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료예약 상담문의 02-900-8276
체질 다이어트 / 디스크, 관절염/ 체질진료/전통 침
스마트 한의원(4호선 쌍문역 3번)
제24강 아버지의 道를 삼년만...
1. 동학대전의 주석
동학 이야기를 지난 시간에 했는데, 동학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사실은 좀 유감이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동학 이야기를 충분히 해드릴 수 없는 게 유감이다.
제가 동학에 관해서는 존경하는 분이 한 분 계시다. 표영삼 선생님이라고, 지금 거의 80에 가까우신 분이다.
표영삼(表暎三, 1921 ~ ) : 평안북도 구성(龜城)출신. 1899년 입도한 조부 表春鶴부터 3대에 걸쳐 동학연구에만 헌신. 동학사·동학교리 방면의 제1인자.
그 분은 동학을 완전히 머리 속에 넣고 계신 역사의 산 증인이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나라에서 정말 국보 중에 국보급에 해당되는 그런 훌륭한 선생님이시다.
그 양반과 평생 교류를 하면서, 그 양반과 약속한 것이 있다. 그 양반이 돌아가시기 전에 꼭 동경대전을 내 손으로 한 번 주석을 달아보는 것이다. 최수운 선생의 동경대전이라고 하는 책은 꼭 한 번 우리 국민의 한 바이블로서, 주석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다.
『동경대전』(東經大全) : 최수운이 득도한 내용을 생전에 한문으로 기록한 책. 우리 민족의 바이블. 해월이 1880년 6월 14일 강원도 인제 갑둔리에서 초간.
그래서 그 책이 언젠가 되면, 여러분들이 동학을 체계적으로 이해하실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2. 근대성
논어를 시작하기 전에 한 말씀만 드리겠다. 동학사상에서 여러분들이 꼭 아셔야 될 게 있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근대로 온다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막스 베버는 ‘탈 주술’이라고 그랬다. 주술적인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미신을 믿으면서 근대인이라고는 못한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 ~ 1920)는 근대를 "탈주술"로 규정하였다.
서양의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도 하는 철학자였지만, 또한 수학자이기도 했다.
1 더하기 1이 2라는 것은, 서울에서 1 더하기 1을 해보니깐 2가 되고, 부산에 가서 1 더하기 1를 해보니깐 3이 되겠나?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하면 답이 4가 되나? 그런 거 없다. 이것은 역사적인, 후천적인 경험적 사태와 관련 없이 보편적인 것이다.
수학의 세계 = 이성의 세계 = 선험적 보편성
사실 서양 사람들의 근대성이라고 하는 것은 수학이다. 쉽게 말하면, 서양 사람들이 근대적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수학적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서양이 말하는 근대적 인간은 수학적 인간이다.
우리가 수학교육을 시키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공장 운영을 위해서 나사 깎는 선반공을 고용한다면, 누가 깎아도 똑같이 나와야 한다. 이 사람은 계산해서 1이라고 하고, 저 사람은 계산해서 2라고 하면, 제대로 나사를 생산할 수 있겠나?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렇게 수학이 지배하는 보편 사회이다. 이런 보편적 수학이 지배하는 세계에는 미신이 없다. 미신이라는 것은 1 더하기 1이 100이 될 수도 있다. 무슨 말이든 맘대로 해도 되는 게 미신이다. 그러니깐 서양에서는, 여기서 벗어나자는 게 근대적 인간관의 명제였다.
미신(superstition)은 합리성(rationality)을 거부한다.
왜 니체가 근세로 오면서 신은 죽었다고 외쳤겠는가? 이렇게 미신적인 신은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니체가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우리 민족은 아주 미신적인 사람들이다. 원래가 엄청나게 미신적인 사람들이다. 일본에는 강신무가 없다. 일본에는 신 내린 무당이 없다. 무당이 전부 제식적으로 춤만 배운다. 그냥 제식적으로 이어간다.
일본의 무당은 세습무당이며 제식무당일 뿐이며 학습에 의한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게 없다. 우리는 세습 무당이 없다. 무당이 되려면, 반드시 신이 내려서 신딸로 들어간다. 세상에서 아직도 신이 내리는 민족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렇게 영기가 많은 민족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아직도 방울을 들고 흔든다. 세계에서 우리나라 같은 샤머니즘의 보고(寶庫)가 없다. 샤머니즘이라는 말은 근세기 인류학자들이 만든 말이다.
한국에는 세습무가 없고 강신무만 있다.
미신으로부터 동학은 철저하게 벗어나자는 것이다. 벗어나긴 하되, 이 우주와 천지에 대한 인간의 경외감을 버려선 안 된다고 한다. 수학만 가지고 우리가 못 산다. 1더하기 1이 2라는 것만 가지고 못 산다.
동학의 과제는 탈주술적 세계관을 정립하면서도 수학이 잡지 못하는 천지의 신비감을 지키려는데 있다.
