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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송정초등학교29회동기회
 
 
 
카페 게시글
가 볼만한 곳◈ 스크랩 전북_ 무진장(무주_진안_ 장수)
*이경숙* 추천 0 조회 20 11.07.27 07:1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소풍가듯이|전북_ 무진장

무진장은_ 무주_진안_ 장수를 일컬음_ 전북을 두루 도는 여행코스


서울을 떠난 지 두 시간이 조금 지나서, 무주에 도착한다. 두 시간이라니! 나는 자꾸 시계를 들여다본다. 내 상상 속에서, 무주는 늘 먼 곳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자만이 구천동을 구비구비 감싸며 흘러내리는 계곡에 발을 담글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몸이 여기를 쉽게 떠날 수 없던 날, 그러나 시선은 자꾸 창 너머 먼 곳으로 향하는 날이 많던 날, 나는 지도를 보는 버릇이 있었다. 손가락 두 마디도 되지 않는 공간을 몇십 배로 늘려서 머릿 속에 펼쳐 놓았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부산까지 가기도 하고, 국도를 바꿔 타가면서 강릉까지 가보기도 했다. 이 상상 속의 여행에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절대 차가 막히지 않고, 내가 멈추고 싶은 곳에서 멈출 수 있고, 동행하는 사람들과 사소한 감정다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때 보던 지도에는 대전-통영 사이의 고속도로가 없었다. 그래서 무주, 진안, 장수까지 가기 위해서는 먼길을 돌아야 했다. 전주에서 진안으로 가기도 하고, 영동에서 무주로 가기도 했다. 지도를 보면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와 88고속도로가 서로 교차하면서 삼각형을 만든다. 무주, 진안, 장수는 바로 그 삼각형 가운데에 있었다. 마치 피라미드의 꼭지점처럼. 그 삼각형 안에 존재하는 마을들이 내겐 신성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이곳을 찾아가리라! 그렇게 다짐을 하지만 쉽게 찾아가지 못하는 그런 곳이 있다. 상상 속에서 무주는, 아니 무진장은 그런 곳이었다.

나제 통문을 넘나들다
버스에는 ‘살기 좋은 무진장’이라고 글이 적혀 있다. 무슨 인연으로 무주, 진안, 장수는 무진장이라는 한 이름으로 묶이게 되었을까? 내 것과 네 것을 분명하게 나누는 시대. 이 시대에 ‘살기 좋은 무진장’이라는 글은 따뜻하다. 어깨동무를 나란히 하고 길을 걸어갔던 옛 친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무주에든, 진안에든, 장수에든, 어디에나 ‘무진장 가든’이 있고 ‘무진장 모텔’이 있고 ‘무진장 여객’이 있다. 이 ‘살기 좋은 무진장’은 나는 나야! 라고 서둘러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가 있으므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무진장 여행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과연 나는 나일까?



나제통문은 흔히 무주의 제1경이라고 불린다. 나제통문을 시작으로 덕유산 정상 향적봉까지 33경이 펼쳐져 있다. 신라와 백제의 경계였기 때문에 나제통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 곳은 무주로 들어서는 상징적인 관문이다. 나제통문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는 경계이기도 했다. 그 경계도 역시 상징적이다. 실제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행정구역상 경계는 나제통문을 지나 몇 킬로를 더 달려야 하니까. 전라북도 무주군과 경상북도 김천시를 나누는 그 경계, 덕신재에는 문을 닫은 매점이 하나 있다. 자음과 모음이 떨어져나간 입간판. 사라진 글자의 흔적을 더듬어서 겨우 매점이라는 단어를 읽는다. 깨진 유리창 사이를 오가며 바람이 분다. 바람은 머리칼을 헝클이고는 태연하게 김천으로 떠난다.
행정구역상의 경계에서 상징적인 경계까지 되돌아오는 국도변에 달맞이꽃이 피었다. 달맞이꽃들은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아직 피지 않는 달맞이꽃에서는 달을 사랑했던 님프의 모습이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달도 별도 없는 호숫가에서 달의 여신을 기다리며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님프. 그 님프의 무덤가에 피어난 꽃이 달맞이꽃이다. 상징적인 경계인 나제통문을 사이에 두고 서쪽과 동쪽 마을은 서로 다른 풍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쪽은 전라도의 풍습을, 한쪽은 경상도의 풍습을. 그러나 달맞이꽃은 그 경계와 상관없이 어디에든 피어 있다. 달맞이꽃이 된 님프의 괴로움은 이런 것이었으리라. 나는 왜 달을 사랑하지 않고는 내가 될 수 없는가? 나는 왜 달이 될 수 없는가? 그래서 님프는 스스로 달이 되었다. 밤이 되면 달맞이꽃은 땅 위에 수십 개의 달을 띄운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상징적인 경계나, 실질적인 경계나, 그 경계는 자신의 뜻과 달리 지나친 의미를 안고 있다. 이제 그만 그 무거운 것을 내려놓을 때도 되었다. 그걸 달맞이꽃이 말하고 있다.




