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화 시집 『바람하늘지기』를 읽고0604.hwp
바람의 색과 심리적 방향
김규화 시집『바람하늘지기』를 중심으로
김지숙
옛사람은 바람의 방향보다는 경험을 통해 설정된 풍향에 더 익숙했다. 즉, 바람의 방향에 따라 샛바람(새(鳥)바람, 동풍) 높새바람(높은 새(鳥)바람, 북동풍) 마파람(마(馬)아풍, 남풍) 하늬바람(天風, 하늘높이 부는 바람) 높하늬바람 된하늬바람(북서풍) 갈바람(모호한 경계, 남서풍)이라 하는데, 이는 바람의 방향이라기보다는 바람의 성질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어 왔다.(허균 2011)
단군신화에서 환웅은 태백의 산꼭대기에서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 등과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인간세계를 다스리고 교화했다. 하늘의 기운을 상징한 바람은 환웅이 거느린 여러 신 중, 풍백(風伯)이 앞서는 것은 우주의 기운과 숨의 상징성이 바람에 기인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신라의 화랑도에게는 풍월(風月)과 풍류(風流)는 대자연에서 노닐며 몸과 마음을 닦는 일을 바람의 의미와 연관 짓는다. 이러한 경우의 ‘바람’은 젊고 긍정적인 힘을 더하는 역할을 해 왔다.
성경에서 바람은 성령을 상징한다. 히브리어로는 루아흐”(רוּח)) 헬아어로는 프뉴마(πνεῦμα)인 바람은 호흡을 상징하기도 한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이러하니라’(요 3:8)고 하였으며 이에서 ‘바람’은 신의 소리로 인간에게 다가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조용목 2016)
문학 작품 속에서 바람은 우리의 고대 향가에서 현대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변용되어 글쓴이의 내면을 보여주는 소재로 사용되었다. 바람은 가변성과 비시각성을 지녔으므로 눈으로 볼 수 없고 감각을 통해서만 인지되는 특성드러내므로 다양한 의미의 은유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월명사의 「제망매가」에서 ‘바람’은 누이와의 이별을 의미하지만 송강의 「사미인곡」에서 ‘바람’은 동풍으로 반갑고 희망의 상징인 임금의 전언으로 상징된다. 윤동주의 「서시」에서 ‘바람’은 외압 죽음 등을 상징하며, 또 다른 그의 다른 시에서는 생의 의지를 실천하거나 강력하고 새로운 힘으로 현실 상황과 실존의 한계를 깨우치는 촉매이자 삶에 대한 능동적 대응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김수영의 「풀」에서 ‘바람’은 민중을 억압하는 기호로 사용되었으며, 이육사의 「교목」에서 ‘바람’은 일제의 탄압, 편한 삶에 대한 유혹 외부의 힘을 상징하는 한편, 바람은 개인적 체험과 더불어, 당대를 비판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바람’은 문학작품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으로 작용하며 여기에 순풍이냐 혹은 역풍이냐에 따라서 이에 부합되는 상징적 의미가 달리 더해져 모든 것을 다 아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한편, 색은 문화권이나 관습에 따라서 달리 해석된다. 일부 아시아인에게 붉은 색은 행운을 의미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애도를 뜻한다. 우리는 색의 의미를 찾는데서 나아가 주변의 색들과 더불어 살아가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특정한 경우 외에는 그다지 색에 민감해 하지 않다. 또한 색에 대한 도덕적 편견에서 대체로 자유로워졌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색의 타자성을 인지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자연의 색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요즈음은 넘쳐나는 인공적인 색으로 자연과 인공의 경계는 무너지고 있다. 그 결과 각양 각색의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다양한 색을 접하면서 살아간다. 시대가 온화하면 사람들은 온화한 색들을 선호하고 시대가 혼란하면 색 또한 혼란함이 난무하게 된다. 이처럼 개인의 삶과 색은 자신의 존재와 상호 감응하며 때로는 내면의 자신까지도 불러내어 말을 걸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기존의 논의에는 개인적 사회적 혹은 자연적 심상과 관련지어 바람을 해석(서안나 2016)하거나 혹은 현대시의 색채 이미지의 보편성을 정리(박종빈 2010)하는 입장을 나타낸다. 또 색채에 관한 연구로는 색의 수용양상과 구조 연합대상을 의미와 관련지은 박미영의 연구(1989), 색채어에 대한 효용성과 그 가치에 대한 연구를 한 채수영(2013), 한국인의 색채의식에 관한 이종상의 연구(2002)가 있으며, 정선아 신성엽 등은 색채와 외국시를 관련지어 연구한 바 있다.
본고는 김규화의 시집 『바람하늘지기』를 중심으로 바람과 색의 의미와 방향성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Kentner(1978)는 Color me a season에서 사람의 색(human color)과 히포크라테스의 성격이론(personallity theory)의 연관성을 밝히는 과정에서 성격은 인간 내면의 감정과 행동을 반영하는 매우 개인적인 부분이며 색채 또한 인간의 감성을 반영하므로 색채 분석시 성격을 고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 말한 바 있다. 또 Goldstein(1939)은 특정한 색채는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낸다고 했으며 Birren(1978)에 따르면 색채 사용이 감정의 상태를 반영하며 이에는 반드시 심리적 요소가 내포된다.
구체적으로 색을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의미 맥락상 색채어를 드러내는 시어에 대한 해석은 『성호사설』(이익)중 중국의 <고공기>의 오행에 따른 색상과 중간색의 생성을 참고하여 해석하였다. 이는 오행에서 오색 방위(方位) 절계(節季)가 따르고 색과 방위와 절계는 오행에 맞추어 생각했다. 중앙(中央)과 사방(四方)을 기본으로 삼아 오방이 설정되고 거기에서 팔방과 십육방이 생성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진쿠퍼 (세계문화상징사전 까치) 이승훈편저 (문학상징사전 고려원) 한지운 나건(청소년 상징색채연구 2015) 괴테의 <색채론>을 참고하였다.
본고에서는 『바람하늘지기』에 수록된 시들 중 5가지 이상의 색이 드러나는 시들을 대상으로 분석하였으며, 이에 해당되는 시들은 각각「시계․바람1」외 14편을 대상으로 삼았다.
