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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헌절입니다. 1948년 7월 17일에 있었던 대한민국 헌법 공포를 기념하는 국경일입니다.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등 5대 국경일의 하나지요. 조선왕조의 건국일이 7월 17일로서, 이날과 맞추어 공포했다고 합니다. 법은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약속이나 규약과 뜻이 비슷하지요. 법을 어기면 재판을 받고 형을 살게 됩니다. 헌법은 우리 삶의 일거수일투족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법률은 다릅니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범법자가 되는 것입니다. 수용자 종합문예지 《새길》 투고작 심사를 하면서 본 ‘용서의 글’ 중에 혼자 보기 아까운 것들이 있어 이 자리에 올립니다. 작년 가을호에 실려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용서를 청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기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며, 그 때문에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지요. 제 블로그에 와서 글을 읽는 여러분 가운데 전과자는 없을 테지요. 그런데 우리는 인간이기에 의지가 박약하여 죄를 짓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래에 몇 개 올린 사연을 보면 교도소에 가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범죄행위의 결과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용서를 청해야 할 사람이 없습니까? 천주교에서는 미사 중에 가슴을 세 번 치며 ‘내 탓이오,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 하며 참회의 시간을 갖는데 조금은 형식적이지요. 한 생을 살면서 남한테 용서를 구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죄를 지어 수감 중인 교도소 수용자들은 절절히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요즘 보이스피싱 범죄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의 보이스피싱 검거 현황을 보면, 기관사칭형 발생 건수는 2022년 8,930건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검거 건수는 2022년 4,103건이었습니다. 대출사기형은 2022년 1만 2,902건에서 2024년 1만 1,320건으로 다소 감소했으나 검거 건수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매 계절 《새길》 심사를 하면서 꼭 보는 것이 보이스피싱 범죄자가 쓴 글입니다. 그러니 그 범죄를 저지른 이의 수와 피해자 수가 엄청날 겁니다. 수상한 전화나 문자가 오면 조심하세요. 그 범죄를 저질러 지금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용서를 청하고 있습니다.
가족은 지옥이 아닌 사랑
송〇〇
유년 시절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빠에게 항상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엄마와 함께 도망쳐 나왔습니다. 엄마가 저를 키울 수 없어 여러 친척 집에 맡겨져 전전긍긍하고 눈치를 보며 살다가 결국은 탁아소에 맡겨졌습니다. 그렇게 버림받은 줄만 알았던 어느 날 엄마가 저를 찾아왔고 저를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행복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이후 엄마는 아빠 없이 컸다는 소리 듣게 하기 싫다는 명분으로 네 명의 새아빠를 만났고 저는 하루하루가 폭행당하는 지옥이었지만 또다시 버림받을까 두려워 참고 버텼습니다.
엄마가 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저를 낳기 이전에 꾸렸던 가정에다 아빠가 다른 형을 버리고 온 죄책감에 저를 거둠으로써 조금이나마 본인의 짐을 덜기 위한 선택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정폭력과 배고픔은 견딜 수 있어도 이 사실만큼은 견딜 수가 없어 집을 나왔습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일이 저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지옥이다’라는 정의를 내린 가장 큰 이유입니다.
불행하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온 저와는 달리 지금의 제 아내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을 믿지 않던 제게 사랑을 믿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매사 부정적인 제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좋지 않아 임신할 수 없던 아내에게 기적처럼 아이가 찾아왔고, 가족이란 지옥이라 생각하며 비혼주의자를 자처하던 저도 알 수 없는 자신감과 책임감으로 가정을 꾸리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는 달리 너무나도 참혹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다니던 요식업장은 폐업했고 실업자가 되어 눈앞이 캄캄하던 제게 대부업 직원이라는 권유가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충분한 상품설명 후 고객의 자유의사로 대출이 나가기 때문에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긴급체포되어 재판을 받으며 바보같이 제가 큰 범죄에 가담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잘못된 선택으로 망쳐버린 일상들이 얼마나 큰 고통으로 되돌아오는지 뼈저리게 느꼈고 매일같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저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으로 인해 혼자서 가장의 역할과 육아를 하는 아내와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며 커갈 아들과 항상 제 걱정뿐인 장모님께 한심한 남편이자 부끄러운 아빠이자 못난 사위로써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게는 과분한 가족들의 사랑으로 다시 한번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이제는 지옥이 아닌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고 부끄러운 가장이 되지 않으리라 가슴 깊게 새깁니다.
