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의 단일건물학교였다.
-운동장은 손바닥만 해서 좀 큰 행사는 위의 선일여중고 운동장을 빌리거나 주변에 천지였던 주택지공터에서 했다.
-화장실은 오른쪽 옆 조그마한 건물이었는데 남자애들은 소변보는데가 따로 있어서 거기다가 줄창 갈겨댔다. 물론 여자화장실은 따로 있었다. 쩝.........
-건물 가운데의 현관에는 조금 들어가면 연못같은 어항이 있었으나 66년도 혹독한 겨울에 얼음이 꽁꽁 얼어 금붕어들이 다 동태가 되고 난 다음 더이상 물고기를 키우지 않다가 어느해 슬그머니 없어졌다.
-운동장에는 정글집이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가로파이프가 있다가 없다가해서 놀기가 재미있었다. 거기서 술래잡기등을 하면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도망다니곤 했다. 어느해 '미워도 다시한번' 영화를 보니 그 정글집이 나오더라. 그런 특이한 정글집은 이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본건물하고 화장실 사이에 보일러실이 있었는데 큰 솥에 보리차를 매일 끓여대서 주번이면 주전자에 그 보리차를 떠서 나누어주곤 했다. 주번은 남자와 여자로 정해지는데 보리차일은 거의 남자가 하는 일이었다. 그러면 여자는 무얼할까...........없었다.
-맨 아래층. 그러니까 1층인데 오른쪽 끝 계단아래공간에 예현수네 엄마가 하시던 매점이 있었다. 처음에는 다른 곳에 있었지만 어느순간 거기 자리잡았다. 다른 곳에 있을때는 창문도 있어서 겨울에는 오뎅(당시 뜬금없게 '아톰바'라는 상표로 티비에서 광고도 했던 오뎅도 있었는데 바로 그걸 팔았다) 이나 고롯케를 호빵처럼 찌면서 팔았는데 장석영이가 아주 잘 사먹었다. 가끔은 교실까지 가지고 와서 먹었고 우승택이가 끈질기게 그걸 뺏어먹곤 했다. 또 무슨 과자인지 무지 딱딱해서 '강철과자'라는 별명을 붙인 과자도 있었고 야끼만두....속에 잡채넣고 튀긴 만두도 있있고 조미 오징어채도 있었다. 이 매점이 생기기 전에는 어느 할머니가 복도 끝에서 간단한 학용품하고 삼립크림빵을 가지고 오셔서 팔던 적도 있었다.
-3층 오른쪽 계단앞 공간에 '등사실'이 있었고 2층 왼쪽 계단앞 공간에 '피아노실'이 있었다.
-특별활동이 활발했는데 대신 참여인원은 극히 적었다. 예를들자면 '하와이안 키타교실'의 인원이 3명. '발레교실'이 몇명정도.......우리 동기들 중에서 이 두 교실에 다 다닌 학생은 선반 '이숙님'이다.
-창문은 미닫이가 아니고 손잡이를 아래로 틀어 잠금을 해제한 후 밖으로 미는 방식이었다.
-난로는 다들 잘 알다시피 등유를 때는 고급품이었는데 이후 중고대 어느 곳에서도 본 적 없을 정도로 좋았다. 석탄을 때는 난로는 오전에만 때고 끝이라서 오후에는 추워서 벌벌 떨기도 했지만 선일학교는 비싼대신 오후까지 잘 때워 주었다. 그래서 한번도 추워서 떤 기억이 없다. 아침이면 도시락을 들통에 넣고 올려놨다가 점심시간에 내려서 돌려주었다. 불을 지피려면 우선 펌프질을 두어번 하여 내부에 석유가 나오도록 하고 끝에 헝겁이 있는 길다란 쇠막대기를 넣어 석유를 뭍힌다음 '유엔성냥'으로 불을 붙여서 집어넣어 연료에 불을 붙이는 방식이었다. 최병진이가 이걸 잘 했다.
-스쿨버스는 3대였다. 운전기사분의 아들이 우리랑 같은 동기였다. 김동식이. 영화출연한다고 머리를 길게 장발로 기르고 다닌 적이 있다.
