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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그리스의 몰락과 마케도니아
페르시아와 그리스 간의 전쟁을 비롯해 헬레니즘 등은 앞선 ‘알렉산드로스 편’에 자세하게 언급한터라 대부분 생략한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 세 번의 대결, 즉 기원전 492년, 490년, 480년에 걸쳐 페르시아군을 막아낸 그리스 연합군은 전제군주국가인 오리엔트 세계보다 자유민주정이 승리했음을 기뻐했다. 이 전쟁을 주도했던 아테네는 막강 해군력을 주력으로 하는 차후 페르시아를 방어하기 위해 그리스 여러 도시국가들과 델로스(Delos)동맹을 맺고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주도권을 아테네에게 빼앗긴 스파르타와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결국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아테네를 중점으로 하는 ‘델로스동맹’과 스파르타가 이끄는 ‘펠레폰네소스동맹’간에 치러진 길고도 긴 펠레폰네소스전쟁이라는 내분이 일어나고, 결국 스파르타가 승리했다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리스 세계는 에너지의 고갈이라는 쓴맛을 보면서 이민족으로 설움을 받던 마케도니아의 성장을 지켜봐야 했다. 마케도니아 필립 2세에 와서 발칸반도의 맹주로 등장한다. 그러다 결국 기원전 338년 희대의 걸출한 영웅 알렉산드로스를 탄생시킨 마케도니아의 지배에 들고 말았다.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331년 페르시아와의 지긋지긋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페르시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말로 그리스 전성기를 마감한다.
“정의란, 강자는 원대로 하고 약자는 당할 대로 당할 뿐이다”
그리스 정복에 성공한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330년경에 유럽을 비롯해 아프리카, 아시아와 인도에까지 걸친 방대한 제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알렉산드로스, 그가 이룩한 방대한 영토와 정복지에 대한 이주와 결혼 정책, 이민족 군대의 편입으로 인해 인종이 섞이고, 탄생과 동시에 이동의 속성을 지닌 문화가 전파된다. 그리고 기원전 323년 그가 죽자 대제국은 분열되었지만, 약 300년이란 세월동안 그리스의 언어를 비롯해 종교와 문화를 전파하며 헬레니즘 시대가 이어진다. 그러나 다원적인 성격으로 헬레니즘 세계는 온전하게 극복할 수 없었고, 결국 혼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어찌되었던 그리스문화가 오리엔트 세계에 광범위하게 전파되자 헬레니즘문명에 일대 혁신을 일으킨 것은 분명하다. 특히 현대의 서양인들에게 그리스(물론 로마문화도 포함되지만)는 문명과 정신의 원류로 기억되고 있다. 폴리스적 정치발전과 쇠퇴를 통해 인간적이며 합리적인 현실적 이상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여기에는 오리엔트라는 앞선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인간중심적인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한 것이 주요했다. 이들 합리적인 사고는 철학과 수학, 역사, 문학과 예술 전반에 걸쳐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그리스세계는 발칸반도에서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쇠퇴일로를 걷는다.