작품평: 성장기 때 엄청난 고통을 겪었군요.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의 폭력, 친척집에서의 눈칫밥, 탁아소 생활, 찾으러 온 엄마, 네 명의 새아빠, 어머니로 말미암은 가출……. 그래도 착한 분을 만나 잘 살아가면서 그간의 불행을 다 떨쳐버렸어야 했는데……. 실수를 두 번 다시 하지 않겠다는 그 다짐을 믿습니다. 그대의 출소를 손꼽아 기다리는 장모님, 아내, 아들이 있으니 힘을 냅시다.
용서를 구합니다
서울구치소 김〇〇
어느덧 7년이 지났습니다. 수억 원의 피해로 잠 못 드는 날과 우울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사죄의 마음을 전할 길이 없어 그간 마음으로 생각만 해왔습니다. 최근 ‘표현하지 않는 마음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책 속의 글귀를 보고 이제라도 저의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용기 내어 글을 써봅니다. 무조건 잘못했다, 죄송하다고만 한다면 오히려 무책임하다고 느끼실 것 같아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전하고자 합니다.
한때는 유명한 자산관리사로 남부럽지 않은 수입을 올리며 살았던 저는, 헛되고 오만한 욕심에 눈이 멀어 지금 이곳에 와 있습니다. 잘못된 판단과 선택으로 인해 열심히 살았던 제 삶이 모두 부정당하고, 인생 전체가 무너졌다는 생각에 제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고 부끄러웠습니다.
저를 믿어주셨던 수많은 피해자분들과 가족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너무 커서 때로는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눈만 뜨면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인생을 포기한 것처럼 종일 넋을 놓은 채 멍하니 지내왔습니다. 변하거나 달라질 것은 없지만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과거의 순간부터 더듬어 보기로 했습니다.
2017년 7월경 투자를 하고 소개를 했던 투자처에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9시 뉴스를 비롯해 여러 매체에 도배되다시피 잘 알려진 사건임에도 애써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얼마든지 바로 잡을 수 있는 척 현실을 외면했습니다.
당시 모든 사실과 현실을 그대로 인정했더라면 피해는 그 순간 멈췄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30억이 넘는 사기로 입은 피해를 회복할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으로 무장한 채 리스크를 뻔히 알면서도 피해를 메꾸기 위해 고수익을 주겠다는 투자처를 찾기에 급급했습니다. 고수익이라고 해서 모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보다 철저하게 검증하고 확인하며 세세히 살펴야 할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채 그저 수익만 좇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렇게 재차 사기…사기…사기… 더 이상 회복할 전의조차 상실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현실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저 또한 사기를 당한 피해자라 강변할까도 했지만, 저의 잘못된 판단이 더 큰 피해를 만든 원인이기에 이제는 더 이상 저의 잘못과 죄책을 외면하지 않고 오롯이 바라보며 인정하고 사죄하는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당장은 죄송하다는 말밖에 전할 뿐이지만, 평생이 걸리더라도 저로 인해 입은 피해를 끝까지 책임지고 변제하겠습니다. 오랜 구금으로 저의 죄책이 옅어지지는 않겠지만, 제가 벌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조금이나마 위로와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면목 없지만 이제라도 용서를 구합니다.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작품평: 한때는 유명한 자산관리사였다고요? 자신감이 욕심을 키운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둑이 무너질 때 작은 틈이 원인이 되어 무너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식이나 투자금 등 돈을 다루는 이는 정말 매사에 조심해야지, 안일과 방심이 둑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평생이 걸리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책임지고 변제하겠다는 그 결심은 하늘을 감응케 할 것입니다. 빚을 갚아나가면 잠도 잘 올 것입니다. 힘내십시오,
용서를 구합니다
수원구치소 윤〇〇
안녕하십니까. 저는 중고거래 사기꾼 윤〇〇입니다. 진심으로 엎드려 낮은 자세로 수많은 피해자분들께 사죄드리고 용서를 구하고자 합니다. 저는 범행 당시 여러 지역에서 도피 생활을 하고 범죄수익금을 생활비로 사용하고 온라인 도박에 사용했습니다. 모든 피해자분들께서 피땀 흘려 모은 돈을 편취하여 저의 편익에 사용하였습니다. 일종의 보이스핑이었던 거지요.