여러분들도 부인이나 남편하고 매일 1 더하기 1은 2가 아니냐며 쌈박질을 하며 살 수는 없다. 그렇게 해도 안 되는 세계가 있다. 1 더하기 1이 3이 될 때도 있다. 이게 인간 세상이다. 그러니깐 인간이 산다는 게 참 묘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동학사상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 민족을 근대적 인간으로 변모시키려는 아주 위대한 사상이다. 이 동학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미신적인 것을 다 없애버린다. 초월적인 것을 다 없애버린다. 샤머니스틱한 것을 다 없애버린다. 이런 것을 다 없애 버리고, 인간을 그야말로 상식적인 인간으로 만든다. 인간을 그야말로 어떤 의미에서 과학적인 인간으로 만든다.
그러나 서양에서 말하는 근대적 인간하고, 동학에서 말하는 근대적 인간은 다르다.
서양의 근대성 = 이성의 합리주의
조선의 근대성 = 느낌(몸)의 天地論
3. 三敬論
여러 젊은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여러분들은 인권이라는 것을 안다. 인권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누굴 때린다거나 하면, 당장 인권을 주장할 것이다. 내가 지나가면서 사람을 때리면 고소당하고 별의별 일을 다 당할 것이다. 복잡하게 이야기를 안 해도, 인권이라는 게 뭔지 다 안다. 근대적 인간이 갖고 있는 하나의 특징이다.
그런데 동학은 인권, 즉 사람을 중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하늘과 물건까지 중요하게 여긴다. 경천, 경인, 경물의 사상이 있다.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
4. 경물
그럼, 대인접물(待人接物)이라고 하는 경물은 무엇이냐?
내가 연세대 근처에 살기 때문에 연세대 학생 도서관에서 국가고시를 준비했다. 원광대 6학년 때 국가고시를 봐야 했다. 국가고시라는 게 아주 어렵다. 의과대학을 졸업하면서 보는 국가고시라는 것은 정말 골 때리는 시험이다.
다지선다형인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4가 맞는데 3이라고 한다. 이런 게 절반이었다. 그러니깐 나는 틀린 것을 외워야 패스가 된다. 내 생각에 3이든 4든 잘못된 문제였는데, 그런 걸 나보고 3으로만 찍어야 된다고 하니 외울 수밖에 없었다. 젊은 아이들은 금방 외웠다. 그런데 나는 3으로 외웠다가도, 찍을 때 보면 4로 찍었다. 그러니 시험공부가 얼마나 어려웠겠나? 그때 아주 피똥을 쌌다. 정말 내 인생에서 그렇게 괴로웠던 순간이 없다. 6개월 동안 그걸 외우느라고 정말 고생했다. 나는 정말 인류에게 그런 시험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할 수 없이 새벽 6시면 연세대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밤 11시에 돌아왔다. 꼬박 6개월을 그렇게 살았다.
연세대 학생들이 그때 내가 거기서 공부한 걸 다 안다. 한 자리만 만날 앉아서 공부를 했는데, 내 주변에는 대개 고시파들이었다. CPA, 사시, 행시 이런 것을 준비하는 아이들이었다. 아침 6시부터 11시까지 있는 학생들은 대개 그런 아이들이었다. 서로 자리 잡아주며, 그렇게 포진이 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PD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PD 시험 보려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상식 공부도 해야 한다. 그래서 아침이면 신문들을 가져와서 스크랩을 한다.
내가 포진한 자리 앞에 커다랗게 잘 생긴 책상이 있었는데, 그 위에 신문을 놓고, 자를 대고 칼질을 한다. 그러면 그 밑 책상에 금이 쫘악 간다. 그런데 6개월 동안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한 명도 못 봤다. 대한민국의 대학생이 도서관에 가서, 상식 시험을 본다고 만날 신문 스크랩 하면서, 그 어마어마한 책상을 칼로 짜악짜악 그어댄다. 난 그 것을 볼 적마다 섬뜩했다.
뭐냐 하면, 동학에서는 인권뿐만 아니라 물권을 말한다. 여러분들이 인간답고자 한다면, 이 세계의 모든 만물도 만물답고자 하는 권리가 있다.
이 책상이 부서지면 또 만들면 되는 게 아니다. 이것이 목수 손에서 만들어졌을 때는 모서리 하나라도 다치면, 이것도 아프다. 이것이 동학사상이다. 이것이 해월 선생님의 마음이다. 이건 서양에는 없는 사상이다. 서양의 근대성이라고 하는 것은 인권만을 생각한 근대성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해월 선생은 물권을 이야기하셨다.
서양의 근대성 속에는 인권(人權)만 있고 물권(物權)이 없다.
경천, 경인, 경물, 이것이 동학사상의 핵심이다. 이걸 이해해야 한다. 우리 젊은이들은 인권 사상만 알지 물권 사상을 못 배웠다.
