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1권 3-363 술회述懷 36 감흥感興 느끼는 흥취 二首
동사벽부도東寺躄浮屠 동쪽 절에는 다리 저는 浮屠가 있고
중구병상구中厩病顙駒 마굿간에는 이마에 병든 망아지 있네.
기폐각유시起廢各有時 일어나고 쇠함은 때가 있나니
실득차물우失得且勿憂 잃고 얻는 것도 근심하지 말라.
칠이용이할漆以用而割 옻[漆]은 소용된다고 하여 쪼개게 되고
고이명이전膏以明而煎 기름은 밝아진다고 하여 불사른다.
기치물부려棄置勿復慮 버려둔다고 다시는 걱정하지 말라.
복혜화소견福兮禍所牽 복福이라는 건 화禍를 끌어오니
인생천지간人生天地間 사람이 천지간에 태어나서
위락장하사爲樂將何事 즐겁게 하려면 장차 무슨 일을 할까?
정정백년내鼎鼎百年內 흔들흔들 하면서 백 년 동안에
부작형구사不作形驅使 물질의 구사하는 것 하지 말라.
출즉위소초出則爲小草 나가면 소초小草가 되지만
처즉명원지處則名遠志 처하면 원지遠志라고 이름 한다.
유취여전방遺臭與傳芳 유취遺臭 방명芳名을 전하는 것이
불여부조양不如負朝陽 아침 햇볕 쬐는 것만 같지 못하네.
비신수첨서庇身雖檐絮 몸 가리는 것 비록 누더기라 하더라도
시비량상망是非兩相忘 옳고 그른 것 두 가지가 다 관계없네.
대장부편헌앙大丈夫便軒昂 대장부는 헌거軒擧로와야 하니
기긍설설이명장豈肯屑屑移名場 어찌 즐겨 번거롭게 명장名場을 쫓을 손가?(移↔趨)
욕진미진도방황欲進未進徒彷徨 나가려도 나가지 못하고 한갓 방황할 뿐
백보구절로양장百步九折路羊腸 백 걸음 되는 꼬불꼬불한 길 양의 창자 같구나.
시호당관령동황豺虎當關令憧惶 이리·범 관에 서서 호령이 황황한데
달고흔연궁역가희達固欣然窮亦可喜 잘되면 원래 좋고 궁해도 또한 기쁠 것이다.
남아미개관男兒未蓋棺 남자가 아직 관 덮지 않았으면
막도사이이莫道事已已 일 이미 끝났다고 말하지 말라(已已↔己巳)
립심물초초立心勿草草 입심立心하는 것 초초하게 말 것이며
신종상여시愼終常如始 끝을 조심하기 시작할 때 같이 하여라.
호가일장소浩歌一長笑 호탕하게 노래하고 한 번 길게 웃는데
헌외모산자軒外暮山紫 마루 밖의 해 저문 산이 불그레하다.
동사에는 앉은뱅이 부처님
마구간에는 이마에 상처 난 망아지.
만물의 흥망성쇠는 제각기 때가 있어
앞으로 뭘 잃거나 얻을까를 걱정하지 마시게.
옻나무는 쓸데가 있어 베고
기름은 어둠을 밝히려고 태운다네.
또한 버려진다고 염려하지 말 것은
복이라는 것이 화를 끌어들이기 때문이네.
이 세상의 사람으로 살아가니
무엇을 해야 앞날이 즐거울까.
평생 부귀영화누린들 백년도 못살면서
재물을 쌓는 데만 몰두하지 마시라.
돋아날 땐 여린 풀잎이지만
뿌리만 내리면 그 이름이 원지라는 약초가 된다네.
사람이 남긴 체취는 풀 향기처럼 은은히 후대에 전해지나
사실은 아침 햇볕에 몸을 쬐는 것만 못하다네.
누더기일지라도 옷을 걸친 사람이라면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지는 따지지 말게.
대장부는 늠름하고 당당해야하나니
어찌 머리 조아리며 과거시험장만 쫓아다니나.
출세하고 싶지만 뜻대로 안 돼 방황할 따름이니
백 걸음에 불과한 구불구불한 인생길이라네.
지금 그대가 동경하는 벼슬자리 길목엔 승냥이와 호랑이가 득시글거리니
뜻을 이룬다면야 기껍겠지만 안 풀려도 그 역시 기뻐해야 하네.
남자 한평생은 관 뚜껑을 덮기 전에
모든 게 이미 결정 났다고 하지마시라.
마음을 다독여 곧추세우고 건성건성 세상 살지 말아야하니
끝마무리를 처음 시작할 때처럼 신중하게 매듭지어야하네.
큰소리로 노래한가락 길게 뽑으며 껄껄거리니
처마 저 멀리 산자락에 보랏빛 황혼이 물드네.