구속되기 전,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는 소방설비를 점검하는 중소기업에서 일했었고 또다시 범행을 저지르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적은 임금에 과중했던 업무라 불만이 쌓이자 타인을 속이고 돈을 편취하는 사기범죄를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피해자가 10명, 20명이 생기자 카카오톡에 저를 잡기 위한 오픈 채팅방이 개설되었고, 시간이 지나 더치트(사기꾼 피해등록 어플)에 100여 건이 넘는 피해자가 제 이름 하나로 등록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자수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2023년 저 한 사람에 의해 10명에 달하는 피해자가 생겼으며 재판 기간 동안 단 한 명에게도 피해변제를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체포되고서 수감 생활을 하며 1년 넘도록 했던 일은 고작 한 주에 1~2통씩 반성문을 적어서 재판부에 제출한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 주제에 재판부의 형벌이 과중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피해변제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라는 재판부에 반문까지 했습니다. 교정의 재량권에 의해 구치소 내에서 일도 못하고, 추가사건이 검찰에 의해 기소가 안 되니 재판도 못 받고, 그런 중 여전히 제 자신은 좁은 곳에 갇혀서 생활하는 만큼 생각하는 것도 좁아져서 교정 당국과 검찰을 대상으로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재판일이 되고서야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앞으로 감당해야 될 추가형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 지게차, 굴착기 필기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자격증 취득 후에 출소하여 정직하게 노동하고 임금을 모아서 배상 신청인분들께 변제를 드리고자 합니다. 중고나라 및 초캠장터 관리자들에게 부탁드리고 피해변제에 나서겠습니다.
그동안 준법정신 없이 사회적 신뢰를 훼손시킨 과거의 자신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개과천선하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피해자분들께 엎드려 두 손 모아 빌고 또 빕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작품평: 글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저는 중고거래 사기꾼 아무개입니다.”라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열 명이 넘는 피해자분들에게 그 안에서 지게차, 굴착기 등에 대한 자격증을 따서 출소 이후 노동을 하면서 변제하겠다는 그 마음이 갸륵합니다. 그러자면 본인이 건강해야 합니다. 열심히 운동도 하시기 바랍니다.
어머니, 아내, 세 아이 그리고 동료들에게
서울남부구치소 이〇〇
저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어하는 어머니, 아내, 어린 세 아이, 그리고 공직 생활을 함께해 온 동료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인생 중반을 지난 45세의 나이에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현재 6개월 넘게 재판을 받고 있는 미결수입니다. 저는 공무원이었습니다.
