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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8장 1-7절. 우상의 제물에 대한 문제
1. 지난 시간에는 ‘약혼녀 동거 문제’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에는 결혼문제에 대한 고린도 교회의 질문에 대해서 바울 사도가 답변한 내용입니다.
2. 오늘 8장부터는 ‘우상의 제물 먹는 문제’에 대한 바울 사도의 가르침입니다.
‘우상의 제물 먹는 문제’에 대한 교훈은 고린도전서 8-10장까지에 있습니다.
3. 그런데, 한 가지 아셔야 할 것은 9장의 말씀이 ‘사역자의 사례비’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왜 우상의 제물에 대한 말씀을 하다가, 갑자기 9장에서 사례비 문제를 다루느냐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4.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근본적으로, 우상의 제물 문제는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는 ‘양심 자유의 문제’(adiaphora)이지만, 이 양심의 자유도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 유보할 줄 알아야 참 자유한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5. 이와 같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유보에 대한 한 예로서, 바울 사도는 자기가 사례비를 받을 권한이 있지만, 불신자 전도를 하고, 초신자들의 교회에서 처음부터 사례비를 받으면, 마치 바울이 돈을 벌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 같아지므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사례비 받을 권한을 유보한다는 것입니다.
6. 이처럼,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유를 유보하는 것과 바울이 사례비 받을 권리를 유보하는 면에서, 8장과 9장과 10장이 일관성 있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7. 표면적으로는 우상의 제물 문제를 다루고 있고, 내면적으로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유보’ (reservation of freedom)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자유와 권리를 가졌다고 맘대로 살 것이 아니라, 이웃을 생각하면서 자기의 권리를 유보하고, 좀 양보하고 섬기면서 사시는 아름다운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8. 오늘 본문은 첫째 1-3절은, 사랑은 덕을 세우므로, 사랑을 따라서 행하고, 지식을 따라 교만하게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4-6절에는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시라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안다는 것입니다.
셋째, 어떤 성도들은 예수 믿은 다음에도 우상을 섬기던 습관을 탈피하지 못해서, 음식이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것임을 알지 못하고, 우상의 음식인 줄로 알고 양심의 깨끗함을 지키지 못하는 연약한 성도들이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9. 그러기 때문에, 모든 음식이 하나님의 지으신 것인 줄 아는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우상의 제물이 우상의 것인 줄로 오해하고 두려워는 연약한 성도의 양심이 손상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 약한 성도 앞에서 우상의 제물을 함부로 막 먹지 말고, 연약한 성도의 양심을 보호해주라는 것입니다.
10. 이처럼 사랑은 덕을 세우는 것이고, 지식은 다른 사람의 약한 신앙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식을 가지고 성도들을 야단치지 말고, 사랑으로 늘 섬기고 일으켜 세워주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분해>
1-3절. 우상의 제물에 관한 서론( 지식은 교만하게 하나, 사랑은 덕을 세움)
4-6절. 우상의 제물에 관한 지식론(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우상의 제물 음식 자체는 선한 것임)
7-13절. 우상의 제물에 관한 덕행론(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진 강한 신앙인이 그것을 못 먹는 약한 신앙인을 사랑하여 자유를 유보하는 덕행을 할 것)
사랑은 덕을 세우고, 지식은 교만하여 이웃의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1절,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concerning things sacrificed to idols, we know that we all have knowledge. Knowledge makes arrogant, but love edifies.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Περὶ δὲ τῶν εἰδωλοθύτων,
concerning now the things sacrified to adols
직역하면 ‘우상들에게 바쳐진 것들에 대해서는’이란 뜻입니다.
‘우상들에게 바쳐진’(εἰδωλοθύτων)은 형용사입니다.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οἴδαμεν ὅτι πάντες γνῶσιν ἔχομεν.
we have known that all knowledge we have
직역하면 ‘모든 지식을 우리가 갖고 있다고 우리가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ἔχομεν)는 현재형입니다(we have)
‘우리가 알고 있다’(οἴδαμεν)는 완료형으로서(we have known)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ἡ γνῶσις φυσιοῖ,
the knowledge puts up
‘교만하게 하며’(φυσιοῖ)는 현재형입니다(puts up).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ἡ δὲ ἀγάπη οἰκοδομεῖ·
the but love builds up
직역하면 ‘그러나 사랑을 덕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덕을 세운다’(οἰκοδομεῖ)는 현재형입니다(builds up).
