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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방송인: 영화저널 그날이 좋다, 안녕하세요? 허준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 웬만한 영화광들도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라는 전설의 작품 (2019 개봉작) 러시아 영화 퓨어리스였습니다. 몽골군의 러시아 침공 당시를 다룬 이 영화, 과연 러시아인들의 눈에 비친 몽골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영화 퓨리어스中: 1237년 러시아 (랴잔 공국) 새 생명의 탄생을 기뻐하는 축하 자리에 나타난 불청객, 사자: 여러분! 여러분! 몽골군이 쳐들어와요------------
허준: 신생아의 몸에 물도 묻히기 전인데 몽골군사들 눈에서 살벌한 레이저를 내뿜으며 랴잔의 코 앞까지 들이 닥쳤는데요. 결국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사태 파악을 위해 몽골군을 만나러 간 랴잔 사절단~
랴잔 사절단: 놈들이 어린 여자를 마늘로 요리한대
해설: 그곳에서 몽골군 최고 사령관 바투를 만나는데요.
사절단: 변변치 않은 선물이지만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몽골군 병사: 랴잔은 위대하신 칸의 첫 러시아 영토가 될 것이다. 위대하신 칸 앞에 무릎을 꿇으면 상을 받을 것이다.
랴잔 사절단: 무릎을 꿇어야 할 건 당신이다.
해설: 만나자 마자 땅부터 내 놓으라는 소리에 밥상을 뒤엎으며 신고를 대신한 랴잔 사절단, 이와 함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데요. 과연 랴잔의 군대는 몽골 군대에 맞서 자신들의 조국을 지킬 수 있을까요? 누가 봐도 영화 300의 전투 장면을 어디선가 따오긴 했는데 뭔가 그런 영화, 퓨리어스 (2019) 였습니다.
일동: 박수
최원정/KBS 아나운서: 아니, 곧 섭외 들어올 것 같애요.
이시원/배우: 역사 영화 그날 하면 될 것 같애요.
허준: 영화가 좋다, 피디님,
최원정: 뺏기지 싫지만 오늘 너무 잘 했어요. 역사저널 그날 오늘 칭기즈칸의 나라 네번째 시간인데요. 몽골군이 러시아, 랴잔을 침공한 그날을 퓨리어스 영화를 통해서 시작을 해 봤는데~
최태성/한국사 강사: 요 장면 속에서는 지금 랴잔 쪽에서 엄청나게 항변할 것 같은 느낌이잖아요. 그러나 6일만에 함락이 됩니다.
이시원: 이 루스(Rus)가 러시아의 어원쪽 맞는 거죠?
이익주/서울시립대학교 사학과 교수: 그렇죠, Rus에서 Russia란 이름이 나온 겁니다.
이시원: 그런데도 궁금해요. 이미 몽골, 땅 넓게 차지 했잖아요. 이 정도면 만족할 만도 한데 왜 이 Rus (랴잔)까지 밀고 들어간 걸까요?
최원정: 여기에 대한 답은 오늘 또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한국학 중앙연구소 조원희 교수님을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조원희/한국학 중앙연구소 교수: 안녕하세요? 조원희, 이름에 원자가 들어 있습니다.
이시원: 그렇다면 저희에게 해답을 주실 수 있겠네요. 도대체 왜?
조원희: 결국은 돈 문제로 봐야 되는데요. 이제 새로운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곳, 새로운 물자를 징수할 수 있는 곳, 새로 인력을 징발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서방으로 원정 또는 침략을 시작한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시원; 결국 돈 때문에 갔다. 지금까지와는 낯설다. 지금까지 몽골하면은 너희들이 먼저 우리 건들였잖아 아니면 우리 배신 했잖아 이런 느낌으로 쳐들어 갔었는데~
이익주/서울시립대학교 사학과 교수: 이때 몽골군의 러시아 침공은 굉장히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됩니다. 첫번째는 세대교체예요. 또 한가지는 전쟁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칭기즈칸 때에는 약탈하고 파괴하고 살육하는 거였다면 이제는 아니에요. 그 지역을 내가 점령해서 통치하겠다 그래서 이제 통치를 위해서 오히려 약탈을 금지합니다. 이제 몽골이 달라진 거죠.
최원정: 그런데 지난 편에 칭기즈칸이 죽었잖아요.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이 칭기즈칸 끝났으니 다음 주제는 뭐니? 당연히 물어보더라구요. 그런데 계속 우리가 몽골 얘기를 하고 있단 말이죠.
이익주: 사실 칭기즈칸은 제국을 만들지는 않았어요. 넓은 땅을 차지하기는 하였지만 이걸 통치하지는 않았거든요. 이제부터는 제국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하는 것을 몽골 사람들이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몽골제국의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들 결정적인 순간들은 오늘부터 나오게 돼요. (팡파르~).
최원정: 몽골군이 목표가 달라졌으니까 단단히 준비를 했겠네요.
최태성/한국사 강사: 당연하죠, 정말 단단히 벼르면서 단단히 준비를 하는데 무려 15만병력을 동원해서 現러시아 루스, 이쪽부터 시작이 되는 겁니다.
이익주: 이때 루스는 여러 개의 공국으로 분열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결국 몽골이 루스를 쉽게 점령을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이 러시아 지역의 가장 큰 공국이였던 키예프 공국, 1240년 이 키예프 공국을 3년만에 점령을 합니다. 몽골군의 키예프 공격이 러시아 역사를 바꾸어 놓습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러시아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공국은 키예프 공국이었어요. 그런데 키예프 공국이 증발하면서 바투가 그 지역을 통치하게 되고 주치 울루스(킵차크 칸국)라고 하는 우리가 킵차크 칸국이라고 알고 있었던 나라가 그 나라인데 그 나라가 이 지역에 들어서요. (주치 울르스(킵차크 칸국)-몽골 제국의 분열 이후 설립된 4대 칸국 중 하나 서방침공의 총지휘관 바투가 통치). 유라시아 대륙에서 몽골의 지배를 가장 오래 받은 지역이 러시아 지역입니다. 240년 정도를 몽골의 지배를 받아요. 1480년 이 주치 울루스를 몰아낸 것이 모스크바 공국이지요. 원래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었던 모스크바가 이때부터 주치 울루스에 협력을 해 가면서 커가기 시작해요. 그래서 이것이 모스크바 대공국으로 발전하고 지금 러시아의 수도가 된 겁니다. 그 시작이 이때 몽골의 러시아 지역 점령에 있었던 겁니다.
최원정: 그야말로 나비 효과네요. 몽골군에 의한~
최태성: 교수님, 이게 240년이면 중국의 한 왕조의 수명이에요. 어마어마한 기간을 통치한 거예요.
최원정: 러시아 속담에 몽골이 들어가는 속담이 꽤 많더라구요. 다 나쁜 의미에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타르타르보다 나쁘다 이런 식으로 엄청 많데요. 그러니까 이직도 공포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이 도어 있는 거에요.