저의 유년 시절은 다른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돼 저에게 가장 큰 슬픔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의 가장이셨던 아버지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저의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도 없이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는 남겨진 3형제의 뒷바라지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온갖 고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막내였던 저는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 보살핌으로 대학까지 졸업하고 저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셨던 아버지처럼 국가공무원이 되었습니다. 공무원시험에 합격하고 제일 처음 어머니에게 말씀드렸을 때 눈물을 흘리면서 저를 꼭 안아주었던 그때의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저는 운 좋게도 어린 나이에 서울특별시에 발령받아 공직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빠르게 승진하자, 동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직원이 되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저의 20년 공직 생활을 하는 중 단 한 번의 징계도 받지 않았고 다른 동료들보다 모범적으로 근무했습니다. 미담 사례로 다수의 표창을 받았고 특별승진도 했습니다. 공직에 입직한 후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나아간 것까지는 좋았지만 막상 정신을 차려보니 조절할 수 없는 목적지로 향해 가고 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된 저는 금슬이 좋은 부부였지만 어렵게도 첫째 아이를 오랜 시간이 지나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축복으로 아내가 쌍둥이까지 출산하여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행복하고 남부럽지 않은 저에게 그래도 자만하지 말고 항상 언제 어디서든 정직하고 성실하게 공직 생활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못난 저는 그 말씀을 어느 순간 잊어버리고 거만해졌고, 또 탐욕으로 인해 모범을 보여야 할 공무원이 재물의 유혹에 넘어가 20년의 공직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날 무책임하고 욕심에 눈이 멀었던 저는 잘못된 선택과 행동으로 동료들에게도 실망감과 상실감을 안겨주고 그들의 신뢰를 저버렸습니다. 항상 저의 편이신 어머니, 사랑하는 착한 아내, 항상 오뚜기처럼 저의 곁에서 저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세 아이에게 평소 아낌없이 사랑과 관심을 주지 못해 너무나 미안한 심정이며 피해자분께도 진심으로 사죄를 구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45년. 그리고 이곳에서 지낸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중 제일 중요한 건 가족들과 웃으며 함께 보냈던 시간과 추억들이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계획을 세웠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1. 매일 반성, 참회, 감사의 마음 담아 일기 쓰기
2. 매일 가족들에게 편지 쓰기
3. 종교행사 참여하기
매일 일기와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제 생각과 행동에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알며 이곳의 생활도 긍정적인 시작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범한 죄에 대해 처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남은 인생은 오직 어머니와 사랑하는 저의 아내와 세 자녀를 위해 살겠습니다. 국가와 시민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었던 지난날들에 감사하고 어려운 시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음에 또한 감사드립니다. 저를 믿어주신 가족들과 같이 피땀 흘리며 국민의 안전을 지켰던 저의 동료들, 그리고 피해자분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마지막으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전국의 모든 수용자 여러분들에게 이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장 죽을 것같이 힘들 때라도 그게 인생의 끝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바로 아래 디딜 땅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여러분들도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피해자분과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와 용서를 구하면 앞날에는 행복하고 멋진 날이 올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작품평: 20년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 징계 한 번 받은 적이 없었는데 재물의 유혹에 넘어가 명예롭게 퇴직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도 있고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후회만 하고 있으면 밝은 미래가 열리지 않습니다. 수형 기간을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된 좋은 계기로 삼으면 그곳에서의 나날도 값진 시간이 될 것입니다.
용서를 구합니다
서울남부교도소 강〇〇
“어! 설마 진짜 이건 아니겠지?” 이 순간 모든 것은 이미 붙잡을 수 없이 저와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무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고요한 적막 속에서 한참 후에 “이제 갑시다.” “어서 갑시다.”란 소리가 귓가에 계속 들리며 처음 보는 이들이 양쪽에서 팔을 잡아 이끌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수갑이 채워졌고 작은 철장 한 칸에 앉게 되었고 몸에는 포승이 되어 있었습니다. “분명 다시 불러 차근차근 얘기하고 집에 보내줄 거야”라는 혼잣말은 점점 사라지며 손과 얼굴에는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수형복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옆 철창에 앉게 되었고 수분 후에 그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로 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차량을 타고 한참 후 구치소에 들어와서 남은 절차를 수행하고 신입방이라는 곳으로 이동했고 그 순간부터 현재까지 교정기관에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 텐데 맞습니다. 바로 법정구속되었습니다. 사기죄란 죄명을 받고 징역 2년에 처해졌고 1심을 끝내고 2심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본인의 잘못됨을 인정하고 반성했습니다. 허나 저는 ‘코로나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 누구라도 그렇게 하지 않았겠냐.’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서슴없이 나쁜 짓에 당위성을 만들었습니다. ‘그래, 이건 불법이 아니라 편법일 뿐이다’라며 진행하였고 그 결과 4억여 원의 피해금액이 발생하였습니다.