English Standard Version: 이제 우상에게 바친 음식에 대하여, 우리가 모두 지식을 가진 줄로 알고 있다. 이 지식은 (자기를) 자랑하게 만들지만, 사랑은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느니라. (Now concerning food offered to idols: we know that “all of us possess knowledge.” This “knowledge” puffs up, but love builds up)
New Living Translation: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에 관한 여러분들의 질문에 대하여는. 물론 우리가 모두 이 문제에 대하여 지식을 가지고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지식은 자신을 중요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반면에, 교회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Now regarding your question about food that has been offered to idols. Yes, we know that "we all have knowledge" about this issue. But while knowledge makes us feel important, it is love that strengthens the church)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이라는 형식문은 고린도 교회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가리킵니다(7:1, 8:1, 12:1, 16:1, 16:12 등).
‘우상의 제물’(τῶν εἰδωλοθύτων: the things sacrified to adols)이란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소, 양, 염소, 돼지, 닭 등의 고기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바울은 13절에서는 단지 ‘고기’라고만 말합니다.
다니엘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단1:8-16)
유대인들도 이런 자세를 가졌고, ‘더러워지고 약한 양심’을 가진 고린도 교인들도 이런 자세를 가졌습니다.
고린도에는 그 도시의 수호신인 아프로디테(Aphrodite) 여신의 신전이 있었고, 고린도인들은 자신들을 아프로디테 여신의 소생으로 자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고린도 시민 전체가 신전 제사에 참여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일부의 제물을 우상 신전에 바쳤고, 일부는 사제들이 먹었고, 일부는 제물 바친 자와 그 친척, 친구들이 신전의 한 방에서 먹었고, 그러고도 남은 제물은 시장에 내다가 팔았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고린도 교인들은 대개 가난한 성도들이었기 때문에, 보통 때는 고기를 먹을 수 없었고, 신전 제사 때 남은 고기를 시장에서 팔 때, 그것을 싼값으로 사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우상 신전에 제물로 바쳤다가 시장에서 판 것을 사서 먹은 성도에 대해서, 성도들간에 시비를 했던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는 ‘물론 여러분이 말한 것처럼 우리 모두는 이 우상의 문제에 관해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Of course we all have knowledge of the matter, as you say-NEB, William's B.)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즉, 이 말은 대부분의 고린도교인들과 바울 사도가 4-6절에서 바울이 밝힌 대로, ‘우상은 헛것이며, 우상의 제물은 음식 자체는 선한 것이라는 지식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상의 제물을 시장에서 사서 먹는 고린도 교인들의 자유는 우상이란 아무것도 아니고, 제물로 바쳐진 음식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거룩한 음식이라는 바른 지식에 기초한 것입니다.
이처럼, 자유는 진리에서 옵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이 자유를 굳게 지키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과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신앙인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지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절에 말씀한 대로, 일부 고린도 교인들은 이러한 ‘지식과 자유’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상당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진다”고 했습니다. (고전 8:7)
즉, 일부 고린도 교인들은 ‘더러워지고 약한 양심’을 가진 신자들이었다.
이러한 확신이 없고 약한 양심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바울 사도는 결코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4장 23절에서,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유식한 신앙은 자유를 주고, 무식한 신앙은 양심의 손상을 가져옵니다.
3. 자유의 유보에 대하여
‘그러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나,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이것은 격언적인 표현(gnomic expression)으로서, 우상의 제물 문제(8-10장) 전체에 관한 총체적인 교훈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우상의 제물에 관한 지식을 가졌다고 자유스러운 행동을 하면서 교만할 것이 아니라,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우상숭배에 참여하게 된다고 두려워하는 연약한 신자를 생각해서(사랑하여) ‘자유를 유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믿음이 강한 신자는 우상숭배의 정신을 갖지 않고, 시장에서 파는 제물(祭物)이나 타인의 집에서 식사 대접받는 제물(祭物)을 먹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신자는 그것조차도 우상숭배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여, 시장에서 파는 제물이나, 타인의 집에서 식사 대접받는 제물을 먹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바울 사도는 믿음이 강한 성도가 우상의 제물을 마음 놓고 먹으면, 믿음이 약한 성도가 시험에 들기 때문에, 믿음이 강한 성도가 음식 먹는 자유와 권리를 유보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십자가의 도’(고전 1:18), ‘그리스도의 정신’(빌 2:5), ‘예수님처럼 섬기는 자세’(마 20:28)’에 따라서, 유식한 신앙인이 무식한 신앙인을 위해서 자유를 보류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도록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갈라디아서 5장 13절 말씀대로, “너희가 자유를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으나, 이 자유를 가지고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도리어 사랑으로써 서로 종노릇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자기는 자유한다고 하면서, 믿음이 약한 성도에게 시험거리가 되는 일을 삼가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이런 양심의 자유의 문제가 더러 있습니다.
