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의성
우리 민족은 농사를 천하의 으뜸가는 일로 삼아 온 농옌 민족이다. 농사일은 자연의 변화에 따라 결실이 달라지므로 사람들은 자연의 위력에 대해 경이감을 느끼고 이를 지배하는 신령에게 주술을 베풀거나 제사를 올려서 농사의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였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 풍속이 농경 의례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세시 풍속은 물론 신앙이나 놀이들도 여기에서 발생하여 변화해 왔다.
농경 의례는 정월에 그 해의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며 행하는 기풍 의례,뿌린 씨앗이나 옮겨 심은 모가 탈없이 자라 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오월 수릿날과 칠월 백중 사이에 행하는 성장 의례,그 해의 풍년에 감사한고 이듬해에도 연풍이 되기를 기원하는 수확 의례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세 유형의 의례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정월의 기풍 의례가 가장 높아서 전체의 절반이 넘고 다음이 성장 의례,수확 의례의 순서가 된다. 이러한 비율은 농경 의례 가운데에서도 기풍 의례가 가장 기본적이고 또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절실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농경 의례의 성격상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집단 놀이와 농경 의례가 베풀어지는 시기가 비슷한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민속 놀이 중에는 천신이나 동신에게 풍년과 마을의 태평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 신령의 기쁨과 감동을 불러일으킨 후,신령과 인간이 한데 어울려서 흥겹게 춤추고 노래 부르는 잔치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많다. 이러한 까닭으로 대부분의 집단 놀이가 제의를 위한 전반부와 놀이 자체를 위한 후반부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2. 향토성
이미 이야기했듯이 집단 놀이 중에는 농경 의례에서 발생한 것이 많으나 각각 다른 지역에서 전승되어 오는 동안 그 고장의 특유한 자연이나 인문 환경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개성을 지닌 향토 놀이로 발전된 것들도 있다. 그 가운데에는 한 뿌리에서 나왔지만 지금에 와서는 전혀 다른 것으로 변모된 것도 있고 사회적인 격변 속에서 아주 자취를 감춘 것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집단 놀이는 전승되어 오는 과정에서 군더더기가 빠져나가고 알맹이가 닦여 세련미가 더 심화되었다. 따라서 향토 놀이는 그 지역 특유의 개성을 강하게 풍기면서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예술성과 친근미를 갖추었다고 하겠다. 향토 놀이야 말로 우리의 기쁨과 슬픔,서러움과 환희,신성함과 비속함이 한데 어우러진 민중의 대표적인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집단 놀이 78개 가운데 35가지(44.87퍼센트)가 향토 놀이로 매우 놀은 비중을 차지한다.향토 놀이의 분포를 보면 제주도가 가장 많아서 열 한가지에 이르고 ,함경도와 경상남도,경상북도가 각각 다섯 가지,전라북도가 세 가지,충청남도가 두 가지 그리고 경기도,강원도,전라남도 ,평안남도,함경북도는 한 가지 씩이다.
제주도의 놀이가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것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지역적인 특성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그리고 제주도 다음으로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 영남 지방인데,여기에 이 곳에 남아 있는 탈춤을 더하면 제주도보다 놀이의 가짓수가 더 많아질 것이다. 이 곳에 향토 놀이가 많이 남아 있는 까닭은 놀이를 뒷받침할 만한 경제적인 여유도 있었거니와 거기에다가 다른 지역과 견주어 지역적인 보수성이 강한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영남 지방의 향토 놀이가 안동이나 밀양 그리고 영산과 같은 과거에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였던 역사 깊은 고장에서 전승되고 있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형상은 영남과 호남,두 지방에서 대조적으로 나타난다.호남은 영남에 견주어 경제적인 여유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승 놀이의 가짓수가 매우 적으며 그나마도 절반쯤은 서해의 작은 섬인 위도나 광주 근처의 광산과 같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곳에 남아 있는 놀이들이다. 호남의 경우에는 바로 이 경제적인 여력이 판소리와 같은 풍류 예술을 발전시킨 밑받침이 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향토 놀이의 전승에는 소홀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향토 놀이의 분포를 도 별로 살펴보면 제주도에 이어 함경남도가 두번째로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한 지역에서 향토 놀이 세가지가 행해졌던 점에서 북청은 으뜸가는 놀이의 산지라고 하겠다.
한편 35가지에 이르는 향토 놀이의 목적을 살펴보면 놀이 자체가 목적인 것이 30퍼센트쯤이고 풍어나 태평을 위한 것이 각각 20퍼센트 그리고 풍농과 관련 있는 놀이가 15퍼센트쯤으로 향토 놀이에서도 오락성보다는 제의적인 성격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향토 놀이가 전승되어 온 마을에는 크거나 작거나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당집 한두 채 혹은 서너 채가 남아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제사 뒤에 놀이를 펼쳐 보임으로써 신령의 환심을 얻고 그 결과로 태평 세월을 누리게 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향토 놀이 중에는 놀이 자체의 기간이 사흘이나 열흘 혹은 보름이나 스무날까지 계속되는 것이 있으며,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기간은 더 길어진다. 또 놀이의 준비 기간만도 보름에서 한 달까지 걸리는 것도 있다. 경상북도 안동이나 경상남도 영산에서는 동채나 나무쇠를 지을 재목을 구하기 위해 한 해 전부터 사람을 여기저기 보내기까지 한다.
따라서 향토 놀이는 승패 자체보다도 놀이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의 협동심을 길러 주고 자기 고장에 대한 긍지와 애정을 느끼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3. 예술성
우리의 민속 놀이 가운데에는 오랜 기간 전승되어 오는 동안에 세련미를 더하여 단순한 놀이의 차원을 넘어서서 민속 예술의 경지에 까지 이른 것도 있다.이러한 놀이는 전체 집단 놀이의 절반이 넘는 마흔 가지에 이르며 놀이 자체나 거기에 등장한 개인이 정부로부터 무형 문화재 혹은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기도 했다.
집단 놀이를 민속 예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데에 가장 큰 구실을 하는 것이 농악이다. 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이끌고 통제하며 떠 이들을 놀이의 분위기 속으로 끌어들이고 흥취를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농악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집단적인 예술 놀이에 농악이 등장하는 것이 이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실제로 집단 놀이 78가지 가운데 농악이 주된 구실을 하는 것이 3분의 1쯤 되며 그 밖에 반주 역할을 하는 것까지 포함시키면 절반이 넘는다.농악은 그 자체로서도 훌륭한 예술이지만 이처럼 민속 놀이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도 된다.
놀이판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농악이 울려 퍼져서 신명이 오르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손짓,어깨짓,몸짓,다리짓을 하기 마련인데 이것이 곧 춤이다. 놀이 자체나 가락의 종류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집단 놀이에서 반드시 춤판이 벌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음악과 춤은 따로 떼어 낼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으며 놀이에 따라 음악이 앞서고 춤이 뒤따르거나,이와 반대로 춤이 위주가 되고 음악은 반주 구실만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위적인 요소 말고도 자연적인 배경도 민속 놀이의 예술성을 더해 주는 데 한 몫을 한다. 집단 놀이 가운데 밤낮을 이어서 계속되는 놀이는 모두 26가지에 이르며 이들은 대부분 정월 대보름이나 한가윗날 밤에 벌어진다. 밤이라는 자연적인 배경에 휘영청 밝은 달이 더해져서 더할 수 없이 이상적인 분위기가 빚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