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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승리자는 바로 우리들” |
[여성노동자 열전-5]경남지부 김은형 한국산연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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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백 명이던 조합원은 이제 70여 명으로 줄었다. 회사는 휴업을 밥 먹듯이 하고 부서가 없어졌다 생기길 반복했다. 90년대 초반부터 회사가 자본철수를 노리며 구조조정을 시작한 지 20년 만에 한국산연은 이 모습이 됐다. 그리고 한국산연지회 노동자들의 싸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김은형 한국산연지회장은 여성 조합원이 대다수이던 1994년부터 여성 조합원이 20~30명으로 줄어든 지금까지 총 11년 동안 지회장(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김 지회장은 현재 금속노조 경남지부에서 유일한 여성지회장이다.
한국산연이 위치한 곳은 경남 마산의 수출자유지역. 지회는 이 곳 95개 회사 중 유일하게 민주노총 소속이다. 지회의 싸움은 이 곳 마산수출자유지역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1970년 수출자유지역설치법에 따라 만들어진 이 지역에는 일본 기업이 대거 들어왔다. 대부분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일본 산켄전기의 자회사인 한국산연도 1972년 이 지역에 자리 잡았다.
마산 수출자유지역 유일한 민주노조
“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여기서도 큰 싸움이 벌어졌고, 그때부터 노조도 만들고 임금도 100~200%씩 올랐다”는 것이 김 지회장의 설명이다. 이후 외국 자본들은 더 싼 임금을 찾아 동남아 등으로 기업을 옮겼다. 그리고 이제 3만 명이 넘던 지역 노동자는 현재 1만5천 명으로 줄었다.
▲ 김은형 지회장은 여성 조합원이 대다수이던 1994년 시작해 여성이 20~30명으로 줄어든 지금까지 총 11년 동안 지회장(위원장)을 맡았고, 그 기간 말 그대로 빡센 투쟁의 세월을 보냈다. 경남지부 소속 사업장 중 유일한 여성지회장이기도 하다. 신동준 |
김 지회장이 처음 노동조합 위원장을 맡은 다음 해인 1995년 당시 노조는 한국노총 소속에서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를 바꿨다. 그 해 전국적으로 노동법 개악저지 투쟁이 벌어졌고 당시 노조도 그 싸움에 결합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말 노조는 임단협에 돌입했다. 같은 달 회사는 이미 주주총회에서 한국공장 철수 계획을 통과시킨 상태였다. 그때부터 1년 6개월의 투쟁이 시작됐다.
당시 단순부품 조립 작업이 주를 이루던 회사에 현장 노동자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한국을 떠나겠다던 회사를 지켜낸 주역도 여성조합원들이었다. 김 지회장은 “그때 조합원이었던 남성 초급 관리자들은 다 탈퇴하고 여성조합원들만 최후까지 남아서 싸웠다”며 “1년 넘게 농성하면서 직장폐쇄에 단전단수, 임산부 폭행, 구타 당해서 병원에 실려가는 일까지 벌어졌었다”고 회상했다. 조합원들은 그 상황에서도 “한국노동자 짓밟는 일본기업 더 이상 이 땅에 발 못 붙이게 하겠다”는 각오로 싸웠다. 결국 회사는 회사를 철수하겠다던 주주총회 결정을 폐기했다.
회사 지켜낸 여성노동자들
회사가 언제 문 닫을지 한시도 맘 놓을 수 없지만 여성 관련 복지 단협만큼은 어느 곳 부럽지 않다. 김 지회장은 민주노총으로 전환한 뒤 첫 싸움을 수유시간, 육아휴직 등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말한다. “수유시간 하나 따내는 것 가지고 6개월 가까이 싸웠다. 우리 때문에 여성 관련한 복지 다른 회사도 많이 바뀌었다.” 김 지회장은 자랑을 이어갔다. 한국산연 노동자들은 출산 후 수유시간을 보장하는 의미로 오전 한 시간 늦게 출근하고 오후에 한 시간 일찍 퇴근한다. 수유자를 위해서 따로 공정을 만들기까지 할 정도로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그리고 임신하면 무조건 주간 부서로 옮긴다. 산전산후 휴가도 정해진 기간 안에서 본인이 원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것 모두 끈질긴 싸움의 성과다.
▲ 김은형 지회장은 “여성들의 마인드는 굉장히 훌륭하다. 정서적 풍만함이 많은 것을 포용하고, 그것이 사람들을 단결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 지회도 여성 간부들이 있어서 그런지 남성들만 있는 곳하고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 지회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신동준 |
그 동안 여성으로서의 어려움이 어떠했는지 궁금했다. 특히 남녀 조합원이 같이 있는 사업장에서 여성지회장을 발견하기란 노조에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 김 지회장은 “내 경우야 처음 여성들이 대부분일 때 위원장을 맡았고 어려운 시기 다시 맡아 지회 투쟁 열심히 하라는 조합원들 뜻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다른 곳에서 여성들이 나서서 활동하고 간부를 맡기가 쉽지는 않은 조건”이라고 말한다.
“여성들 마인드 굉장히 훌륭하다”
“여성들 스스로도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성들이나 사회의 편견도 크고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다. 할당제를 강제해서라도 여성간부, 활동가들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김 지회장의 이런 생각에는 노조 활동 중 조합원들의 단결을 가장 중요시 하는 데에도 그 이유가 있다.
김 지회장은 “여성들의 마인드는 굉장히 훌륭하다. 정서적 풍만함이 많은 것을 포용하고, 그것이 사람들을 단결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 지회도 여성 간부들이 있어서 그런지 남성들만 있는 곳하고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 지회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 김은형 지회장은 이 중 핵심은 ‘잊지못할 동지’에 있다고 말한다. “자본이 철수를 한다고 우리가 바로 흩어질거냐, 아니 회사가 남는다고 해도 우리가 분열된다면 과연 그게 승리라고 할 수 있겠냐. 정말 잊지 못할 동지로 남는 투쟁을 하자는 것이 우리 지회의 가장 큰 목표다.” |
현재 회사가 한국에서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에 김 지회장은 늘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김 지회장은 그 긴 투쟁의 기간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에 대해 말한다.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됐던 건 조합원들의 믿음과 사랑이었다.
그렇게 겪어야 하는 시련이라면 신명나는 시련 아니겠냐.” 김 지회장은 “우리는 여성들만 주축이 돼서 싸워서 이겨보기도 했고, 이제는 또 남성 조합원들이 다수가 됐다. 남녀라고 계급성이 따로 있겠냐.”고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지회로 뭉쳐서 조합원들 관계가 끈끈해지고 그 믿음으로 하나되어 싸우느냐다.”
김 지회장은 올 1년 사업계획을 세우면서 “2012년 노동자 민중의 대반격이다. 잊지 못할 동지가 되고 하나의 심장으로 공장과 세상의 주인으로! 내가 바로 승리자다”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김 지회장은 이 중 핵심은 ‘잊지못할 동지’에 있다고 말한다.
“자본이 철수를 한다고 우리가 바로 흩어질거냐, 아니 회사가 남는다고 해도 우리가 분열된다면 과연 그게 승리라고 할 수 있겠냐. 정말 잊지 못할 동지로 남는 투쟁을 하자는 것이 우리 지회의 가장 큰 목표다.” 김 지회장은 그 목표를 함께 할 동지들이 있어 최후의 승리자는 바로 자신들일 거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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