►동사東寺 詩의 문맥으로 보아 代名詞 ‘동쪽에 있는 절’은 아닌 것 같음.
조선시대 實在 사찰로 여겨지는 東寺는 수덕사修德寺의 말사末寺로 서산시 부석면 지산리에 있음.
1619년 서산읍지瑞山邑誌인 호산록湖山錄에 기록된 사찰임.
►‘앉은뱅이 벽躄’ 앉은뱅이. 절뚝발이.
►부도浮屠 고승高僧의 사리를 안치한 탑.
►‘마구간 구廏’
►병상구病顙駒 이마에 상처 난 망아지
►‘또 차且’ 장차
►소견所牽 끄달림. 佛敎用語로 인연으로 인한 끌림. 연루되다
►정정鼎鼎 성대盛大함
►驅使 능숙하게 다루거나 사용함. (사람이나 動物을) 몰아서 부리는 것.
►원지遠志 산山에서 자라는 원지과의 여러해살이풀. 약재藥材로 쓰이는데 東醫寶鑑에는
“사람을 지혜롭게 하며 눈과 귀를 총명하게 해주고 기억력과 의지를 강하게 해준다.”함.
뿌리가 굵고 잎은 어긋난 선형線形이며 여름에 자색 꽃이 핌
►전방傳芳 꽃다움을 전傳함. 명예名譽를 後代에 전함
►‘덮을 비庇’ 덮다. 덮어서 가리다.
►첨서襜絮 홑겹 헌옷
‘행주치마 첨襜’ 홑옷. ‘솜 서絮’ 솜옷
►헌앙軒昂=헌거軒擧. 높은 의기意氣. 늠름하고 의기 당당함
►설설屑屑 ‘가루 설/달갑게 여길 설屑’ 가루. 문득. 모두.
달갑게 여김. 마음에 두어서 쫒음. 사소하다. 자질구레하다. 미세하다.
총망한 모양. 분주한 모양. 급급한 모양. 신경 쓰는 모양. 개의하는 모양.
►명장名場 이름을 내는 곳. 과거科擧시험장. 그 당시에는 벼슬하는 서울.
►구절로양장九折路兩場 아홉 번 구부러진 羊의 창자 같은 길.
四字成語는 구절양장九折羊腸으로 양羊의 창자처럼 꼬불꼬불 구부러진 험한 산길을 말함
►동황憧惶 황송하게 동경함
►이이已已↔기사己巳 이미
►초초草草 간략하게. 대강대강. 허둥지둥. 적당히.
걱정하는 모양. 불안한 모양. 바쁜 모양. 초목이 무성한 모양.
又 또 한 수
이조피행로二鳥避行路 두 새[二鳥]가 가는 길을 피하여 가고
의사서산기義士西山飢 의사義士가 西山에서 굶주렸네.
물고각유우物固各有遇 만물은 원래 각각 통함이 있고
우고각유시遇固各有時 통함은 원래 각기 때가 있다네.
궁달경난힐窮達竟難詰 궁달窮達이란 끝까지 따질 수 없어
문천천부지問天天不知 하늘에 물어도 하늘 역시 모른다네.
조피맹호정朝避猛虎穽 아침에 사나운 호랑이 굴 피하였다가
석찬장사림夕竄長蛇林 저녁에는 긴 뱀의 숲으로 숨는다.
인도험이난人道險而難 사람 가는 길 험하고도 어렵고
천도묘난심天道杳難尋 하늘 이치 아득하여 찾기도 어렵네.
영회좌신조永懷坐申朝 깊은 생각에 잠겨 낮까지 앉았더니
초초상아심悄悄傷我心 섭섭한 듯 내 마음 상하누나.
차파모릉수且把模稜手 아직은 가시 어루만지는 수단으로
자수옹종절自守臃腫節 옹두라지 진 절조나 지키리라.
직목필선벌直木必先伐 곧은 나무는 반드시 먼저 베어지고
감정필선갈甘井必先竭 단 우물은 반드시 먼저 마르네.
인가붕격해人嘉鵬擊海 사람들은 대붕大鵬 새가 바다 나는 것 즐겨하지만
아희구장륙我喜龜藏六 나는 거북이 육효六爻 간직한 것 좋아하네.
인과견희미人誇犬戲麋 사람들은 개가 사슴 희롱하는 것 뽐내지만
아소미성록我笑微聲鹿 나는 작은 소리의 사슴에 웃는다.
박수가자지拍手歌紫芝 손뼉 치며 자지가紫芝歌 노래하는데
자지하엽엽紫芝何曄曄 붉은 지초 어이 그리 환한 광채 나나?
빈천족사지貧賤足肆志 가난하고 천해도 뜻 펴기에는 넉넉하니
남계차복축南谿且卜築 앞 골짜기에 우선 집이나 지으리라.