* 세계의 중심 델포이 신전
아무리 바빠도 이것만은 짚고 가자. 고대 그리스인들, 특히 폴리스 도시국가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신에게 가부를 묻는 관례가 있었다. 앞에서 보았듯 죽고 죽이는 전쟁 와중에서도 신의 뜻을 물었다. 이 행위를 신탁神託이라고 하는데, 우리 동양에서 무녀에게 점을 치게 함으로써 접신한 무녀의 입을 통해 신의 소리를 듣는 의식과 같다. 고대 중국 상나라의 갑골문도 이 과정에서 생겨났다. 갑골이란, 거북의 뱃가죽 뼈나 소의 어깨뼈를 말한다. 갑골의 안쪽 면에 불에 달군 나무를 눌러 급속히 팽창시키면 표면에 국부적인 균열이 생긴다. 이때 균열이 상태를 보아 점을 치고, 거기에 점친 날짜와 점쟁이의 이름, 점친 내용과 결과 등을 새겨 넣는 글을 갑골문이라고 한다. 주로 조상신이나 자연신에 대한 제사의 여부, 전쟁의 가부, 농사의 풍흉, 바람과 비의 유무, 수렵이나 재해 등 왕의 통치와 관련된 다양한 사안들이었다. 고대 그리스 역시 모든 나라의 중요한 행위 이전에 신탁을 들었다. 델포이뿐만 아니라 그리스 전역에 신전이 난립해 있었다. 그런데 특히 이곳 델포이가 주목 받은 이유는 지질학적 현상 때문이었다. 미케네 시대에는 땅에서 증기蒸氣가 쉴 새 없이 품어져 나오자 사람들은 신神내림의 중요 장소로 인식했다. 태양신 아폴론의 전설이 시작되기 이전, 이미 대지大地의 신을 숭배했던 미케네문명 시기에 이곳 작은 델포이마을은 신성한 장소로 여겼다. 우리나라 계룡산을 비롯해 해와 달을 동시에 관장하는 신이 있다는 믿는 일월산이 무속인들의 인기를 끌고 있듯, 델포이에도 자연스레 신전이 세워지고, 사람들은 예사롭지 않은 이곳에서 신탁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곳 델포이에도 신화가 하나 전해내려 오고 있다. 이곳에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저 홀로 낳은 아들 피톤이 살고 있었다. ‘썩다’라는 어원을 가진 피톤은 거대한 뱀, 혹은 용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파르나소스 남쪽 기슭에서 암컷 피티아를 거느리며 가이아의 신탁을 전했다. 그러나 성격이 포악해 동물과 사람까지도 마구 잡아먹다가 때마침 태양의 신이자 예언의 신이었던 아폴론이 신탁 터를 찾아다니 중 이 소식을 듣고 화살로 피톤을 죽였다. 아폴론은 가이아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테살리아의 템페강에서 죄를 씻는 과정을 거쳤으며, 8년 마다 피톤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 암컷 피티아는 죽이지 않고 대신 신탁을 전하게 했다고 한다. 이후로 피톤이 점쟁이의 어원이 되었으며, 이곳 지명 역시 피톤에서 델포이로 변했다.
델포이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긴 것은 고대인들은 이 땅이 평평하다고 인식했으며, 델포이가 옴파로스, 즉 세계의 배꼽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지중해(Mediterranean Sea)란 말도 지구 중심에 떠 있는 바다란 뜻이니 이러한 전설이 생겨난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독수리 두 마리를 동쪽과 서쪽에서 각각 놓아주며 세계의 중심으로 날아가게 했더니 바로 이곳 델포이에서 만났다. 사람들은 그곳을 표시하기 위해 옴파로스(그리스어로 배꼽, 종 모양을 한 돌)로 표시했다. 그곳에 태양의 신 아폴론을 위한 신전을 세웠다.
옴파로스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자기아류自己我流가 쌓이는 폐쇄적 반복이 습관처럼 축적되어 배타적 이기심, 외부의 공포 등에 갇혀 우물 속 개구리처럼 사는 사람을 이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의외로 우리 주변에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부류다.
그리스의 중심 델포이에 아폴론 신전이 세워지자 많은 사람이 신탁을 구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티피아로 부르는 사제는 삼각의자에 앉아 지하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유황을 맡으며, 월계수 잎을 씹어가며 접신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신탁은 시를 읊듯 무녀가 전하며 웅걸거리는 말은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 말을 전하는 중간자의 역할에 의존하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대부분 신에 의탁해 살았음으로 이곳을 가장 신성한 장소로 여겼다. 폴리스 도시국가가 전쟁을 치르기 전에 아폴론 신전에서 신탁을 듣는 국가적 행위를 벌였다. 그 대표적인 신탁이 페르시아와의 전쟁에 관련된 것이었다. 아테네는 페르시아와의 살라미스 해전을 앞두고 이곳에서 신탁을 구했다. “나무로 된 방벽만이 점령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와 그대의 자손들에게 크나큰 은혜를 내려줄 것이로다.”라며 그리스 해군이 페르시아군을 물리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나무로 된 방벽이란 아크로폴리스 나무 울타리로 피신하라는 뜻인지, 배로 싸우라는 뜻인지 알 수 없었으나 테미스토클레스 장군은 후자를 선택하면서 사기를 높였다. 해석과 선택은 오롯이 인간의 몫이었다.