옛날에는 농부들이 밭을 갈다가도 저녁에 들어갈 때, 밭에 삽을 그냥 꽂아놓고 오면 되는데, 그런 법이 없다. 옛날 농꾼들은 반드시 냇가에 가서 씻어서 바람이 잘 통하는 담벼락 밑에다 밤새도록 말린다. 그래서 삽 하나도 평생을 같이 가져가는 것이다. 이런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게 동학사상이다. 왜냐? 삽 하나도 그게 하늘님이라는 말이다.
5. 이천식천, 양천
동학 사상, 해월 사상의 가장 중요한 것은 만사지 식일완(萬事知 食一碗)이라고 했다. ‘너희들이 먹는 밥 한 그릇만 깨달으면 만사를 아는 것이다.’ 왜냐? ‘너희들이 먹는 밥 한 그릇이 바로 하늘님이기 때문이다.’
天依人, 人依食, 萬事知, 食一碗.
그걸 생각해 본적 있는가? 벼를 심어서 쌀이 나온다. 쌀은 지기(地氣)를 빨아들여서 정교하게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다. 쌀 한 톨은 DNA를 합성해도 못 만드는 것이다. 자연 스스로 만들어진 그것이야말로 하늘님이다.
동학에서는 인내천이라고 했다. 즉 내가 하늘님이다. 그렇다면 내가 밥을 먹으면, 하늘님이 하늘님을 먹는 것이다. 이것이 동학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천식천(以天食天)이다.
以天食天 :
하늘님이 하늘님을 먹는다 - 해월의 설법
그럼 신이 신을 먹으면, 신이 신을 죽이는 거 아닌가? 해천(害天), 즉 천을 해치면 안 된다. 하늘이 하늘을 먹지만, 양천(養天), 즉 천을 기르면, 그것은 가(可)하다. 먹힌 하늘님이 또 하늘님을 길러주면, 그것은 가(可)하다.
양천(養天) : 하늘님이 하늘님을 기른다.
그러니깐 천지의 생명은 이렇게 일체감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일체된 생명 속에서 인간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인간이 맘대로 인간만을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부셔버리면서 인간의 문명을 건설하면 안 된다. 어떤 종교도 그런 식으로 건설하면, 망하는 것이다. 인간만을 위한 종교가 되면 안 된다. 우주, 천지를 위한 종교가 되어야 한다.
종교는 인간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천지만물을 위한 종교가 되어야 한다.
동포(同胞)라고 했다. 동포라는 게 무엇인가? 만물은 같은 탯줄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같은 어머니에서 태어난 것이다. 여러분이 먹는 것은 내가 먹는 것이고, 내가 먹는 것은 여러분이 먹는 것이다. 우리는 동포다. 하나의 하늘님, 같은 탯줄 속에 있는 것이다. 이게 ‘한생명’이라는 의미다. 동학 사상은 어렵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아직 충분히 이해를 못 하고 있다.
동포(同胞) : 천지만물이 같은 탯줄에서 태어난다는 뜻
6. 박이약
여러분들이 동경대전 같은 것을 읽으면, 유치한 듯이 보인다. 말들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수운 선생이 뭐라 했냐 하면, 오도(吾道)는 박이약(博而約)이라고 했다. 불용다언의(不用多言義)라고 했다. ‘내 도는 넓되 간략하다. 말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멋진 말이다. 내 도는 막막한 대해(大海)와 같지만, 간단하다. 그래서 말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吾道博而約, 不用多言義.
- 최수운의 座箴 (좌잠)
내가 동경대에 가서, 동경대 교수를 앞에 놓고, 오도, 이야(吾道, 易也.)라고 했다. 내 도는 쉽다고 했다.
吾道, 易也. -도올
하여튼 우리 민족은 이렇게 위대한 사상을 가지고, 근대를 맞이하였다. 우리 민족에 니체도 있었다. 다 있었다. 단지 우리가 깨어나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는 비록 일본 식민지로 들어갔지만, 그 식민지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이미 근대 사상을 전부 완성해 놓고, 근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20세기를 통해서, 우리가 처절하게 우리를 잊고 서양 것을 받아들였다. 그것도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이런 동학 사상 등을 재해석해서 우리의 삶 속에서 부활시켜야 한다. 그렇게 해야 IMF고 뭐고, 이 어려운 것을 극복해낼 수 있다. 2000년이 지나가는 마지막 강의인데, 21세기에는 정말 우리는 해낼 수 있다. 그러니깐 깊은 생각을 하시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7. 자공
도올 논어 248페이지 논어 10장을 같이 읽겠다. 논어 강의를 들으실 때는 논어 책을 펼쳐놓고 같이 들으셔야 한다.
子禽問於子貢曰 : 夫子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子貢曰: 夫子 溫ㆍ良ㆍ恭ㆍ儉ㆍ讓鎰之,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자금이라는 사람이 자공한테 지금 묻고 있는 것이다. 문장적으로 복잡하고, 논어의 특이한 구어체 용법을 가지고 있는 문장이다.
여기에 두 인물이 나온다. 자금이라는 사람하고, 자공이라는 유명한 인물이 나온다. 사실 제가 자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너무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약간 다시 부언을 해야 할 거 같다.