해바라기 둥근 얼굴에 까만 씨알로 꼭꼭 점을 찍었다
<중략>
진흙길을 굴러가는 수레, 뒤에 남은 웅숭깊은 바퀴자국을
몇 날의 햇빛에 말리고서야 바람은
나무 등걸에도 나이테를 긋는다
<중략>
간밤에 자동차와 자동차가 맞붙다가 사라지는 소리들
<중략>
밤이 되어도 잠잠해지지 않는다 -「시계․바람1」 일부
색의 존재는 인간의 감정이 변화무상한 희로애락과 닮아 있다. 그리고 그 색은 저마다의 특징에 따라 다른 색을 지닌다. 시에서 드러나는 진흙나무등걸은 어둡고 칙칙한 진흙을 상징하는 갈색은 열정적이고 햇빛 힘 있는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색의 힘으로 나무 등걸의 갈색으로 변화하는데 해바라기 (노란색) 까만 씨알 (검정색) 검정색 맞붙다가 사라지는 소리는 분노를 의미하는 흰색으로 이루어진다. 시에서 갈색은 순색에서 보이는 생동감이나 역동적인 느낌은 결여되어 있으나 편안한 느낌을 지닌다. 엷은 색조의 갈색은 부담스럽지 않은 밝은 느낌을 주고 어두운 갈색은 따뜻한 느낌을 준다. 시에서 바람은 시간과 세월을 상징한다. 풍향이 일정한 곳에서 바람의 침식 작용을 받으면 변화하게 되듯이 ‘바람’은 ‘몇 날의 햇빛에’ 길을 말려 단단한 길을 열어주는 고마운 존재이자 나무의 등걸에 나이테를 그어 시간을 각인시키는 긍정성을 드러낸다. 진흙길 나무 등걸을 의미하는 갈색과 햇빛을 상징하는 붉은 기운의 영향이 나타나는데, 갈색은 두 가지의 보색이 혼합될 때 만들어지는 중성색으로 어둡고 칙칙한 내면을 상징하지만 이러한 바람은 다양한 색들과 융합되어 자연적이고 평온한 느낌을 주는 긍정적인 역할이 나타난다.
새해첫날의 바람이 영분 영초에서 다시
새바람을 피우기 시작한다
<중략>
석회질 하얀 똥만 나뭇가지에 남기고 날아가 버린다
인도의 자이푸르市 에는 바람의 궁전 타지마할
돌기둥뿌리에서 돌개바람이 인다
사과 절반 허브차 호(好) 폭풍의 신이 지금도 살고 있다
겨자 가공식품 노(NO), 몸에 좋고 나쁜 음식을 노트에 끼적이며
새해 첫날은 나도 바람의 궁전으로 불어가야겠구나
-「새해 첫날-바람3」일부
괴테는 세상을 생태적이고 직관적 관점에서 바라봤으며, 두 관점을 통해 색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했다. 색채는 밝음과 어둠의 만남이고, 모든 색채는 그 경계선(Grenze) 상에서 만들어진다”고 하여 색채를 직관적 심리적 상황적 의미로 발견했는데, 이는 당시 화가들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이었다. 이에 반해 뉴턴은 광학이론에서 백색광은 빨강, 노랑, 파랑 등의 색광(色光)으로 혼합되어 있으며, 이 백색광을 프리즘에 통과하면 빛의 굴절률의 차이에 따라 색채 스펙트럼이 생성되고, 각각의 스펙트럼은 평면의 가운데 부분에서 서로 겹쳐 흰색이 된다고 하여 색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였다. 시에서는 ‘첫날의 바람’과 ‘돌개바람’ ‘신선한 바람’이 나타난다. 첫날의 바람은 새로운 바람으로 희망과 기대를 품은 긍정적인 바람이다. ‘돌개바람’은 타지마할 궁정의 돌기둥뿌리에서 이는 바람이라 타자를 건드리지 못하고 존재에 대한 의미가 희박한 바람이다. ‘폭풍의 신’의 존재를 살아있다고 믿는다. ‘신선한 바람’은 사탕과 함께 입안 가득 굴리는 즐거운 상태의 긍정성을 띤 바람을 뜻한다. 그밖에도 바람과는 다소 무관한 석회질 하얀 똥, 타지마할(흰색) 겨자(연두색) 사과 노래를 똑같이 부르다가(붉은색) 등의 다양한 색이 나타난다.
묘촌(墓村)에 가면 시허옇게 바랜 떼를 쓰다듬는다
바람을 생체해부하려고
자손들이 떼를 지어 모여든다
어른들이 도포를 펄럭이며 절을 한다
향은 피워있고 술과 과일과 포는 얌전히 올려 있다
<중략>
불을 켜놓고 밤내내 기다리는 바람의 한가운데 -「가루․바람4」 일부
인간이 오랫동안 자연을 통해 체험해 온 원형적인 근거에 의해 색의 고유한 상징성은 받아들여졌다. 색은 경험이나 기억 자연조건 시대 생활환경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미치는 한편, 개인이나 직업에 따라서도 미묘한 차이를 지닌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빛은 암흑과 빛의 합성으로 형성된다. 데카르트의 경우 빛의 압력에 의해 빛이 진행되고 색이 나타난다. 즉, 빛이 물질을 통과하면서 변해서 색이 나타난다. 뉴턴은 프리즘을 통해 스펙트럼으로 나눠진 빛이 다시 프리즘을 통과해도 색이 변하지 않으며 나눠진 빛을 렌즈를 통해 모두 합하면 백색광을 얻는다고 하여 데카르트의 주장에 반박한다. 과학에서 특히 빛과 색은 오랜 세월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으며, 이러한 색은 위의 시에서도 두 종류의 바람과 더불어 나타난다. 첫 번째 ‘묘촌’으로 모여든 자손이 해부하고자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이 바람은 도포자락을 펄럭이는 행동성을 지닌다. 즉 이 바람에는 죽음을 의미하는 검은 색(어두운)과 피의 붉은 색(강렬한)이 의미하는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는 성향과 결탁되어 있다. 반면 두 번째 바람은 ‘불을 켜 놓고 밤 내내 기다리는 바람의 한가운데여’ 라고 하여 바람은 긍정성을 지닌 붉은 기운을 드러내는 사랑으로 자손들을 기다리는 모성을 의미하는 밝고 포근하며 따뜻한 성향을 지닌 색으로 나타난다. 그 밖에도 시허옇게 바랜 떼 (흰색) 향불(붉은색) 과일과 포(황색) 밤(검정) 얌전히(보라) 펄럭이다(파랑)를 의미하는 색채가 있으며 대개의 이들 시에 드러난 색들은 기억에 중심을 둔다. 이들은 구체적인 대상과 관련지어 기억하는 색이 있는 반면에 특정한 사물과 연과지어 기억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색은 실재하는 색과 일치하지 않으며 오히려 기억 속에 남은 색들이 현실의 색보다 더 강하게 기억된다.
