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왔나 싶지만 가족이 있어 행복”
치매 시어머니와 장애 아들, 간암 남편 30년간 보살핀 최순덕씨의 고귀한 헌신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안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최순덕씨 가족은 이와 정반대되는 길을 걸어왔다. 불안과 괴로움 속에서 살아온 시간이 많았다. 그 시간을 건너 이제는 행복과 웃음이 가득한 가족이 되었다. 중간 다리가 되어준 것은 3대에 걸쳐 흘러온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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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매에 걸려 이제는 아기가 되어버린 시어머니 박교순씨와 박씨를 30년간 모셔온 며느리 최순덕씨가 꽃밭에서 활짝 웃고 있다. |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내가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강원도 철원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최순덕(51)씨의 말이다. 최씨는 30년 동안 시할머니와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을 키웠다. 남편 한경희(54)씨는 “아내이면서 내가 기댈 수 있는 바위 같은 사람”이라고 최씨를 설명했다.
자신도 놀랄 정도로 최씨의 인생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1983년 결혼한 최씨는 결혼과 동시에 시할머니와 시어머니를 모셨다. 남편은 분가하길 원했지만, 시어머니 박교순(80)씨가 허락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시어머니는 한씨의 월급을 직접 관리하며 한 달에 1만원 정도만 생활비로 주었다.
불평 한마디 없이 시할머니와 시어머니를 모시며 시누이들까지 살뜰히 잘 챙기는 최씨를 동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요즘에 보기 어려운 착한 며느리”라고 칭찬했지만, 시어머니는 최씨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중증장애 안고 태어난 아들 30번 넘게 수술
손자를 안겨드리면 좀 나을까 싶었지만, 그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들 필규(26)씨는 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얼굴이 기형으로 자라는 크루존증후군(Crouzon Syndrome)이라는 희귀병이었다. 여기에 코와 항문까지 막힌 채 태어났다.
30여 차례의 수술 ‘대장정’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최씨는 아들을 낳고서 8년간 매일 아이를 안은 채 잠을 잤다. 비강이 막혀 있어 코로 숨을 못 쉬는 아들이 밤새 숨이 막혀 잘못될까 싶어서였다. 시어머니는 사람을 잘못 들인 탓이라며 굿을 했다.
그러던 시어머니가 어느 날 ‘아기’가 돼버렸다. 1998년 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시어머니의 치매 증세가 심해졌다. 가족들을 몰라보고 대소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했다. 남편은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자고 했지만, 최씨가 반대했다. 매끼 죽을 끓여 떠먹여 드리고 매일 씻겨 드렸다. 그 생활이 14년째다. 최씨는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남편과 딸, 아들이 함께 어머니를 모셨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시어머니는 요즘 최씨를 ‘언니’라고 부른다. 종일 ‘언니’의 보살핌을 받다가 저녁이면 ‘돈 이불’을 덮고 잔다. 치매에 걸리고 나서 돈에 집착하는 시어머니를 위해 만든 최씨의 작품이다. 5만원짜리 지폐 무늬가 찍힌 천을 끊어다 직접 만들었다.
경찰로 일하던 남편도 간암 판정 11번 수술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3년 남편 한씨가 간암 2기 판정을 받았다. 26년간 경찰로 일하던 한씨는 일을 그만두고 투병생활에 들어갔다. “건강상 계속 다닐 수 없었어요. 그만두고 싶기도 했고요. 제 생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직장을 더 다녀서 뭐 하나 싶더라고요. 가족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간 절제 수술 후 암이 재발하자 한씨는 유서를 써두고 영정사진을 찍었다.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던 한씨를 일으켜 세운 건 ‘가족’이었다.
한씨는 “고생만 시킨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지난 10여 년간 수술만 11번을 받았다. 다행히 2005년 말 두번째 간이식 수술을 받고 몸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
최씨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 이름은 ‘행복이 가득한 바우네 집’이다. 바우네 집에는 음악도 넘친다. 건강을 회복한 후 한씨는 색소폰을 배웠다.
아들 필규씨와 최씨도 배우게 했다. 한씨는 “아내가 워낙 손재주가 좋다 보니 색소폰 연주도 금방 배웠다”고 연신 최씨를 칭찬했다. 어떻게 색소폰을 그렇게 금방 배웠는지 최씨에게 묻자 “리드가 약한 색소폰을 불면 어렵지 않다”는 겸손한 답이 돌아왔다.
‘가족밴드’는 일주일에 한 번 공연 봉사를 다닌다. 2010년 초부터 시작한 봉사다. 1년에 두 번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잔치를 벌였는데, 인근에 소문이 났는지 노인대학과 요양시설에서 공연 요청을 했다. 이제는 정기적으로 방문해 공연하는 곳이 네 군데나 된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는 마음에 장비도 샀다. 악기에 음향장비까지 1천만원 남짓 들었다. 대가 없이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이들 부부는 “봉사하면서 얻는 기쁨과 에너지가 더 크다”고 말한다. 시어머니 박씨도 가족밴드의 팬이다. 모든 공연에 동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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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덕씨 가족은 가족밴드를 만들어 봉사활동도 한다(왼쪽). 5월 8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1백68명의 효행자·장한 어버이를 기리기 위해 훈·포장, 표창을 수여했다. |
가족밴드 만들어 봉사도… “뭔가 할 수 있어 행복했어요”
최씨에게 지난날을 돌아봤을 때 후회는 없느냐고 물었다. 최씨는 “아이를 더 원한 남편의 뜻을 따라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아픈 자식을 또 낳을까 봐 더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최씨는 “지난 세월 동안 뭔가 할 수 있어 행복했다”며, “행복은 불안이나 걱정, 미움 등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보건복지부는 최씨와 그 가족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 최씨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했다. 지난 5월 8일 40회 어버이날에 시상식이 있었다. 최씨를 포함해 효행자, 장한 어버이, 노인복지 기여자 등 1백68명이 국민 훈장·포장과 대통령·국무총리·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