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 문화공간인 정원과 정자 남간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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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08.19. 08:03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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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 문화공간인 정원과 정자
남간정사
남간정사는 우암이 초년기에 공부하던 회덕 비래동의 아름다운 산수를 즐겨 선생 80세조에 지은 건물이다. 이곳에는 원래 흥농서당이 있었으며 선생이 생전에는 능인암 등의 강학처가 있었다. 선생 사후에는 후학들이 종회사(宗晦祠)를 세우고 주자, 우암, 수암을 배향하였고, 그 후 대원군 때 훼철되었고 1936년 사람과 후손이 남간사를 건립하여 우암, 수암, 석곡을 배향하고 제향을 받들어 왔다(남간사유회, 1998: 103). 현재는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으로 편입되었고 시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남간정사 일대 약 16,000여 평은 1991년부터 1997년에 이르는 시기에 ‘우암사적공원’ 조성으로 대대적인 변모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시기에 유림회관, 유물전시관, 정문, 홍살문 등과 서원 건물 8동이 건립되었다. 이외에 소제동에 있던 기국정을 이전하였고 누정과 휴게공간, 담장, 관람도로 포장, 주차장 등의 시설이 확충된다. 이러한 결과로 남간정사와 그 원림은 본래의 모습을 잃었고, 남간정사와 작은 연못은 우암사적공원의 부속시설로 전락했다. 기국정은 남간정사의 전면에 지나치게 근접하여 이전됨으로서 두 건물의 가치를 모두 반감시키고 있다. 기타 주차장, 관람동선, 담장, 누정, 휴게공간, 새로운 건물들의 배치와 양식도 많은 문제가 노출되고 있는데, 사적지를 공원화한다는 단순한 발상이 야기한 부정적인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남간정사와 그 원림이 입지를 정하고 작정자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특정 공간으로 조영하게 되는 결정적 요인은 자연환경적 조건이 크게 작용했는데 특히 ‘수려한 산림(환경)’과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이 중요한 요소였다. 주자의 무이구곡을 묘사한 운곡이십육영(雲谷二十六詠)시 중에서 제2시 ‘南澗’이란 시의 뜻을 취해 정사의 당호를 짓고 그가 평생을 바쳐 따르고자 했던 주자와 그의 이상향으로 간주되었을 무이구곡을 재현하기 위해서 빼어난 환경과 맑은 시냇물은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남간정사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물(水) 처리 기법은 이미 이전의 송씨 일족의 다른 건물에도 적용되어 왔다. 즉 인공요소인 건축물이 자연요소인 지형과 계류에 절묘하게 조합됨으로서 시각적, 청각적 효과를 얻음은 물론 의미론적인 요소로 작용하도록 하는 것은 그가 초년에 공부했던 비래암의 옥류각 등에서 이미 선례가 있었음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간정사의 ‘물’ 요소는 ‘유식’을 위한 시‧청각적 요소로 활용했음은 물론 ‘장수’의 요소로 활용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즉, 우암이 평생 추구해온 ‘천리를 밝혀 인심을 바로 잡는다(明天理 正人心)’는 ‘직’(直)을 실천하는데 있어 그 사표 혹은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매개체로 물을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간정사 원림에 있어 또 하나의 유의점은 우암이 말년인 80세에 이르러 거처로 정하고 남간정사를 조영하게 된다는 ‘시간적’인 측면과 초년에 공부하던 곳으로 돌아오게 되는 회귀성 즉, ‘장소적’ 측면에 주목할 수 있다. 즉, 남간정사는 우암이 정치적, 학문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장년기 이후의 거처였던 화양동과 여러 면에서 비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