바람이 센자리는 늘 서늘하다
<중략>
들뜬 바람이 살갗을 뚫고 지나간다
시름시름 앓다가 벗은 발목 시릴때면
<중략>
태양의 일식을 부르는 검은 바람이
시간의 종말을 함께 데리고 온다
남아프리카 탁상산(卓上山)에 남동풍이 불게 한다
남동풍이 불때면 정상을 가로 지르는 하얀 구름꽃
남쪽 연안에 천미터 높이로 솟아있는 하얀 꽃받침
우리식구가 저녁이면 찾아들어가는 바람의 집이다
바람의 집은 숨한번 쉬면 사라지고 - 「자리-바람8」일부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주변에 있던 많은 색들을 단일한 느낌을 지닌 하나의 색으로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의 색은 존재하지 않으며 ‘대비’ ‘조화’ ‘동화’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며 이처럼 실제로 우리가 바라보는 색은 다양한 색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정서의 판단에 따라 색에 대한 느낌을 달리 가지기도 한다. 우선 색을 보았을 때에는 그것에 대한 경험과 인상의 강약에 따라 색과 관계되는 사항들이 연관짓고 또 다른 무엇을 상기하는 계기를 찾는다. 오랜 기억 속의 색을 찾기도 하고 가까운 시간에 경험했던 유 뷸쾌의 감정과 연결짓기도 하면서 그런데 이러한 색에서 오는 뇌의 반응들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개인의 특성으로 발전하게 된다. 시에서 ‘바람’은 ‘서늘’(초록)하고 ‘들뜬’ 채 살갗을 뚫고 지나가기도 하고 일식을 부르는 ‘검은 바람’ 이 종말과 더불어 나타나는 부정적인 의미를 강하게 뿜어낸다. 또한 시에서는 ‘남동풍’이 분다고 하는데, 이는 즐거움(남)과 기쁨(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긍정적인 힘을 불러들이는 게기로 작용한다. 화자는 남아프리카 탁상산(초록 회색 흙색)을 ‘바람의 집’으로 생각한다. 이는 우러러 보면 다 갖춘 듯한 밥상으로 생각하고 이에는 순수하고 편안한 하얀꽃이 만발한다고 말한다. 화자는 이를 저녁이면 식구들이 찾아드는 식탁으로 여기지만, 이는 현실적으로는 숨 한번에 사라지고 마는 단박한 허망함이 숨어있다. 그밖에도 태양 남쪽(적색) 벗은 발목(분홍색) 나타난다. 색은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므로 각자 다른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연상된 일들을 개성을 잘 표현하는 도구가 된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색이 있고 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말이 있듯이 이를 상호 보완하기 위해 시인은 시어로 색채어를 융합하여 자신의 내면을 표현한다. 이 시에서 ‘바람’은 부정적인 의미와 결합되어 어둡고 힘든 화자의 마음상태를 표출한다.
바람을 쐰다. 솔잎에 쏘인 얼굴이 따끔거린다
바람쐬다 감기들라, 어른이 타이른다
기분전환하려고 시베리아의 찬바람을 쐰다 -「요람․바람19」일부
바실리 칸딘스키에 따르면 “색깔은 영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색상은 건반이고, 눈은 해머이며, 영혼은 현이 많은 피아노와 같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영혼에 진동을 일으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이 건반, 저 건반을 누르며 연주하는 손이다.”그의 말처럼 색은 미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이다. 시에서 ‘바람’은 찬데, 이 바람은 화자의 내면에 이르러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서 외부적으로는 따끔거리는 통증을 유발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기분전환에 필요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같은 바람이라도 바람을 쐬는 같은 사람일지라도 화자는 동일한 상태에서 하나의 느낌만을 느끼지 않는 다양하게 분화된 대로는 융합된 감정을 느낀다. 그밖에도 자연의 바람과는 다른 유행의 바람으로 드러나는 ‘백화점’(오방색) 스타킹(분홍색) 머리(흑색) 요람을 수식하는 ‘포근히’ 와 같은 색들이 드러난다. 이들의 바람에서 표출되는 다양한 색들은 기분전환과 활기 즐거움 편안함 등의 의미와 결합되어 화자를 기분 좋은 상태로 이끄는 긍정성을 갖는 게기를 마련한다.
마음이 들떠서 들어간 산속
시닥나무는 시닥시닥 붉은 입술만 팔랑이다가
내 입속으로 들어오고 나는 바람을 잡는다
나는 그대로 날아 바람의 나라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바람의 여신을 만난다
폭풍의 나라 그린란드 피요르드에서는
난봉을 부린다 해안 깊숙이 들어가 숨는다
폭풍의 나라 글린란드 피요르드에서는
난동을 부린다 해안 깊숙이 들어가 숨는다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는
바다를 갈고리로 끌어올려서
바람이 제일 많이 모이게 하고 나는 난봉을 피운다
시다림을 하는 스님의 요령소리에
신발을 벗는 바람들이 벌레를 한다.
