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巫敎)는 한국의 무속신앙을 타 종교와 대등한 종교 현상으로써 인식할 때 사용하는 명칭이다. 무속(巫俗)이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는 무속신앙을 종교로 보지 않고 좀 더 격이 낮은 미신으로 취급하는 역사적 천시의 의미가 내포 되어 있기에, 무속신앙을 종교학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동시에 존중과 배려를 표현하기 위해서 공식적으로 무교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무당은 고유어로 과거에는 한자를 빌려 무당(巫堂)으로 적었다. 격(覡)은 박수라는 뜻으로, 남자 샤먼을 뜻한다.
무(巫)·격(覡)이 사용 하는 무구(巫具)로는 장구 자바라 따위 악기 포함 하여 신 내리게 하는 가지인 내림대, 원귀(冤鬼)의 한(한恨)을 달래는 방울, 잡귀(雜鬼)를 쫓는 부채, 칼, 작두 등이 있다.
무(巫)란 무속신앙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표현하기 위한 또 다른 용어다. 무(巫)의 경우 해당 신앙에 대한 가치표현을 나타내는 표현이 부과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교나 무속에 비해 가치중립적인 표현으로 해석 되며, 무업에 종사 하거나 무를 신봉 하는 이들에게 주로 쓰인다. 무교가 해당 신앙의 모든 현상을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종교학적인 관점에 한정된 개념이라는 점에서 '무'가 '무교'보다 좀 더 넓은 의미로 해석 될 수 있다.
현대인들은 이 종교를 '무속', '무속신앙', '무교' 등이라고 부르지만 이 종교에 이런 이름이 생긴 것은 지금으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일제강점기시기이다. 일제강점기 이전의 본래 명칭은 신교(神敎)라고 불리었었다. 당시 역사학자 이능화가 이 종교에 '무속(巫俗)'이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했고 개신교 신학자 유동식이 '무교(巫敎)'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며 인류학자 조흥윤은 '무(巫)'라고 했다. 태고적부터 한민족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 다양한 형태로 녹아들어 있었던 민속 종교였기 때문에 이 종교에 고유한 이름을 붙이고 엄밀한 하나의 고유 종교로서 구체적으로 재정립한 시기가 비교적 얼마 되지 않은 것이다.
무교(신교(神敎)의 역사는 고조선 시기에서부터 이미 존재했다. 단군신화에서는 환웅이 신시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신시는 제왕이 하늘에 제사를 하는 장소이자 굿당으로, 환웅과 단군왕검은 제천의식을 주관 한 무당으로 해석 할 수 있다. 상고시대의 무교는 권력과 밀접하게 연관 되었기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무당들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신라에서는 무당을 왕자의 호칭으로 삼았고(남해 차차웅), 고구려에서는 사무(師巫)라는 명칭이 있었다. 가장 오래 된 대한국 제례나 풍속의 기록으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기록이 있다. 마한의 천군·소도, 동예의 무천,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이 모두 당신의 제례다. 원래 그 위상이 높았던 무교는 후세에 문화가 진화하고 거기다 유교·불교·도교를 비롯한 외래 종교들이 들어오자 점차 쇠락하며 다른 종교와 융합이 이루어지기도 했으며 특히 공통점이 강한 도교와 융합이 이루어졌고, 불교, 유교와 영향을 주고받았다.
삼국시대에서의 무속은 시조제, 농신제, 산천제의 모습으로 나뉘어져 전승 된다. 삼국통일 이후로도 신라의 왕들은 새해를 맞이하여 시조제를 지냈는데, 이는 그들이 하늘의 자손임을 나타내는 의례였다. 고려에서도 황실의 안녕과 복을 비는 공적인 제천의식과 예언적 기능을 갖춘 무속이 자리를 잡았다. 조선 전기까지도 국무당을 비롯 한 산천에서 국행 및 내행기은이 거행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국가 운영의 주요 이념이 되어 무교도 최소한 권장되지는 않는 것이었고 사회적 영향력이 다소 축소되었다. 그에 따라 민간의 신앙으로만 존속되어 왔다.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대에 들어서서는 미신타파라는 이유로 탄압을 받기도 했다. 북한에서도 무교는 미신이라며 단속대상이고] 연변에서도 무교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미신타파, 구습이라며 탄압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천 년 동안 특정한 이름이 없었던 이 종교에 '무속', '무속신앙', '무교'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탄압을 받으면서도 드디어 고유한 이름을 갖추고 하나의 엄밀한 종교로서 정체성을 확립한 것이다. 지금은 전통 문화/종교 보전 의식이 확대되어 탄압을 가하는 경우는 사라지고 연구와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무교(巫敎)는 다른 나라의 모든 종류의 신령을 모실 수 있을 정도로 유연성과 포용력이 높은데, 대표적인 예로는 도교, 불교, 유교의 신령들을 받아들인 것 뿐 만 아니라 근대에 이르러서는 다양한 신을 받아들이고 있다.
무속신앙은 다양한 신(神)의 힘을 빌려 근심걱정을 덜어내고 복을 비는 우리민족의 가장 오랜 된 신앙형태이다. 신(神)이란 무력한 인간이 전지전능한 그 무엇을 찾기 위해 상상과 환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우주를 만들고 인간을 구원해 줄 신(神)이 있다면 우리 인간은 신의 노예가 된다. 내가 태어날 때 우주는 창초 되었고 또 내가 사라지면 우주도 사라진다. 모든 인간은 신의 종이 아니라 그 자체도 삶의 주인공이다. '하느님, 부처님과 신이 아니라 인간이 우주의 주인공이다.'
한국인은 반쯤은 무속에 관심이 있다말이 있다. 무엇을 갖기를 원하나요. 많은 돈, 높은 지위, 든든한 권력, 좋은 가족과 친구, 기쁨과 행복. 열린 태도로 지혜로워질 때 많은 것이 덤으로 주어집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