1심이 선고될 때까지도 피해자들과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재판 결과를 놓고 내가 이 정도로 잘못한 것인가란 생각으로 사회와 재판부를 원망만 했습니다. ‘분명 다시 밖으로 나갈 거야’라며 다시 나가게 해달라고 접견 온 변호사 그리고 가족들을 다그치고 재촉했습니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의 시간이 흐를 즈음 현상황과 제 처지를 알게 되었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항소심을 준비하면서 피해자들과의 합의도 진행되고 피해자분들께 사과의 편지도 보내고 재판부에 반성문 및 각종 자료를 보내면서 저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바랐습니다. 피해자분들의 합의와 용서를 통해 피해 금액은 80% 이상 변제되고 저의 노력을 통해 용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신 분이 많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1심의 징역 2년형은 항소심에서 1년 6개월로 감형되었고 앞으로 1년만 더 저의 잘못에 대한 재판부의 처벌을 받으면 됩니다.
항소심 선고 전날 일반접견을 온 아내의 퉁퉁 부은 눈을 보고 “울었어? 왜? 무슨 일 있어?”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은 “괜찮아!”였습니다. 저는 ‘뭐가 괜찮다는 거야, 힘든 건 나고 울고 싶은 것도 난데’라고 생각했고 아내의 대답을 흘려 넘겼습니다.
접견을 마친 후 운동시간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내일이 선고 날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통화하던 중 어머니가 “이런 얘기 해서 미안하지만 그간 너무 많이 힘들었단다.” 아이들 엄마는 바빠서 하루 한 끼를 먹으면서 돌아다녔고 어머니랑 같이 눈물 흘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고 얘기하시며 지금껏 이리 울어본 적 없는 것처럼 펑펑 눈물을 흘리시는 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제 귀에 흘러들어왔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힘든 상황을 겪고 있고 가족들은 편히 있다는 아니 될 생각을 했었습니다. 전 세 끼 나오는 밥을 먹고 가족들이 보내준 영치금으로 맛있는 걸 사 먹으면서 힘들다 투정하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처음 보는 피해자들과 통화하고, 시간 맞춰 찾아가서 저 대신 용서를 빌고, 부탁을 하고, 또 다른 이들을 찾아가고……. 모진 고생을 해야만 했습니다. 가족이란 이름 아래 무조건 이 상황을 공유하고 같이 이겨내 주고 이유 없이 해야 한다는 아둔한 생각이 머릿속에 존재했던 것입니다. 고생은 가족들이 바깥에서 다했는데 결과가 흡족하지 않다고 저는 화도 내고 다그치고 원망하고 재촉만 했습니다.
항소심이 끝나고 재판정 객석에서 결과를 듣고 아내는 울었습니다. 혼자 세 아들을 키우고 돌보면서 저 또한 돌봐주었고, 회사도 다니면서 피해자들을 만나고 보상금을 만들고 저의 모든 화풀이를 다 들어주었습니다. 몰래 눈물 흘리며 많은 시간을 혼자 보냈을 아내에게는 정녕 용서를 구하지 못했던 저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항소심이 끝나고 첫 접견 시 퉁퉁 부은 눈으로 웃으면서 접견을 온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워. 못난 나를 용서해줄 수 있다면 부디 용서해주길 바래. 내 진심을 담아 편지에 써 보냈어.”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익숙하다고 생각한 상황과 사람, 모든 걸 다 걸고 날 따라주겠지, 공감해주겠지……. 아니었습니다. 저는 가족을 틀 안에 가둬 놓고 가족들을 지배하려고 했었고 저의 잘못을 모두가 같이 잘못한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피해는 나만 보고 있다.’는 아둔한 생각을 이제 버렸습니다. 가족들이 저 없이 보낸 시간들, 그 빈 공간들을 비로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이 글을 보고 계시다면 최대한 빨리 가족들을 돌아보세요. 그리고 지난 시간을 기억해 보세요.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고 순간순간 사랑하는 가족이 늘 함께 있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고맙고 미안하다.”고 어서 말해보세요. 저는 여기 와서 아내 덕에 사람의 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작품평: 한 여성의 남편으로서 그분을 도대체 몇 번 울게 한 것일까요? 셀 수도 없을 정도였을 겁니다. 이제 비로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가족이 거의 형극(荊棘)의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다행입니다. 그대는 정말 훌륭한 분의 남편임을 아셔야 합니다. 농담 한마디 합니다. 출소하면 매일 아내분을 한 번씩 업어주세요.