자공은 공자에게 굉장히 중요한 제자라고 했다. 자공은 衛나라 사람이다. 노나라 사람이 아니다. 공자보다 31세 연하인데도 불구하고, 아주 초기 제자이다.
端沐賜 衛人 字子貢 少孔子三十一歲
- 중니제자열전
이 자공이라는 사람은 제아(宰我)와 더불어 언어가 출중한 제자다. 이 사람이 말을 잘했다고 한다.
言語, 宰我子貢 - 선진 2
자공은 공자 제자 중에 열 명의 특출한 사람들을 뽑은 사과십철(四科十哲)에 들어가 있다.
사과십철(四科十哲) : 공자의 제자 중 네 분야에서 뛰어난 열 명의 수제자. 「선진」편에 기록되어 있다.
이 자공이라는 사람은 아주 탁월한 비즈니스맨이다. 이름이 원래 단목사(端沐賜)로 되어 있는데, 단목이라는 말을 통해, 궁중에 나무를 공급하는 어용상인 집안이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 사람은 아주 탁월한 사람이다. 공자에게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 사람은 아주 솔직하고, 공자를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질문을 잘 한다. 그런데 그 질문이 대개 진지하다. 그런데 조금 머리가 모자란다. 그래서 자공의 질문 때문에 논어를 읽는 맛이 난다.
논어 전체에서 거의 최다 출연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자로가 제일 많이 나오고, 안회도 엄청나게 나오지만,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진지한 대화의 개수로 보면, 자공이 제일 많다. 그래서 논어라는 책은 자공과 공자의 대화를 빼놓으면 재미가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다. 하여튼 논어의 주인공이다.
『논어』의 최다 출연자는 자로이지만, 자로는 조연급으로 많이 나온다. 『논어』를 실제적으로 이끌어 가는 제자는 자공이다.
이 사람은 말을 잘 하는 외교관이었다. 그래서 제나라, 오나라, 월나라 등지를 돌아다닌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이야기의 뒷 배경에 자공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월왕 구천과 오나라의 구차 사이를 오고가며, 여기서 이 말하고, 저기서 저 말을 한다. 그러면서 싸움을 붙이고, 화해도 시키면서, 외교 수단을 부렸다. 이걸 유세객이라고 한다. 공자는 어떤 국제적인 유세를 나가야 하면, 반드시 자공을 내보냈다. 그렇게 자공이라는 사람은 공자에게 중요한 인물이다.
유세객(遊說客) : 춘추전국시대에 열국을 주유하면서 말을 전하며 다니는 선비들
그리고 유세를 다닐 뿐만 아니라, 이 사람은 유세를 오고가는 김에, 여기서 물건을 사다가 저쪽에서 팔았다. 그렇게 이윤을 챙겨 먹었다. 이렇게 물류를 이용해서 억수로 돈을 번다. 그래서 거부였다. 부호였다. 아주 호상이었다.
그래서 자공은 실제로 공자교단의 물자를 댄 사람이다. 그리고 공자가 14년 동안 유랑을 하면서 대개 위나라를 거점으로 해서 다닌다. 바로 자공이 위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다 자금을 대주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공자 일생에서 자공을 빼놓을 수가 없다.
공자가 죽으려 할 때, 가장 친한 자로도 죽고, 가장 사랑했던 안회도 죽고, 자공만 살아있었다. 그래서 죽을 적에 애타게 자공이 왜 안 오냐며 찾았다. 그리고 자공이 도착하자, 숨을 거둔다. 자공의 품속에서 돌아가셨다. 자공은 그렇게 공자가 사랑한 제자다.
그리고 공자가 죽은 다음에도 아주 극진했다. 그 유명한 3년상을 제자들이 하는데, 자공은 6년상을 했다. 3년을 더 살았다.
당시 말년 제자들은 공자를 잘 모르니깐, 공자가 죽고 나서 모두 흩어지려 했다. 그러니깐 자기가 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상을 지내면서 스승님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 그 교단을 규합시켰다. 그렇게 정신적인 구심점을 만들어 갔다는 이야기는 지난 강의에서 했다.
8. 자금
그런데 지금 이 자금이라는 놈이 자공한테 묻는 것이다.
혹자는 자금이 자공의 제자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주석을 달았는데, 나는 그 설을 받지 않는다. 왜냐? 이 자금이라는 놈이 치사한 놈이다. 자공 같이 위대한 사람이 이런 아이를 제자로 두었을 리가 없다.
자금의 이름은 진항(陳亢)인데, 말년 제자로 노나라 사람이다. 그런데 항상 공자를 삐딱하게 본다. 항상 씹는 놈이다.
자금(子禽) : 姓이 陳, 名이 亢(강). 노나라 사람. 공자 말년의 어린제자. 자공의 제자라는 설도 있다. 『중니제자열전』에는 그 이름이 없다.
