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너더리통신 21/170511]‘인간극장’ 출연으로 생긴 소소한 미담들
# 《여기까지 왔는데/앞만 보고 왔는데/묻지 마세요/묻지 보지 마세요 내 나이 묻지 마세요/흘러간 내 청춘 잘한 것도 없는데/요놈의 숫자가 따라 오네요/여기까지 왔는데/앞만 보고 왔는데/지나가는 세월에 서러운 눈물/서산 넘어가는 청춘/너 가는 줄 몰랐구나/세월아 가지를 말어라……》
탤런트 김성환씨의 노래 ‘묻지 마세요’ 가사인 것쯤은 누구나 아시리라. 모두 알다시피, 김성환씨의 별명은 누가 뭐래도 ‘거시기’이다. 전라도 방언인 줄로 알고 있는 ‘거시기’는 사실 국어사전에 표제로 올라있는 단어이다. 몇 년 전 영화 ‘황산벌’에서 ‘거시기’ 해석을 놓고 신라군(新羅軍)이 엄청 헤매는 코미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무튼, 구순의 아버지는 틈만 나면(들판을 가로지르며 전동자전거를 탈 때도, 우물가에서 은행알을 씻을 때에도)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그 장면이 마침 <인간극장> PD의 카메라에 꽂혔다. 지난해 11월 7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방영된 <인간극장> 5부작 이야기이다. 김성환씨의 지인이 그에게 ‘임실의 어느 구순 노인네가 ‘인간극장’에서 자네 노래를 흥얼거린다‘고 알려줬다고 한다. 그래서 매니저에게 그 어른 휴대번호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 직접 전화를 했다한다. 아니, 이럴 수가? 아버지도 적이 놀라셨을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곧장 ‘형님’에게 전화를 했다. “아니, 형님. 임실 할아버지께 전화를 했다면서요?” “아우님이 그것을 어떻게 알아?” “그분이 바로 제 아버지예요” “그려-이? 이런 인연이 다 있당가? 내가 해마다 관촌 사선제축제때 사회를 보러 가거든. 그리서 내년 가을엔 꼭 아우집에 들르겠다고 했당개” “하하. 참 재밌네요. 그때 저도 갈 테니까 같이 가요”
내가 어떻게 김성환씨를 친히 아느냐고? 2014년 7월인가, 동아일보에서 형님1면 전체로 인터뷰를 한 후배기자가 동석을 하자고 했다. 그후 두어 차례 만나 술을 하며 친하게 됐기에, 곧장 ‘형님’ ‘아우’가 되고, 전화번호도 저장해 놓았던 것이다. 게다가 한번은 ‘효녀가수’ 현숙이도 ‘거시기 형님’이 부르니 제까닥 왔다. “이때다” 싶어 우리 부모 무병장수를 비는 덕담을 쓰고 두 분의 이름과 사인을 받았다. 덕담의 글은 액자에 넣어 큰방 탁자 위에 잘 모셔져 있다. 그러니, 이게 어디 보통인연인가. ‘거시기 형님’은 언제 봐도, 문자 하나 오고가도 구수하다. 영락없이 전북인이다. 형님은 군산 현숙은 김제, 모두 전북産 유명짜한 연예인이 아닌가. 현장에서 형님의 현란한 ‘손놀림’을 보자면 감탄과 탄성이 절로 나온다. 달인(達人)의 경지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고마움에 교양서 몇 권을 집으로 보내드렸다. 인연은 또 이어졌다.
전남지역에서 근무하던 거시기형님의 집안 동생이 임실경찰서장으로 연말에 부임을 했다. 형님은 곧바로 아우에게 ‘지시’를 내렸다고 하던가. 서장은 부하경찰 몇 명과 요구르트 한두 박스를 들고 아버지를 뵈러 왔었다하니, 어른이 이른바 <인간극장> 출연으로 인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다. 시쳇말로 경찰서장이 ‘부임인사’를 오니 ‘가오(체면)’ 잡을만하지 않는가. 몇 년 전 여러 번 만날 때 들은 형님의 휴먼스토리는 눈물겹다 못해 감격적이기까지 하다. 9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언이 “미안하다. 너에게 너무 큰 짐을 안겨주어서. 그러나 어쩌냐? 네가 큰놈이니 동생들 잘 부탁한다”였다고 한다. 그 유언을 지키기 위해 여태까지 엄청나게 뛰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천하 효자’이다. ‘효녀가수’ 현숙과 절친한 것도 동병상린(同病相燐)으로 통해서가 아닐까. 그렇게 나온 노래가 <인생>과 <묻지 마세요>라 니, 사연을 듣고 들으니 어찌 뭉클해지지 않겠는가. <인생>의 가사도 들어보자.