가슴 모퉁이에 들어서 있는 초가집 뜨락의
닳아버린 작은 신발과
겨우내 얼어버린 어린 시절의 재채기가
허랑방탕한 바람을 부여잡는다 -「바람잡다․바람22」 전문
‘색’은 인간의 정서와 결합된 것이므로 개인차를 초월하여 사회적 보편성을 띤 상징성을 지닌다. 이는 자연환경에서 생물학적 반응에 기인된 생래적이거나 여러 문화에 걸쳐 학습된 결과로도 본다. 중국은 동쪽을 떠오르는 태양의 방향으로 여겨 성스러운 방향으로 여기지만 미국의 경우 동쪽은 미지의 세계로 암흑을 상징하는데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서양문화 속에서 ‘바람’은 매우 다양하여 허무함 불안감 폭력성 저돌성 등과 같이 매우 가변적이고 부정적인 면과 관련짓는다. 대부분의 색의 의미는 개인이나 독특한 문화에 따라 특별한 성격을 가진다. 하지만 때로는 문화권역별로 보편성을 지니는데, 이로써 개인의 내면적 정서를 파악하는 유용한 정보를 쉽게 읽는 계기를 마련한다. 시에서 ‘바람’은 현재 상상 환상 추억을 넘나드는 가운데 ‘입속으로 들어오’거나 ‘잡는’ 바람이 되기도 하고 상상 속의 ‘에베레스트’는 흰색을 띠며 정상에서 만나는 ‘바람의 여신’ 은 눈산을 의미하는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흰색의 바람을 만나기도 한다. ‘피요르드’는 흰색으로 시에서는 ‘폭풍’이 비트후크에서는 ‘갈고리째 끌어올린 바람’으로 이는 난봉(難捧)의 의미를 부여하는 검정색을 띤다. 르 코르뷔제에 따르면 흰색은 모든 것을 명료하게 보이게 만들고 숨김없이 드러내 준다. 시에서 ‘바람’은 억지로 모이게 하거나 어린 시절을 불러오는 추억의 ‘허랑방탕한’ 바람을 붙잡는 부정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검은색’으로 표현된다. 시에서는 겨울 산행에서 시공을 넘어선 바람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이미지가 융합된 바람이 여러가지 색으로 나타난다. 시닥나무의 붉은 입술은 단풍이 든 상태를 말하며 계절로는 가을 백색을 의미한다. 또 붉은색으로는 ‘입속바람’, ‘입술’ ‘열정’등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은 바람의 여신, 흰색 순결 순수로 피요르드는 폭풍의 나라, 청색 청순함으로, 바다는 많은 바람, 푸른색 시원한 의미를, 초가집 뜨락은 허랑방탕한 바람, 갈색 명랑한 심상을, ‘겨우내 얼어버린’의 의미는 검정색 흰색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이들은 서로 붉고 희고 푸른색 갈색 검정색이 어우러지고 융합되어 바람의 긍정성을 통해 화자의 내면에 담긴 자아를 시각적으로 발현한다. 그밖에도 시닥나무는 초록색으로 희망적이며 붉은 입술은 적색으로 열정 활동을, 요령은 황색으로 평온을 의미하며, 나무는 초록 갈색 등으로 심신의 안정과 평온을 유도하는 차분함을 이끌어 내는 효과가 있다
대나무 꼭대기에서 부는 바람
입술을 바늘처럼 세우고 부는 소음바람
인공호수에서 늙어버린 바람
밤이 되어도 잠들지 못하는 바람
아침 9시의 지하철 입구에서 짜는 나의 프로그램
그날의 목록을 따라
공원의 지저귀는 직박구리 한 마리
사건의 길이는 검은 배
바람세가 좋아야 돛을 단다
시간의 단위는 옅은 그림자
바람세는 백리마다 다르다
빨간 신호등을 깜박이며 바람은 네거리에 갇혀서
바다의 내장처럼 잠잠하다 -「바람세․바람24」 전문
바람의 힘은 멀고 가까운 정도와 무관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바람은 어디서나 누구와도 잘 어우러지는 한편, 어떤 상황과 결합되느냐에 따라서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발현하기도 한다. 또한 심리학에서는 바람을 매개로 하나의 관념으로 그와 관계되는 다른 관념이 떠오르는 현상이나 본래부터 공존하였거나 혹은 유사하거나 대비 관념 사이에서 일어나는 연상과 융합의 현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시에서 ‘바람’대나무 꼭대기에서 부는 ‘소음바람’과 인공호수에서 부는 ‘늙은 바람’들은 부정성을 띤 한편, 초록과 파란색을 띤 바람으로 표현 가능하다. 그리고 ‘바람세’와 관련된 ‘검은 배’는 목적지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어둠에 닿아 있는 상황을, 스스로가 확신이 서지 못하는 ‘옅은 그림자’ 역시 검은 색과 회색의 어둡고 무거운 의미를 드러내며 정지 신호에 해당되는 붉은 신호등으로 ‘네거리에 갇’힌 바람은 적극적으로 대면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화자의 내면에는 본질적으로 불안감과 자유스러움이 내재하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바람이 지나는 겨를에 들려오는 웃음소리
바람이 지나는 겨를에 들려오는 비명소리
붙잡으려 해도 얼기미 앞가슴으로 빠져나간다 어느 결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무토막이 홀로 돌아오는 결에
들으니 펴안을 벌었다 한다
그 소리 바람결에 불려왔나 떼구름에 쌓여 왔나
홀연히 나무 토막하나
<중략>
들판 한가운데 나무 한그루 초록이파리가 자라고
가을이면 빨간 눈에 황달이 자라고
겨울 눈밭에서는 맨몸으로 서서 운동하는 시간
<중략>
어느 바람결로 나를 데려다 주렴 프로그램이여
웃음소리 들리는 어느 풍편에 나를 점 찍어주렴 - 「풍편(風便)-바람28」일부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디에서나 바람을 만난다. 대부분의 바람들은 무의지성을 지니는 듯하지만 실제로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직접 물질을 운반하면서 운반하는 그 물질로 다른 물체를 깍아내는 작용을 하며, 심한 경우 언덕을 만들거나 지표면의 변화에 기여한다. 송두리째 지형을 바꿔버리기도 하고 생명채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드는 무 소불위의 힘을 지녔다고도 볼 수 있다. 이처럼 바람이 지닌 힘은 강력하다. 시에서‘바람’은 긍정성과 부정성의 양면을 모두 지닌다. 웃음 소리와 비명 소리를 실어오거나 잘 붙잡히지 않고 빠져나가는 한편, 묶이지 않는 존재로 표현된다. 또 화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람결에 실려 왔는지 평안을 불러온다. 끝내 화자가 바라는 바는 삶과 죽음의 프로그램을 초월한 채 모두 바람에 맡기고자 한 무거운 의미(검정색)를 부여한다. 그밖에도 희망적이고 활동적인 의미를 지닌 ‘초록 이파리’그리고 내적 풍요를 찾는 ‘가을’(백색)이 어디엔가 열정을 붓고 기원하는 ‘빨간 눈’ 그리고 부정적 의미의 ‘황달’ ‘겨울’(검정색) 등으로 다양하게 드러나는데 이는 긍정성과 부정성을 동시에 지니는 화자의 내면을 적절하고도 균형감 있는 감성을 표현하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물색튜브의 바람꼭지 바람 꼬다리 안개색 연회색 구름 구름
튜브의 꼭지를 살짝 따면 바람이 광풍으로 커진다.