9. 학이편 10장
夫子至於是邦也,
여기서 是라는 것은 불특정한 것이다. 그래서 ‘공자가 어떤 나라에 도달하시면, 어떤 한 나라에 가시면,’이라는 뜻이 된다.
必聞其政,
필문기정(必聞其政)은 정치를 듣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항상 정치에 참여한다는 말이다. 공자는 어디를 가시든지 정치를 하셨다.
求之與? 抑與之與?
抑은 is not or, ‘그렇지 않으면’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與之與의 뒤에 있는 與는 의문사인데, 약한 의문이다. 공자님께서 ‘스스로 구한 거냐? 그렇지 않으면,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냐?’고 묻고 있다.
어느 나라에 가든, 정치에 기웃거렸는데, ‘그게 모셔간 거냐? 아니면 자기가 안달이 나서, 한 자리 해먹으려고 구한 거냐?’고 묻고 있다. 아주 사람을 긁는 말이다. 공자한테는 직접 못 묻고, 자공한테 물은 것이다.
10. 자금의 성격
하여튼 이 자금이라는 친구는 논어 전체에 3번 나오는데, 그때마다 시니컬하다.
한 번은 공자 아들 백어, 잉어한테 가서 묻는다. 제자들은 다 이렇게 배우는데, ‘넌 뭐 더 특별히 배우는 게 있냐?’고 묻는다. 그런 놈이다. 질문을 해도 꼭 그런 것을 묻는다. 잉어가 어떻게 대답했냐 하는 것은 뒤에 알기로 하자.
子亦有異聞乎? -계씨 13
또 한 번은 공자가 돌아가시고 다음에, 자금이 자공한테 묻는다. 공자는 이미 돌아가셨고, 6년상을 치루었고, 자공은 세상의 제후들이 다 존경하는 거부다. ‘그럼 이제 공자보다 위대한 사람이 아닌가?’하고 꼬신다. 그러니 이제 공자 숭배는 그만 하자는 식으로 자금에게 묻는다.
그 말에 자공은 추상같은 호령을 한다. ‘자식아 말이면 말이라고 다하느냐?’ 하고 야단을 친다. 그러면서 공자의 세계는 사다리를 타고 하늘을 올라가려고 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다고 한다. ‘하늘과 같은 공자의 세계를 어떻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겠냐;? 그러면서 미친 소리 하지 말라며 야단을 치는 모습이 나온다. 하여튼 이놈은 그런 놈이다.
夫子之不可及也, 猶天之不可階而升也. -지장 25
11. 도올의 교훈
인생을 살면서 자금과 같은 캐릭터가 많다. 인생을 살면서 내 주변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건 교훈으로 꼭 말씀드리고 싶은 이야기다. 조금 맥락은 다르지만, 세상 사람들이 너에 대해서 이렇게 이렇게 나쁜 말을 하는데, 나는 이렇게 생각 안 한다. 그래서 이야기하는데, 너 조심하라고 하는 새끼들은 다 개새끼들이다.
젊은이들은 철저히 알아 두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놈은 어떤 경우에도 그건 자기 말이다. 남이 이렇게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말하는 놈들은 절대 믿지 말라. 그런 놈이 내 편인 거처럼 와서 그런 말을 해 주면, 100이면 100명, 그놈은 평생 상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 젊은이들 꼭 알아두기 바란다. 인생을 살면서 그런 아이들한테 전부 배반당한다.
나쁜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내 생각에 너의 이러이러한 행동은 나쁘다고 생각한다. 나는 너에게 이것을 말해주고 싶다’라는 말을 어렵게 하는 사람이면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나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로 하는 놈은 다 개새끼다.
12. 자공의 대답
그래서 자금의 말에 대해서 자공이 대답한다. 거기에 대해서 치사한 변명을 안 한다. ‘공자가 구한 겁니까? 주어진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사실 구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 치사하게 자공은 변명을 안 한다. 맞다. 우리 공자님께서는 돌아다니면서 정치의 자리를, 권력의 자리를 치사하게 구걸하고 다닌 분이다. 맞다.
夫子 溫ㆍ良ㆍ恭ㆍ儉ㆍ讓鎰之,
그러나 우리 부자께서는 온, 량, 경, 검, 양이득지라고 한다. 온은 따스한 마음이다. 량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순진한 마음이다. 순박한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다. 그리고 공, 공손한 것이다. 그리고 검, 검약한 것이다. 검소한 것이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양, 양보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다산 선생은 ‘공자는 온량공검하셔서 사양을 했는데도 그 자리를 얻은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나는 그렇게 보진 않는다. 다산은 공자를 변명해주기 위해서 그렇게 해석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면 그 다음 말에 맞지 않는다. 그 다음 말과 연결이 잘 안 된다.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공자의 구함은 다른 사람들이 구한 것들과 다르다.’고 한다. 그러니깐 양이득지(讓鎰之)라고 하면 안 된다. 나는 양까지는 집어넣자는 것이다. ‘온량경검양하셔서 그 자리를 얻으신 것이다.’로 해석한다.