이시원: 너 계속 울면은 몽골 사람이 데려간다.
최원정: 메뚜기 떼 지나가듯 몽골군 지나가듯 초토화 됐다 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속담에 투영되었다.
허준: 그러니까 지금 현대에 와서도 그것에 대한 끔찍한 기억 때문에 정신승리를 하기 위해서라도 퓨리어스 같은 영화가~
이시원: 현실에서 너무 비참했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라도 그런 영화를 만들어서~
최태성: 러시아를 침략한 몽골, 다음 진격지는 저쪽 동유럽 폴란드와 헝가리를 진격해 들어갑니다.
이시원: 서쪽으로 진격하는 거네요.
조원희: 그리고 이때부터 이미 러시아의 난민들을 통해서 몽골군의 공포감이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굉장히 두려워 하고 있었죠. 당시 기록을 보면 몽골에 대해서 단단한 가슴에 눈썹은 머리카락에서부터 이어지고 눈은 검고 불안해 보인다. 짧은 코는 일그러져 있고 턱은 뾰죽하게 튀어나왔다. 가는 곳마다 불을 지르고 살육을 한다 (마튜 파리스作[연대기]中) 라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이시원: 너무 무서운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은데~
허준: 일본 전설에 등장하는 괴물 덴구(天狗) 얼굴이 찌그러져있고~
이시원: 어머니한테 들은 예전에 반공포스터 그릴 때 북한 사람들을 도깨비처럼~
허준: 어머니요? 시원씨 빼고 여기 있는 사람 다 그려봤어요.
이익주: 나만 그려 본 줄 알았어요.
이시원: 반감, 두려움이 복합돼서 이상한 그림이 생긴 것이에요.
최원정; 그 정도의 급이 온다면 다 항복해야 되는 거 아녜요?
최태성: 그런데 유럽이 항복하지 않고 싸우기로 하는데,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광용/아나운서: 유럽을 사수하기 위한 비장의 카드, 바로 유럽 각지에서 선발된 3만명의 최정예 병사들이었습니다. 이중에는 십자군 원정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템플 기사단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정체불명의 이교도가 유럽에 쳐들어온다. 이 사실만으로도 유럽연합군의 전투 의지는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박금수: 사실 이전 전투에서 유럽 연합군은 겉모습, 외양만으로는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었는데요. 바로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체인 메일을 입고 칼과 방패를 들고 이글이글 무시무시한 눈빛 기사등장)---------
최태성: 저 갑옷이 돼게 유명한 거 잖아요. 베기로는 절대 공격이 불가능한 갑옷~
박금수: 유럽 연합군의 무장의 핵심은 바로 체인 메일(chain mail) 이었습니다 (완벽한 방어구) 링으로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움직이기에 편안한 옷입니다. (체인 메일(chain mail)-쇠사슬을 엮어 만든 고대-중세 유럽의 갑옷, 편한 움직임이 장점). 특히 어깨의 움직임이 자연스럽죠. 가죽 갑옷이든 판 갑옷이든. 어깨 움직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체인 메일은 어깨가 편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동작을 활발하게 할 수가 있구요. 공격 각도도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습니다. 움직일 때 마다 철컹철컹 쇠사슬 소리가 나요.
이시원: 소리 때문에 여러 명이면 위압감도 생길 것 같애요.
박금수: 전신을 링, 철로 만든 링이 감싸고 있잖아요. 칼 등 베기 공격으로 대미지를 주기가 어렵습니다. 대신에 화살 등 찌르기 공격에 약하다. 멀리서 쏘는 화살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죠.
이광용: 지금 무기는 어떻습니까?
박금수: 무기는 영어로 long sword 길고 직선형의 검, 기니까 사정거리가 길겠군. 무게감이 있기 때문에 충격에는 강합니다. 쪼개는 힘이 강해요. 유명한 기사들을 칭송한 기사를 보면 말과 사람을 한꺼번에 잘랐다는 기록도 나올 정도로 강력한 무기였죠. 방패는 카이트 쉴드 Kite shield 연 모양의 방패로 노르만 쪽에서 전통적으로 쓰는 방패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체인 매일의 단점을 충분히 보안할 수 있겠죠.
이광용: 무엇보다 유럽 기사단의 강점은 표정인 거 같애요.
최원정: 눈 빛이 이글이글 굉장히 화난 표정이세요.
허준: 가장 무서운 건 저 작은 구멍에 눈코 입이 다 들어 갔다는 거에요.
박금수: 동작도 한 번 보실까요? 동작~ 컷~ 찌르기
이광용: 이렇게 준비된 전투경험까지 갖춘 유럽의 정예군, 전운이 감돌고 있던, 1241년 4월 9일, 드디어 유럽 연합군은 몽골군과 폴란드 레그니차 인근 평원에서 맞닥드리게 됩니다. 평원 너머에서 몽골군의 함성이 들리기 시작하구요. 유럽연합군도 긴장된 표정으로 공격태세를 갖추기 시작 합니다. 그때 몽골군이 나타납니다. 문명의 충돌, 몽골군 VS 유럽연합군,
허준: 라이거 게임에서 한 장면 보는 거 같애요.
이광용: 그러면 게임 전문가의 선택은?
허준: 지금 저렇게 붙었을 때 무조건 유럽이에요. 방패로 막으면서 공격해 들어가면 검을 막을 수가 없어요.
박금수: 몽골군의 칼의 모양이 휘어져 있죠 (몽골군의 무기=곡선형의 곡도). 영어로는 싸구려 라고 부릅니다. 사실 동양이나 이슬람에서 많이 썼었는데 칼이 유럽에 영향을 주어서 펜싱 종목에 sabre (사브르)가 있어요. 그 정도로 어쨌던 유목 기마민족이 많이 썼던 칼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까 체인 메일이 뭐에 강하다고 했죠?
허준: 베기~
박금수: 베기 공격에 강하잖아요. 약간 불리해 보이죠. 칼 길이면 원래 짧은데 휘어져 있으니까 더 짧아요. 이때에 불리해 보입니다. 그런데 몽골군에게 뭐가 있죠. 활이 있습니다. 활이 있기 때문에~
이광용: 너무 몽골군만 편드는 거 아닙니까?
박금수: 왜 그럴까요? (스쳐 지나가는 몽골군 시절의 추억), 그런데 초반 승세는 유럽 연합군이 차지하게 됩니다. 몽골군은 수세에 밀려요. 여기에 유럽 연합군은 승세를 타 신나게 쫓아 들어가는 거죠.
이광용: 동양과 서양의 군대가 제대로 맞붙었던 이 전투,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요?
