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글 생략-----
우리는 작은방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이들의 회견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1시간 넘게 기다렸을까? 모주석의 지시도 있고 해서 얼른 총사령관(팽덕회)을
만났으면 했지만 예상외로 이들의 만남은 끝날 줄 몰랐다.
결례를 무릅쓰고 경호원에게 서너차례 분위기를 살펴보도록 부탁했다.
오후 2시쯤(1950.10.21) 됐을까. 경호원이 우리에게 말했다. "들어오시랍니다."
방안에 들어서니 10여㎡ 크기 정도였다. 두사람이 저만치 방 한가운데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마치 백년지기의 만남처럼 다정했고
김수상의 모습은 생각보다 여유있었다.
나는 몇 년 전 동북 해방전쟁 당시 김일성 동지를 한 번 본 적은 있으나 말을 나눈 적은 없었다.
지금 조선의 정세가 급하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을 정도로 그의 태도는 태연자약했다.
--이하 생략---
자료 : 중국이 본 한국전쟁(번역문, 원문 : 홍학지 회고록) 에서
<배경설명>
팽덕회는 1950.10.19 저녁에 압록강을 건너 평안북도 신의주에 도착합니다.
신의주에서 박헌영을 만나 김수상이 어디에 있냐고 물으나
박헌영도 김수상과 연략이 안된다고 합니다.
팽덕회는 상황이 워낙 긴박한지라 일단 수풍발전소로 가서 김수상을
기다리기로 결정하고 바로 이동합니다.
다음날 김수상이 평안북도 동창군 근처 대유동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대유동으로 이동하여 1950.10.21 두사람이 만나게 됩니다.
* 1950.10.19 유엔군 평양 점령후 압록강을 향해 맹진격
* 팽덕회가 대유동으로 이동시 바로 옆으로 국군 6사단 7연대(초산부대)가
몇 백미터 거리에서 압록강변의 초산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고 함
물론, 7연대는 압록강 물을 마시기는 하나 며칠후 중공군에 거의 전멸당함
첫댓글 잘 보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