광풍에 휩싸여 남자와 여자가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린다
<중략>
시간이 그들 몸의 살과 피와 섞여 하나가 된다
바람꼭지가 쉬는 날은 바람도 잠들고
빨강노랑파랑색 공공 구르는 공들
멈춰서서 사방을 둘러보다가
나뭇잎 무성한 괴목 한그루 쳐다본다 -「바람꼭지․바람29」 일부
색은 각 나라의 고유한 믿음과 신앙을 바탕으로 다양한 표현과 상징의 의미를 지닌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민족적 사회적 정치적면까지도 색에는 상징이 존재한다. 이처럼 색은 민족이나 국가 민간의 일상 속에 파고들어 다양한 삶의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개인의 서정성을 담은 시의 경우에도 색채 표현으로 시적 지향점이 드러나는 한편, 그 시인의 시적 세계관을 담아낸다. 이는 그 시인만의 고유한 정동(affect 생각에 연결된 주관적이고 직접적인 정서 경험)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성의 이면을 담은 색에 대한 이해를 헤아리는 과정에서는 시에서 화자가 각별히 환기하는 정서를 주된 서정으로 파악한다. 하지만 언어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기억에 대한 각인들은 색채로 감지하고 포착하여 기록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색채에 대한 자각은 자신의 내면에 대한 경험과 기억의 색에 의존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시에서 ‘바람꼬다리’는 ‘물색’ ‘연회색’ 구름과 결부되고 ‘꼭지’를 다면 ‘광풍’으로 바람의 세력은 무한 확장된다. 그리고 그 광풍에 죽음이 동반되는 부정적인 의미가 가미된다. 이 바람의 꼭지가 쉬는 날은 바람도 잠이 들지만 형형색색의 공들은 구른다. 바람과 무관한 듯한 빨강 노랑 파랑색의 ‘공’들이 표현되는데, 이는 구슬과 같은 의미를 지니며 ‘우주’를 뜻하기도 하는데 이는 ‘영속적으로 끝없이 계속되는 것’(진쿠퍼)을 말한다. 그밖에도 살(분홍) 피 나뭇잎 무성한 괴목(초록) 등의 색채어가 드러나며 심리적 균형감을 유지하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네모네 한송이를 등에 태우고 바람이 날아오더니
땅에 내려 놓고 호오 입김을 불어 꽃봉오리를 열어준다
꽃은 점점 크게 제 몸을 열어서
평생의 바람을 한꺼번에 마신다
바람탑을 돌며 염불하는 승려들
손에는 저마다 아네모네 꽃한송이씩 들었다
아네모네 꽃잎에는 바람이 가득차
승려들이 꽃잎에 코를 댈때마다
꽃잎은 바람따라 날아가 버린다
꽃잎을 잡으려 승려들은
바람탑을 빠져나와 깊은 산으로 몸을 숨긴다
세상은 홀로 남겨진 크고 작은 산처럼 널려 있다
사막의 모래들은 제각각 흩어지고
물기없는 강과 돌멩이들과
뜨거운 햇볕이 서로 어울려 바람을 마시며 산다
빨강 자주 청색 흰색 아네모네만이
사막의 여기저기에서 바람꽃으로 날린다 -「아네모네․바람35」전문
인간의 감수성에 깊이 자리 잡은 색은 자주 인간의 영혼과 교류하는데, 이는 과거 현재 미래 상상 현실 환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특히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시간과 장소 그리고 사물 사람에 대한 일들을 색을 재환산하여 때로는 새로운 정조를 불러일으켜 내면의 정감을 언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시에서 ‘바람’은 긍정성과 부정성을 한 몸에 담는다. 부활과 영생을 상징하는 바람꽃 아네모네 꽃을 태우고 긍정성을 띤 바람으로 자리잡는다. 그리고 입김을 부어 꽃을 피우고 이를 위해 꽃은 평생의 바람을 다 들이마신다. 하지만 바람을 잔뜩 마시고 핀 꽃들은 승려들이 탐하자 몸을 숨긴다. 산은 산대로 모래는 모래대로 홀로 뜨거운 사막을 견디고 강 돌멩이 햇볕은 사막에서 뜨거운 바람을 마시는데 여러 색의 아네모네가 바람꽃으로 날린다. 어느새 바람은 꽃잎을 떠나보내는 부정적인 바람이다가 땡볕아래서 함께 어울려 나눠 마시는 긍정성을 지닌 바람으로 변화된 점을 알 수 있다.
