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여성시사 - 이별
영원한 인간사랑 ・ 2023. 9. 18. 0:27
URL 복사 통계
본문 기타 기능
한국고전여성시사
이별
기녀에게 사랑은 처음부터 미래나 기약이 없는 일회적인 것이었다. 간혹 몇몇 기녀는 사대부의 눈에 들어 사대부가의 소실로 들어앉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 기녀의 사랑은 늘 이별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기녀의 사랑이 영원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여인인지라 영원한 사랑을 희구하는 마음은 늘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기녀 한시에는 임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마음과 이별 뒤 임 그리는 연모의 정을 읊은 작품이 아주 많다.
도화(桃花)는 〈읍별북헌(泣別北軒)〉에서 임과의 처음 만남을 회억하며 지금은 비록 임과 눈물로 헤어지지만 달 밝은 밤이면 언제나 임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여 임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을 것이라는 자신의 마음을 표명하고 있다. 이 시는 양주(楊洲) 전부(田婦) 혹은 권붕(權鵬) 가(家)의 여종 금가(琴哥)의 시라고 전하는 〈증인(贈人)〉과 시상이나 내용이 아주 유사한데, 이런 일련의 시는 모(母)가 되는 한 작품이 변주된 것으로 보여진다.
泣別北軒(읍별북헌)
洛東江上初逢君(낙동강상초봉군) 낙동강 위에서 처음으로 임을 만나
普濟院頭更別君(보제원두경별군) 보제원 머리에서 임과 다시 헤어지네
桃花落地紅無跡(도화낙지홍무적) 복사꽃 떨어져 붉은 빛 흔적 없지만
明月何時不憶君(명월하시불억군) 달 밝으면 어느 때인들 임 생각 않으리
부안 기녀인 복랑(福娘)은 학사 이득일(李得一)을 도성으로 보내면서 〈증이승지(贈李丞旨)〉란 시를 남겼다. 이 시에서 그는 꾀꼬리 울고 비 내리는 봄날, 이렇게 임과 헤어지면 한참 뒤에나 다시 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며 임과의 이별을 애석해하고 있다. 즉 지금은 갈대 싹이 푸르게 돋아나는 봄이지만 임이 돌아올 때는 갈대가 무성히 자라 말발굽이 갈대에 묻힐 것이라고 하여, 시간의 흐름을 갈대에 의탁해 형상화하고 있다. 『조선해어화사』에는 이름이 복개(福介)로, 작품명은 〈송이학사득일지경(送李學士得一之京)〉으로 수록되어 있다.
贈李丞旨(증이승지)
楊柳枝詞唱得低(양류지사창득저) 양류지사를 낮게 부르는데
離亭新雨早鶯啼(이정신우조앵제) 이별하는 정자에 봄비오고 일찍부터 꾀꼬리 우네
洲蘆短短江蘺綠(주로단단강리록) 물가에 갈대 싹 강에 궁궁이 싹 푸르른데
之子歸時沒馬蹄(지자귀시몰마제) 가신 임 돌아올 땐 말발굽이 묻히리
또 『조선해어화사』에 활동 지역과 이름을 모르는 기녀의 〈송별(送別)〉이란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 시 역시 임과의 이별을 앞두고 이별의 서러운 마음을 표출하고 있다. 떠나야만 하는 임을 앞에 두고 비록 춤을 추지만 춤은 더디고, 임과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 찬 기운이 이불에 스며든다. 게다가 한밤중에 홀로 일어나 임의 버선을 새로 지으려니 바느질 소리에 부드러운 창자가 다 끊어진다고 하여 이별의 고통이 애끊는 고통과 같음을 토로하고 있다.