해설: 1241년 폴란드 인근 레그니차 평원, 사슬 갑옷과 투구로 중무장한 유럽 연합군이 러시아를 격파한 몽골군과 마주쳤다. 유럽 연합군의 눈에 비친 몽골군은 악마의 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 발의 화살이 전투의 시작을 알리고 달려 나오는 몽골군에 맞서 유럽 연합군의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몽골어로) 몽골군은 유럽 기사단이 맞서 나오자 놀라서 도망하기 시작했어--------------도망치는 몽골군의 모습에 기세가 오른 유럽 연합군은 몽골군의 뒤를 추격한다. 유럽 연합군이 오랜 추격과 무거운 갑옷에 지칠 무렵 상황이 반전됐다. 매복해 있던 몽골군의 반격이 시작된다---------------(몽골어로) 몽골 기병들은 유럽 기사단을 보고 일부러 퇴각해서 그들을 끌어들인 거짓 후퇴하다가 활로 갑자기 반격하는 이 전술을 만구다이 라고 해----------------
해설; 레그니차 평원에서 벌어진 유럽 기사단과 몽골군의 전투는 몽골군의 승리로 끝났다.
최원정: 얕잡아 봤는데 몽골군의 기만전술에 망구다이 때문에 망했어요.
허준: 전투 초반 실제 공격을 받으며 유럽군을 교란했기 때문에 유럽군도 기만전술에 속을 수 밖에 없는 상황,
이시원: 몽골군은 연기도 잘해야겠어요.
최태성: 기본적으로 중세 유럽의 기사단의 경우는 일단 싸울 때 후퇴라는 걸 치욕적으로 여겨요. 적에게 등을 보인다 이건 기사단에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이건 반칙이죠. 이러면 안돼.
이시원: 아니 죽고 사는데 반칙이 어디 있어요?
최태성: 그들에겐 그런 문화가 없었던 거예요. 생소한 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유럽 기사단, 더 공포인 걸 몽골이 후퇴할 때 기사단이 가고 있으면 양 옆에서 똑같이 따라 함께 달리는 거예요. 똑 같이 달리면서 마치 먹잇감이 안에 있는 것처럼 사냥감 몰이하듯 유럽군을 몰았던 몽골군~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를 느꼈을 유럽연합군~좌우 측면에서 끌어들이고 있으니~
조원희: 결국은 이렇게 해서 폴란드의 전쟁은 몽골군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최태성; 실제로 유럽 연합군은 전멸하지 않나요?
조원희: 어쨌던 이 전투에서는 폴란드가 완전히 패배를 하고 3만 병력이 대다수 전사했다고 하고~ 당시 몽골 군인들은 패배한 유럽군의 귀를 짤라서 포대에 모았다. 포대가 아홉 개나 됐다는 얘기도 있구요 (에릭 힐딩거 作 [초원의 전사들]中-몽골군은 (…) 시체에서 귀를 잘라 아홉 개의 큰 포대에 담아 헝가리에 있는 바투와 수베데이에게 보냈다). 폴란드 왕이었던 헨리크 2세가 목이 잘려서 깃발이 든 창에 들고 다녔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에릭 힐딩거 作 [초원의 전사들]中-헨리크 대공의 머리는 창에 꽃혀 (…) 레그니차의 성벽 앞에 전시되었다). 조금 과장된 것도 있을 법한데 어쩌면 그만큼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그게 아까 말씀드린 공포의 체계적인 전략, 그것의 일환으로 이해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최태성: 몽골의 다음 목표는 어디냐 하면 헝가리, 헝가리를 향하여 들어가는데 이쯤되면 많은 분들이 그러더라구요. 헝가리 항복해야지. 그런데 헝가리는 절대 항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헝가리 사람 이라면 외적이 쳐들어 오는데 항복하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허준: 헝가리는 우리가 그냥 유럽에 있는 나라지 하는데 예전에 헝가리는 싸움 정말 잘하고 제국이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최태성; 그래서 헝가리도 단단하게 준비하구요. 무려 10만 병력을 모아 놓고 몽골군과 싸웁니다.
최원정; 싸울만 하네요. 10만 병력이면~
최태성: 이쯤되면 결과는~ 져요~
이시원: 설마 또~ 몽골의 망구다이(기만전술)로?? 몽골군 입장에서는 저네들 정말 계속 당하네~ 그랬을 것 같애요.
조원희: 몽골제국의 기만전술과 기동성, 그리고 여전히 낯선 전술을 몰랐을 것이다 라고 생각도 들고 또 그렇게 저항하는 헝가리를 대상으로 몽골이 엄청난 파괴를 자행합니다. 심지어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다고 하구요. 죽진 않았지만 납치되어 포로로 데려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시원: 헝가리 인구의 3분의 1이 줄었다는 건 여자 어린아이 노인을 빼고 전투 가능한 인구, 성인남자가 대부분이 사망했다는~
허준: 아니지 그런 구분 없이 몰살했다는 거지~
최원정: 사실 한 달 사이에 유럽이 지금 수십만명이 죽은 거잖아요. 동유럽이 이렇게 되면서 서유럽에서도 소문이 들려왔겠네요.
이시원: 굉장히 무서웠겠다.
이익주: 그렇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생각할 때 가장 큰 고민은 뭐냐면 누가 왜 그랬는지를 전혀 몰랐다는 거예요. 이 당시 유럽이라고 하는 곳은 기독교 세력이잖아요. 우리가 흔히 중세 암흑기 라고 하는 거죠. 그때가 되는 건데 바깥 세상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을 때에요. 이렇게 폐쇄적인 사회에 갑자기 미지의 존재가 나타나서 죽이고 부수고 이렇게 했을 때 정말 패닉 상태가 될 수 밖에 없죠.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꼭 고려 생각이 나요. 몽골이 고려를 쳐들어왔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을 거 같애요. 그래서 고려 사람들이 뭘했느냐 하면 8만 대장경을 만들었습니다. 방법이 기도하는 것 밖에 없는 거예요. 아마 이 당시 유럽 사람들도 하나님을 찾을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애요.
최태성: 실제로 이때 몽골의 이야기가 공포의 극대화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예를 들면 몽골 사람들이 시신을 먹는다더라. 몽골 사람들은 목이 마르면 피를 마신다더라. 이렇게 되니까 전쟁이 아니라 종말의 시대가 왔나 보다 신의 저주~ 죽음의 사자가 와서 우리를 끝내려는가 보다 종교적인 신앙으로 밖에 갈 수가 없는 거예요.
최원정: 폴란드-헝가리를 넘어 서유럽으로 진격하는 몽골군~ Enemy at the gates 적이 문 앞에 와서 똑~똑~하고 있어요.
이익주: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인 빈까지는 지형지물이 없어요. 그냥 평야입니다.
이시원: 그래서 보통 유럽여행 갈 때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오스트리아 빈을 패키지로 묶어서 가거든요.
