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야곱의 우물가에서
설교 중심 사상: 생명수이신 예수님을 마시는 자는 생명의 샘의 통로가 된다.
사람의 몸에서 물이 부족할 때 여러 증상이 나타납니다. 물이 1% 부족하면 갈증을 느끼고, 2% 부족하면 갈증이 심해지고 식욕이 떨어집니다. 물이 3-4% 부족하면 구토감과 무력감이 발생하고, 5-6% 부족하면 체온 조절이 어려워지고 맥박과 호흡이 증가합니다. 물이 11% 부족하면 열사병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지고, 12% 부족하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처럼 물은 사람의 생명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구원에 없어서는 안 될 생명수가 되십니다.
A. 목마름을 가진 사람
예수님이 제자들과 사마리아 수가의 한 우물에 도착하신 것은 정오쯤이었습니다(요 4:5-6). 재림교회 성경 주석은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때는 AD 28년 12월이나 AD 29년 1월경이었다. ・・・예수와 제자들은 새벽부터 길을 걸어왔을 것이며, 24-32킬로미터 정도 여행했을 것이다. ・・・예수는 자기의 개인적인 필요를 채우거나, 갈증이나 배고픔과 같은 신체적인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하여 결코 이적을 행하지 않았다.“
그때는 겨울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겨울이 우리나라처럼 춥지는 않지만 그래도 춥습니다. 예수님은 24-32km를 걷기 위해 이른 새벽 4시, 늦어도 6시에는 출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축지법이나 순간 이동 같은 기적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제자들과 함께 부지런히 걸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추운 겨울 새벽부터 예수님이 왜 그렇게 걸으셨는지 몰랐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물을 길러 오는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 새벽부터 그 먼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우물에서 한 여인을 만나셨고 그녀에게 물 한 잔을 부탁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유대인을 경계했기 때문에 당황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녀에게 자신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의아해하며 대화를 피하려던 여인이 예수님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당황했습니다. 예수님이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놀란 그녀는 남편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요 4:17-18). 예수님은 여인의 거짓말을 책망하지 않고 그녀를 이해하며 공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옳다' '참되다'라는 말씀은 이런 뜻이었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많은 남자를 만나봤지만, 진정한 사랑을 주고받은 사람은 없었지요. 현재 함께 있는 사람도 그런 사랑을 주는 남자는 아니지요. 그러니 당신이 남편이 없다고 한 말이 맞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여인은 떨었습니다. 신비한 손이 영원히 숨기고 싶었던 자신의 과거를 들추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죄 받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시대의 소망 189페이지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그 여자의 생애의 비밀을 통찰하셨다는 것을 그녀에게 확신시키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예수가 자기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는 친구라고 느꼈다.”
그 여인은 공허했고 사람으로부터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정민 목사는 그의 책 '인생은 선물이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의 사랑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람의 사랑으로는 목마릅니다. 사람 안에는 사람의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온 마음은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습니다."[조정민, 「인생은 선물이다」 (서울: 두란노서원, 2012), 19]. 많은 사람이 사람의 사랑을 받지 못해 허전해 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도 여전히 허전해 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과거를 드러내셨지만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녀를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셨고 따뜻한 친구로 대해 주셨습니다. 때로는 바른 말을 하는데도 얄미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 말에 사랑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죄를 송곳처럼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그분의 눈빛과 음성, 태도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런 예수님을 만나면서, 그분이 주시는 생명수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B. 목마름을 가진 예수님
그날 우물가에는 목마름을 가진 또 한 분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물을 마시고 싶은 목마름뿐 아니라, 그보다 더한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4:31-34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이 우물가에서 그 여인을 만나던 동안,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갔습니다. 그들이 구해온 음식을 권하자, 예수님은 자신에게 그들이 모르는 양식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누군가 예수님께 먹을 것을 갖다 드린 줄 알았습니다. 그날 예수님은 아무 음식도 드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다른 양식을 드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시대의 소망」 191페이지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에게 하신 당신의 말씀이 그 여자의 양심을 깨우쳤을 때 기뻐하셨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가 생명수를 마시는 것을 보셨다. 그리하여 그분의 주림과 갈증은 채워졌다. 진리를 위해 주리고 목마른 영혼을 섬기는 것이 그분에게는 먹고... 마시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었다. 예수께는 그것이 안위와 원기 회복의 요소였다.”