送別(송별)
一花飛落漢南城(일화비락한남성) 한 떨기 꽃 한남성에 떨어져
此去長安幾日程(차거장안기일정) 이대로 가면 장안까지 얼마나 걸리나
舞袖遲回春色晩(무수지회춘색만) 춤 소매 더디 돌고 봄빛 늦었는데
繡衾無奈曉寒生(수금무나효한생) 수놓은 이불 새벽 찬 기운 어쩔 수 없네
擡頭看月心相照(대두간월심상조) 머리 들어 달 보니 마음 서로 비추고
和成淚詩字不明(화성루시자불명) 화답하며 눈물로 쓴 시 글자 분명치 않네
起枕中宵新製襪(기침중소신제말) 한밤중에 일어나 버선 새로 지으니
軟腸斷盡紉絲聲(연장단진인사성) 바느질 소리에 부드러운 창자 다 끊어지네
위 시에서 이별의 한을 애끊는 고통에 견주고 있는데 비해 다음 평양 기녀인 난향(蘭香)은 〈동제(同題)〉에서 임과 이별을 하느니 차라리 사그라지는 등불과 같이 없어지고 싶다고 하여 별한의 강도를 한층 더 고조시키고 있다. 내일 아침이면 아무 일 없었던 듯 말에 올라 갈 길을 재촉하는 임의 모습을 보는 것이 죽음보다 더한 아픔으로 다가오기에 그는 차라리 저 깜박이는 등불과 같이 스러져버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지독한 슬픔 속에 눈물로 임이 입을 수자리 옷을 마련하는 여인의 마음이 더욱 애처롭게 전해지는 작품이다.
『해동시선』에 소옥화(小玉花)의 〈송별(送別)〉 뒤에 실려 있으므로, 이 시의 제목 역시 〈송별〉로 보아야 할 것이다.
同題(동제)
持子征衫下淚裁(지자정삼하루재) 그대의 수자리 옷 눈물 떨구며 마름질 하니
金刀隨手短長回(금도수수단장회) 금도가 손 따라 짧고 길게 돌아드네
此身寧與殘燈滅(차신령여잔등멸) 차라리 이 몸이 깜박이는 등불과 함께 스러질지언정
不見明朝上馬催(불견명조상마최) 내일 아침 서둘러 말에 오르는 모습 보지 못하겠네
양양(襄陽) 기녀 역시 〈송별(送別)〉에서 임과의 이별을 당하여 차라리 임과 함께 사랑을 나눈 개울가에서 넋을 잃고자 이별의 회포를 술에 부치고 있다. 아름다운 봄 경치도 끝없이 계속 머물게 할 수 없으니 꽃 덤불로 하여금 왕손을 원망케 하지는 못하리라고 하며 소혼단장(消魂斷腸)하는 이별의 아픔을 표출하고 있다. 『해동시선』에는 제목이 〈송무보궐(送武補闕)〉로 표기되어 있다.
送別(송별)
弄珠灘上欲消魂(농주탄상욕소혼) 농주탄 위에서 넋이 사그라지려 하는데
獨把離懷寄酒樽(독파이회기주준) 홀로 잔 들어 이별의 회포를 술동이에 부치네
無限煙花留不得(무한연화류부득) 무한한 봄 경치 머물게 할 수 없으니
忍敎芳草怨王孫(인교방초원왕손) 차마 방초로 왕손을 원망케 못하리
난향과 이름을 모르는 양양 기녀가 임을 보내는 슬픔을 죽음보다 더한 것에 비유하여 상심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는데 반해 다음 이름을 모르는 의주(義州) 기녀는 〈별권판서상신(別權判書尙愼)〉에서 이별의 고통을 속으로 감내하며 홀로 슬픔을 삭이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남녀 간 애정관계에서 항상 약자의 위치에 놓이기 마련인 기녀의 애환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체념의 정서 속에 더 큰 아픔이 전해지는 작품이다.