이익주: 강이 도나우 강~부다페스트에서 도나우 강으로 가면 바로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요. 말 달리면 그대로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최태성; 오스트리아 입구까지 왔으니까 그쪽 사람들은 얼마나 두려웠겠어요. 완전히 그냥 벌벌 떨고 있는~ 칼을 들고 멀리서 말발굽이 보이는 소리~ 먼지~정말 눈 똥그랗게 뜨고 보그 있는 거예요. 근데 이게 1년, 2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몽골군~
최원정: 과연 몽골군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을까요?
최태성: 궁금하죠~
-------(모닥불 피워놓고 침묵에 빠진 몽골군 등장) 엄격~ 근엄~ 진지한~ 불멍 중?-----------
일동: 이게 뭐야
최원정: 표정은 너무 심각해요.
허준: 저게~ (현자 타임 온 몽골 군사들…?) 우리 어디까지 가~?
최원정: 식량이 다 떨어져서 배고파서 저러고 있나?
이익주: 회의하고 있잖아요. 몽골군이 서유럽 침략을 눈 앞에 두고 갑자기 회군합니다. 몽골로 다 돌아가요. 그런데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것은 추측할 수 밖에 없는데~ 첫째 지휘부에서 바투와 수베타이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둘째 이 지역의 주인이었던 바투가 원래 헝가리 서쪽으로는 관심이 없었다, 세번째 폴란드-헝가리 초원이 양을 키우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이런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그때 몽골에서 우구데이 칸이 죽어요. 1241년에 우구데이가 죽는데 그 바람에 다음 칸을 누구로 할까 결정하기 위해서 각지에 파견되어 있던 몽골 주요인사들이 모두 카라코름룸로 돌아갔다 라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최원정: 저는 선뜻 이해가 안 가는게 전쟁정국에서 대선정국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쫙 빠지고~
조원희: 몽골제국이 칸이 죽으면 항상 대집회, 쿠릴타이를 통해서 가능하면 만장일치, 모든 사람들의 합의를 구하는 식으로 얘기를 하고 (쿠릴타이-몽골 부족의 중대사항을 협의하는 대회의), 그리고 황금 씨족이 다 후보군이 되기 때문에 지금은 전쟁에서 땅을 차지하는 것보다 돌아와서 내가 맡는 칸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니까 돌아오게 되는 겁니다. 우구데이가 죽고 다음 칸을 선출하는데 일단 3년이 걸렸어요. 3년이 걸리고 나서 다음 칸으로 선출이 된 사람이 구육 칸, 구육 칸도 어찌하다 보니까 2년만에 죽어요.
최원정: 엎친데 덮친다~
조원희: 구육 칸이 죽은 다음에 이번에는 몇 년간 공백기간이 있었느냐 하면 5년 동안 공백기가 생깁니다 (구육사망-5년-몽케 선출). 왜냐면 실제로 이 사이에 집안이 바뀝니다. 우구데이 집안에서 툴루이 집안으로 그러면 3+2+5=10년 동안 회군이후 10년 동안 서방원정 서방침략을 중단하게 됩니다.
최원정: 전쟁은 그렇게 효율적으로 잘 하면서 정치 쳬계는 왜 그렇게 비효율적이에요?
이익주: 몽골 제국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이 바로 이겁니다.
최태성: 교수님은 이해하시는 거죠?
이익주: 저도 외웠어요. 잘 아시잖아요. 역사는 암기 과목이잖아요. 몽골제국은 망할 때까지 왕위계승의 원칙을 끝내 만들지 못했어요. 그래서 망할 때까지 한번도 평화롭게 칸의 자리가 계승된 적이 없습니다. 칸이 선출될 때마다 꼭 싸웠는데 이 사람들의 이런 약점이 세계에 축복을 준 것이기도 해요.
최태성: 그러게요 얼마나 다행이야
이익주: 고려도 그 축복을 받습니다. 고려 몽골 사신 저고여가 암살돼잖아요. (저고여 피살사건-1225년 몽골 사신 저고여가 고려에서 피살, 몽골 침입의 명분이 됨). 몽골 사신이 고려에 와서 죽었어요. 몽골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데 그로부터 얼마 뒤 1227년 갑작스럽게 칭기즈칸이 죽었어요. 그리고 우구데이가 칸이 될 때까지 2년 시간이 있었고 우구데이가 칸이 되자 마자 1231년 고려를 침략해 왔어요. 그런데 고려를 공격하다 보니까 1241년 전쟁 중 갑작스레 우구데이가 사망합니다. 칸 사망으로 고려는 전쟁 중 휴식을 취하게 됩니다.
이시원: 그런 것처럼 유럽도 자연스럽게 전쟁 중 휴식을 취하게 되었네요.
최원정: 재무장할 수 있는 시간을 번 거죠.
이익주: 정말 축복을 받은 거예요. 그런데 유럽은 그때 몽골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해요. 누구지? 왜 우리를 공격해 들어오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몽골 쪽으로 눈을 돌리고 사람을 보내서 파악을 할려고 합니다(미지의 적-몽골을 알기 위해-노력하기 시작한 유럽). 이노센트 4세 교황이 내가 저 몽골 사람들을 설득해 볼꺼야. 더 나아가서 내가 개종시킬 거야. 교황님 다운 생각이죠. 그래서 카르피니 수도사를 몽골 수도 카라코룸으로 보냅니다. 마침 그때 구육의 지위가 있던 그 자리에 카르피니를 보내서 구육에게 커다란 선물을 줄려고 하는 거예요. 당신의 즉위를 이방인도 축하하러 멀리서 왔습니다.
허준: 구육이 좋아했겠다.
이익주: 그렇죠, 그림이 그려 지잖아요. 카르피니가 환대를 받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데 보고의 내용은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그러니까 구육 칸이 하나님이 누구인데?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이 다 내 땅인데 (1246년 구육 칸이 교황에게 보낸 서신 中-모든 땅이 짐에게 복종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신의 뜻) 그 다음 말이 더 경악스러워요. 모든 국왕들을 데리고 나에게 와서 머리를 조아려라 그러면 무사할 것이다 (1246년 구육 칸이 교황에게 보낸 서신 中-당장 몽골 제국에 항복하고 교황을 비롯한 기독교 국가의 왕공들은 나에게 찬조하라). 이런 문서를 보냈는데 이 문서가 지금 바티칸에 남아 있어요 (바티칸 공문서관에 보관된 구육 칸의 답서). 귀중한 자료죠.
이시원; 그러면 이거 아무래도 교황의 체면이 구겨졌겠어요.