예컨대, 나이트클럽에 가는 것이나 보신탕이나 선지국 먹는 것이나 이웃집에서 선물로 주는 제사 음식 문제로 시험에 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소위 ‘양심의 자유의 문제’(adiaphora)에 있어서, 성도들 서로 간에 이해해주시고, 자기 신앙의 잣대로 다른 신앙인의 양심의 자유 문제를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젊은 청년들이 발랄한 복장을 하고, 머리 형태를 개성 있게 하고, 소위 섹시하고 발랄하게 하고 다녀도, 아름답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예배 때 춤추며 찬양하는 풍습이 익숙하지 않지만, 남미나 호주나 중국 같은 교회에서는 예배 때 춤추며 찬양을 안 하면, 이단시하는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도덕적인 죄가 아닌 이상, 양심의 자유 문제에 있어서, 서로 용납하고,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으면, 어르신들이 젊은이들의 변화무쌍한 삶의 형태에 대해서 관대하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2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f anyone supposes that he knows anything, he has not yet known as he ought to know;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εἴ τις δοκεῖ ἐγνωκέναι τι,
if anyone thinks to have known anything
‘아는 줄로’(ἐγνωκέναι)는 완료 부정사형 동사로서(to have known)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생각하면’(δοκεῖ)은 현재형으로서(thinks) 생각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οὔπω ἔγνω καθὼς δεῖ γνῶναι·
not yet did he know as it is necessary to know
직역하면 ‘아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을 아직 그가 알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는 것이’(γνῶναι)은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know) 확실히 꼭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반드시 필요한’(δεῖ)은 현재형입니다(it is necessary).
‘알지 못하고 있다’에서 동사(ἔγνω)는 부정과거로서(did he know)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Berean Literal Bible: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을 아직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 (If anyone thinks to have known anything, not yet does he know as it is necessary to know)
New Living Translation: 모든 해답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실제로 아주 많이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Anyone who claims to know all the answers doesn't really know very much)
1. ‘마땅히 알 것’은 “참된 지식이란 사랑으로 역사한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9장 11-13절에서, 예수님이 세리들과 함께 식탁교제 하시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비난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 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즉, 참된 지식은 호세아 6장 6절에서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인애를 원하시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인애를 베푸시는 하나님, 또한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에게 인애 베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 대한 참된 신앙적 지식이란, 율법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며, 사랑하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이 참된 신앙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3절.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시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if anyone loves God, he is known by Him.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εἰ δέ τις ἀγαπᾷ τὸν Θεόν,
if however anyone loves the God
직역하면 ‘그러나 만일 누가 하나님을 사랑하면’이란 뜻입니다.
‘사랑하면’(ἀγαπᾷ)은 현재형입니다(loves).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시느니라.
οὗτος ἔγνωσται ὑπ’ αὐτοῦ.
he has been known by Him
직역하면 ‘그는 그분에게 이미 알려져 있다’는 뜻입니다.
‘알려져 있다’(ἔγνωσται)는 완료 수동태로서(has been known) 이미 알려져 있다는 뜻이고, 한글 번역처럼 능동태로 번역한다면 ‘하나님이 이미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아시는 바가 되느니라. (but if anyone loves God, he is known by Him.)
New Living Translation: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이니라. (But the person who loves God is the one whom God recognizes)
1.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을 실천하면, 하나님께도 인정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가지고 정죄하는 사람을 알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를 가지고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을 알아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될 수 있는 대로, 남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함으로써, 하나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난함으로써,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비참한 성도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물이 참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우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즉, 아무리 우상에게 바친 음식이라도, 우상이 만들어 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모두 주신 음식입니다.