그러니깐 ‘그래, 우리 선생은 구했다. 치사하지만 구했다. 그렇게 질문한다면, 네 말이 맞다. 우리 선생님은 어디까지나 정치를 구하신 것이다. 그렇지만 거기에 온량경검양하여서 득지(得之)한 것이다. 그러나 부자(夫子)의 구(求)함은 딴 사람이 구한 거하고 다르다고 한다.
여기서 인지구지여(人之求之與)라고 하는데, 우리 한문의 세계에서 사람 인(人)자는 보통 man이라는 뜻이 아니고, others 타인이라는 의미이다. 고전에서 인(人)이라는 말은 반드시 기(己)와 짝지어서 해석을 해야 한다. 기(己)는 나, 인(人)은 나에 대해서 딴 사람이다. 여기서 말하는 부자(夫子)의 구함은 딴 사람이 구한 거하고는 다르다는 뜻이다.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라고 했는데 여기서 보면 허사가 더럽게 많이 들어가 있다. 기제(其諸)도 의미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간단히 말하면, 부자(夫子)의 구지(求之)는 이인구지(人之求之)라고 해도 된다.
이것이 바로 논어가 지금은 어려워도 당대의 구어체일 거라는 것이다. 실제로 말하는 말을 적었기 때문에 이렇게 허사들이 많이 들어간 것으로 본다.
이게 재미난 게, 최근 옛무덤에서 고문헌들이 많이 나온다. 예전에는 간략하게 딱딱 정형화되어 있고, 허사들이 다 빠지고, 4자로 딱딱 떨어지는 것들을 더 고어법이라고 생각했다. 고문헌은 너덜너덜한 허사가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새 그런 생각이 다 깨졌다. 고증학자들의 설에 의하면, 고문헌으로 갈 수록 더 너덜너덜해진다. 허사가 많고 지저분하다. 그래서 옛날 말들이 오히려 구어체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구절이 이렇게 허사가 많은 것이다.
최근의 고분문서 발견으로 허사가 많은 비정형의 문장이 오히려 고문임이 입증되었다. 이것은 문헌학의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이다.
13. 학이편 11장
시간이 없기 때문에 바로 11장으로 넘어간다.
子曰: 父在, 觀其志; 父沒, 觀其行,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父在, 觀其志; 父沒, 觀其行
재미난 이야기다. 이건 자왈로 시작하니깐 공자의 말씀으로 되어 있는 논어구절이다.
‘父在, 觀其志; 父沒, 觀其行’이라고 했는데, 전통적으로 주석가들은 志의 주어(主語)를 그 아들로 보았다. 아들이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는 함부로 행동을 못하니깐, 사람을 볼 적에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에는 그 사람의 심지를 보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자기 맘대로 행동해도 되는 때가 되었으니깐, 그 사람의 행동을 보라는 것이다. 이 지(志)와 행(行)의 주어를 그 아들로 해석을 했다. 고주나 신주나 같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해석하는 게 어색하다. ‘한 사람을 볼 적에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는 그 뜻을 보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적에는 그 행을 보라.’는 게 어색하다.
나는 그렇게 보는 게 아니고, 지와 행의 주어를 아버지로 보자는 것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적에는 아버지가 과연 무엇을 뜻하고 사시고 계신지 아버지의 뜻하시는 바를 살필 줄 알아야 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아버지가 남기신 그 행적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고 해석한다.
이것도 된다. 나는 내 해석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석하는 게 더 옳다고 생각한다.
三年無改於父之道,
그러고 나서 하는 말이 ‘三年無改於父之道’라고 한다. 이게 3년 상과 연결이 된다. ‘3년 동안 아버지의 도를 함부로 고침이 없으면’이라고 해석한다.
물론 병간호도 하느라 지겹긴 했겠지만, 요새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다음날로 쓰시던 물건이든 뭐든 싹 없애버리는 경우가 있다. 회사에서도 전임자가 퇴임하며, 그 다음에 싹 바꾸어 버린다. 효율을 위해 그래야겠지만, 인간사가 꼭 그런 건 아니다.
효율적인 이 세상에도 간격을 두고 점진적으로 바뀌는 게 있어야 인간 세상답다. 우리 동양 사회는 그렇게 뭔가 끈적끈적 한 것이 있다. 카트리지 딱 끼었다가, 딱 빼는 식의 사회가 아니다. 역사라는 것이 그렇게 딱딱 돌아가는 게 아니다.
可謂孝矣.
여기서 可謂는 강하게 말하는 것이다. 3년 동안은 아버지의 도를 함부로 고치지 말아야, 그래야 비로소 효(孝)라고 부를 만하다. 이런 뜻이다.
우리 동양 사회는 이렇게 제사의 원리에도 있지만, 항상 변화의 시기에, 어느 정도는 간격을 두어서 움직인다.