이익주: 체면 구겼어요. 교황이 체면을 구기니까 아주 신앙심이 돈독했던 프랑스 왕 루이 9세가 준비 해 1253년 루브룩 수도사를 또 보내요. 역시 설교를 하거나 이런 건 못하고 똑 같은 대답을 듣고 오는데 뜻하지 않은 수확이 있습니다. 카르피니와 루브룩이 전부 책을 썼어요. 몽골기행이란 책을 써서 몽골을 유럽 세계에 알립니다. (카르피니 <몽골인의 역사>, 루브룩 <몽골기행> 저술), 이런 책들이 마르코 폴로의 선구가 된 거에요 (수도사들의 몽골여행기). 이러면서 유럽 사람들이 몽골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한번 가볼까 가보고 또 와서 견문록을 쓰고 이러면서 서유럽 사람들이 이 넓은 세상에 대해서 눈을 열게 된 거죠.
최원정: 그 동안 폐쇄적이었던 중세사회 유럽이 드디어 세계로 시야를 돌리기 시작했어요. 굉장히 큰 사건이네요.
최태성: 죽다 살아나니까 뭔가 그제서야 돌파구가 열리게 된 거예요.
최원정: 유럽이 이제 아픈만큼 성숙해 진 거예요.
이시원: 저는 데미안의 소설 문구가 생각나요.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는 나를 깨야 한다 라고 하잖아요. 유럽이 어떻게 보면 강한 충격으로 인해서 알에서 부화해서 처음으로 세상을 보게 된 거네요.
조원희: 몽골의 침입으로 멸망 직전까지 갔으니까 살아야 되고 그러다 보니까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게 된 것이죠.
이시원: 이거 참 나비효과인데~ 그러면 이제 평화가 오는 건가요?
최원정: 그런데 제국을 향한 몽골의 야망은 여기서 끝나지를 않잖아요. 몽골은 이제 이곳으로 향합니다.
해설: 13세기 아바스 왕조의 수도였던 바그다드, 이슬람 문화의 성지와도 같았던 이곳도 몽골군의 말 발굽을 피할 수 없었다. 20년 가까이 계속된 몽골군의 거센 공격, 아바스 왕조의 군사들은 분전했지만 1258년 몽골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바그다드가 함락된다. 그리고 찾아온 변화, 아시아는 물론 이슬람-유럽의 문명이 몽골이라는 이름 안에서 교류하며 인류사에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된다.
-------이광용 아나운서가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청바지로 캐주얼하게 입고 CD를 한 장 들고 등장: 안녕하세요? 스티브 광스? 묻지 마세요 나는 진지 합니다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
최태성: 왜 그러세요?
이광용/스티브 광스: 이 날을 우리는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스티브 광스의 몽골버전 프레젠테이션) 아시아~유럽~이슬람----아시아~유럽~이슬람~ 서로 정말 다르고 멀리 떨어져 있는 세계가 조화를 이룬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요? 그 고민 끝에 우리는 생각해 냈습니다.-----------연결---------이 연결을 통해 우리 상상은 현실이 되는 세상입니다. 소개합니다. 인류 역사에 이전에도 없었던 새로운 연결망 JAM--------------
일동: 90년대 아이돌 그룹 ZAM?(시나 빙의 해제?-갑자기 춤을 추는 스티브광스)
이광용: (먹는) 잼 아니고요, 몽골제국 안에 뿌려진 수천개의 잠 (JAM), 이제 이 잠들이 거미줄 처럼 얽히며 세계로 통하는 길이 만들어진다. 대륙 끝과 끝의 문명이 몽골이라는 세계 속에서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시원: 그래서 그 잠이 뭔가요?
이광용: 그것은 여기에서 (6명 패널) 설명해 주실 것입니다.
이익주: 이 잠은 중국어로 Zhan 참 한자어로 站 이라고 씁니다. 우리 말로는 역(驛) 이에요. 그래서 이 둘을 합쳐서 역참(驛站) 이라고도 하죠. 장거리 여행을 할 때 중간 중간에 쉬기도 하고 거기서 말도 갈아타고 일종의 터미널 같은 곳이죠. (잠(Jam)-장거리 공공-유통 업무를 위한 교통-통신기관 숙소 및 말 등을 구비). 유라시아 대륙 거의 전부를 걸쳐서 잠을 설치해 놓고 교역을 했는데 터미널로 계속 활용이 되는데 몽골제국 시기에 이것이 아주 발달을 합니다.
이광용: 신밧드가 탔다는 바그다드 고급 양탄자가 유럽 귀족의 거실에 깔리고 헝가리의 향긋한 코카인 와인을 북경사람들이 파티에서 마시는 이런 상상, 몽골제국 안에서는 누구나 이런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시원: 환상의 나라인 데요.
이광용: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이것도 마찬가지~
----------------(비밀의 문이 열리고) 기독교 복장을 한 성직자, 불교 복장을 한 스님, 이슬람 복장을 한 성직자, 기독교 불교 이슬람-----그런데 몽골의 수도 카라코룸에선 세계 모든 종교가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있습니다----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세계 평화를 위해 힘써 주세요-------
이광용: 새로운 문명이 만나고 그것이 하나가 돼 조화를 이루는 세상 몽골제국에서 여러분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사과 먹는 말 등장 one nation one Mongolia---------
일동: Bravo!~~
최원정: 역참과 역참 사이를 한~참 이라고 그래서 우리가 한참 기다린다. 한참 가야한다. 그 어원이라면서요. 재미있는 것 같애~
이시원: 몽골의 문화가 한국말에도 녹아 있네요.
최원정: 그리고 잠을 통해서 문명이 교류했다는 것도 굉장히 혁신적인 발상이에요.
허준: 지금도 사실은 현대인들도 사용하는 말 중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란 말이 있잖아요. 사실 넓이나 길이로 따지면~
최태성: 비교 불가, 로마길 좁아요.
허준: 이제는 말을 바꿔야 되겠어요. 모든 것은 잠(Jam)으로 통한다.
최태성: 그렇지, 맞아
이시원: 잠이 무역이나 교역의 허브 같은 점들이 되었던 거네요.
조원희: 아까도 말씀하셨는데 로마제국의 근간이 됐던 도로, 실제로 도로를 만드는데 돈도 많이 들고 관리비도 많이 드는데 몽골은 그것보다 훨씬 혁신적인 중간 중간에 잠을 꽂아 가지고 이어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낸 거구. 또 일단 잠을 찍어내어 하나하나 연결 할 때 보다 영역이 넓어지는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정말 몽골이 잘한 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시원: 또 어떻게 보면 길이라는 선이 아닌 점으로 연결한 거잖아요. 저는 이게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에 넘어간 거 같애요. 딱 0 아니면 1., 잠(Jam)을 통해 빠르고 방대한 정보를 축적하게 되었잖아요.
최태성: 여기는 상인들이 많이 이용할텐데 제일 중요한 게 뭐냐 하면 내가 저곳에 가면 안전하게쉬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공간이 생긴 거에요. 이렇게 되면 굉장히 편안함을 가지고 이동할 수 있는 것이죠.
이익주: 그렇죠, 못가는 데가 없다. 또 한 가지는 안전하다. 그리고 빠르다까지 포함이 돼요. 말이 전부 있기 때문에 굉장히 빨리 이동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정말 잠(JAM)이 점 같애요. 이게 디지털의 이미지를 갖않아요. 이렇게 되면 요즘 많이 나오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세요?