신탁에 의존하는 것은 인간들뿐만 아니라 신들도 예외일 수 없었다. 바람둥이 제우스 역시 신탁을 무한 신뢰했던 것 같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의 미모에 혹했으면서도 그가 낳은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테티스를 평범한 인간과 결혼시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화에서 가장 마초적인 이미지인 헤라클레스 역시 신탁을 듣고 12년 동안 12가지 고난의 모험을 하게 된다. 헤라클레스는 신들의 왕 제우스가 아내 헤라 몰래 페르세우스의 손녀인 알크메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이를 알고 화가 머리까지 치솟은 헤라는 어린 헤라클레스에게 독사 두 마리를 보내 죽이려고 했지만, 도리어 헤라클레스가 목을 눌러 죽여 버리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장성한 헤라클레스는 헤라에 의해 미쳐서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괴로워하다가 이곳 델포이 신전에서 신탁을 구했다. 이때 집요한 헤라는 신탁의 사제를 통해 헤라클레스에게 신탁의 내용을 꾸며내 전하게 했다. 헤라클레스는 티린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에게 12년을 섬기며 그가 명하는 12가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답을 듣게 된다. 헤라클레스의 대모험이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이 외에도 신탁에 의해 생겨난 전설이 많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오이디푸스의 신화도 그중의 하나다. 이로 인해 오이디푸스콤플렉스라는 것도 생겨났다.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다. 티린스의 왕 아크리시우스에게는 다나에라는 외동딸뿐이었다. 하지만 왕은 아들을 원했다. 아크리시우스는 그래도 언젠가는 아들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델포이신전으로 찾아가 신탁을 청했다. 그런데 신탁의 내용이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다. “너는 아들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딸이 사내아이 하나를 낳을 터인데, 그 아들이 할아버지를 죽이게 될 것이다.” 외손자가 자신을 죽인다니! 차라리 듣지 않는 것이 나았을 신탁이었다. 아크리시우스는 불안했다. 몰랐다면 모르겠으나 미래를 안 이상은 그냥 그렇게 버려둘 수 없었다. 아크리시우스는 그 운명을 바꾸기 위해 외동딸 다나에를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녀들과 함께 청동으로 꼭꼭 둘러싼 탑 꼭대기에 은밀히 가두었다. 문제는 천하의 바람둥이 제우스였다. 다나에의 미모에 반한 제우스가 호시탐탐 그녀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제우스는 황금비로 변해 탑 속으로 흘러들어가 다나에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해서 다나에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얼마 후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들은 아크리시우스의 표정이 상상이 간다. 이 아이가 바로 페르세우스다. 결국 어머니와 함께 쫓겨난 페르세우스는 하늘을 나는 천마 페가수스를 손에 넣고 위기에 처한 에티오피아의 공주 안드로메다를 구해 그녀와 결혼한다. 아내 안드로메다와 함께 고향 티린스로 향하던 페르세우스는 우연히 테살리아의 라릿사 지방을 들리게 되었다. 마침 그곳에서는 원반던지기 경기가 열리고 있었고, 힘에 자신이 있던 페르세우스도 경기에 참가했다. 그런데 그가 힘차게 원반을 던지던 순간 광풍이 몰아치는 바람에 원반이 구경하고 있던 관중 속으로 날아가서는 어떤 노인의 머리를 명중시켜버렸다. 원반을 맞은 노인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한편 자신이 버린 손자 페르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은 티린스의 왕 아크리시우스의 귀에까지 들렸다. 그는 두려운 나머지 테살리아의 라릿사로 도망쳐 몸을 숨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원반던지기가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는 구경꾼 속에 섞여 들어갔다. 그러다가 페르세우스가 던진 원반에 머리를 맞고 숨을 거두고 만다. 결국 신탁의 예언대로 비극적인 결말이 이루어지고 말았다.