하늘이 높다, 깊다, 넓다
하늘이 높다. 덕유산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쉽다. 무주 리조트에 설치된 관광용 곤돌라가 하늘을 향해 올라갈 때마다 하늘도 조금씩 높아진다. 문명이란 자연의 ‘속도를 배반’하는 일이다. 머릿속에서는 산에게 미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데, 이미 편안한 것이 밴 몸은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산 정상에 잠자리 떼가 한창이다. 종이보다 얇은 날개를 퍼덕이며 잠자리는 어떻게 덕유산 정상까지 올라온 것일까? 아니 그보다 이 잠자리는 어디에서부터 날아온 것일까? 그런 궁금증이 인다. 중국을 거쳐, 북한을 거쳐, 이곳까지 날아온 잠자리도 있을 것만 같다. 그렇다면 몸 어디엔가 그곳의 공기가 남아 있을 텐데.
길가에서 본 달맞이꽃은 원산지가 칠레다. 해를 거듭하면서 달맞이꽃은 자기의 고향인 칠레를 잊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몸 한구석에, 칠레의 바람과 햇빛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까? 덕유산 정상에 서면 저 멀리 가야산, 지리산, 속리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태백산맥 줄기를 따라 그리고 태백산맥에서 갈라진 소백산맥의 줄기를 따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산. 정상에 서서 구름 뒤에 가려진 산들을 헤아리며 머릿속으로 대한민국의 지도를 그려본다. 그리고 내친 김에 그 상상 너머 눈에 보이지 않는 먼 곳의 나라까지 헤아려본다. 그 나라는 달맞이꽃의 고향인 칠레일 수도 있고, 잠자리가 날아온 어느 곳일 수도 있고, 덕유산 자락에 핀 수많은 꽃들의 고향일 수도 있다. 조선 초기의 학자 강희안이 쓴 『양화소록』이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큰 소나무는 천년이 지나면 그 정기가 청우(靑牛-털이 검은 소)가 되고 복구(伏龜-엎드려 있는 거북)가 된다.” 옛 사람들의 자연관은 어느 한 곳 막힌 데가 없다. 한 존재는 한 존재로 생을 마치지 않는다. 소나무가 소나무로 생을 마치지 않고 그 정기가 다른 생명체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자신의 존재가 버거워 다른 존재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 인간이 유일할 것이다. 우리가 무심히 달맞이꽃을 꺾을 때, 그 안에 담긴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사람들은 산 정상을 알리는 비(碑) 옆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저 기념사진만은 차마 찍을 수가 없다. 그것은 산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덕유산 허리를 밟아가며 올라온 사람들만이 당당하게 찍을 수 있는 것이리라. 대신, 그 옆에 앉아 오랫동안 하늘을 바라본다. 비가 그친 후 하늘이 높다. 높다, 라는 말은 단순히 거리상의 의미가 아니다. 하늘이 높아지면 땅은 깊어진다. 호수에 비친 하늘의 풍경은 호수를 더욱 깊게 만든다. 산 속의 나무들은 더욱 푸르게 우거지고 있고 칡은 덩굴을 이루어서 나무를 뒤덮는다. 벼들이 높은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깊게 들이마시고 있을 것이며, 어느 집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는 높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볕을 아낌없이 빨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하늘이 높아지면 지상 모든 것들의 삶은 이렇게 깊어진다. 그리고 또 넓어진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하늘을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린 옛 애인도 보고 있을 것이다.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그대와 내가 하나의 하늘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산 정상에 서서 높아서 깊은, 깊어서 넓은 그런 하늘을 보고 있다.
산 정상에 오래 서 있는 일은 괴롭다. 산 정상에는 그림자가 없다. 오직 구름이 태양을 가리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해는 얼굴에 감추어져 있던 그늘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런 나의 얼굴을 타인이 읽을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하늘이 이처럼 높은 날은 더더욱.






