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줄거리>
벼락부자인 S는 세계의 유명한 예술 작품들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다. 정체성이 확실한 걸작품들에 대해 경건함을 느끼는 S지만 가짜에 대해서는 깊은 경멸감을 느낀다. 튀르키에 작은 항구 도시의 부랑자였던 S는 신체적으로 ‘중동인’이라는 인종적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불안한 자신의 정체성을 가리기 위해 모조품을 밝혀내는데 강한 애착을 느낀다.
그러던 중 S는 경쟁자인 바레타가 경매에서 구입한 반 고흐 작품이 가짜라고 밝힌다. 바레타는 화상계에서 영향력이 큰 S에게 자신이 구입한 작품이 가짜라고 떠들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지만 S는 사기범의 공범이 될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한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어느날 S에게 유난히 매부리코가 거슬리는 어린 소녀의 얼굴 사진과 함께 “당신이 소장한 걸작은 가짜요”라고 쓰인 쪽지가 배달된다. S는 사진 속에서 어슴푸레 아내를 떠올리지만 닮은 데가 전혀 없었다. 스물두 살 연하인 아내는 완벽한 예술 작품과 같이 아름다웠다. S는 첫 눈에 반해 완벽한 작품을 구입하듯 만난 지 삼주 만에 결혼했다. 사진을 본 아내는 너무 놀라 말도 하지 못하고 흐느껴 운다. 사진은 아내가 코를 성형하기 전 수녀원에 있을 때 찍은 것이었다. 바레타가 복수한 것이었다. S는 아내가 사기꾼들의 도구이자 공범자라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었다. 가장 완벽하다고 믿었던 작품이 모조품으로 밝혀지자 용서와 관용 따위는 사라졌다. S는 아내의 얼굴이 가짜라는 사실만으로 이혼한다.
<감상>
누구나 타인의 눈길을 의식하기 마련이다. 소설을 읽다가 예전에 나왔던 그랜져 광고가 생각났다. “친구가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그랜져로 대답했습니다”라는 광고다. 광고는 친구의 부러워하는 눈길과 검은 세단을 번갈아 보여준다. 성공한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타줘야 된다는 것이 깔려있다. 그때 그랜져를 타지 못한 나는 실패한 인간 같았다. 광고 한편에 자존감이 떨어졌던 기억이 났다.
S도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해도 주변의 눈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변방의 작은 항구출신의 부랑자였다는 열등감은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가짜 같은 과거를 지금의 삶에서 분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진품에 집착한 것도 이런 여행가방 꼬리표처럼 붙어 있는 불안 때문인 것 같다. 그는 재력과 명성으로 고가의 예술작품을 사 모으고, 탁월한 안목으로 가짜를 구별해 내지만 자기 안에 있는 허위의식은 구별하지 못했다. 불안은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늪에 빠진 것처럼 깊게 빠져든다. 남들보다 더 좋고, 더 큰 것, 더 비싼 것으로 차별을 두려고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더 커진 욕망 뿐이다. 어떤 면에서는 욕망은 인간에게 자연스런 것이다. 인간인 이상 욕망을 없앨 수 없다. 그렇다면 욕망을 인정하고 차별과 소유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승화 시킬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다.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단편집을 모두 읽지 못했지만 작품 하나 하나가 인간의 이중성, 허위성, 복잡한 감정들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