허준: 점조직?
이시원: 디지털 시대의 플랫폼 (platform).
이익주: 플랫폼 같은 생각이 들죠. 요즘 얘기하는 플랫폼은 사람들을 어디다 모우는 거예요. (플랫폼(platform)-다양한 서비스-콘텐츠가 자유롭게 모이는 유-무형의 공간). 몽골지역이 하나의 마당을 만들어 준 겁니다. 유러시아 대륙이라는 굉장히 큰 마당을 만들어 주고 여기에 점을 찍어서 잠을 만들어서 거대한 네트워크를 깔아준 거예요. 그러면 여기에 와서 장사하고 싶은 사람은 장사하고 살 사람은 사가고 여행하고 싶은 사람은 여행하고 이러한 일들이 이 안에서 가능해지는 거죠.
이시원; 어떻게 보면 몽골제국은 프랫폼 사업을 한 거나 마찬가지네요.
이익주: 그렇죠, 자기 콘텐츠 없이 플랫폼만 만들어 준겁니다.
조원희: 저희가 앞에까지는 몽골제국의 살육전이니 정복전쟁이니 침략전쟁이니 했지만은 동시에 일단 정복을 하고 안정을 갖추면 거기에 있는 문화와 종교를 사람들이 다 보호해주고 존중해 주었거든요 또 실제로 칭기즈칸이 모든 종교를 차별 없이 동등하게 대우하라는 말을 했다고 하니까 그 유지를 이어서 몽골제국이 이런 플랫폼을 만들 수 있었던 거고 그 속에서는 단순히 그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다양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서 자신들의 통치와 제국의 활용에 이용했다 라는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최태성: 처음엔 무자비한 몽골인데 참 자비롭네요 (그렇게 보일 수도).
허준: 이게 진짜 계획하에 한 거예요 아니면 우연이에요?
최원정: 진짜 하다보니 이렇게 된 거예요. 하늘이 내린 선지자 예언자도 아니고 이상하잖아요.
조원희: 칭기즈칸이 위기를 극복하며 깨달은 개방성도 있고 아들과 손자들이 그 만큼 잘 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만 잘 모르겠으면 그냥 외우세요.
최태성; 인과관계를 찾는 것도 무리야~
최원정; 너무 어마어마한 스케일이니까
이시원: 시작은 미약했지만 그 끝은 창대했다. 시작은 잔인했지만 끝은 아름다웠다. 이런 느낌이네요.
이익주: 아니에요, 아니에요, 미화할 건 또 아닙니다. 몽골제국이 잔인했다는 측면이 있다는 거고, 몽골제국의 플랫폼을 만든 것을 보면 자기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라는 게 첫번째 조건인 거 같애요. 그리고 또 한가지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이익이 돼 이런 계산도 하겠죠. 내가 이걸 만들어서 세상 사람들을 이롭게 해주어야지 이건 결과론적인 해석인 것이고 행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이 정도 설명은 해주고 외우라고 해야죠.
조원희: 큰 깨달음 명심하겠습니다.
최태성: 어쨌던 간에 몽골제국이 이렇게 형성되면서 닫혀져 있던 문명들이 서로 연결되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는데 그 연결되는 결과물들이 정말 많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이거 같애요. 바로 청화백자 라는 건데~
이익주; 좀 더 품질이 좋았는데 좋았을 텐데 색이~ 우리가 도자기 라는 물건을 그냥 사용하지만 저 걸 생각하면 놀라운 물건이에요. 이것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세 가지 기술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1300도 이상을 올릴 수 있는 가마기술, 그리고 1300도 이상에서 그릇이 부서지지 않는 재료, 흙 그리고 1300도 이상에서 푸른 빛이 변색되지 않는 물감 그런데 흙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하면 중국의 양쯔강 이남의 진도전 이라는 곳에서 나와요. 이걸 고령토 라고 하죠. 그리고 파란색 물감은 시리아에 있어요.
이시원: 시리아요?
최원정: 그러니까 여기까지 와야지~
이익주: 그렇죠, 저쪽 남쪽에 있는 흙 (양쯔강 이남 중국의 고령토)과 이쪽 중동에 있는 물감이 만났을 때 청화백자가 만들어 질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몽골제국이 아니었으면 저건 만들어질 수 없는 자기입니다. 몽골제국 플랫폼의 산물 (청화백자).
최원정; 그래서 저걸 가지고 나오셨구나
최태성; 이 안에 세계가 담겨 있습니다.
이시원: 유라시아의 끝과 끝이 만나는 느낌이네요.
최원정: 문명의 충돌 그 뒤에는 문명의 융합이 나타나는 그 결과물 중의 하나인 거예요.
이익주: 이 청화백자가 17세기에 유럽 사람들의 눈에 띄어요. 유럽 사람들이 저걸 너무나 놀랍게 본 겁니다. 특히 블루, 중세 유럽에서 그려진 성화를 많이 보시죠. 거기에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이 누군지?
이시원: 성모 마리아~(마돈나 델레 옴브레-프라 안젤리코).
이익주: 맞아요. 마리아만 파란색 옷을 입습니다. 중세 유럽 마리아가 입은 블루(Blue)가 고귀함의 상징이었던 거죠. 그 고귀함(Blue)이 도자기에서 구현이 된 거에요.
최태성: 영롱하도다
허준: 유럽은 무슨 그릇을 썼어요?
이익주: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면 금속제하고 유리잔을 써요. 그래서 로마 문명은 유리로 발전하고 중국문명은 도자기로 발전하는데 이 도자기가 언젠가부터 유럽으로 전파되기 시작합니다.
최태성; 놀라셨죠? 근데 좀 더 놀라셔야 되고 좀 더 재미있어야 돼요. 최원정 아나운서님~ 너무 사랑하는 이것이 되었다. 이것은 무엇인가요?
허준: 술인데요
최원정: 나 좋아 이런거 나 책 좋아해요.
최태성: (일단 한번 따라 보자 백자에서 잔에다 물을 따름) 청자백자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느낌의 액체, 냄새 맡아 보면 아시겠죠?
최원정: 이슬 맛이 나는 거(?) 네
이시원: 처음 맛 본 느낌이네요.
조원희: 두꺼비가 생각나네요.
최태성: 맞습니다, 정답은 소주~ 소주입니다.
최원정: 이게 오디서 왔다구요?
최태성: 아락 이란 말이 땀을 뜻하는 아랍어 예요.
이시원: 그럼 아랍 쪽의 증류주가 고려시대까지 전파된 거예요?