미래를 미리 안다는 것은 불행을 피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일면 다행이지만, 어떻게 보면 더한 불행이 될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예언을 듣지 않았더라면 그냥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을 일을 지레 불안해하며 확실한 불행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능처럼 내일을 걱정하고, 미래에 대해 하나라도 알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무속인을 찾거나 일간지에 별의 점占괘를 뒤적이고, 음양오행에 따라 운명을 예측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는 자신에게 불안한 일들을 스스로 들춰내 상처를 긁어대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니 그냥 묻어 두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멀리 돌아서 오느라 피곤하겠지만, 어쨌거니 델포이 신전은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신성하기 짝이 없는 장소였다. 영험하다는 소문이 돌자 지중해는 물론이고 아프리카, 아시아 등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붐볐다. 그러자 자연히 델포이신전은 여론과 다양한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로 변했고, 이를 토대로 신탁을 자의로 해석할 수 있었을 법하다. 아테네, 스파르타, 코린트 등 도시 폴리스들의 중요 결정도 바로 이곳에서 이루어지곤 했다. 사람이 몰려들면서 자연스럽게 아고라가 형성되고, 신에게 바칠 용품을 파는 곳도 생겼으며, 전리품을 보관하는 창고도 만들어졌다. 특히 아테네가 페르시아와의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도리아식 기둥이 우뚝 솟은 보물창고도 만들었다. 그러나 훗날 기원전 2세기 로마군에 의해 수많은 보물이 약탈되고 건물마저 허물어지고 만다. 그리고 기원후 4세기 말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의 명에 의해 아폴론 신전은 폐쇄되고, 현재의 것은 1906년에 복원한 모습이다.
터키 이스탄불 콘스탄티누스 원형경기장 한가운데 땅이 움푹 꺼진 곳에 우리나라 꽈배기를 닮은 기둥이 하나 서 있다. 이것이 ‘뱀의 기둥’이다. 이 기둥은 원래 기원전 479년 그리스가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페르시아에 승리를 거둔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세워둔 것이었다. 훗날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기면서 이를 가져와 원형경기장을 장식하는 데 사용했다.
델포이에는 아폴론신전과 보물창고 이 외에도 기원전 4세기경에 만들어진 원형극장(현재는 로마인들이 복원했던 것)과 경기장, 카스탈리아 요정에게 재물을 바쳤던 곳으로 추정되는 우물 등 다양한 부속채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특히 아폴론신전과 조금 떨어진, 올리브나무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면 매우 매력적인 신전의 흔적이 나타난다. 스무 개의 도리스식 외부 원형기둥과 열 개의 코린트식 내부 기둥으로 톨로스식 원형을 이루고 있다. 이곳이 바로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를 숭배하기 위한 신전이다. 원형 가운데 아테나 신의 조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흔적뿐이지만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대리석 석재를 한 곳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것은 대리석 저마다의 색깔이 매우 다양하다. 또한 그리스 고전건축의 다양한 양식을 복합적으로 혼합해 적재적소에 적용했다는 것에 있다. 온전한 기둥과 벽을 상상해 이어붙이고, 원형의 지붕을 올린 모습은 빼어난 멋을 자랑하면서도 기교와 힘이 어우러진 완벽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건물이었을 법하다.
그리고 델포이신전 입구 ‘델포이박물관’은 현장의 남은 흔적들을 보충 설명하는 데 충분하다. 특히 옴파로스가 전시되어 있는데 원래의 것은 사라지고, 로마시대에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잃어버린 원래의 것보다 모조품이 진품이다. 무슨 말이냐고? 도난당한 것은 도난의 순간 이미 원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박물관에는 아테나에게 바친 낙소스 섬의 스핑크스, 고대 그리스인들의 빼어난 솜씨를 느낄 수 있는 청동조각으로 된 델포이의 마부, 그리고 옴파로스를 떠받치고 있던 기둥의 하부과 상부의 춤추는 여인들을 비롯해 다양한 유물을 시대를 거슬러 시대인이된 양 감상할 수 있다.
