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연구자들의 잘못된 질문
학자들이나 연구자들이 자신들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대상(objet)’에 대해서 그것을 분석하기 이전에 먼저 대상을 규정하고자 한다.
사실상 인간은 ‘대상(objet)’이 될 수 없기에 여기서 대상이란 인간을 제외한 모든 것이 포함될 수 있다.
대상을 규정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주어질 수 있겠지만, 가장 기초적으로는 “이 대상이 무엇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가?(what can it be used for?)”라고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실용적인 관점에서 대상을 규정하는 것이지만, 가장 손쉽고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의 대상규정을 위한 첫 질문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상한 풀’을 발견하였을 때, 그것을 사람이 먹을 수 있다면 "채소"가 되겠지만, 사람은 먹을 수 없지만 짐승은 먹을 수 있다면 그것은 ‘풀’이 되는 것이다. 만일 그 풀이 사람이나 짐승이 먹었을 때, 아픈 증상을 유발한다면 그것은 채소도 풀도 아닌 '독초’가 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다양한 세부적인 질문들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무엇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규정은 ‘옷을 입을 때, 첫 단추를 꿰는 것’과 같다.
그런데 오늘날 학자들과 연구자들은 ‘이것이 무엇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가’를 묻지 않고 “이것이 나를 위해 혹은 우리를 위해 무엇에 사용될 수 있는가?(What can this be used for, for me or for us?)”를 묻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바로 이 잘못된 질문에서 출발한다. 사실상 어떤 대상이 ‘나 혹은 우리를 위해서’ 규정한다는 것은 ‘이기주의적 발로’이며,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보편적인 대상을 어떤 특수한 틀 속에 가둬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 하나의 예로는 ‘유해 동물’을 규정하거나 무슨 ‘수원지 보호구역’ 등을 규정할 때 발생한다. 멀쩡한 귀여운 야생동물들이 어느 날 ‘유해 동물’로 규정되기도 하고, 매년 물가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하고 잘 활용하던 계곡이 어느 날 ‘수원지 보호구역’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고, 철조망으로 꽁꽁 둘러싸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해 놓았다. 물론 나름의 이유들이 다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경우에 다 이기적 발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자나 연구자들은 거의가 이런 식이다. 유전자를 규정하거나, 광자나 양자를 구정하거나, 원자력을 규정하거나, 강이나 호수를 규정하거나 심지어 우주공간이나 달이나 화성이나 태양을 규정할 때도 “그것이 우리를 위해 무엇에 사용될 수 있을까?”라는 기준에서 규정하고자 한다. 이러한 발상이 심지어 ‘하늘이란 인공위성이 지나는 길’이라 규정하기도 하고, ‘지구나 우주’라는 것도 일종의 ‘시뮬레이션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가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도구적 이성의 오류’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전에 ‘이기적 발로의 오류’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강, 호수, 계곡 그리고 하늘과 해와 달은 만인의 것이며, 전 우주의 것이지 그 어떤 특정한 집단을 위한 것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별이 빛나는 밤'은 이제 인공위성들이 니나다니는 '위성들의 길'이 되고 말았다!
한 번쯤 내가 하고 있는 연구나 일이 인류를 위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인류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