다음은 『조선해어화사』에 실려 있는 것인데 『해동시선』에는 3구의 ‘강천(江天)’이 ‘소상(瀟湘)’으로 표기되어 있다. ‘강천(江天)’을 강 위 멀리 보이는 하늘로 볼 수도 있으나 다른 문헌에 ‘소상(瀟湘)’으로 대체된 것으로 보아 ‘강천’과 ‘소상’은 소상팔경(瀟湘八景)에 해당하는 강천모설(江天暮雪)과 소상야우(瀟湘夜雨)에서 따온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즉 자신이 있는 곳을 소상팔경의 아름다움에 빗대어 미화함으로써 이별의 부당함과 외로움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別權判書尙愼(별권판서상신)
去去平安去(거거평안거) 가세요 가세요 편안히 가세요
長長萬里多(장장만리다) 머나먼 만 리 길을
江天無月夜(강천무월야) 강천 달 없는 이 밤
孤叫鴈聲何(고규안성하) 외로이 우는 기러기 소리 어이하리오
이렇게 이별을 당하여 한탄과 체념의 정서 속에 주저앉는 시가 있는가하면 몇몇 작품은 이별 뒤 재회의 소망을 피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거제 기녀인 소옥화(小玉花)는 〈별인(別人)〉에서 이별 뒤 임이 다시 돌아와 주기를 소망하고 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세모에 그는 임을 멀리 떠나보내야만 한다. 임을 멀리 떠나보내면서 그는 매년 봄이면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푸르러오는 방초와 가고 오지 않는 인간사를 대비시켜 이별의 비애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왕유(王維)의 〈산중송별(山中送別)〉에 나오는 “봄풀은 해마다 푸르른데 / 왕손은 돌아올지 안 올지(春草年年綠 王孫歸不歸)”와 비슷한 시상으로 지금은 비록 어쩔 수 없이 임을 보내지만 자연이 순환하듯 임이 다시 돌아와 주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대동시선』에는 소옥화라는 이름 아래 “거제구천장 남촌여자(巨濟舊川場 南村女子)”라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해어화사』에는 이름이 ‘소옥(小玉)’으로 표기되어 있다.
別人(별인)
歲暮風寒又夕暉(세모풍한우석휘) 한 해 저무는 바람 찬 저녁에
送君千里淚沾衣(송군천리루첨의) 천리에 임 보내며 눈물로 옷을 적시네
春堤芳草年年綠(춘제방초년년록) 봄 둑 꽃다운 풀은 해마다 푸르리니
莫學王孫去不歸(막학왕손거불귀) 왕손은 가고 돌아오지 않음을 배우지 마시오
다음 나주 기녀인 옥섬(玉蟾)은 떠나는 임에게 곧 다시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시를 지어주었다. 이면항(李勉恒)이 금오랑(金吾郞)으로 명을 받들어 죄인을 압송하다 나주를 지나가게 되었다. 옥섬이 시를 지어 주었는데 면항이 전염병에 걸려 죽게 되자 사람들이 시의 동티라고 하였다고 한다. 기녀의 사랑은 미련 없이 일회적인 것으로 끝나야 한다. 떠나는 임에게 매달리거나 훗날의 기약을 요구하는 것은 세상의 비난과 조롱을 받을만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섬은 떠나는 임에게 다시 돌아와 달라는 시를 지어 주었다. 처음 보는 낯선 임이지만 첫눈에 반한 임이기에 남의 이목과 사회적 제약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임이 다시 돌아와 계속 사랑할 수 있기를 염원하고 있다. 체념하지 않고 사랑을 지속하려는 도전 속에 역시 비련이 싹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淸儀一見滌襟塵(청의일견척금진) 맑은 풍채 한 번 보고 옷깃의 먼지 닦아요
交契何論面目新(교계하론면목신) 사귐에 어찌 얼굴이 낯선 것을 논하겠어요
萬里滄波須早渡(만리창파수조도) 만리창파 부디 일찍 건너 오세요
錦城自有待歸人(금성자유대귀인) 금성에 돌아올 임 기다리는 사람 있어요
소옥화와 옥섬이 임과의 재회를 기원하되 임이 다시 돌아와 주기만을 당부하는 소극적 자세를 보인데 비해 성천 기녀인 연단(姸丹)은 〈별랑(別郞)〉에서 자신이 양대의 비가 되어 임의 옷자락을 적시고 싶다고 함으로써 재회를 위한 상당히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기녀라는 신분 상 임과의 영원한 사랑은 불가능하기에 이별은 잦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재회의 가능성 역시 극히 드물었기에 그는 자신이 먼저 임을 찾아가고 싶다고 하여 임과의 재회 의지를 더욱 강력하게 표명하고 있다.
別郞(별랑)
君垂送妾淚(군수송첩루) 임이 날 보내며 눈물 흘리고
妾亦淚含歸(첩역루함귀) 나 또한 눈물 머금고 돌아왔네
願作陽臺雨(원작양대우) 원하노니 내 양대의 비가 되어서
更灑郎君衣(갱쇄낭군의) 임의 옷자락에 다시 뿌리고 싶네
연관목차
한국고전여성시사 131/166 [네이버 지식백과] 이별 (한국고전여성시사, 2011. 3. 25., 조연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