《세상에 올 때/내 맘대로 온건 아니지만은/이 가슴에 꿈도 많았지/내 손에 없는 내 것을 찾아/낮이나 밤이나/뒤볼새 없이 나는 뛰었지/이제와서 생각하니 꿈만 같은데/두 번 살 수 없는 인생/후회도 많아/스쳐간 세월 아쉬워한들/돌릴 수 없으니/남은 세월이나 잘해 봐야지/돌아본 인생 부끄러워도/지울 수 없으니/나머지 인생 잘 해봐야지》
# 지난 연말, 전라도 광주에 사는 알지도 못한 분이 <인간극장> 5부작을 ‘본방사수’했다고 한다. 시택이 임실 성수면 신촌이라던가. 시댁에 오는 길에 어렵사리 우리집을 찾아 아버지께 김밥, 바나나우유, 요플레등을 사들고 인사를 드렸다는데, 엊그제 어버이날 즈음에 또 찾아오셨다 한다. 첫 번 방문때 <총생들아, 잘 살그라> 책을 한 권 드렸다는데, 그 말을 들은 ‘심청이 큰딸’이 어버이날 고맙다고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답문자를 보시라. 감동이 물결친다.
《문자 주셔서 감사합니다/한 것도 없는데 쑥스럽네요/ㅎ/인간극장 부모님 모습/너무 감동적으로 잘 봤습니다/저희 시댁에 가는 길이어서 찾아 들러보았습니다/혹 실례가 안되었는지 모르겠네요/ㅎ/부모님 두 분, 특히 아버님이 어머님 위하시며/사시는 모습이 아름답고/책을 읽다보니 자식에 대한 한없는 사랑 희생/더욱 감동적입니다/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질투도 납니다/ㅎ/인간극장 방송을 더 빨리 해서/일찍 알았다면 더 좋았을 것을/ㅎ/오늘 어버이날이라 부모님 생각과/어르신 두 분이 더욱 생각나네요/아버님이 주신 책/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7남매의 부모님에 대한 효심/또한 대단들 하십니다/ㅎ/참 아름다운 가정의 참모습을/으뜸으로 보여주어 보는 저도 뿌듯합니다/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걸 느끼게 되네요/어버이날 고향집에 머무시는 동안/부모님과 못다한 정담 마니마니 나누다 가세요/광주댁이 올립니다》
문자 말미에는 하트 아이티콘 3개가 찍혀있었다. ‘광주댁’의 진솔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 왔다. 참, 마음씨가 고운 아주머니로구나. 어찌 남의 부모님을 연달아 찾아 이런 성의(誠意)를 표시하다니. 혹시 친정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은 아닐까? 어버이날 내려가지도 않고 카네이션도 달아드리지 않은 친자식보다 낫지 않은가? 어쩐지 얼굴도 마음씨처럼 예쁠 것같다. 한번 만나보고도 싶다. <인간극장>은 이런 흐뭇한 에피소드도 남긴다. 우리 아버지-어머니는 복(福)도 많으시다. 말년에 ‘늙은 딸’이 생겼으니 말이다. 수년 전부터 ‘혼불누님’(남원 사매면 혼불기념관 문화해설사)은 정말 자식보다 더 안부도 자주 여쭙고 명절때마다 음식을 만들어 찾아와, 정작 자식인 우리를 민망하게 만든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광주댁이 쓴 것처럼 정녕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운가? 그렇다. 꽃보다 아름다워야지 사람이다. 제주 ‘환상숲’에서 해설을 듣다 옆사람이 형제자매가, 아내가 아닌 남이어도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지 않았던가. “나의 부모(남편, 아내, 형, 동생, 아들, 딸……)가 되어줘 고맙습니다”. 이제는 낯 모르는 아주머니인 ‘광주댁’에게도 절해야겠다. “우리 부모님을 흐뭇하게 해드려 고맙습니다”
# 올 1월초인가, 고향에 갔는데, 두 분이 예쁜 털목도리를 두르고 계셨다. “어-이게 뭐요? 누가 사주었어요?” “미국에서 네 형 여자동창이 짜서 보내줬다” “그리요-?” 즉각 형에게 전화를 했다. “평당에 사는 동창 있어. 참 니 동창도 있지?” “아, 그 누나, 나도 알아. 근디 무슨 일이댜?” “인간극장을 다 봤나벼. 뭔가 성의를 표시하고 싶다며 지 특기인 직물을 한 거지” “그려이-. 이것도 참 재밌네” 하여, 나는 전화번호를 알아내 난생 처음 동챵인 남동생 안부도 물으며 고맙다고 전화를 했다. 화들짝, 반색을 한다. 미국에서 산 지가 20년도 넘었다던데, 내 졸문도 거의 다 읽었다 한다. 참 고마운 누나로구나. 언제 한번 뵐 수 있다면 식사라도 대접을 해야 할텐데, 그런 날이 올까. 이런저런 인연들이 씨줄날줄로 엮어져 돌아가는 세상이 나는 재미있다. 세상은 오래도록 살아볼 이여! 흉헌 일바도 좋은 일들이 더 많을 거여. 틀림없이 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