어떤 사람은 이 문장을 놓고, ‘아버지가 도둑놈이었다면, 그럼 그걸 그대로 유지해야 하느냐?’는 주석도 있다. 이런 주석도 있지만, 대개 이런 말을 할 때면, 아버지의 좋은 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주석가들이 별의별 문제를 다 끄집어내지만, 그런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14. 유교적 가치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나는 게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해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좌우지간 이 이야기를 들으면 딱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 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죽고 나서, 아예 주석제를 없애버렸다. 그대로 아버지가 가지고 가시라고 했다. 그리고 3년동안 유훈통치라고 하면서 어떤 지위에 앉질 않았다.
이게 바로 논어에 있는 말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그래서 북한 공산주의를 유교적 공산주의라고 한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나는 모르겠다. 그래도 한국 사람들한테는 뭔가 그렇게 나쁜 인상을 주는 건 아니다. 그런 측면만은 한국 사람들에게 나쁜 느낌을 주는 거 같지는 않다.
그런 것으로 우리에게 얼마나 깊게 유교적 가치관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있다. 三年無改를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15. 심산 선생
그런데 내가 유교적 인간관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저번에 김수환 추기경께서 심산상을 받으셨다고 했다. 심산 김창숙 선생은 해방이 되어 없어져 가던 성균관을 대학으로 등록해서 살려낸 분이다. 심산 김창숙 선생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성균관 대학도 없었다. 그야말로 유림의 대표이시다.
심산 김창숙(心山 金昌淑, 1879 ~ 1962) :
금세기의 대표적 유학자
그런데 이 양반이 가장 가슴 아파하신 일이 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모르실 거다. 3.1운동 33인 대표를 분석해 보았나? 33인 대표 중에 유학자가 없다. 기독교, 천도교, 불교 대표들만 있고, 유학자가 빠졌다.
심산 선생은 그 일에 대해 통곡을 한다. 손병희가 대표니깐 자기들 중심으로 하고, 유학자들은 고루하다고 생각했는지 연락을 안 한 것이다. 너무 늦게 알았다. 그것 때문에 심산 선생은 통곡을 한다. 유학 때문에 우리나라가 망한 건 인정하지만, 이럴 수가 있냐며 통곡을 하신다.
其聯署者, 乃天道敎耶蘇敎佛敎, 三派代表也.
翁讀其書而痛哭曰....而所謂儒敎, 無一人與聞者, 世之罵儒敎者....
그래서 거창의 곽면우 선생한테 연락을 하고, 전국의 유생들에게 알려서, 파리만국평화회의에 유생들 이름으로 따로 호소문을 만든다. 그리고 중국에 가서 손문을 만나고 그러신다. 하여튼 정말 애국자시다.
곽면우(郭俛宇) 거창에 살고 있었던 당시 유림의 종장(宗匠)
이 심산 선생의 심산유고라는 게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것을 성균관 대동문화연구소에서 다시 펴냈는데, 이게 심산 선생의 문집이다.
『심산유고』(心山遺稿) : 1973년에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김창숙의 문집(文集)
내가 저번에 이 양반을 조사하느라고, 자료 때문에 성균관대를 갔다가, 대동문화연구소에 갔다. 거기에 김시혁 교수님이라고 대동문화연구소 소장을 하시는 아주 훌륭한 한학자가 계셨는데, 그 양반이 나한테 김창숙 문존(文存)이라고 하는 글을 주시면서, ‘다른 건 몰라도, 이 글은 한 번 읽어봐 주십시오.’라고 하셨다.
그게 심산 선생이 자기 여동생을 위해 쓴 제문이었다. 제중매성산이씨부문(祭仲妹星山李氏婦文)이라고 하는데, 여동생이 성산 이씨한테 시집을 간 모양이다.
「제중매성산이씨부문」(祭仲妹星山李氏婦文) - 심산 1957년 작
우리 마누라와 그걸 읽다가 둘이 같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 우리 마누라는 여간해선 눈물을 안 흘리는 사람인데 펑펑 울었다. 물론 우리는 한문을 읽는다. 이게 20세기 한문학의 최극치다. 정말 위대한 문학이다.
정순한 자기 누이동생이 시집을 갔는데, 그 남편이 병약해서 일찍 죽는다. 그래서 일점 혈육도 없이 나이 24살에 청상과부가 되어서 얼굴도 씻지 않고, 3년상을 치루었다.
蓬首垢面, 不出寢門一步, 三年如一日焉.
헝클어진 머리, 때 낀 얼굴로 침문 밖에 한걸음도 나오지 않고 3년을 하루같이 하였다.
옛날에는 그렇게 살았다. 3년 동안 밖에 나오지도 않고 보내는 누이동생의 삶을 기술했다. 방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세수도 안 하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냥 낡은 옷을 입고 사는데, 보기에 그렇게 딱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자기 누이동생이 24살인데, 숫처녀와 같이 아름답고도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런 표현이 나온다.
不接外人一面, 有若守貞之處子然
바깥사람을 한 번도 접하지 않아서 시집가지 않은 처녀와 같았다.