말의 귀에 오르다
무주에 덕유산이 있다면 진안에는 마이산이 있다. 산은 자신의 의미를 안으로 품고 있다. 그래서 지리산을 오른 자만이 지리산을 말할 수 있고, 덕유산을 오른 자만이 덕유산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이산은 정상을 향해 오르기보다 멀리서 바라보게 되는 산이다. 말의 귀처럼 솟아오른 바위는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다. 마이산을 가운데 두고 진안을 한 바퀴 돌아보자. 두 봉우리가 하나로 겹쳐지기도 하고, 달의 표면처럼 구멍이 뚫린 뒷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때마다 새로운 이름을 지어보는 것은 어떨지? 옛 조상들은 용의 뿔이라고 보기도 했고 쌍돛대로 보기도 했다. 시대를 조금 건너 요즘식으로 상상을 해 본다면, 우뚝 솟은 두 바위 사이가 UFO의 우주 정거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이산 두 바위의 생물학적 나이는 약 1억년이라고 한다. 1억년 동안 마이산은 각기 다양한 이름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마이산을 더욱 신비롭게 만드는 것은 '탑사'라는 다소 기이한 절 때문이다. 탑사는 암마이봉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에는 80기가 넘는 탑이 여러가지 모양으로 쌓여 있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이갑룡 처사'라고 불리는 사람이 30여 년 동안 혼자의 힘으로 쌓아올린 것이라고 한다. 탑사에 쌓여 있는 탑들을 보면 그 말을 쉽게 믿기는 힘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엔 믿기 힘든 일들이 이보다 더 많지 않은가! 접착제 없이 오직 돌로만 쌓았다는 탑들은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는다. 위에 있는 돌은 그 아래 있는 돌에 기대고 있고, 또 그 아래 있는 돌에 기대고 있고, 또 그 아래 있는 돌에 기대고 있고… 그렇게 돌들은 서로 기대며 버티고 있다. 그리고 하나의 탑은 옆에 세워진 또다른 탑에 기대며 버티고 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탑사는 암마이봉의 그늘 아래에 기대어 있는 것이다. 1억 년을 버틴 바위 옆에서, 80살이 된 어린 탑들이 겸손하게 기대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탑들 아래로 80살을 살기도 힌겨운 인간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러나 반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암마이봉을 타고 능소화가 피어 있다. 사람들은 능소화의 꽃을 가리켜 귀를 활짝 열어놓은 모양이라고 한다. 탑사에 들어서면 무릇 범인(凡人)들은 말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암마이봉 한쪽 벽에 수십 개의 귀가 있으니. 아주 옛날 임금을 사랑했던 한 여인이 있었다. 이 여인은 궁궐의 깊은 곳에서 늘 임금을 기다렸으나, 임금은 어느덧 이 여인을 잊고 말았다.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진 여인은, 그 마음의 깊이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어진 연후에 서서히 죽어갔다. 그 여인이 죽어서 능소화가 되었다. 능소화의 꽃이 귀를 활짝 연 모양이 된 것은 그 여인의 마지막 유언 때문이었으리라. 죽어서나마 임금님의 발자취를 들으려고 꽃잎을 자꾸만 넓게 벌리게 되었던 것이다.