-무슨 선생님인지 모르겠지만 군기담당에 김수영선생이 계셨다. 영화배우처럼 잘 생기고 카리스마가 풍겨 애들이 무서워했는데 나중에 김미자네 아버님인게 밝혀졌다.
-다니는 동안 딱한번 학예회를 했었다. 당시 우리반이 불렀던 합창은 '화음삼형제'라는 노래였고 지휘는 신현택이 했었다. 다른반 지휘는 권영심이가 했는데 그날 지휘자중 최고였다. 아마도 5학년때였을 듯. 이후 발레공연이라고 세명이 나와 추었는데 그 중 한학생이 바로 이숙님. 나는 내가 아는 학생이 그렇게 진한 화장한 걸 처음 보았다. ㅡ.ㅡ;;;
-야구부도 있었는데 우리보다 저학년들만 있었다.
-매년 포크댄스를 했다. 처음에는 남녀 손잡는걸 어색해했지만 그래도 잘들 잡고 즐겼다. 그러다가 나중에 어느뇬.......인지 하드막대기를 주워 그걸로 남학생하고 연결을 했다. 이후 너도나도 그짓을 해 대서 남자애들이 여자와 스킨쉽을 할 기회를 완전 박탈당했다. 누구얏! 그래도 의리의 땅꼬마들은 안그랬다. 2학년때부터 했구나..........
-교복은 종로 화신백화점 맞은편에 있던 '미치엘'이라는 곳에서 공급했다. 이 미치엘은 여자교복 전문점이었는데 매우 유명하던 곳이라고 알려졌다. 아마도 여학생들은 이후에 이곳 교복을 입었을지도 모르겠다.
-교복은 동복, 춘추복, 하복 세가지였고 동복에는 남녀 모두 회색털실로 짠 니트 바지를 입었다. 그냥 그것만 입으면 하도 추워서 내복을 속에 입어야 했다. 춘추복은 남자는 짧은 회색바지에 감청색 타이즈를 입었다. 덕분에 선일 남자들은 팬티스타킹-타이즈지만-착용 경험을 얻게되었다. ㅋ
-각종 경연대회에 나가면 잘도 상을 타왔다. 그러면 야외조회를 하면서 내용을 밝히고 다시 시상식을 해서 싫으나 좋으나 오래도록 들러리를 서야했다.
-어느 겨울 콜레라인가 장티푸스인가가 돌아 학생들 모두 아침이면 크레졸비눗물로 손을 소독하곤 했다.
-등하교시 학교 왼쪽의 언덕을 올라와야 하는데 학교반대편에는 흙언덕이었는데 거기 참나무가 큰게 있었고 등걸에 말굽버섯이 아주 크게 나 있었다. 그게 독버섯이라고 소문이 돌아 애들이 만지지도 않아 꽤 오래도록 달려 있었는데 요즘 무슨 프로 보니까 항암효과 어쩌고 하면서 매우 비싼 값에 거래된다고 하더라. 여태 있었더라면 아마도 수십만원정도?
-교실 창문은 서쪽에 있었는데 바깥쪽은 산기슭이어서 작은 나무 몇그루정도밖엔 볼 것이 없었다. 여름이면 그 나무에도 매미가 와서 우는 일이 있었지만 대개 조용한 덕분에 공부하는데 시선을 빼앗길 일이 없었고.......그래서 애들이 공부를 잘했나?
-한층에 풍금하나가 배정되어 음악시간전에 힘깨나 쓰는 남자애들이 그걸 옮겨야 했다.
-청소는 아줌마들이 톱밥을 뿌리고 쓸어내는 방식이었다. 걸래질로 마무리.
-천장과 뒷벽은 방음효과와 미려한 느낌을 주는 보드타일이었는데 디자인상으로나 실용상으로도 매우 깔끔했었다.(아래 사진 참조)
이상 일단 정리를 마치고............혹시 생각나는 것 있으면 카톡이나 밴드로 좀 알려줘.
보강해서 다시 또 올릴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