어머니께 올리는 글
군산교도소 김〇〇
지금까지 어머니께 편지를 드린 적이 언제인가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은 가물가물하고 이곳에 들어와서 매년 한 통씩 보낸 것이 어느덧 3년째입니다. 지난번 뵈었을 때 이전보다 마르고 초췌한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들이 죄수복을 입은 모습을 보신 어머니께서는 얼마나 무너지는 마음이었을까요.
저는 최근 큰 짐이었던 40시간 교육을 이수했고 연일 미래를 위한 공부를 매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도관님들은 제가 뭐가 이쁘다고 다시는 오지 말라는 당부를 배신하고 이곳에 또 오게 된 저를 기억해주시고 애정으로 신경써 주십니다. 저는 그간 어머니께 충분히 감사드리지 못했던 저의 불효를 깨닫고 부족한 글을 씁니다.
남달리 성격이 까다롭고 위장이 예민해 탈도 많았고 자주 다치고 아팠던 저를 키우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그런 저를 무던히도 인내하시면서 지켜봐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교도소에 와서야 끝없는 후회와 반성 속에 어머니의 노고와 수고에 감사하게 되는 이 무디고 어리석은 자식을 용서해주십시오. 10대 시절 가족들보다는 늘 친구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더 많았던 저는 스무 살부터 대학에 간다는, 군복무를 한다는, 일을 한다는 핑계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교도소에 1차로 수감되어 어머니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 제가 곁에 있지 못했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20대 청춘 프레임에 갇혀 어머니의 젊음이 영원할 거란 착각에 어머니의 사계절은 어떤지, 무엇을 드셨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외면했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또한 때로는 무례하고 오만하며 잘난 척 많이 했던 저를 인내로 지켜봐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회적인 성공이나 인간적인 성숙에 있어 갈 길이 먼 부족한 사람이지만 세상을 보는 뛰어난 안목과 깊이 사유하는 자세, 특별한 세계관과 인간미를 가르쳐주신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어머니께서는 제게 늘 ‘정도의 길을 가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늘 저는 지름길만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리고 저는 평생을 사건 사고를 치고 고민 걱정을 할 일이 터뜨렸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대화도 청하지 않고 의논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꽁꽁 숨기고 잘 지내는 척하는 것이 남자의 인생이라 생각했는데 참으로 죄스럽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어머니와의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평생을 제게 바쳐오신 어머니의 노고를 결코 헛되지 않게 살아가겠습니다. 제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욕심의 오아시스는 이제 보니 별게 아니었습니다. 큰 성공도 돈도 아니었습니다. 제 모든 것을 바꾸고 다시 태어나 아이처럼 어머니와 인생을 함께 살아가려 합니다. 제 오랜 숙원이었던 어머니를 쉬게 하는 것, 경제적으로 독립시켜 드리고자 하는 저의 꿈을 이루며 살아갈 나날을 고대합니다. 이곳에서 착실하게 생활하여 하루빨리 뵙겠습니다. 저도 효도라는 것을 해보겠습니다. 어머니, 아무쪼록 건강하십시오. 사랑합니다.
작품평: 어머니께서 평소 해주신 “정도의 길을 가라”는 말씀은 진리입니다. 올바른 길로 가지 않고 지름길만 찾다가 그곳에 가게 되었음을 이제 비로소 알게 되었군요. 이제 눈을 크게 떴으니 정도를 가면 되는 겁니다. 그곳에서도 늘 밝은 얼굴로 솔선수범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면 바깥세상에 나와서도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그대 어머니가 그대에게 바라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사는 것이 곧 효도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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