발칸반도, 로마제국으로 흡수
발칸반도 서쪽 아드리아해 건너서 기원전 8세기경에 라틴족에 의해 작은 폴리스로 출발한 로물루스 로마가 천년 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스 변방의 작은 도시국가에 불과했던 로마는 그리스가 내분에 휩싸였을 때 그리스인을 비롯해 켈트인까지 몰아내면서 통일국가를 이룩한다. 치열하게 페르시아와 전쟁을 이어갔던 그리스는 알렉산드로스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 본토를 비롯해 각 점령지역을 분할해 그의 휘하 장수들이 나누어 통치하게 된다. 그러나 흩어지면 반목과 갈등은 경쟁으로 이어지고, 긴장으로 인한 이상한 평화가 이어지면서 힘이 고갈되어가던 중 로마라는 거대한 쓰나미를 만났다.
로마는 기원전 3세기 중엽부터 약 100년 동안 포에니전쟁을 치르면서 카르타고를 점령하고 지중해를 비롯해 오리엔트지역에까지 위세를 떨쳤다. 남프랑스를 점령하면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반도 깊숙하게 들어가 로마군을 깨부수던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의 명성도 로마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만나고 나서 막을 내렸다. 한니발의 전술을 고스란히 벤치마킹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카르타고의 허락 없이는 바닷물에 손도 담글 수 없다’며 서쪽 지중해를 장악하고 있던 카르타고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린다.
로마는 동서남북으로 넓혀가던 제국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충분한 자원이 필요했다. 이때 로마가 눈을 돌린 것이 발칸반도다. 그러나 쉬운 일은 없었다. 때마침 발칸반도의 첫 정복자들인 일리리언들이 해적단을 조직해 로마 상선을 털고 노략질을 일삼았다. 말이 해적이지 그들의 눈에 로마상선은 자국의 바다를 휘젓는 침략자일 뿐이었다. 로마는 제국에 걸림돌이 되는 이들을 그냥 둘 수 없었다. 본격적인 발칸정벌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로마는 그리스를 제외한 지금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지역에 흩어져 살며 해상무역으로 살아가던 발칸의 원주민격인 일리리아인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세계 최상의 군사력과 살상력이 뛰어난 무기로 무장한 로마군은 아드리아해 서쪽을 무력으로 평정한 후 이들의 해상로를 쉽게 장악했다. 그리고 만만하게 본 일리리아인에게 공물을 바칠 것을 요구하자 불만이 속출하면서 곳곳에서 또다시 해상분쟁이 촉발한다. 로마는 해상무역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서는 발칸반도를 완전정복 해야 했다. 일리리아인의 거센 저항도 작정하고 몰아치는 로마군단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기원전 229년, 로마는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들이 쇠퇴를 거듭하던 때 발칸반도 깊숙하게 진격해 들어갔다. 저항은 오래가지 않았다. 60여 년이 지난 기원전 168년 알바니아 북부 몬테네그로 접경지역인 지금의 쉬코드라에서의 항전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로마를 자극하던 곳이 또 있었다. 바로 알렉산드로스의 혼이 살아 있는 마케도니아였다. 이를 정벌하기 위해 로마는 일리리아 지방 내륙을 수시로 드나들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일리리아인은 아무런 죄도 없이 로마병사들에게 시달림을 당했다. 마케도니아를 완전히 굴복시킨 후 기원전 146년에는 비실대는 스파르타를 마지막으로 그리스는 완전히 사라지고 도나우강 남쪽 영역의 발칸반도는 거대한 로마의 우산 속으로 들게 된다. 그리고 연이어 동쪽 정벌을 이어가던 로마는 기원전 28년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가 권력을 잡으면서 제정시대가 열리고, 발칸반도는 자연스럽게 로마로 편입되며 속주 도시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서기 9년에는 불가리아와 세르비아의 켈트족을 정복했고, 14년이 되면서 발칸반도는 로마의 실질적인 지배에 들어갔다. 이로부터 5백여 년 동안 로마의 철권통치아래서 정체성 자체를 잊혀갔다.