바닷가 소나무가 둘러서서 바람막이한다
바람바다 겨울바다 구름바다 울음바다 다 막으려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펴고 있다 <중략>
바다는 삼억육천만 넓이의 호수를 삼켜서
바닷바람과 물고기를 통해 놓는다
바다는 입을 벌려 바람막이를 한다
-「바람막이․바람39」일부
프리즘을 통과하면 무지갯빛으로 분리된 색은 일정한 색만 뽑아서 프리즘을 통과시켜도 더 이상 색은 분리되지 않는다고 말한 뉴턴에 따르면 특수한 빛만을 흡수 반사하는 원리로 만물이 색을 갖는다. 결국 색이란 인간의 눈에 보이는 현상에서 판단된다. 시에서 ‘바람’은 ‘바람막이’로 ‘바람’이 주는 악영향과 부정적인 면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사용되어 ‘막이’가 사용된다. 거대한 면적으로 지구를 둘러싼 바다 역시 외부의 나쁜 기운을 모두 차단하기 위한 액막이용으로 사용된다. 결국 여기서 언급된 ‘바람’은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상관관계를 지니며 이를 차단하기 위한 ‘소나무’(초록 편안함 밝은)와 ‘바다’(푸른색, 기분 좋은 편안함)을 들여온다. 그밖에도 ‘무당개구리’ ‘무당거미’ ‘무당 벌레’ ‘무당골뱅이’ ‘무당노린재’ 등을 불러들이는 오방색의 춤사위가 드러나는데 이는 동양사상의 기저를 이루는 음양오행사상 중 우주를 형성하는 원리이자 동시에 질성의 원리를 담은 색이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색의 원리들을 확인하게 된다.
바람막이 숲을 가꾸어 해풍을 막는다
바람막이 울타리를 세운다
바람막이 널찍한 간판을 세운다
방풍잎을 캐서 바람막이 나물을 무친다
위대한 아네모포프에게는 먹구름이 머무는 한달동안
한줄기 바람도 햇빛도 찾아오지 않는다
일년 동안의 바람을 자루에 담아
<중략>
아무리 애써도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집울타리 근처에 있는 바람막이숲이 사라져버렸기에
<중략>
일년동안의 바람을 자루에 담아
겨울 봄 여름에 맞게 하양 노랑 초록으로 내보낸다
-「바람막이숲․바람40」 일부
현상학으로 사물을 바라본 CF. 퐁티에 따르면 ‘감각계는 나의 감각을 사로잡고, 나는 내 몸의 일부 또는 전부를 내맡겨 색채공간을 진동하고 채우게 한다’(1990) 그에 따르면 시인의 생생한 비전을 세계를 객관화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내면의 꿈틀거림을 보이는 것의 방사(放射)를 교감한다. 이처럼 시 속에서 표출된 색은 곧 화자의 내면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해석의 방편이 된다. 시에서 ‘바람’은 낮은 곳에 심어 주변을 보호하는 바람막이 나무에게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 바람막이의 역할은 ‘바람’이라는 어휘가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사용한 말이다. 따라서 시의 내용에 따르면 ‘먹구름이 머무는’ 동안은 바람도 햇빛도 찾아오지 않는다. 또 화자는 바람막이숲이 사라졌기에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데, 이는 실상 자신의 삶 앞에 닥친 바람막이의 존재의 상실이 곧 화자의 실향과 연결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시에서 바람은 갈색의 ‘울타리’와 초록의 ‘숲’ ‘방풍잎’ 파란 색을 띠는 ‘널찍한 간판’ 검은 ‘먹구름’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시의 바람은 바람막이를 통과해서는 안되는 부정적인 존재로 부각되어 있다. 그밖에도 ‘햇빛’ ‘웃음’ ‘여름’을 상징하는 붉은 태양의 적색, 죽음을 상징한 검정의 의미를 지닌 ‘떠난다’ ‘겨울’, 그리고 ‘하양’ ‘노랑’ ‘초록’ 등의 색채어가 나타나며 이들은 긍정성과 부정성을 함께 지닌 양가적 감정의 표출로 볼 수 있다.
오색꽃 환한 신부의 꽃신을 끌어올려 바람은
신랑의 두루마기에 갖다 댄다
신행길의 두 신혼부부가
초겨울의 휑한 논뚝길을 움퍽움퍽 파헤치며 걸어간다
<중략>
바람이 청진기를 들고 마을 곳곳을 찾아다니며
분노를 달래고 맥박을 늦춘다
초겨울의 바람은 가슴이 넓은 의사이다
바람만 바람만 신부도 뒤따른다
-「바람만바람만․바람42」 일부
서양에서 인식하는 바람의 상징성은 매우 다양하여, 허무 불안 폭력 저돌성 등과 같이 매우 가변성을 드러낸다. 풍파(風波)란 바람을 맞은 파도를 뜻하지만 한바탕의 시끄러움 인생의 고난 위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줏대가 없는 사람은 바람에 날리는 갈대로 상징되며 태풍은 황폐함 파괴 폭력을 상징한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바람은 공기의 움직임이다. 때문에 우리 삶 어디서나 존재하지만 형태가 없다. 무형의 바람은 의지가 없어 보이지만 파도가 넘실거리고 물거품이 일었다가 사라지는 것 구름의 움직임과 낙엽의 뒹구는 모습을 보면 분명, 이면에서 작용하는 바람의 힘이 존재한다. 시에서 ‘바람’은 다른 사물과 더불어 많은 상징성으로 부여한다. ‘오색꽃 환한 신부의 꽃신을 끌어올’ 리기도 하고 신랑의 두루마기에 갖다 대는데, 이 바람의 역할은 긍정성을 띤다. 또 ‘바람’은 분노(흰색)를 달래고 맥박을 늦추는 유익한 가슴이 넓은(청색) 의사 역할을 한다. 괴테가 구별한 색의 특성으로 빨강은 정열과 흥분, 파랑은 수축과 차분함 등을 의미한다. 그에 의하면 색에 상징적이고 신비적 의미를 부여하면 감각적이고 도덕적이며 미학적인 목적으로 가용가능하다. 인간의 지각에 바탕을 둔 괴테의 색채론은 당시 자연철학의 특징인 우주에 대한 이원론적 개념과 일치한다. 이처럼 시의 바람은 다양한 색과 어우러지면서 긍정성을 극대화시킨다. 오색꽃은 황색 흑색 적색 백색 청색을 뜻한다. 환하고 밝고 부드럽고 따스하며 가벼운 의미를 지닌다. ‘오색꽃’이 환한 신부는 숭고하고 성스럽고 순수함을 뜻하는 흰색을 기초로 다양한 의미를 지닌 색을 더한다면, 꽃신은 붉은색을 뜻하며 감각적이고 자극적이며 따뜻한 색이다. 색에 대한 기억은 좋고 나쁨이 일정하지 않으며 시간에 따라 변화된다. 그밖에도 바람과 동떨어진 ‘논뚝길’(갈색) ‘구석진’ ‘구석에다’ ‘초겨울’ ‘분노’(흑색) 반짝이며 (적색)을 드러내는 색채어에는 부정적인 의미도 함축한다. 괴테는 정신과 육체 영혼과 육체 신과 인간 사이의 분리를 내포한 자연의 기계론적 개념을 거부하고, “색채는 밝음과 어둠의 양극적 대립 현상이고, 인간의 감각과 연관되었다”고 인정했던 반면 뉴턴은 “색채는 관찰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객관적 대상으로 단색(單色) 광선들의 결합 유무와 그 정도에 따라 생성된다”고 여겼다. 그의 <색채론>에서 색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를 두고 느끼는데 그치지 않고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색을 통해 사회문화적 정체성 및 감성적 미적 반응은 우리 의식 속에 자리 잡아 언어가 아닌 색채로 보편성있게 전달한다.