4절.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concerning the eating of things sacrificed to idols, we know that there is no such thing as an idol in the world, and that there is no God but one.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Περὶ τῆς βρώσεως οὖν τῶν εἰδωλοθύτων
concerning the eating therefore of the things sacrificed to idols
제일 뒤의 단어(εἰδωλοθύτων)는 형용사입니다(sacrificed to idols).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아노라
οἴδαμεν ὅτι οὐδὲν εἴδωλον ἐν κόσμῳ,
we have known that nothing idol in world
직역하면 ‘우상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우리가 아노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아노라’(οἴδαμεν)은 완료형으로서(we have known)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καὶ ὅτι οὐδεὶς Θεὸς, εἰ μὴ εἷς.
and that no God, if not One
직역하면 ‘한 분이 아니라면(한 분 이외에는), 어떤 하나님도 없는 줄’이란 뜻입니다.
English Standard Version: 그러므로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데 관하여, 우리가 우상은 전혀 실제적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Therefore, as to the eating of food offered to idols, we know that “an idol has no real existence,” and that “there is no God but one”)
New Living Translation: 그래서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것은 무엇입니까? 자, 우리 모두가 우상은 실제로 신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은 한 분만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So, what about eating meat that has been offered to idols? Well, we all know that an idol is not really a god and that there is only one God)
1. 4-6절은 우상과 우상의 제물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논한 내용입니다.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은 ‘우상이란 신적인 실존이 아니라’(idol is no real existence)는 뜻입니다.
시편 115:4-7.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시편 135:15-17. 열국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들의 입에는 아무 호흡도 없나니, 그것을 만든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것과 같으리로다.
이사야 44:12-20, 사람이 나무로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기도 하고, 그것으로 불을 때서 음식을 만들기도 하면서, 그 우상더러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그러나, 우상숭배의 배후에는 마귀(demons)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마귀들은 물질의 창조나 섭리에 대한 주권(sovereignty)을 갖지 못하고,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그러한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습니다’.
5절.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even if there are so-called gods whether in heaven or on earth, as indeed there are many gods and many lords,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καὶ γὰρ εἴπερ εἰσὶν λεγόμενοι θεοὶ
and for even if there are called gods
직역하면 ‘비록 신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있을지라도’란 뜻입니다.
‘있을지라도’(εἰσὶν)는 현재형입니다(there are).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εἴτε ἐν οὐρανῷ εἴτε ἐπὶ γῆς,
whether in heaven or on earth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ὥσπερ εἰσὶν θεοὶ πολλοὶ καὶ κύριοι πολλοί,
as there are gods many and lords many
‘있어’(εἰσὶν)는 현재형입니다(there ar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비록 하늘과 땅에는 소위 신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이 있어서, 참으로 많은 신들과 주들이 있지만, (For even if there are so-called gods whether in heaven or on earth, as indeed there are many gods and many lords)
New Living Translation: 하늘과 땅에는 소위 신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이 있어서,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많은 신들과 많은 주들을 예배하고 있도다. (There may be so-called gods both in heaven and on earth, and some people actually worship many gods and many lords)
1. ‘신이라 칭하는 자’(λεγόμενοι θεοὶ)는 ‘소위 신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so-called gods)을 가리킵니다.
헬라에만도 12신이 숭상되고 있었습니다.
아테네 시민들도 여러 신들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혹시 어떤 신이 섭섭할까 봐서 이름 모를 신들이라고 하는 비석을 세워놓고 제사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 17: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이처럼 로마 시대에 가장 문화인이라고 자처했던 아테네 시민들도 다신 숭배를 했습니다.
그러나, 참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신명기 6:4).
즉 우리는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6절.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yet for us there is but one God, the Father, from whom are all things and we exist for Him; and one Lord, Jesus Christ, by whom are all things, and we exist through Him.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ἀλλ’ ἡμῖν εἷς Θεὸς ὁ Πατήρ,
yet to us one God the Father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ἐξ οὗ τὰ πάντα καὶ ἡμεῖς εἰς αὐτόν,
from whom the things all and we for Him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καὶ εἷς Κύριος Ἰησοῦς Χριστός,
and one Lord Jesus Christ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δι’ οὗ τὰ πάντα καὶ ἡμεῖς δι’ αὐτοῦ.
through whom the things all and we through Him
동사가 하나도 없으나 의미는 분명합니다.