옛날 어른들이 보기에 좋다고 했던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논에 물이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식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자식이 잘 먹는 것을 보면 부모는 안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제가 어머니께 전화를 하면 어머니는 언제나 잘 먹고 있는지 물어봅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것은 또한 예수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생명수를 잘 마시고 생명의 빵을 잘 먹어서 하늘의 힘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날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이 생명수를 마시는 것을 보며 기뻐하셨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의 용서와 평안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며 예수님의 목마름과 배고픔은 채워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자들이 알지 못했던 예수님의 양식이었습니다. 그녀가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예수님의 목마름은 넉넉히 해결되었습니다.
C. 예수님의 목마름을 가진 사람
사마리아 여인이 하늘의 생수를 마셨을 때 그녀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요한복음 4:28-3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사람들을 피해서 한낮에 우물가로 왔던 여인이 생명수를 마시자마자 사람들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기쁨이, 말투에는 확신이 가득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예전의 우울하고 부정적인 그녀를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완전히 달라진 그녀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만난 그리스도를 소개했고 예수님을 만난 기쁨을 생생하게 증거 했습니다. 물동이는 우물가에 두고서 말입니다.
그 결과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기 원했습니다. 그들은 짧은 만남에 만족하지 않고, 예수님을 동네로 초청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에 이틀을 머무셨고,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표적을 요구했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머무신 그 사건은 후에 제자들에게 귀한 교훈이 되었습니다. 오순절 이후 베드로가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러 갔을 때 요한이 에베소와 서머나에 복음을 전하러 갔을 때, 그들은 세겜에서의 경험을 기억했습니다. 그들이 멸시하던 사람들을 예수님이 어떻게 사랑으로 대하셨는지 떠올리며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으로 허전했던 한 여인이 하늘의 생수를 마신 후, 그녀에게는 예수님처럼 영혼에 대한 목마름이 생겨났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한 목사님의 설교에서 들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미국의 한 교인이 자신의 장례식에서 목사님이 꼭 읽어주기를 바라는 글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에서 목사님은 그 글을 읽었습니다. 내용은 이랬습니다. "오늘은 나의 장례일입니다. 나는 이 마지막 시간을 내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나의 주님을 증거 하는 기회로 사용하기 원합니다. 나의 친구 매기여, 그대는 지금 나의 시신을 대하고 있을 것이오. 나는 그대와 많은 시간 골프를 쳤는데 내가 당신과 골프를 친 유일한 이유는 내 사랑하는 주님을 당신에게 증거 할 기회를 얻기 위함이었다네. 그러나 번번이 그대는 쾌락과 자존심 때문에 복음을 거절해 왔다네. 매기여, 이제 당신이 주님 앞에 돌아오기를 마지막으로 호소하오. 조지여, 내가 그대와 나누었던 많은 식탁의 교제들은 그대의 영혼을 사랑하고 그대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기 원하는 나의 간절한 기도 때문이었다네. 이제 마지막 시간을 빌어 당신을 내 주님의 만찬에 초대하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회개하고 돌아오시오.“
이 사람은 살아있을 때 친구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 결과 여러 친구가 신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매기와 조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장례식에 올 두 친구에게 목사님의 입을 빌려 마지막으로 주께 돌아오라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모습입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장례식마저도 예수님을 전하는 기회로 만들게 했을까요?
「시대의 소망」 195페이지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참된 제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선교사로서 태어난다. 생수를 마시는 자는 생명의 샘물이 된다. 받는 자는 주는 자가 된다." 그 장례식의 주인공은 하늘의 생수를 풍성히 마시며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생명의 샘물이 되어 그것을 나누어 주는 선교사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매일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수를 마시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죄를 아시면서도 정죄하지 않으시는 사랑의 예수님을 날마다 만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마음에 생명이 넘치게 되고, 그 생명을 나누어 주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한 영혼을 향해 가지셨던 목마름을 우리도 품고 매일 마신 생명수를 흘려보내는 아름다운 통로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