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칼빈의 믿음론, 기독교강요 제3권 2장 11(1559년 라틴어 최종판 완역, 문병호 옮김, PP.60-62)
11. 유기(遺棄)된 자들의 일시적(一時的)인 믿음
바울은 믿음을 선택의 열매라고 주장하기에 (참조. 살전 1:4-5), 나는 유기(遺棄)된 자들에게 믿음을 돌리기가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어렵게 보인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이 매듭은 어렵지 않게 풀린다.
왜냐하면 오직 구원에 이르도록 예정(豫定)된 자들만이 조명을 받아 믿음을 얻고 복음의 작용을 참되게 느끼게 된다 하더라도,
경험이 보여 주는 바와 같이, 유기(遺棄)된 자들도 어느 한동안 선택된 자들과 거의 같은 느낌에 감동되어 심지어 자기들이 여하한 경우에도 선택된 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판단을 스스로 내리기도 하기 때문이다(참조 항 15:46).
그러므로 사도가 하늘 은사(恩賜)를 맛보는 일을 그들에게 속한 것으로 돌리고(히 6:4-6)
그리스도가 일시적(一時的)인 믿음을 그들에게 돌리는 것은(눅 8:13) 전혀 불합리하지않다.
이는 그들이 영적인 은혜의 힘과 확실한 믿음의 빛을 진실하게 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그들을 더한 정죄에 빠지고 변명할 수 없게 만드시기 위하여
그들의 마음 속으로 은밀(隱密)하게 들어가셔서 그들의 마음이 양자(養子)의 영(靈)이 없이도 그의 선하심을 맛볼 수 있는 정도가 되게 하시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이렇게 본다면, 어떤 사람들은 신자들 자신에게는 하나님이 자기들을 자녀 삼으심에 대한 판단을 할 여지가 어디에도 없다고 반박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비록 택함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과 곧 없어질 일시적인 믿음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 닮음과 유사함이 많지만,
오직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바울이 칭송하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갈 4:6; 참조. 롬 8:15)라고 큰 소리로 외칠 수 있는 확신이 넘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오직 선택된 자들만을 썩지 아니할 씨로 영원히 거듭나게 하시고(벧전 1:23),
또한 그들의 마음에 뿌려진 그 생명의 씨가 결코 없어지지 않도록 하신 것은, 자기가 친히 베푸시는 안정되고 항구적인 자녀 삼으심의 은혜를 그들 안에 견고하게 인치시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심지어 유기(遺棄)된 자들 안에서도 자기의 길을 가시는 성령의 더 낮은 작용을 방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령은 신자(信者)들을 가르치셔서 그들이 그들 자신을 신중하고 겸손하게 돌아보게 하심으로써
그들 속에 육체의 신념이 스며들어 믿음의 확실성을 몰아내는 일이 없도록 하신다.
반면에 유기된 자들은 은혜에 대한 혼란한 느낌 외에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아, 그것의 견고한 몸통이 아니라 그림자만 붙잡는다.
왜냐하면 성령은 본래 오직 선택된 자들 안에서만 죄 사함을 인치심으로써 그들이 특별한 믿음으로 그 유익을 누리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기(遺棄)된 자들도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관대하시다고 믿고 있다고 일컫는 것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화해의 선물을 혼란스럽고 충분히 분명하지 않게나마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과 동일한 믿음이나 중생의 참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위선의 외피를 두르고 그 자녀들과 함께 믿음의 시작을 공유하는 듯이 보일 뿐이다.
나는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비추어서 그들이 그의 은혜를 인정하게끔 하신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택함 받은 자들에게 자기가 부여하시는 특별한 증언과 택함 받지 못한 자들의 이러한 의식을 구별하심으로써 택함받지 못한 자들이 그 증언으로 말미암은 견실한 효과와 열매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신다.
하나님은 택함 받지 못한 자들에게 자기가 자비(慈悲)로우시다는 것을 보여주시되, 진정 그들을 사망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자기의 보호 가운데 두실 정도로 받아들이지는 않으신다.
그가 그들에게 보이시는 자비(慈悲)는 단지 현재 드러나 있는 것에 한정된다. 그는 오직 택함 받은 자들만이 마지막까지 계속해서 보존(保存)되는(마 24:13) 살아 있은 믿음의 뿌리를 지닐 가치가 있다고 여기신다.
그러므로 앞에서 언급된 반박은 다음과 같이 응수된다.
즉 만약 하나님이 실제로 자기의 은혜를 보여 주신다면, 그것은 영구적으로 확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후에 사라지는 현재의 은혜에 대한 의식을 갖게끔 빛을 비추어 주신다는 사실과 결코 배치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