어머니가 자기를 보면 가슴이 아프실 거라며 집에 오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어머니 생신 때인가 간신히 누이동생이 왔다. 동생은 어려서부터 오빠를 따르는 사이였다고 한다. 그래가지고 그날 밤에 자기 누이동생한테 자기 누이동생을 설득시켜서 결혼을 시킨 고사를 들어서, 다시 시집을 가라고 이야기했다. 너무 가슴이 아프니깐 그렇게 했다. 그러니깐 누이동생이 화를 내면서, ‘오빠 나를 이렇게 시험에 들게 할 것이냐?’ 하면서 당장 자기 집에 가겠다고 했다.
忽絶然大怒曰, 兄欲試奪吾志耶!
홀연히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형이 내 뜻을 빼앗으려고 시험하는 것인가.
가마를 타고 밤에 나가겠다는 것을 붙잡고 붙잡아서 미안하다 했더니, 새벽에 날이 밝자마자 떠나버린다.
그 누이동생이 떠나고 10여년간 연락두절을 한다. 편지를 써도, 오빠랑 다시 보지 않겠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가 하도 딱하니깐, 자신이 노환으로 병들어서 죽겠다는 핑계를 대서 동생을 부른다. 그렇게 오빠와 동생을 한 자리에 만나게 해준다. ‘정말 너를 잘 몰랐고, 참 미안하다. 그런 말 했던 걸 취소하마. 절이라도 해야 맘이 풀리겠냐?’ 그러니깐 그 어머니가 절을 하라고 한다. 그러니깐 누이동생이 있다가 ‘오빠가 그러시면 안 된다. 내가 어떻게 오빠 절을 받냐’고 한다. 그래서 화해를 한다.
母氏仍命吾拜之, 君固辭不敢而止之, 遂敍歡而罷.
어머니께서 나에게 절하라고 하시었다. 군이 감히 못한다고 굳이 사양하여 하지 않고 드디어 즐거움을 펴고 파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 뒤로 심산 선생은 감옥에 갇힌다. 일경(日警)한테 모진 고문을 받는데, 그 동생이 수년을 삼시 세끼 하루도 안 빠지고, 자기 옥(獄) 수발을 했다고 한다. 심산 선생이 나중에 벽옹(辟雍)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완전히 다리를 마비가 되었다.
벽옹(辟雍) : 김창숙이 일제의 혹독한 고문으로 다리를 못쓰게 되어 붙인 호(號)
하도 고문을 받아서 다리가 썩어버렸다. 그렇게 지독하게 고문을 받아서 죽게 되니깐, 그 동생이 옥문에 와서 몇 달을 가지 않고 통사정을 한다. 이래 가지고 보석으로 풀려났는데, 일본의 옥리들도 다 감복을 했다고 한다.
獄吏亦有感動而爲之釀淚者焉.
옥리(獄吏)도 또한 감동하여 눈물을 자아내었다.
그러다가 자기 동생이 몹쓸 병에 걸려서 오빠한테 ‘내가 평생을 이렇게 살았는데, 이제는 내 편히 내 남편 곁으로 가니 걱정마소. 내 먼저 가겠소.’라고 한다.
人生, 會有一死, 兄不須浪悲也,
사람은 필경 한번 죽는 것이니 형은 슬퍼하지 마오.
그때 심산 선생도 몸이 늙어서 먹어도 먹은 거 같지 않고 괴로웠다. 결국 얼마 후에 동생이 죽는다.
그렇게 동생을 보내고, 탈상 후에 심산은 먼저 간 동생 앞에서 ‘내가 먼저 죽었어야 할 텐데, 네가 어떻게 먼저 가냐?’하며 ‘오호 통재라! 이 술잔이라고 받아라.’하며 술을 뿌리는 게 그 제문의 끝이다.
君其好收吾觴, 而爲之一歆也 耶, 嗚呼痛哉, 尙其饗之。
군은 내 술잔을 잘 받아서 한번 흠향하려는가. 아! 슬프다. 흠향하기 바란다.
16. 원칙과 실천
이것은 어쩌면 하찮은 이야기다. 그러나 잃어버렸던 한국인 상을 나는 여기서 찾았다. 내가 봤던 주변의 모든 여자들이 모두 이랬다.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이런 여자들이 많았다. 여기 앉아계신 여러분들도 다 그럴 것이다. 지난번에 쿠로즈미 교수가 이야기했지만,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원리적이다.
김창숙의 누이동생의 삶은 조선인의 원리적 지조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한국인들이 원리적이라고 하는 뜻을 알아야 한다. 이게 겉으로 폼만 내고, 주리(主理)를 외치는 게 아니다. 우리 조선의 여인들은 절개를 지키며, 꼿꼿하게 평생을 산 사람들이다. 평생 원리원칙을 지키며, 그런 도덕성 속에서 산 것이 소위 한국인의 자화상이었다.
우리는 잃어버린 이러한 인간을 되찾아야 한다. 여자든 남자든 우리는 논어를 통해서 이러한 도덕적인 모습을 배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실천하고 살았던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되찾을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