마이산에는 눈으로만 사랑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탑들은 호기심 많은 사람들 때문에 오늘날 단단한 경계를 둘러야 했다. 두 봉우리의 정상까지 오르는 일은 불가능하다. 북부 주차장 못 미쳐 있는 작은 저수지에 가면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 거꾸로 비친 모습을 볼 수 있다. 산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대신 산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진안 곳곳에 숨어 있다. 탑사의 두 봉우리처럼 능소화도 눈으로만 사랑해야 한다. 사랑이 너무 깊어, 사랑이 너무 아파서, 구중궁궐에 갇힌 여인은 한을 품었을까? 능소화의 꽃에는 독이 숨어 있다. 꽃술을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비면 실명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ㅇ르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능소화가 관광객들의 신발에 밟힌다. 꽃은, 일그러지면서, 세상의 소음을 자기 안으로 빨아들인다. 아! 꽃들은 왜 분노할 줄 모르는가. 자신을 죽음으로 이끈, 사랑하는 그대들을 향해, 꽃들은 왜 화를 내지 않는가.



무진장 계곡에 숨지 못하다
무주의 높은 하늘은 진안을 지나 장수까지 따라온다. 이곳 사람들의 가슴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인물이 있다. 장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임진왜란 당시에 적군의 장수를 안고 금강으로 뛰어든 '논개'의 절개를 가슴에 담고 있다. 다른 곳보다 해발고도가 높은 이 산간지방에서 논개는 태어났다. 장수군은 논개의 사당을 지어 해마다 그녀의 넋을 헤아려주고 있다. 논개는 하나의 꽃이다. 무주에서 달맞이꽃을 보았고, 진안에서 능소화를 보았듯이, 장수에 와서는 논개라는 꽃을 본다. 이 세 꽃들은 모두 '살기 위해' 죽음을 택했다. 달맞이꽃은 달에 좀더 가까이 가기 위해 꽃이 되었고, 능소화는 님의 소리를 조금이라도 자세히 듣기 위해 꽃이 되었고, 논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꽃이 되었다. 하늘이 점점 높아진다. 사방에 꽃향기가 그득하다.



지도를 본다. '무진장'을 가운데 두고 동그랗게 원을 그린다. 원 안에서 '무진장'은 평화롭게 공존한다. 경계를 나누지 않는 공존의 철학은 '어죽'이라는 소박한 음식에서 완성된다. 어죽은 무주지방의 향토음식 중 하나다. 어죽이란 말 그대로 물고기죽이다. 무주의 계곡에서 잡히는 민물고기를 푹 삶아서 가시를 바른 다음 거기에 쌀을 넣어 죽을 만드는 것이다. 어릴 적 계곡에서 천렵을 해본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쉽게 상상이 가리라. 이 어죽의 장점은 얼마든지 양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배고팠던 시절, 우리나라 백성들이 그 어려움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음식 덕분이리라. 배고픈 사람이 오면 끊이던 죽에 물을 조금만 더 부으면 되니까. 작은 방에 앉아서 어죽을 먹는다. 이제는 쌀이 남는 시대다. 그래서 어죽에 들어 있는 밥알갱이도 그 형체가 온전하다. 여름은 가다 말고 다시 돌아왔다. 어죽을 먹는 일행들의 이마에 땀이 홍건하다. 그 땀을 닦으면서 나는 생각한다. 나는 왜 그토록 내가 되려고 애를 썼던 것일까? 한 공기의 쌀로도 여러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다. 수많은 '너'를 마나고 나야 나는 '내'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고속도로가 뚫려도 내겐 아직도 무주, 진안, 장수까지 가는 길이 멀다.'무진장'의 깊은 계곡에는 내가 숨을 곳이 없었다.

 

 

출처 : Tong - justinKIM님의 | 소풍 가듯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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