New International Version: 그러나 우리에게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 신, 아버지가 계시는데, 모든 것이 아버지 하나님을 통해서 존재하게 되었고,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한 분 주님이 계시는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존재하고,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살고 있습니다. (yet for us there is but one God, the Father, from whom all things came and for whom we live; and there is but one Lord, Jesus Christ, through whom all things came and through whom we live)
New Living Translation: 그러나 우리는 오직 한 분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것을 알고 있는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한 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데,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드셨고, 그분을 통해서 우리가 생명을 받았습니다. (But we know that there is only one God, the Father, who created everything, and we live for him. And there is only one Lord, Jesus Christ, through whom God made everything and through whom we have been given life)
1. 이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시고(창 1:1, 행 4:24), 우리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위하고 섬기고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만물 창조는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졌고(요 1:3, 골 1:16), 우리가 영생 구원받은 것도 예수님을 통해서 받았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바울이 아테네에서 전도할 때도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우리가 호흡하며 움직이고 사는 것도 하나님을 힘입어서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7:24-28.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이처럼 우리가 숨 쉬고 움직이며 사는 것도 하나님을 힘 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저는 음식을 먹을 때나 침을 삼킬 때 사레를 잘 들리는데, 정말 하나님이 호흡을 주관하셔서 살아가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은퇴 후 노년에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바람 부는 것이나 비가 오는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운전하다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살려주신 것을 확실히 경험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생활을 해가면서 모든 일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도하면서 해가야 하겠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믿음이 강한 성도들은 이러한 유일신관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 먹는 데 대한 자유를 행사했습니다.
믿음이 약한 성도는 우상을 섬기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이 우상의 것인 줄로 알고, 두려워서 먹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한 성도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도 음식 자체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하여, 함부로 믿음 약한 성도 앞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어서, 약한 성도의 믿음이 시험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7절.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However not all men have this knowledge; but some, being accustomed to the idol until now, eat food as if it were sacrificed to an idol; and their conscience being weak is defiled.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ἀλλ’ οὐκ ἐν πᾶσιν ἡ γνῶσις·
but not in all the knowledge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τινὲς δὲ τῇ συνηθείᾳ ἕως ἄρτι,
some now by the habit until now,
직역하면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습관에 의해서’란 뜻입니다.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τοῦ εἰδώλου ὡς εἰδωλόθυτον ἐσθίουσιν,
of the idol as of thing sacrificed to an idol eat
직역하면 ‘우상의 제물로서 먹는다’는 뜻입니다.
‘먹는다’는 동사(ἐσθίουσιν)는 현재형이고(eat) 주어는 ‘어떤 이들’(τινὲς: some)입니다.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καὶ ἡ συνείδησις αὐτῶν ἀσθενὴς οὖσα, μολύνεται.
and the conscience of them weak being, it is defiled
‘약하여지고’에서 동사(οὖσα)는 현재분사로서(being) 약해진 상태에 있는 것을 가리키고, ‘더러워지느니라’(μολύνεται) 현재 수동태입니다(it is defiled).
New Living Translation: 그러나 모든 신자들이 다 이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신자들은 우상을 실제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습관에 젖어서, 그들이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을 먹을 때 그들은 우상 제물을 먹는 것을 실제 우상신들을 예배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그들의 약한 양심이 침해를 받고 있습니다. (However, not all believers know this. Some are accustomed to thinking of idols as being real, so when they eat food that has been offered to idols, they think of it as the worship of real gods, and their weak consciences are violated)
1. 참된 하나님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고,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만물은 깨끗하고 선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먹으면 모든 음식은 정결하기 때문에 버릴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4:4-5.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그러나 어떤 신자들은 유일신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우상신이 실제하는 것으로 알아,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이것이 바로 우상신을 제사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바로 이것이 우상신에게 제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신앙 양심에 큰 가책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본 절은 참된 지식이 없는 무식한 신앙인의 잘못을 지적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무식한 신앙인을 칭찬하지는 않았습니다.
2. 그러나 바울 사도는 유일신 신앙을 가진 믿음이 강한 성도가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사 음식을 거리낌 없이 먹는다면, 그로 인해 믿음이 약한 성도가 시험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믿음이 강한 성도가 믿음이 약한 성도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차라리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는 것이 사랑의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약한 신앙인을 사랑하라고 교훈한 것은 약한 신앙을 가진 신자들이 옳기 때문은 아닙니다.
단지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5장 1절에는,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했고, 갈라디아서 6장 2절에는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했습니다.
3. 그러나 특히 주의할 것은 우상숭배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상숭배와 우상 제물을 크게 멀리하고, 절대로 범죄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상숭배와 우상 제물 문제는 하나님께 대한 가장 큰 죄악이고, 마귀를 따르는 멸망 받을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강한 신앙심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지만, 신앙이 약한 성도들을 위해서 자기의 자유를 좀 유보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와 가정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치는 성도님들의 교회와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