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그 친구 참- / 이원우
신문 한 귀퉁이에서 참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아니 그렇게 얘기하면, 남들로부터 경망하다는 소릴 들을지 모르겠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남북 사이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마당에---. 지금이 결코 그렇게 한가한 때가 아니다.
하나 내친김이니 에둘러서라도 개요만은 적어 보자, 며칠 지났으니 <동아일보>에서의 아기 손바닥 만한 지면을 장식했던 내용을 머릿속에서 재생시키는 도리밖에.
오래 전 본격적으로 대북 심리전 방송을 내보내고 있을 때, 최고의 인기곡에서부터 5순위까지 소개했더라. ‘꿈에 본 내 고향’ , ‘머나먼 고향’ , ‘모정의 세월’ , ‘고향역’ , ‘홍도야 울지 마라’ 등등이다. 그러곤 나훈아의 전성기 운운 하면서 마치 앞 네 곡을 나훈아의 노래인 것처럼 허위 보도를 했다. 이거야말로 나훈아에 대한 아부(?)가 아닌가 싶어 실소했다.
이들 중 실제 나훈아가 취입한 노래는 ‘고향역’ 하나뿐이다. 그러니까 1/5을 4/5로 부풀린 셈이다. 아무려면 그 ‘고향역’을 여기서 한번 못 불러 볼까.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시골길/ 이뿐이 곱분이 모두 나와 반겨 주겠지/ 달려라 고향 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눈 감으면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코스모스 반겨 주는 정든 고향길---
K BS의 가요 무대를 통해 시청한 건데, 동 시대 3명 대형 가수의 인기 순위는 1-나훈아, 2-조용필, 3-남진이라더라. 어느 여교수의 잡문 한 편에서도 읽었는데 나훈아와 남진을 양자 대결에서 나훈아가 압승! 가창력이며 성적(性的) 매력에서 나훈아가 훨씬 높은 점수를 받은 게 요인이었다. 그럴싸해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인물이며 신체조건? 그야 물론 남진이 앞선다. 가방끈도 나훈아보다 남진이 길다. 나훈아는 고졸인 데 비해 남진은 학사 학위를 가졌으니---.한데 남진은 귀공자 타입이고 나훈아는 야성미가 넘친다. 이만하면 무엇이 무엇을 좌우하는지 밝혀진 셈이다.
내 아내는 나훈아라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일부러 필요 이상으로 열을 내는 것 같아 내가 무안할 지경이다. 특히 김지미와의 결혼을 발표하면서 연상의 여인을 무르팍에 올려 앉힌 걸 자기 정서로는 못 받아들이겠더라나? 꼴불견, 그런 이야기까지 한 것 같다.
짐짓 여유를 부리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자기도 여자인데 설마하니 남진 편이기야 하겠나. 그런데 이상한 건 나 자신조차 남진보다 나훈아에게 기울어 있다는 사실이다. 가끔은 김지미와 남진의 커플을 가상해 놓고는 거짓말 좀 보태어 소스라쳐 놀랄 정도로.
나훈아의 노래는 트로트 일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웬만한 장년 이상이라면 누구든지 부를 수 있는 몇 곡을 가나다 순으로 적어 본다. ‘가지 마오(사랑해 사랑해요 당신을---)’, ‘강촌에 살고 싶네(날이 새면 물새들이 시름없이 나는--)’, ‘고향 역(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너와 나의 고향(미워도 한세상 고와도 한세상---), ‘녹슨 기찻길(휴전선 달빛 아래 녹슨 기찻길 어이해서 핏빛인가---)’ 등등. 다 트로트다.
나는 그의 트로트에서 묻어나는 끈끈함이 좋다. 그게 없으면, 그 자신이나 우리가 혼신의 힘을 쏟는, 소위 열창의 맛을 알기 어려우리라. 꽉 막힌 수챗구멍이 뻥 뚫리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노래, 그걸 나훈아가 가지고 있다.
여담인데, 내가 부산 노래를 두 번 취입하면서 저작권까지 물고 그의 노래 두 곡을 빌려 왔었다. ‘자갈치 아지매’와 ‘남천동 블루스’. 그러나 두 곡 다 대중에게 회자되지 못한 실패작이라. 노래방 기기를 통해 명맥만 지키고 있을 따름. 한번은 수영 구청장을 지낸 현 유재중 국회의원과 술자리를 같이한 적이 있는데, ‘남천동 블루스’라는 노래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었다. 세상에 자기가 관할하는 남천동을 무대로 한, 나훈아 작사 작곡 노래를 모르다니 싶어 적이 실망했다.
나훈아는 트로트를 벗어나 결코 살 수 없다는 증거다. ‘자갈치 아지매’의 경우도 거의 같다. 참, 자갈치는 지명이기도 하지만, 자갈치라는 고기가 있다는 걸 나훈아가 알고 있기라도 할까?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이 정도에서 거두절미하고서라도 나는 나훈아의 팬임을 거듭 강조한다. 여태까지 두서없이 이야기한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 그에게는 요즈음 설쳐대는 조무래기 가수들보다 카리스마가 있다! 그런 그가 칩거에 들어간 지 오래라 약간은 안타깝다. 그래서일까? 나는 삼랑진 역에서 천주교 성당이나 평화의 마을까지 걸어가면서 작심하고 ‘고향역’을 흥얼거린다.
아 참, 나훈아에게 흉흉한 소문도 있었지. 후배 연예인 부인과의 근거 없는 염문 이야기에서부터 남자 심벌이 손상을 입었다는 허위 사실에 이르기까지. 오죽하면 기자들 앞에서 바지를 내리는 흉내까지 냈을까? 대중들은 그가 바지춤 한번 잡는 걸 보고 잠잠하기만 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기야 이건희 회장이 거액의 출연료를 보장하고 초청해도 꿈쩍도 않았다던 그가 자존심 구겨가면서 그런 식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우리 같은 촌로의 왈가왈부에 귀 기울일 사람이 없다손 치더라도 세상사 알쏭달쏭하다고 할 수밖에.
어쨌든 천안함 사건 이후 FM 방송으로 북한군을 향해 노래를 보내는 모양인데, ‘신사동 그 사람’. ‘어머나’ , ‘무조건’ 등이라나?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 나약한 노래들로 대북 심리전을 펼친다니 달걀로 바위치기와 뭐 다르랴. ‘삼팔선의 봄’, ‘가거라 삼팔선아’, ‘전선야곡’, ‘전우야 잘자라’ , ‘고향 만리’ 등으로 대체해야 한다. 그것들을 나훈아의 목소리를 빌려 북한군에다 포탄처럼 쏘아 올릴 수 없을까?
모르겠다. 나는 우국(憂國)까지는 못 들먹이더라도 충정(衷情)에서 우러난 이야기를 하는데 글쎄 동의해 주는 사람이 있을는지. 어쨌든 나훈아 그 친구 대단하다.
16장/ 2011년 1월 1일 오후
이원우(84년 <한국 수필> 추천-조경희 회장/ 97년 <한글 문학> 소설 신인상-구인환 서울대 교수 추천/ 전 명덕 초등학교장/ 부산 노래 2회 취입/ 지은 책 1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