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정선 이야기7
탄생 정선, 고단한 먼 길 뚫고 다시 태어난 화암동굴
<봄꽃 동토를 뚫은 날, 그림바위 여행>
"여기 화암동굴이 그림바위 마을을 새로 태어나게 했지.”
노인은 동네 자랑이 대단했습니다. 늦봄, 아카시아꽃들이 만발한 날이었지요. 저녁나절이 되자 꽃향기가 더욱 기세를 뽐냈습니다. 아직 해가 넘어가기 직전이라 따스한 봄 햇살이 노인이 앉은 섬돌을 밝게 비추고 있었지요. 노인은 봄을 맞아 천포금광촌에 나들이를 나온 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일제가 여기서 금을 캐갔어.”
깊게 파인 얼굴의 주름살이 그가 살아온 내력을 말해 주는 듯했습니다. 나이가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세월이 그의 주름살에 묻어났습니다. 금방 화암동굴을 나온 터라 노인의 이야기는 더욱 깊게 다가왔습니다. 노인의 이야기 때문일까요. 천포금광촌에 있는 전시용 집과 생활상이 마치 현재인 듯 느껴졌습니다.
<희망을 낳고자 애쓴 흔적들>
천포금광촌은 화암동굴에서 금을 캐던 천포광산(泉浦鑛山)의 이름을 딴 마을 이름입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1922년부터 1945년까지 금광 노동자들이 머물렀던 마을을 복원한 주제공원입니다. 정말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지요. 가족의 생계를 위한 몸부림이 천포광산까지 발길을 닿게 했지요. 광산에서는 사택을 지어 노동자들이 살게 했고요. 그나마 사택에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은 임시로 삶의 터전을 마련해서 비바람을 피해 머물러야 했으니, 현재 재현해 놓은 마을의 모습보다 더 열악했지요.
한겨울이 되면 그림바위 마을은 꽁꽁 얼었습니다. 눈이 지붕까지 쌓이는 날이 이어지고, 고드름이 겨우내 떨어지지 않는 추위를 자랑하였습니다. 추위에 손이 터서 피가 나고, 얼었다 녹은 살갗은 아려오기 일쑤였습니다. 장갑조차 변변찮았던 시절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는 그렇게 살고자 애썼습니다.
“힘들어도 애써 봄날을 생각하며, 버텼어.”
노인의 말처럼 광산노동자들은 모두 자신의 삶에 따스한 봄날이 올 것을 믿었습니다.
<정선인들의 희망과 또 다른 낙원>
겨울이 가면 봄이 옵니다. 희망이 있는 한 일평생 겨울로 머물지는 않습니다. 광산노동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노다지 캐는 날을 꿈꿨지요.
화암동굴로 들어서면 노다지 캐는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정선에서는 일제강점기 당시 천포광산에서 금을 캐고 꿈을 캐던 장면을 동굴 안에 잘 형상화했습니다. 장면마다 당시 노동자들의 희망을 담아내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들의 희망이기도 합니다. 고단한 삶을 낙원으로 만들어 줄 그날을 그려내었지요. 동굴 안에 만들어진 어린이의 꿈이 곧 우리의 꿈이지요. 동화와 같은 낙원을 우리는 언제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니까요.
“노다지, 그래 금맥을 찾아 노다지가 쏟아질 날을 기다렸지.”
먼 산을 바라보는 노인의 시선은 마치 그날의 꿈을 좇는 듯했습니다. 금을 캐는 사람들의 진지한 모습은 캄캄한 갱도 안에도 밝은 꿈이 있는 이유입니다. 굴착기로 암석을 뚫고, 다이너마이트로 돌을 폭파하고, 금 섞인 돌을 나르던 모습들은 모두 희망으로 가능했습니다. 희망은 가끔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했지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금은 꿈이었지요. 꿈은 어린 자식을 가르치고 늙은 부모님을 봉양하고 고생하는 부인을 위한 일이었고요.