바람이 하늘을 지고 가로누워서 흐른다
방동사니과에 사는 바람하늘지기는
실같은 이파리가 뿌리에서부터 촘촘해
머리정수리의 가마에서 소용돌이로
풀어흩어진 머리카락
바람을 한참 마신 다음에
노란 거꿀달걀꼴 열매를 피운다
바람은 마음대로 새어나가지 못하고
때대로 새로운 눈물을 흘리며 다가오다가
<중략>
머리칼을 산산이 쪼개 햇빛을 안은 바람하늘지기는
폭풍이 불면 슬프게 우짖는 나의 초가지붕 - 「바람하늘지기․바람54」 일부
색은 그 사람의 개성과 환경 기억 등에 따라서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나이 성별에 따라서도 조금씩 다른 상징성을 띤다. 난색의 경우는 진출 팽창을 의미하며 자극적이고 한색의 경우는 후퇴색 수축색으로 정적이며 중간색은 중성적이다. 또 예를 들어 경험과 기억에 관련된 색으로는 하늘색 바다색 살색 개나리색 등으로 표현하는데 과거의 기억이 자극에 의해 여러 가지 사항들을 떠올리는 이러한 상황은 실재하는 색과는 거리가 있다. 시에서 ‘바람’은 하늘을 가로질러 누워 흐르고, 바람하늘지기는 바람을 한참 마신 후에 열매를 맺는다고 하여 바람의 존재는 당당하며 바람하늘지기에게는 열매를 맺게 하는 고마운 존재이다. 하지만 바람은 새어나가지 못하고 새로운 눈물로 다가오거나 폭풍에 울부짖는 슬픈 초가지붕 등으로 바람의 부정성을 드러난다. 따라서 긍정성과 부정성을 함께 지니는 양면적인 성향이 나타난다. 그밖에도 ‘하늘’(파란색) ‘햇빛’(붉은색) 등이 나타난다. 바람은 다양한 상징성을 내포하며 때로는 생과 사를 자각하는 기호로 혹은 강력한 생의 의지와 희망 또는 폭력적 상흔 민중의 상처를 표현한다. 이러한 바람을 가장 잘 운용하는 생물은 새이다 새는 날개를 치거나 날개를 움직이지 않고도 바람의 힘으로 장시간 공중을 난다.
한번은 시냇물 소리 한번은 목침 넘어가는 소리로
바람의 숨이 고르지 않다
바람이 지나는 겨를에 어린이놀이터의 나뭇잎이 흔들린다.
바람결은 시냇물의 속살처럼 부드러운데
바람이 무거울 때는 나무둥치까지 흔들린다
<중략>
무성한 나뭇잎이 바람을 건드리면
바람은 작은 손바닥을 펴고
큰 바람발을 머리정수리까지 붙이며 웃어댄다 - 「바람집․바람55」 일부
색채 현상은 밝음과 어둠의 양극적 대립 현상으로 보이면서, 인간의 감각과 관련지어 색채의 실체를 인정한다.(괴테 색채론) 프리즘을 천천히 움직이면서 들여다보면, 황색은 주황색을 거쳐 적색으로 상승하는데 이때 색은 짙어지는 대신에 어두워진다는 상승의 원리가 작용한다. 양극과 상승의 원리가 조합하여 생성된 색이 대립과 조화를 이루면서 색채환의 원주상에서 일목요연하게 나타난다는 총체성의 원리를 주장했다. 시에서 나뭇잎은 초록색을 상징한다. 또 ‘사막’ ‘부드러운데’ ‘모래알’에서는 노랑색을 상징한다.(한지운 나건 2015) 아코디언 건반(흰색) 웃어댄다 웃었다(빨간색) ‘무거울 때’ ‘이파리보다 무겁다’에서는 검정색을, 나무둥치에서는 안정감을 주는 갈색이 나타나며 특히 갈색이 주는 심리적 의미로는 충동과 억제의 중간입장에 있는 수동성을 나타내지만 활력이 있고 감각적인 느낌을 읽을 수 있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자연 그대로의 땅을 보기란 쉽지 않다. 잘 다듬어진 시멘트 콘크리트 등으로 이루어진 바닥을 보면서 대자연 속의 땅을 은연중에 그리워한다. 이러한 심리가 시에서도 부드러운데(노랑색) 무거울 때는(검정색) 등으로 표현된다.
색의 상징성은 경험 기억 지식 자연조건 시대 문화 연령 성별 개인 사회 직업 등에 따라서 달리 드러난다. 죽음 탄생 종교적 의례 등과 같은 여러 의식과 행사에도 사용되므로 환경이 유사할수록 공통된 연상을 하는데 이는 관습과 경험의 영향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고유한 색으로 갖는 공통된 상징성은 인간이 오랜 세월 살아온 삶과 유관하며 이로써 심리적 원형의 근거를 찾기도 한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색채어는(별책 색채표 참고) 검정색을 드러내는 어휘 37회 붉은색을 드러내는 어휘 32회 흰색 24회 노란색 20회 초록색 19회 파랑색 15회 갈색 10회 회색 4회 보라 3회 살색 3회 연보라 2회 분홍 2회 주황 2회 자주 1회로 나타난다. 빨강 흰색 흑색 파랑 초록 등은 바람과 연관성이 짙고, 회색 보라 살색 연보라 분홍 등은 바람과 관련된 언급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후자는 언급에서 제외되었다.
