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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천하 기재 (7)
관중(管仲)은 제환공과 나란히 황금수레를 타고 궁으로 들어간 후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제환공은 관중의 손을 잡아 일으켜 자리에 앉게 했다.
그러나 관중은 여전히 자리에 앉기를 사양했다.
"신은 죄인입니다. 이제 막 죽음에서 용서를 받았을 뿐인데, 어찌 자리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럴수록 제환공(齊桓公)은 관중을 더욱 극진히 대했다.
"과인이 그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소. 그대가 자리에 앉지 않으면 내가 어찌 물을 수가 있겠소."
관중(管仲)은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 제환공이 간곡한 어조로 물었다.
"우리 제나라는 대대로 천승지국(千乘之國)이었소. 그런데 제양공 때부터 어지럽기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큰 변이 일어나고 말았소. 이번에 과인이 새로이 임금 자리에 올랐으나 아직 백성들의 마음은 안정되지 않았고, 나라의 힘 또한 약하기 이를 데 없소. 앞으로 나라를 잘 다스리고 기강을 바로잡으려면 먼저 무엇을 해야겠소?"
관중은 머뭇거림 없이 입을 열었다.
"사유(四維)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禮), 의(義), 염(廉), 치(恥) - 즉 예의와 올바름과 부끄러움과 수치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나라를 지탱하는 네 가지 근본이기도 합니다. 이 네 가지 근본이 서있지 않으면 나라는 망합니다. 오늘날 주공께서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려 하신다면 먼저 이 네가지 근본부터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백성들을 다스리면 기강이 저절로 서고, 나라의 위세는 만천하에 떨쳐지게 될 것입니다."
"사유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고 싶소."
"예(禮)란 절도(節度)를 말함입니다. 모든 사람이 절도를 지키게 되면 결코 분수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의(義)란 스스로를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의를 알면 거짓이 없어지며 경우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염(廉)이란 자신의 잘못을 감추지 않음을 말합니다. 죄를 감추지않는데 어찌 악이 성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치(恥)란 부정을 따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남에게 끌리지 않으면 부정한 행위는 스스로 모습을 감추게 될 것입니다."
"사유(四維) 중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으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오?"
"네 개의 강령 가운데 하나를 잃어버리면 나라가 안정을 잃습니다. 둘이 잘려나가면 나라는 위기에 빠집니다. 세 개가 없어지면 나라는 전복됩니다. 넷 모두를 잃어버리면 그 나라는 멸망해 버리고 맙니다."
제환공(齊桓公)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이제 나라의 기강을 세우는 방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라의 기강이 섰다고 해서 반드시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오. 어떻게 하면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겠소?"
"백성을 잘 다스리려면 먼저 백성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백성들이 바라는 바를 해주면 됩니다."
"백성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나라는 백성을 위해 힘쓰고, 가장(家長)은 가족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늘 백성 편에 서서 일하고 이익을 나누어주면, 백성과 쉽게 친해질 수 있습니다. 동시에 지나간 죄를 용서해주고, 법을 너그럽게 하고, 생활에 충실하게 해주면 인구는 늘고, 형벌은 줄고, 백성들은 부자가 됩니다. 그리고 어진 선비를 등용하여 나라의 잘못을 고쳐나가면 백성들도 자연 예의를 배우게 됩니다. 또 한 번 정해놓은 법은 자주 고치지 않아야만 백성들이 잔꾀를 쓰지 않고 정직한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백성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제환공(齊桓公)은 또 묻는다.
"천하를 호령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우선 우리의 영토를 튼튼히 하고, 다른 나라에게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어 마음을 열게 하되 뇌물을 받지 않으면, 사방 모든 나라가 우리와 친하게 지내기를 바랄 것입니다. 또한 사람을 풀어 백성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래서 잘못이 있는 나라는 공격하고, 질서를 어지럽힌 자들만 골라 처벌하여도 충분히 위엄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부르지 않아도 천하 제후들이 제(齊)나라에 와서 인사를 올릴 것이요. 주공께서 원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주공을 패공으로 받들어 모실 것입니다."
제환공(齊桓公)은 관중의 말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제 그는 관중이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믿으려 들었다.
그들은 서로 뜻이 맞아 3일 날 3일 밤을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들은 조금도 피곤한 줄 몰랐다.
마침내 제환공(齊桓公)은 관중을 재상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관중은 정중히 사양했다. 제환공이 궁금해서 물었다.
"내 그대를 재상으로 삼아 천하패업의 뜻을 이루려 하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받지 않는 것이오?"
"어찌 나무 하나로 집을 지으려 하십니까? 바다는 결코 한줄기의 강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주공께서 큰 뜻을 이루려고 하신다면, 다섯 명의 인재를 더 등용하셔야 합니다."
관중(管仲)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환공이 다시 묻는다.
"다섯 명의 인재라면, 누구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오?"
"공손습붕은 예의가 바를 뿐 아니라 사리판단이 정확합니다. 대사행(大司行)의 임무를 맡기면 나라의 기강이 서고, 소송이 줄어들 것입니다. 또 영월(寧越)은 땅을 개간하고 농사 짓는 기술이 뛰어납니다. 그를 대사전(大司田)으로 삼으면 수확량이 늘어날 것입니다."
"또한 성보(成父)는 군사들을 매우 잘 다룹니다. 그를 대사마(大司馬)에 임명하시면 군사들은 매우 강해질 것입니다. 또 죄 있고 없고를 분별하는 것은 빈수무가 저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빈수무를 대사리(大司理)로 삼으면 억울하게 벌을 받는 사람이 없어질 것입니다. 또한 동곽아는 올바른 것이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충고할 만큼 강직하고 청렴합니다. 그를 대사간(大司諫)에 임명하면 주공은 늘 바른말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이상으로 다섯 사람을 등용하신다면, 신이 비록 재주가 없으나 재상의 자리를 받아들여 주공께서 패업(覇業)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제환공(齊桓公)은 크게 기뻐하며 이내 관중을 재상으로 삼고, 관중이 추천한 공손습붕, 영월, 성보, 빈수무, 동곽아 등 다섯 사람에게 벼슬을 내리어 각기 맡은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
이후 제(齊)나라의 국정은 크게 안정되었고,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태공망 시절보다 더 한층 부유하게 되었다.
어느 날 제환공(齊桓公)은 또 관중에게 물었다.
"과인은 사냥과 여자를 좋아하오. 앞으로 패업을 달성하는 데 이것이 방해가 되지는 않겠소?"
관중(管仲)이 웃으며 대답한다.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방해가 되오?"
"어진 사람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천하를 다스리는 데 방해가 되며, 어진 사람이 있는 것을 알고도 쓰지 않으면 또한 방해가 되며, 어진 사람을 쓰되 믿지 않으면 방해가 되며, 어진 사람을 믿으면서도 소인배들을 참석시키면 천하를 다스리는 데 방해가 됩니다."
제환공(齊桓公)은 이 말을 듣고 옷깃을 여미며 감탄했다.
"좋고, 또 좋은 말이다."
이후로 제환공은 관중을 마치 부모처럼 따르고 존경하게 되었다.
호칭 또한 '중보(仲父)'라 높여 불렀으니, 이는 주문왕이 태공망 여상을 부를 때 '상보(尙父)'라 부른 것을 본딴 것이다.
'보(父)'란 최상의 존경을 나타내는 존칭어이다.
🎓 다음은 16장이 이어집니다.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