이런 꿈을 정선에서는 별나라에서 온 어린왕자의 꿈, 복을 가져다주는 도깨비의 꿈, 산신령이 주는 금도끼로 동굴 속에 고스란히 담아내었습니다.
<자궁, 우리의 영원한 고향 동굴의 모태(母胎)>
“천연 종유석 동굴, 그게 우리가 꿈꾸던 노다지며 낙원이지.”
노인은 꿈을 꾸듯, 멀리 서 있는 미륵바위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읊조렸습니다.
화암동굴에서 동화의 나라를 지나면 화려한 천연 종유동굴을 만나게 됩니다. 형형색색 찬란한 모습입니다. 어쩌면 이런 천연동굴이 여기 자리했을까요. 정말 그 형상에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그 형상 중 가장 눈길을 끈 모습은 음양(陰陽)을 뜻하는 종유석이었지요. 자연스럽게 모태(母胎)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음양석(陰陽石)을 중심으로 갖가지 종유석과 석순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습니다.
동굴은 죽음과 재생을 뜻합니다. 일찍이 우리의 조상 환웅의 배필 웅녀는 동굴에서 곰이 여인으로 탄생했지요. 곰은 죽었고, 여인은 재생했습니다. 고구려에서는 나라에서 동굴 속 수혈(隧穴)에 제사했습니다. 수혈은 수신(隧神)으로 고구려 말로 ‘수ᄀᆞᆷ’이라 합니다. 수ᄀᆞᆷ에서 수는 암수의 수놈이고, ᄀᆞᆷ은 고어로 신(神)이니, 바로 남신(男神)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수혈(隧穴)에서 한자 ‘수(隧)’자를 썼을까요. 이 수(隧)자는 동굴(洞窟)을 뜻합니다. 동굴은 물이 흐르는 굴이니, 생명의 탄생이나 낙원으로 가는 길목으로 볼 수 있어요. 곧 모태(母胎)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동굴을 뚫고 나오면 어머니 뱃속에서 아이가 탄생하듯 새로 태어납니다. 우리 선조들은 절묘하게 음양의 이치를 동굴에 새겼습니다. 『양주지』에 보면 양양군 낙산에 관음굴이 있는데, 여기서 조선조 익조의 비 정숙 왕후가 관음굴에서 빌어 아들 도조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동굴에 관음보살이 머물고 관음보살이 아이를 점지하여 낳았다고 해서 기자굴(祈子窟)로 유명합니다. 이렇듯 동굴로 들어가는 행위는 아픔이 사라지는 죽음을 뜻하고, 동굴을 나오는 행위는 모든 아픔을 벗어나 새로운 이상향에 태어나는 의미입니다. 꿈의 현현이라 할 수 있지요.
화암동굴을 뚫고 밖으로 나오면 누구나 이런 기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두 발로 걸어 세상에 태어난 기분>
“화암동굴을 여행한 기분을 알 걸세.”
“예, 황홀경이었습니다. 마치, 금방 먼 우주여행을 마친 기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종유석 광장은 모태입니다. 종유석 광장은 아늑하고, 신비롭게 생명을 탄생하는 어머니의 자궁이지요. 그곳을 빠져 동굴을 나오면 우리는 다시 태어납니다. 동굴을 나와 걷는 길, 새로운 인생길 개척입니다.
이제 힘들었던 길은 희망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치 고단한 이승을 떠나 내가 간절히 꿈꾸던 낙원을 맞이한 기분이지요. 확 트인 시야가 새로운 세상으로 향해 걷는 나를 반깁니다.
화암동굴이 주는 탄생의 매력은 참 멋집니다. 동굴에 얽힌 우리 조상들의 생각 마냥, 고단한 현실은 동굴을 뚫고 나오면 곧 밝은 햇살을 맞듯, 우리 삶에도 새 세상이 열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