새는 서로를 피해서 날아가고
사람을 피해서 산에 사는 은사隱士는 굶주린다네.
이유 없이 생겨난 물건은 세상에 없고
물건은 제각기 쓰이는 때가 있다오.
못살고 잘사는 건 따질 수 있지만
하늘에 대고 물어봐도 모른다네.
아침에 무서운 호랑이가 갇힌 덫을 피해도
저녁에 숲속에 웅크린 큰 뱀을 만날 수 있네.
사람 사는 길 험하고도 어려우니
하늘의 도리는 너무 멀어서 찾기도 어렵다네.
아침마다 정좌하여 오랜 생각에 잠겼더니
내 마음만 처량하고 상심에 젖네.
손에 쥐어진 일도 머뭇거리며 결정내지 못하니
내 아둔한 절개나마 지키려하네.
곧게 뻗은 나무가 꼭 먼저 베이고
물 맛좋은 우물은 필시 먼저 말라버리네.
사람들은 대붕이 바다를 차고 오르는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나는 거북이가 네 다리와 머리, 꼬리를 등껍질에 쏙 감추는 것을 좋아한다네.
사람들은 사냥개가 사슴을 희롱하는 걸 자랑하나
나는 조그만 사슴소리에 미소를 머금는다네.
늙은이 넷이 손뼉 치며 자지가를 노래했는데
자지가 노래 소리가 어찌 그리 우렁찼던지.
가난하고 비루해도 자신의 뜻은 펼칠 수 있으니
볕드는 남쪽 계곡에 터 잡아 집이나 지으려네.
►이조二鳥 당唐나라 때에 이상스런 새 두 마리를 황제에게 진상하러 가는 사람이
행인들에게 길을 비키라고 소리치는 것을 한 퇴지退之가 보고서 〈이조부二鳥賦〉를 지어서
“이조지득시“二鳥之得時”라고 읊었다.
►의사義士 의리와 지조가 굳은 義人. 산에 隱遁하는 선비 여기서는 백이伯夷·숙제叔齊.
►서산西山 산을 예스럽게 일컫는 말. 무덤(墓). 사찰寺刹
►물고각유우物固各有遇 만물은 원래 각각 통함이 있고
이 句節은 정도전鄭道傳(1337-1398)의 5言體 <古意> 2首’ 두 번째 詩에서 借用한 것으로 여겨진다.
►궁달窮達 빈궁貧窮과 영달榮達. 못살고 잘 삶
►난힐難詰 비난하며 따져 묻다. 힐난하다
►정穽 함정陷穽. 허방다리(덫)
►‘숨을 찬竄’ 숨다. 달아나다. 도망치다. 숨기다
(구멍 혈穴)+(주 서鼠). 쥐가 구멍으로 달아남.
►영회永懷 오래도록 생각함.
►신조申朝 아침마다. 거듭되는 아침
►초초悄悄 근심함. 외롭고 처량함 ‘근심할 초悄’
►또 차且 머뭇거림.
►모릉模稜=모릉摸綾. 결단을 내리지 못함. 가부可否를 결정치 못함
►옹종臃肿 붓다. 부풀다.(몸이나 부피가) 너무 크다. 매우 뚱뚱하다.
‘부스럼 옹臃’ ‘자랑할 종肿’ 속이다. 고告하다
►구장륙龜藏六 거북이가 등껍질 속에 머리·꼬리·네 다리를 감추는 것을 말함.
金時習이 남모르는 곳에서 은둔隱遁하는 것이 좋음을 표현한 부분임
►자지가紫芝歌 영지버섯을 노래함. ‘자지’는 ‘지치 또는 자줏빛 버섯’
상산사호商山四皓가 진秦의 난리를 피하여 남전산藍田山에 들어가 살며 지은 노래.
동원공東園公·기리계綺里季ㆍ하황공夏黃公ㆍ녹리선생甪里先生은 후일 한漢나라의 세상이 되었어도 나오지 않았다.
창망료가자지곡悵望聊歌紫芝曲 슬피 바라보며 그런대로 자지곡을 부르니
시위참담래비풍時危慘澹來悲風 시국이 위태한데 참담하게도 슬픈 바람 부는구나.
/<두보杜甫 제이존사송수장자가題李尊師松樹障子歌>
고가자지곡高謌紫芝曲 자지곡을 크게 노래하며
정무주사현靜撫朱絲絃 고요히 거문고 줄을 어루만지네/<정포鄭誧 결려結廬>
►엽엽曄曄=엽연曄然. 기상氣象이 뛰어나고 성盛한 모양
‘빛날 엽曄’ 빛나다. 빛을 발하다. (번개가)번쩍거리다
►사지肆志 자기 뜻대로 하다 ‘방자할 사肆’
►또 차且 장차.
►복축卜築 살 만한 땅을 가려서 집을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