이익주: 몽골제국이 동서문화를 아우르면서 이슬람 문화가 동쪽으로 건너오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증류주예요. 아락이 알코올과 비슷하지 않아요? 증류는 알코올과 물의 꿇는 점을 이용하는 거죠. 이걸 가장 먼저 발견한 지역이 이슬람 지역이다 (증류법-알코올-물의 꿇는 점 차이를 이용, 고농도 알코올을 추출). 여기에서 개발된 증류법이 몽골을 통해서 고려까지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고려말에 이색이란 분이 있죠. 이색은 한 마디로 하루라도 술과 시가 없으면 안된다. 술 좋아하는 시인이었는데 아락의 길에 아락 주가 등장해요. 선물을 받은 겁니다. 반잔술 넘기자 마자 훈기가 뼈 속까지~ 표범 가죽 보료 위에 금 병풍에 기댄~
이시원: 증류주가 좋은게 숙취가 없어요.
최원정: 우리가 참 좋아하는 소주가 오늘 이렇게 얘기가 나올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조원희: 술도 재미있고 소주도 재미있지만 그 외에 다른 것도 많이 있습니다. 이 시기에 중국에서는 이슬람의 역법, 달력을 참고하기 위해서 역법을 고쳐나갔다는 얘기도 있구요. 아까 교황청에서 발견된 구육 칸의 편지, 그 편지 중의 일부는 종이가 고려에서 만든 것이다 라는 학설도 있어요. 이렇게 사람과 사상과 재화가 곳곳으로 이동하는 세계가 몽골이 만든 이 거대한 세계였습니다.
최원정: 오늘 몽골이 러시아를 침공한 그날을 시작으로 해서 몽골제국 아래 다양한 문명들이 만나는 세계사적으로 거대한 흐름을 만나는 날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가 시작을 허준씨와 함께 영화 이야기로 시작을 했잖아요. 마무리는 영화 한 줄 평으로 끝낼까 합니다.
이시원: 파괴와 창조의 신의 얼굴은 하나다인 거 같애요. 처음에는 파괴로 시작했지만 그 파괴가 결국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습니다.
조원희: 제가 생각했던 것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그리고 세상을 연결했노라.
최원정: 지금까지 이런 나라는 없었다 악마인가 창조자인가.
이익주: 몽골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이중성이 혼돈되지 않으세요. 극단의 파괴와 커다란 플랫폼을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이 몽골제국을 볼 때도 그렇고 모든 역사를 볼 때 사실과 주장을 구별해야 한다. 몽골이 어땠는지 이런 저런 주장을 바탕으로 역사를 이해하기 보다는 그때 어땠는지를 직접 보려고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최원정: 몽골제국을 위한 이야기,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끝. (KBS 역사저널 그날, 칭기즈칸의 나라, 몽골제국 [제4편] 칭기즈칸의 후예, 유럽을 침공하다에서 정리).
① 2019 개봉작, 러시아 영화 퓨어리스는 1237년 몽골군이 러시아를 침공한 것을 다룬 영화다, 당시 러시아는 6일만에 함락이 된다. 러시아 Russia 루스(Rus)가 러시아의 어원인데 이때 나온 이름이다. 몽골군의 러시아 침공은 돈 문제로 봐야한다. 새로운 세금을 징수하고, 새로운 물자를 징발하고, 새로 인력을 징발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서방침략을 한 것이다. 이때 몽골군의 러시아 침공은 중요한 변화의 계기다. 첫번째는 칭기즈칸에서 우구데이로 세대교체다. 또 한가지는 전쟁의 목적이 달라졌다. 칭기즈칸 때에는 약탈하고 파괴하고 살육하였다면 이제는 아니다. 그 지역을 점령해서 통치하겠다. 약탈을 금지한다. 칭기즈칸은 넓은 땅을 차지만하였지 통치하지는 않았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몽골 사람들이 고민하기 시작한다. 몽골군의 침략 목표가 달라졌다.
② 몽골은 15만병력을 동원해 루스 (現러시아)를 공격한다. 루스는 여러 개 공국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루스를 쉽게 점령을 한다. 1240년 러시아 지역의 가장 큰 키예프공국을 3년만에 점령한다. 키예프 멸망으로 러시아 역사가 바뀌었다. 그 당시 러시아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키예프 공국이 증발하면서 바투가 그 지역을 통치하게 되고 주치 울루스(킵차크 칸국)가 이 지역에 들어선다. 러시아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240년간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 원래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었던 모스크바가 이때부터 주치 울루스에 협력하면서 커가기 시작한다. 1480년 모스크바 공국이 주치 울루스를 몰아내었다. 이것이 모스크바 대공국으로 발전하고 지금 러시아의 수도가 되었다. 그 시작이 이때 몽골의 러시아 지역 점령에 있었다. 몽골의 다음 진격지는 동유럽 폴란드와 헝가리이다.
③ 유럽에서는 두려워 하고 있었다. 항복하지 않고 싸우기로 한다. 유럽을 사수하기 위한 비장의 카드는 유럽 각지에서 선발된 3만명의 최정예 병사들이다. 이중에는 십자군 원정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템플 기사단도 있다. 정체불명의 이교도가 유럽에 쳐들어온다는 이 사실만으로 유럽연합군의 전투의지는 불타오르고 있었다. 전운이 감돌고 있던, 1241년 4월 9일, 유럽 연합군과 몽골군은 폴란드 레그니차 인근 평원에서 맞닥드린다. 몽골군 VS 유럽연합군, 한 발의 화살을 신호로, 도망치는 몽골군을 유럽 연합군은 뒤를 추격한다. 유럽 연합군이 오랜 추격과 무거운 갑옷에 지칠 무렵 상황이 반전됐다. 매복해 있던 몽골군의 반격이 시작된다. 결과는 몽골군의 승리다.
④ 몽골의 다음 목표는 헝가리다. 헝가리도 10만 병력으로 몽골군과 싸운다. 몽골제국의 기만전술과 기동성, 그리고 여전히 낯선 전술을 몰랐다. 저항하는 헝가리에 몽골이 엄청난 파괴를 자행하였다.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다. 유럽은 기독교 세력이다. 흔히 중세 암흑기다. 바깥 세상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이렇게 폐쇄적인 사회에 갑자기 몽골군이 나타나서 죽이고 부수고 했을 때 유럽은 패닉 상태였다. 몽골이 고려를 쳐들어왔을 때도 그랬다. 고려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게 그저 8만 대장경을 만드는 것뿐이었다. 기도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당시 유럽 사람들도 하나님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⑤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 빈까지는 지형지물이 없이 그냥 평야다. 말 달리면 그대로 갈 수 있다. 오스트리아 입구까지 왔으니까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벌벌 떨고 있다. 칼을 들고 멀리서 말발굽이 보이는 소리를 눈 똥그랗게 뜨고 보고 있다. 근데 1년, 2년이 지나도 몽골군이 오지 않는다. 몽골군이 서유럽 침략을 눈 앞에 두고 갑자기 회군했다. 다 몽골로 돌아갔다. 그때 1241년 몽골에서 우구데이 칸이 죽었단다. 다음 칸을 누구로 결정할까 각지에 파견되어 있던 몽골 주요인사들이 모두 카라코룸으로 돌아갔다.
