 5일 서울 경찰청사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LH 수사처럼 정부 합수본도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후 채널A는 6일 민주당 핵심 관계자를 인용해 민주당이 추진하는 정부 합수본 구성에 대해 청와대도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내놓았다. 이낙연 캠프의 설훈 공동 선대위원장은 7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유동규가 배임 이유로 구속돼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시장이 배임 혐의가 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사안”이라며 “후보가 구속되는 상황도 가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캠프 조정식 총괄 선대본부장은 이에 “국민의힘을 대변하는 주장을 펼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에 반해 청와대와 총리실 등은 합수본 구성에 아직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7일 기자들과 만나 “합수본 구성에 청와대가 동의했다는 기사는 봤지만 근거가 없어 보이고 내용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8일 정부과천청사 출근길에서 취재진과 만나 “현재 수사가 문제점 있다고 보진 않는다”며 “합수본을 구성하라는 것 자체가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고 일축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는 같은 날 이 지사 배임 혐의 고발 사건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이관했다.
야당은 특검 도입을 관철시키기 위해 총공세에 나섰다. 국민의힘은 6일 당 지도부와 대선 주자들이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특검 도입을 촉구했다. 윤 전 총장은 “대장동 의혹이 아니고 확인된 배임 범죄”라며 검찰을 향해 “압수수색이며 뭐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이따위로 수사하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면서 “특검은 두 갈래로 가야 한다”며 “대장동 비리와 이것을 일찍부터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자료를 받고도 사건 수사를 뭉갠 수사 관계자들 비리, 두 가지를 함께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 사건은 이재명 게이트로, 주범이라는 증거가 차고 넘친다”라며 “이 지사가 재직하면서 화천대유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분명히 더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준석 당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 이후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서울 여의도부터 청와대까지 도보로 이동했다. 대장동이 지역구이자 대장동 태스크포스(TF) 위원을 맡고 있는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대장동 주민들과 함께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정의당 대선주자인 이정미 전 대표도 8일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서 “‘국민의힘 게이트다’라고 얘기할 것이면 민주당이 특검을 못 받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달 각종 국정감사에서도 대장동 의혹은 대부분의 현안을 뒤덮었다. 강민아 감사원장 권한대행은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국감에서 성남도시개발공사가 50%의 지분을 가진 ‘성남의뜰’에 대한 감사 가능성에 대해 “회계 감사는 가능하다. 직무 감찰은 확인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낸 입장에 대해선 “사안의 중대성을 강조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 및 의원들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대장동 게이트 특검 추진 천막투쟁본부 출정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野 인사들도 연루돼 특검 반대 명분 약해···文心이 차기 대선도 좌우
당장은 주장이 엇갈리지만 정계 안팎에서는 청와대와 여야 모두 결국 특검을 염두에 두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 7일 합수본 보도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은 반면, 야당의 특검 도입 주장에는 “엄중하게 지켜보고 있다”며 다소 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들이 신뢰하지 못할 검·경 수사보다는 특검 수사를 통하는 게 대선 전 악재를 확실히 해소하는 데 더 유리할 여지가 있다. 의혹에 여권 인사뿐 아니라 야권 인사들까지 상당수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점도 특검 도입에 부담이 덜한 부분이다. 무엇보다 정권 내내 줄기차게 ‘검찰개혁’을 외쳐온 현 정부가 정권 재창출과 직결된 사안을 검찰 수사에만 기댈 경우 자칫 검찰에 ‘꽃놀이패’를 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불안 요소로 꼽힌다. 국민적 의혹은 점점 커져만 가는데 대선 끝까지 특검 도입을 반대할 명분도 약하다. 수사를 질질 끌기에는 대선까지 남은 기간(5개월)도 너무 길다. 야당 입장에서는 대선 내내 여당 유력 후보에 부정적인 이슈가 이어지는 상황 자체가 호재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 캠프와 이낙연 캠프 역시 특검 가능성에 다들 어느 정도 대비하고 있다는 설도 돈다. 이 지사 입장에서는 특검을 전격 수용하면서 의혹을 정면 돌파하고 이슈를 선제적으로 끌고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특검의 시기는 여야 모두가 민감하게 계산해야 할 변수다. 여야가 특검에 합의하고 문 대통령이 적임자를 임명한다 해도 그 시기는 물리적으로 내달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여야 대선 본선 후보가 완전히 확정된 이후라는 것이다. 특검의 수사가 단순히 몇몇 혐의를 포착하는 수준이 아니라 대선 결과와 나라의 미래까지 바꿀 수 있기에 짧은 기간 안에 유의미한 결과를 끌어낼 지는 미지수다. 만약 대장동 수사가 대선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끝날 경우 이 지사와 청와대, 정치권이 모두 면죄부를 얻을 수도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겨냥해 출범한 ‘BBK 특검’이 거론된다. BBK 의혹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가 제기해 검찰 수사까지 이어졌다.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이명박 후보는 대선 사흘 전 특검을 수용했고, 특검은 이 전 대통령 취임 직전 또 다시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이번 사건 역시 수사 시기가 어긋나거나 미래 권력의 눈치를 볼 경우 특검 도입만으로 여야 모두 원하는 결과를 담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검 논의 전까지 국민의힘과 기존 수사기관이 이 지사와 대장동 특혜 연관성을 얼마나 규명하느냐도 관건이다.
물론 특검 논의가 좌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의힘 쪽 제안을 수용하는 것에 대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강한 거부감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민주당 당심은 이미 의혹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 지사를 최종 후보로 좁히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대장동 의혹이 윤 전 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을 밀어냈듯 대선판에 다른 대형 이슈가 부각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결론적으로 대장동 의혹 수사는 문 대통령의 의중이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 본인은 대선판에서 ‘정치 중립’을 선언했지만 ‘본의 아니게’ 임기 마지막까지 차기 대선 구도에 영향을 끼칠 판단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결심에 이 지사의 운명도 크게 흔들리게 됐다는 평가다.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고심 끝에 꺼낼 카드에 국민들의 이목이 당분간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서울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