로마는 점령지 속주 민족에게도 세금과 병역의 의무만 진다면, 시민의 일상적인 삶에 혜택을 골고루 부여했던 그들만의 지배방식은 발칸반도에도 적용되었다. 기실 일리리쿰에서 거대 지하자원의 광산을 발견하면서부터다. 금과 은은 물론이고 구리 등 풍부한 자원은 로마군의 병참기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로마제국’편에 언급한 것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발칸반도 출신이 황제에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어쨌거나 이제 발칸반도는 오롯이 로마의 지배아래 들어갔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 스스로도 로마와 자신들의 그리스 역사가 뒤섞이는 경험을 이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신들의 땅 그리스가 곧 로마고 로마가 곧 그리스였다. 그러나 정령숭배, 숲의 신과 나무의 신, 주피터(Jupiter), 태양신 등 다양한 신이 판치던 로마종교가 그리스신화를 만나면서 일취월장(?) 재창조된다. 신나고, 혹은 재미있으며, 때론 눈물겨운 그리스신화와 접목되면서 소설 쓰기 좋아하는 인간들로부터 새로운 신화가 만들어 졌다. 정령숭배는 인간이 신의 형상을 상상한다는 것은 감히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리스의 신들은 시기와 질투, 폭력, 사랑 등 인성을 갖춘, 인간보다 조금 더 커고 잘생기고 아름다운 신일뿐이었다. 로마인들은 감히 신을 인간들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에 묘한 쾌감을 느끼면서 훨씬 가깝게 다가왔을 것이다.
아드리아해와 아프리카를 잇는 해상 교역로가 개발되면서 대도로망 건설과 도시가 만들어지고, 광물자원을 비롯해 올리브 등 농산물이 활발하게 경작된다. 로마의 문화가 곳곳에 정착되면서 사원, 상수도시설, 민중오락을 위한 경기장, 공공목욕탕이 있는 거대도시들이 탄생한다. 하지만 로마가 통치하는 다른 지역과 달리 발칸반도는 완전하게 로마화 시키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정벌에 의한 식민전쟁으로 권력에 오른 황제군인들, 즉 제정일치의 시대의 도래가 허점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도 얼마가지 못해 보편적이라는 뜻의 카톨리케, 즉 가톨릭이 등장하면서 로마사회를 잠식한다. 또한 로마제국이 방대해지면서 곳곳에서 부패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3세기가 되면서 방대한 로마 국경은 어디서든지 늘 침략에 시달려야 했다. 그야말로 ‘왕관을 쓴 자는 그 무개를 견뎌야’했다. 사산조페르시아는 물론, 고트족, 반달족, 프랑크족까지 합세해 곳곳에서 로마를 괴롭혔다. 물론 결정타는 훈족의 서방원정이었지만 말이다.
첫댓글 으악.... 분량이 너무 많아 읽기 싫은데...
분량 제한에 대한 신탁을 하시오.
ㅋㅋ 시끄럽다!! 쓰는 미친 놈도 있다^^*..
@박참봉 대학교 때 여름방학 내내 [순수이성비판]을 읽고,
내가 이 책도 읽었는데 다른 어떤 책도 못 읽으랴 했는데...
요즘은 얼마나 게을러졌는지 이런 글도 다 읽기 싫어... ㅋㅋㅋ
분량이 장난아니군요.
폰으로는 눈에 안들어오니 출력해서 보겠습니다. ㅎㅎ
쓸데없는 글 호흡만 길다보니^^*..
대충 휘리릭 읽어보시고 그래도 관심이 가는 단어나 문장이 있으면 다시 되돌려 대충...
고맙습니다.
쓰는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읽는 열정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고로 모두들 고생했습니다
열정은 맞습니다^^*..
하릴없는 이노무 신세가 이토록 애를 닳게 합니다.
차츰 더워지는데 건강 잘 챙기시길!!!
교정교열 새롭게 보고 수정하면서 조금 줄였습니다^^*..
오빠... 내 돋보기 주문했어요.
이제 책 읽어주는 남자를 꼬셔볼까 싶어요.ㅎㅎㅎ
우리 미소가 슬픈 날이네...
돋보기를 쓴다는 것은 눈이 나이먹어 간다는 뜻인데.
내가 정확하게는 2007년부터 돋보기를 썼으니 ㅎㅎ
여튼 축하혀~~^^*..
미소에게 책 읽어주는 남정네는 행복하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