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엄경의 백미 「십지품十地品」>
- 화엄경 「십지품」과 10바라밀 -
나는 60화엄인 「십지품十地品」의 내용이야말로 화엄경의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10지란 보살
수행의 열 단계를 뜻하는데, 환희지歡喜地·이구지離垢地·발광지發光地·염혜지焰慧地·난승지
難勝地·현전지現前地·원행지遠行地·부동지不動地·선혜지善慧地·법운지法雲地 등의 열
가지입니다. 이 열 단계가 10바라밀과 일치한다는 것이 「십지품」의 가르침입니다.
불교 수행과 믿음의 요체를 설하고 있는 「십지품」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용어와 개념을 아주
쉽게 표현하여 경전의 본문을 바로 대해도 생경하거나 어려운 부분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에 지면을 할애하니 음미해 보시길 바랍니다. 특히
요즘 조계종단의 적폐로 인해 당혹스러워하는 불자들에게 먹물 옷 입은 승가의 일원으로서
참회의 마음으로 올립니다.
<45. 환희지歡喜地와 보시바라밀 (1)>
- 환희지, 보살의 경지에 들어가서 처음 갖는 서원과 환희심
환희지란 보살의 경지에 들어가서 처음 얻게 되는 발원과 서원의 환희심을 말합니다. 즉,
물러서지 않는 신심과 수행의 서원을 발하는 첫 단계를 말하는데, 환희지의 보살이 세우는 열
가지 서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발원하다
② 모든 부처님 법을 받아서 지니기를 발원하다
③ 부처님의 으뜸가는 제자[上首弟子] 되기를 발원하다
④ 교화로 중생의 마음이 증장하게 되기를 발원하다
⑤ 일체 중생을 성숙시키기를 발원하다
⑥ 일체 세계를 받들어 섬길 것을 발원하다
⑦ 일체 국토가 청정하기를 발원하다
⑧ 일체 보살들과 늘 함께 하기를 발원하다
⑨ 작은 수행이라도 큰 이익이 있기를 발원하다
⑩ 바른 깨달음[正覺] 이루기를 발원하다
불자들이 신행信行을 통해 ‘환희심’을 경험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수행을 통해 기분이
상쾌해졌다거나 번뇌로 인한 휘둘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해도 그것을 환희심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요. 현대인들은 번뇌의 대상이 너무나 많아서 조금만 마음이 안정되어도
마치 큰 공부를 성취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희지가 비록 「십지품」에서는 열 단계로 나누는 수행의 차제次第의 첫째에 불과하지만,
후에 성립된 보살의 52위 수행에서 미루어 보면, 마지막 열 단계 중 첫 번째로 무려
40단계를 이미 마친 수행의 경지입니다. 또한 환희지의 주수행인 보시바라밀에 대한
「십지품」의 내용을 보면 ‘잣대’ 자체가 다름을 실감하게 될 겁니다.
-보시바라밀, 탐욕을 조화롭게 다스리며기꺼이 베풀다
바라밀波羅蜜이라는 말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 본래 경명인 반야심경 덕분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바라밀은 반야심경의 핵심적인 내용이기도 하고, ‘반야바라밀’은 10바라밀
가운데 하나이기도합니다. 바라밀은 ‘~의 완성 혹은 성취’라는 뜻이니, 반야심경의 경명 중
반야바라밀은 반야[참지혜]의 완성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반야심경은 ‘5온五蘊이
공空한 이치를 관자재보살이 성취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반야바라밀은 뒤에 또 나오므로 여기에서는 ‘바라밀’의 뜻을 설명하기 위해 반야심경을
인용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초지인 환희지의 보살이 대자비로 보시바라밀을 행하는 방법과
그 공덕을 「십지품」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발췌한 화엄경은 무비
스님이 1994년 민족사에서 출간한 한글본 화엄경을 근간으로 하고, 필요할 때마다 필자의
수정과 견해를 더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불자여, 보살 마하살이 이러한 대비大悲와 대자大慈를 따라서 깊고 소중한 마음으로
초지初地에 머물 때에 모든 물건을 아끼지 않고 부처님의 큰 지혜를 구하며 크게 버리는
일을 수행하여, 가진 것을 모두 보시하나니, 이른바 재물·곡식·창고와 금·은·마니·진주·유리·
보석·보패·산호 등의 보물과 영락 등 몸을 장식하는 기구와 코끼리·말·수레·노비·사환과
도시와 마을과 원림과 누대와 처첩과 아들과 딸과 안팎 권속들과 그 외의 훌륭한 물건들과
머리. 눈·손·발·피·살·뼈·골수 등의 모든 몸붙이를 하나도 아끼지 않고, 부처님의 광대한
지혜를 구하느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초지에 있어서 크게 버리는 일[보시를 주는 일이
아니라 ‘버리는 일’이라고 한 의미를 새겨야 합니다.]을 성취하는것이라 하느니라.