⑥ 몽골제국은 칸이 죽으면 항상 대집회 쿠릴타이를 통해서 가능하면 만장일치로 후계자를 선출한다. 씨족이 다 후보군이 되기 때문에 전쟁에서 땅을 차지하는 것보다 돌아와서 칸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였다. 우구데이가 죽고 다음 칸을 선출하는데 3년이 걸렸다. 3년이 걸리고 나서 다음 칸으로 선출이 된 사람이 구육 칸이다, 그도 2년만에 죽었다. 구육 칸이 죽은 다음에 이번에는 5년 동안 공백기가 생겼다. 이 사이에 집안이 우구데이에서 툴루이로 바뀌었다. 그러면 3+2+5=10년, 회군 이후 10년 동안 서방원정을 중단하게 된다.
⑦ 몽골제국은 망할 때까지 왕위계승 원칙을 끝내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망할 때까지 한번도 평화롭게 칸의 자리가 계승된 적이 없었다. 칸이 선출될 때마다 꼭 싸웠다. 몽골의 이런 약점이 세계에 축복이 되었다. 고려도 그 축복을 받았다. 1225년 몽골 사신 저고여가 고려에서 암살되었다. 몽골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데 그로부터 1227년 칭기즈칸이 갑자기 죽었다. 2년후 우구데이가 칸이 되었다. 1231년 우구데이가 고려를 침략해 왔다. 고려를 공격하다 1241년 전쟁 중 우구데이가 갑작스레 사망한다. 고려는 전쟁 중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정말 축복이다. 그런데 유럽은 그때 몽골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몽골이 누구지? 왜 우리를 공격해 오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몽골 쪽으로 눈을 돌리고 사람을 보내서 파악을 하기 시작했다. 교황 이노센트 4세가 내가 저 몽골 사람들을 설득할거야. 내가 개종시킬 거야. 교황다운 생각이다. 그래서 카르피니 수도사를 몽골 수도 카라코룸으로 보낸다. 구육에게 커다란 선물을 준다. 당신의 즉위를 이방인도 축하하러 멀리서 왔다.
⑧ 카르피니가 환대를 받고 돌아와서 하는 보고 내용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그러니까 구육 칸이 하나님이 누구인데?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이 다 내 땅인데 (1246년 구육 칸이 교황에게 보낸 서신 中-모든 땅이 짐에게 복종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신의 뜻), 그 다음 말이 더 경악스럽다. 모든 국왕들을 데리고 나에게 와서 머리를 조아려라. 그러면 무사할 것이다. (1246년 구육 칸이 교황에게 보낸 서신 中-당장 몽골 제국에 항복하고 교황을 비롯한 기독교 국가의 왕공들은 나에게 찬조하라). 이 문서가 지금 바티칸에 남아 있다. (바티칸 공문서관에 보관된 구육 칸의 답서). 귀중한 자료다. 이번엔 프랑스 왕 루이 9세가 1253년 루브룩 수도사를 보냈다. 역시 설교를 하거나 이런 건 못하고 똑 같은 대답을 듣고 오는데 뜻하지 않은 수확이 있었다. 카르피니와 루브룩이 몽골기행이란 책을 써서 몽골을 유럽 세계에 알린다. 이런 책들이 마르코 폴로의 선구가 된 거다. 이러면서 유럽 사람들이 몽골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가보고 와서 견문록을 쓰고 이러면서 서유럽 사람들이 이 넓은 세상에 대해서 눈을 열게 되었다. 그 동안 폐쇄적이었던 중세사회 유럽이 드디어 세계로 시야를 돌리기 시작했다. 굉장히 큰 사건이다. 몽골의 침입으로 멸망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야 되고 그러다 보니까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제국을 향한 몽골의 야망은 여기서 끝나지를 않고 몽골은 이제 이라크로 향합니다.
⑨ 몽골군은 13세기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를 공격한다. 20년 가까이 계속된 몽골군의 거센 공격, 아바스 왕조의 군사들은 분전했지만 1258년 바그다드가 함락된다. 그리고 찾아온 변화, 아시아는 물론 이슬람-유럽의 문명이 몽골이라는 이름 안에서 교류하며 인류사에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된다. 몽골제국 안에 뿌려진 수천개의 잠 (JAM), 이 잠들이 거미줄 처럼 얽히며 세계로 통하는 길이 만들어진다. 대륙 끝과 끝의 문명이 몽골이라는 세계 속에서 하나가 되었다. 이 잠은 한자어로 站 이다. 우리 말로는 역(驛) 이다. 이 둘을 합쳐서 역참(驛站)이다, 장거리 여행을 할 때 중간 중간에 쉬기도 하고 거기서 말도 갈아타고 일종의 터미널이다. 유라시아 대륙 거의 전부를 걸쳐서 잠을 설치해 놓고 교역을 했는데 몽골제국 시기에 이것이 아주 발달을 하였다.
⑩ 앞에까지는 몽골제국의 살육전이니 정복전쟁이니 침략전쟁이니 했지만은 일단 정복을 하고 안정을 갖추면 거기에 있는 문화와 종교를 보호해주고 존중해 주었다. 실제로 칭기즈칸이 모든 종교를 차별 없이 동등하게 대우하라는 말을 했다고 하니까 그 유지를 이어서 몽골제국이 이런 플랫폼을 만들 수 있었던 거고 그 속에서는 단순히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다양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서 자신들의 통치와 제국의 활용에 이용했다. 칭기즈칸이 위기를 극복하며 깨달은 개방성도 있고 아들과 손자들이 그 만큼 잘 했다고도 볼 수 있다. 몽골제국이 잔인했다는 측면이 있다, 어쨌던 몽골제국이 스케일이 크게 형성되면서 닫혀져 있던 문명들이 서로 연결되었는데 그 연결되는 결과물들이 많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청화백자다. 청자백자의 흙은 중국의 양쯔강 이남의 진도전에서 나오고 파란색 물감은 시리아에 나왔다. 몽골제국이 아니었으면 만들어질 수 없는 자기다.
⑪ 몽골제국이 동서문화를 아우르면서 이슬람 문화가 동쪽으로 건너오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증류주다. 증류는 알코올과 물의 꿇는 점을 이용하는 건데 이걸 가장 먼저 발견한 지역이 이슬람 지역이다. 몽골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중성이 혼돈되고 있다. 극단의 파괴와 커다란 플랫폼을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이 몽골제국을 볼 때도 그렇고 모든 역사를 볼 때 사실과 주장을 구별해야 한다. 몽골이 어땠는지 이런 저런 주장을 바탕으로 역사를 이해하기 보다는 그때 어땠는지를 직접 보려고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