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 데코
Art Deco.
아르 데코(Art Déco)는 시각예술 디자인양식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출현했다. 1920년대~1930년대를 대표하는 미술 양식 중에 하나이다.[1]. 1925년 파리에서 개최된 '현대장식미술·산업미술국제전'에 연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1930년대부터 1940년대에 걸쳐 세계 디자인계에 영향을 주었다. 기존의 전통적 수공예양식과 기계시대의 대량생산방식을 절충한 스타일인 아르 데코는, 주로 풍부한 색감과 두터운 기하학적 문양, 그리고 호화로운 장식성으로 대표된다.
아르 데코는 산업화가 가속화되어 산업문화 전반이 변화하던 시대에 나타났다. 아르 데코는 (대량생산을 위한)신기술을 포용하였고, 이 점이 아르 데코의 시초라 여겨지는 아르 누보(Art Nouveau,자연적인 모티프 중시)와 구분되는 점이다. 역사학자 베비스 힐리어(Bevis Hillier)는 아르데코를 "비대칭보다는 대칭을, 곡선보다는 직선을 지향한다. 기계,신물질, 그리고 대량생산 수요에 적합한 현대양식"이라고 정의했다.
아르 데코의 전성기는 고급스러움(luxury),매혹적(glamour),풍부함(exuberance),그리고 신기술 발달과의 병행으로 대표된다.우아한 곡선과 꽃, 여성 등을 묘사하여 예쁘게 장식하는 것을 중요시하던 아르누보와는 달리 기계 및 공업과 타협하여 직선미와 실용미 등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이 양식은 20년대 대유행 이였기에 당시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바우하우스의 영향도 받았을 것이다, 떠오르는 공업의 나라였던 미국에서, 특히 뉴욕과 시카고 등의 대도시에서 크게 유행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이 양식의 유행은 끝나게 되었다.
1925년양식이라고도 한다. 흐르는 듯한 곡선을 좋아한 아르누보와는 대조적으로 기본형태의 반복, 동심원, 지그재그 등 기하학에 대한 선호를 뚜렷하게 볼 수 있다. 기하학적 형태는, 기계문명시대의 새로운 생활양식과의 관련성이 당연히 지적되지만 반드시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해결에 따라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아한 정취로 뒷받침되어 있다. 아르데코의 원천의 하나가 이국적 정서에 넘친 러시아발레단에 있었다는 것에서도 분명한 것처럼 어떤 때는 화려한 색채를 지닌 기하학적 형태가 전개되었다.
이러한 뜻에서 25년 전시에서 스위스의 르 고르뷔지에가 순정한 기하학에 기초하여 내놓은 <에스프리누보(새로운 정신)>는 두드러진 합리적 정신에서 아르데코와 분명히 구별되는 것이 있었다. 아르데코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는 공예의 H. 브란트·르그랑, 포스터의 카산드르를 들 수 있으며 패션계에서는 G. 샤넬 등이 아르데코의 정취를 받아들여 새로운 시대를 가져왔다. J. 호프만이 주재한 빈공방의 작풍은 그 고상하고 우아한 취미를 살려 아르데코에 접근했다. 1930년 전후의 뉴욕의 건축장식에서도 아르데코양식이 나타났다.
아르데코의 가장 큰 특징은 사실 장식보다는 재료에 있다. 군수 산업으로 돈을 번 부자들은 유행에 따라 단순하고 직선적인 디자인을 탐했다. 그러나 나무를 네모반듯하게 잘라 고작 동그라미 몇 개를 새긴 서랍장을 주문하고 보면 역시나 초라하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무언가 이 현기증 나게 매혹적인 시대를, 도처에 새로운 것들이 출현하는 감각의 시대를 표현해줄 요소가 있어야 했다. 이런 생각이 바로 역사상 가장 화려한 재료를 아낌없이 썼다고 평가받는 아르데코의 특징을 만들었다.
식민지 인도에서 티크를 접하고 남아메리카의 거대한 고무 농장에서 사방에 널린 흑단을 본 사람들은 이를 유럽으로 실어왔다. 디자이너들은 물 만난 고기마냥 인도산 티크, 쿠바산 흑단, 일본산 오쿠메 등의 목재와 귀갑, 조가비, 상아, 상어 가죽, 그리고 일본과 중국의 칠기까지 온갖 귀한 소재를 실내장식과 가구를 위해서 아낌없이 써댔다. 패션 디자이너 잔 랑방Jeanne Lanvin은 이 시대의 총아나 다름없었다. 파리의 가난한 모자 가게 점원이었던 그가 만든 ‘랑방’이라는 브랜드는 1925년 파리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데 자르 데코라티브International des Arts Decoratifs 만국 박람회에서 샤넬과 비오네Vionnet, 파투Patou와 나란히 쇼룸을 선보였다.
‘아르데코Art Deco’라는 용어는 바로 이 박람회의 명칭에서 비롯된 것. 박람회의 전시장이었던 그랑 팔레Grand Palais는 당시 세계의 유행을 휩쓸던 디자이너들의 쇼룸으로 가득 찼다. 옷뿐이 아니다. 카르티에나 모브상, 쇼메 같은 고급 보석상들, 세브르나 리모주, 바카라, 생루이 같은 도자기와 크리스털 업체까지. 복도를 지나가기만 해도 눈이 부실 만큼 현란한 이 전시장을 디자인한 인물들은 또 누구였던가? 이리브Iribe, 그루트Groult, 하토Rateau 등 당대를 주름잡던 실내 디자이너들이 지상에서 가장 귀한 소재들을 아낌없이 활용해 전시장을 단장했다. 건축부터 실내장식, 패션까지 하나의 스타일로 이 시대의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옷만 잘 만드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일본에서 가져온 칠기 가구를 자신의 숍에 아낌없이 펼쳐놓았던 샤넬처럼 유명 디자이너라면 실내장식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져야 했다. 잔 랑방의 실내 디자인을 위한 파트너는 하토였다. 청동으로 조각한 거대한 문, 티크로 만든 벽 장식 등 랑방의 숍이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포진한 생 토노레 거리에서 단연 최고였던 데에는 하토의 공이 컸다. 하토는 아르데코의 실내 디자이너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을 고루 지니고 있었다. 그는 전통 가구 제작법을 가르치는 학교인 에콜 드 불Ecole de Boulle 출신. 아르데코 디자이너들은 형태에서는 모던함을 추구하되 소재의 가공에서는 고전 시대의 정밀함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이런 하토와 잔 랑방이 만나 만들어낸 실내 장식의 정점이 바로 파리의 아르데코라티브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잔 랑방의 아파트. 하토는 이곳을 폼페이 유적과 클래식한 소재에서 영감을 받아 사슴, 새, 물고기, 꽃등의 온갖 자연물 모티프를 가구와 벽, 천장에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시절은 오래지 않아 막을 내린다. 다시금 전운이 깃들기 시작하고 1929의 대공황과 나치즘의 바람이 불면서 아르데코는 사라져 갔다. 그러나 사진 속 랑방의 아파트처럼 모든 현대 디자인의 근원을 품고 있는 아르데코는 여전히 매력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창조적인 영감을 건네고 있다.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이 바로 전형적인 아르데코 양식의 건물.픽션에서는 1927년작 걸작 공상과학 영화인 메트로폴리스[2] 와 2013년판 영화 위대한 개츠비나 게임 바이오쇼크가 아르데코적인 미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