불자여, 보살이 이 자비로 크게 보시하는 마음으로써 일체 중생을 구호하기 위하여 점점 다시
세간과 출세간의 여러 가지 이익 하는 일을 구하면서도 고달픈 마음이 없으므로 곧 고달픈 줄
모르는 마음을 성취하며, 고달픈 줄 모르는 마음을 얻고는, 일체 경經과 논論에 겁약함이
없나니, 겁약함이 없으므로 일체 경론의 지혜를 성취하느니라.
이 지혜를 얻고는, 지을 일과 짓지 아니할 일을 잘 요량하고,상·중·하품의 일체 중생에 대하여
마땅함을 따르고, 힘을 따르고, 그 익힌 바를 따라서 그와 같이 행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이
세간의 지혜를 이루게 되고, 세간의 지혜를 이루고는 시기를 알고 감량을 알아 부끄러운
장엄[慙愧莊嚴]으로 스스로 이롭고 다른 이를 이롭게 하는 행을 닦나니, 그러므로 부끄러운
장엄. [비록 보살의 초지 수행이지만 세상의 탁함과 그 탁함을 다스려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다하지 못함을 부끄러운 장엄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런 행에서 벗어나는 일을 부지런히 닦아
퇴전하지 아니하면 견고한 힘을 이루며, 견고한 힘을 얻고는 부처님께 부지런히 공양하며
부처님의 교법에서 말씀한 대로 실행하느니라.
-중략-
불자여, 이 보살이 여러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므로 중생을 성취하는 법을 얻느니라. 앞에 있는
두 가지 거두어 주는 법으로 중생을 포섭하나니, 보시하는 것과 좋은 말하는 것이요, 뒤에
있는 두 가지 거두어 주는 법은 다만 믿고 아는 힘으로 행하거니와, 잘 통달하지는 못하느니라.
이것이 보살의 10바라밀다 중에 보시바라밀다가 더 많은 것이니, 다른 바라밀다는 닦지 않는
것은 아니지마는 힘을 따르고 분한을 따를 뿐이니라. [ 이 표현은 「십지품」에서 수행 계위
10단계와 10바라밀을 대비시키는 표현의 전형입니다. 둘째 이구지와 지계바라밀의 연계성의
대목은 이 구절의 보시바라밀다를 ‘지계바라밀다’로 바꿀 뿐입니다. ]
이 보살이 가는 데마다 부처님께 공양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일을 부지런히 하여 청정한
지地의 법을 수행하고, 그러한 선근으로 온갖 지혜의 지위에 회향하여, 점점 더 밝고
깨끗하여지고, 조화하고 부드러운 결과가 성취되어 마음대로 소용하느니라.
초지初地보살은 보시바라밀을 주된 수행으로 삼되 다른 바라밀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2지二地 보살은 지계바라밀을 수행의 근본으로 삼되 다른 바라밀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으니, 다음은 인욕·정진·선정·지혜의 순으로 차근차근 대입해 나가면
되겠지요. 여기서는 우선 보시布施를 가지고 말해보겠습니다.
보시란 조건 없이 베푸는 것으로 재물로 하는 재시財施, 법으로 하는 법시法施, 그리고
상대로 하여금 두려움이 없어지게 해 주는 무외시無畏施의 세 가지가 있습니다. 보시바라밀의
실천이 복잡해 보이지만 정리하면 간단합니다.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살림살이 말고는 다
보시를 하고, 대자비심과 일체 중생을 애달프게 여기는 마음을 증장하면 고달프거나 겁약한
마음을 조복 받게 되어, 경과 논서를 읽으면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아 지혜가 증장된다는
말입니다.
남에게 무엇을 준다는 행위는 단순한 선행이 아닌 보살 수행의 첫째 의무라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욕심과 소유에 대한 집착이 티끌만큼이라도 마음속에 남아 있으면
보살 수행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십지품」의 가르침입니다.
10바라밀은 60화엄인 「십지품」 성립 이후에 더욱 많은 내용이 더해져서 편찬된 80화엄에서도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라밀의 실천이 바로 보살의 수행 덕목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십지품」 외에도 명법품, 십행품, 이세간품, 입법계품 등에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