바람과 관련된 검은 색을 대표하는 어휘에는 ‘겨울’ ‘울음’ ‘아코디언 건반’ ‘백화점’ ‘한밤’ ‘까맣고 머리채’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침묵’ ‘밤’ ‘느리게’ ‘일식’ ‘검은 바람’ ‘종말’ ‘저녁’ ‘서늘한’ ‘머리’ ‘난봉’ ‘검은 배’ ‘직박구리’ ‘겨울’ ‘흑백’ ‘울음’ ‘무당개구리’ ‘무당거미’ ‘무당벌레’ ‘떠난다’ ‘겨울’ ‘구석진’ ‘구석에다’ ‘초겨울’ ‘분노’ ‘겨울들판’ ‘이파리보다 무겁다’ 등으로 자연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시끄러움이나 기다림 시간의 종말 파묻혀 있는 상황 슬픔 비틀거리거나 잠잠해지지 않는 후미진’ 등과 같은 단어와 결합된다 ‘후미진 모퉁이 담을 쌓는다 겨울 파묻혀 있다 가만히 누워있는 시간의 종말 일식 숨는다 피운다 사라져버렸기에 움퍽움퍽 파헤치며’ 등과 같은 어두움 이미지들은 바람과 결합되어 어둡고 검은 부정성의 강화를 이끌어낸다
붉은 색은 가시성이 높은 색으로 활력 전쟁 등과 관련지은 강렬한 감정을 불러들인다 성경에서도 마찬가지로 붉은 색은 ‘피’(히브리어)를 상징하는데 신성을 모독한 이름을 의미할 때도 이러한 색을 든다 언급된 시들 가운데서 바람과 관련된 그의 시에서 붉은 색은, ‘햇빛’ ‘사과’ (계17:1-6)‘부르다가’ ‘향’ ‘불’ ‘모닥불’ ‘등불’ ‘적도’ ‘태양’ ‘남쪽‘백화점’ ‘붉은 입술’ ‘입술’ ‘빨간 신호등’ ‘김치’ ‘빨간 고춧가루 섞은 양념’ ‘빨간 눈’ ‘빨강’ ‘피’ ‘뜨거운 햇볕’ ‘빨강’ ‘봉화’ ‘무당거미’ ‘햇빛’ ‘웃음’ ‘여름‘오색꽃’ ‘반짝이는’ ‘빨강’ ‘매운’ ‘햇빛’ ‘웃어댄다’ ‘웃었다’ 등으로 주로 햇빛 불 빨강이 붉은 색을 대표하는 어휘로 사용되었으며 활달하고 적극적인 삶의 방향성을 표출한다.
흰색의 경우, 빛 안전 선함 순결 순수와 관련된 특성을 지니며 성서에서는 천사의 옷으로 의미되며 영적 순결을 강조한다(요한 20:12;계시 3:4:) 또한 너희 죄가 진홍색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지리라(이사야:1:18)라고 한다 그의 시에서 흰색은 맞붙다가 사라지는’ ‘하얀 구름꽃’ ‘시허옇게 바랜 떼’ ‘도포자락’ ‘새벽안개’ ‘하얀 구름꽃’ ‘무’ ‘솜털’ ‘시베리아 찬바람’ ‘백화점’ ‘에베레스트정상’ ‘피요르드’ ‘직박구리’ ‘가을’ ‘눈밭’ ‘흰색’ ‘하얀손’ ‘솜’ ‘뽀얗게 되네’ ‘바람꽃’ ‘하양’ ‘오색신’ ‘두루마리 종이’ ‘아코디언 건반’ 등의 어휘가 드러나며 이들은 각각 ‘분노 난봉 기분전환 시대 감각의 감정을 드러내거나 단순히 바람에 날려버리는 자연현상’ 등을 통해 새로운 시작과 순수를 향한 몸짓은 잔잔하고 소박하게 드러난다.
바람은 다양한 상징성을 지닌다. 높은 곳에서 좁고 어두운 곳까지 또 미세하고 성근 곳도 개의치 않으며 구석이나 틈새를 찾아 들어 집착을 나타내기도 한다.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어디든 흘러들어 자유로움을 상징하거나 세월의 흐름을 드러낸다. 그래서 바람의 눈으로는 세상을 두루 잘 볼 수 있다. 때로는 시련이나 고통으로 표현되는 이 바람은 그의 어떤 시를 막론하고 대체로 다른 의미와 상징성을 지닌다. 난해성 혹은 전혀 새로운 패턴의 시라 할지라도 시에 드러나는 바람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는 작업으로 그의 시가 지닌 화자의 내면적 목적성을 파악하는 한편, 시에 내포된 미적 심오함을 찾아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의 시에서 ‘바람’은 긍정성과 부정성을 지니며 이들은 다양한 색과 결합된 채 여러 가지 의미망을 구축한다. 먼저 긍정성을 띠는 바람은 주로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등과 융합되어 그 대상에 밝고 힘이 있고 평화로운 의미를 부여하는데, 이 경우의 바람은 자연 상황 사랑 등과 잘 어우러져 순환 관계를 엮는 매개로 드러난다. 반면 부정성을 드러나는 바람은 검은 색 붉은색 갈색 등과 관련이 있으며 이들은 시끄러움 어두움과 같은 환경적인 요소 속에서 부적응의 상황들을 불러오는가 하면 구석진 곳 겨울 어두운 곳 비틀거리는 길 등과도 어우러져서 역순환적인 관계를 불러들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그의 시에서 바람은 색과 더불어 양가적 의미를 주축으로 다양성을 드러내는 매개로 작용된다.(끝)
참고
표1) 검정색의 해석
첫댓글 바람을 색깔별로 분류해서 거기에 따른 연관어와 상징성까지...!! 우와~~김지숙 시인님의 동서양을 막론한 해박하고 방대한 지식의 창고가 어마어마해서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네요. 대단하세요. 지금껏 이렇게 세세하고 훌륭한 평론은 읽은 적이 없네요. 가끔씩 공부하러 다시 들여다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