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예레미야50장1~10절
제목 : 바벨론의 심판 선언
바벨론이 민족들의 신탁 마지막 자리를 차지합니다.
열방을 향한 심판 예언의 최종 대상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 바벨론입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바벨론 제국도 무참하게 무너질 것입니다.
민족들을 정복한 바벨론이 북쪽에서 오는 한 민족에 의해 멸망을 당합니다.
민족들을 짓밟은 자가 짓밟힘을 당합니다.
여호와께서 바벨론에게 허락한 칠십 년의 통치가 끝납니다.
1. 바베론에 대한 심판 예언(1~3절)
1) 바벨론과 갈대아 사람의 땅에 대하여 하신 말씀입니다(1절)
“[1]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바벨론과 갈대아 사람의 땅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라 ”
본절은 본장과 51장 전체 신탁 예언의 서두에 해당됩니다.
'갈대아인'은 우르 남부에 정착해 있었던 반유목민 부족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들의 당을 지칭하는 '갈두'란 말이B.C. 10세기 경의 비문에 등장합니다.
B.C. 9세기경에는 갈대아 족장들 중에 몇몇은 앗수르의 통치자 아닷니라리 3세(B.C. 811-782년)의 봉신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부친인 나보폴라살은 갈대아 원주민이었으며 B.C. 625년에 바벨론 왕좌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의 통치를 시작으로 해서 B.C. 539년까지 지속되는 신바벨론 왕조기를 이끌게 됩니다.
느부갓네살(B.C. 605-562년)은 이들 바벨론 왕들 중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우고 또 가장 오랫동안 통치한 왕이었습니다.
한편, 70인역을 보면 맛소라 본문보다 내용이 훨씬 짧은데, '바벨론에 관하여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J. Bright).
2) 바벨론를 치는 한 나라(2~3절)
(1) 바벨론의 멸망을 예고하는 내용이며 특히 그들이 섬기던 우상도 함께 파괴되어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을 말합니다(2절)
“[2] 너희는 나라들 가운데에 전파하라 공포하라 깃발을 세우라 숨김이 없이 공포하여 이르라 바벨론이 함락되고 벨이 수치를 당하며 므로닥이 부스러지며 그 신상들은 수치를 당하며 우상들은 부스러진다 하라 ”
한편 본절과 3절은 시(詩)의 형태를 띱니다.
벨이 수치를 당하며 - '벨'은 셈어인 '바알'과 연관되는 명칭으로서 '주', '주인'(lord)이라는 문자적 뜻을 지니며, 수메르의 주신(主神)인 '엔릴'(Enlil)과도 같은 말입니다.
바벨론이 신흥 강국으로 부상할 무렵에 그 주신(主神)인 '므로닥'(말둑)은 '벨'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우게 되었습니다(Feinberg).
따라서 벨은 말둑에 대한 별칭이었던 것이고, 그래서 벨과 말둑은 시적 평행법으로 표현된 동일한 신이었습니다.
한편 바벨론 창조 신화에 따르면 말둑은 창조의 신이었고 또 '신들의 왕'으로 등장합니다.
'우상'(길룰림)과 '신상'(아차빔)은 동상의 형태로 만들어져 있던 신상을 가리킨 표현입니다.
이러한 명칭들은 모두 이방의 우상들을 가리키는 데 적용되었습니다(레 26:30; 신 29:17; 왕상 15:12등).
특히 우상을 가리키는 '길룰림'이란 말은 '똥덩어리'란 뜻을 가진 야유적인 표현입니다.
에스겔은 이 말을 거의 40회에 걸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겔 6:5; 14:4, 5; 18:6, 15등).
(2) 그 땅으로 황폐하게 하여 그 가운데 사는 자가 없게 합니다(3절).
“[3] 이는 한 나라가 북쪽에서 나와서 그를 쳐서 그 땅으로 황폐하게 하여 그 가운데에 사는 자가 없게 할 것임이라 사람이나 짐승이 다 도망할 것임이니라”
한 나라가 북쪽에서 나와서 그를 쳐서. - '북쪽에서 나온 나라'가 어느 나라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말을 자주 사용했는데(41절; 1:14;4:6; 6:1; 15:12; 46:20; 47:2) 초기의 장들에서는 이 나라의 정체가 분명치 않았으나 후반부에 들어와서는 그 나라가 바벨론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용어가 이곳에서 다시 그 대상이 모호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이에 대한 언급은 페르시아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물론 페르시아는 바벨론의 북방이 아니라 동쪽에 위치한 나라였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가 북방에서 임하는 것으로 종종 언급됨을 보건대(사 14:31; 41:25), 본 구절의 '북쪽'은 다분히 상징적 의미를 띤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2. 잃어버린 양 떼의 귀환(4~7절)
1) 여호와와 연합하는 이스라엘(4~5절)
(1) 유다 자손들이 바벨론을 떠나 귀향길에 오르게 됩니다(4절)
“[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유다 자손도 함께 돌아오되 그들이 울면서 그 길을 가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할 것이며 ”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 이스라엘의 회복과 위로에 대한 말씀인데, 이러한 미래의 회복에 참여하는 자들은 북쪽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 유다 왕국이 다 포함 될 것입니다(Nicholson).
(2) 여호와를 배반하고 떠났던 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옵니다(5절)
“[5] 그들이 그 얼굴을 시온으로 향하여 그 길을 물으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라 하리라”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라. - '영영한 언약'이란 것은 31:31 이하와 32:40에 언급되어 있는 새 언약까지도 암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Nicholson).
RSV, NEB등의 영역 성경과 그 밖의 다른 역본들은 4-7절을 산문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들 전체를 살펴보면, 이를 운문으로 보아야 할 충분한 근거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평행법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으로 지칭되고 있는 전체 이스라엘 백성이 울면서 여호와를 찾을 것이고 또 여호와와 다시 영영한 언약을 맺게 될 것입니다(32:40, Thompson).
2) 잃어버린 양떼(6~7절)
(1) 그분 백성은 길을 잃어버린 목자들에 의해 오도된 양 떼였습니다(6절)
“[6] ○내 백성은 잃어 버린 양 떼로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산에서 언덕으로 돌아다니며 쉴 곳을 잊었도다 ”
여기에는 이 백성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또 그렇게 부추겼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왕들에 대한 비난이 언급됩니다.
구약에서 왕들, 제사장들, 선지자들이 종종 목자로 불리웠던 것입니다.
문맥상 여기서는 백성들을 높은 산위로 인도하고 거기서 바알을 제사하게 하였던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비난이 우선적으로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2:20;3:2등).
한편, 언약 파기에 대한 본절의 내용은 5절의 영영한 언약의 갱신과 대칭되고 있습니다.
(2) 길을 잃은 양떼가 굶주린 들짐승에 잡아먹히는 것처럼 하나님 백성 또한 사나운 민족들에게 사로잡혀 그들의 먹이가 됐습니다(7절)
“[7] 그들을 만나는 자들은 그들을 삼키며 그의 대적은 말하기를 그들이 여호와 곧 의로운 처소시며 그의 조상들의 소망이신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인즉 우리는 무죄하다 하였느니라”
본절은 이스라엘을 삼키는 자들은 모두 죄를 면치 못했다고 하는 2:3의 내용을 반영합니다(J. Bright).
즉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것으로 거룩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 한 이상 그들은 여호와께 거룩한 존재가 아니었으며, 그러한 이유로 적들은 이스라엘을 삼키고도 '우리는 무죄하다'라고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3. 바벨론 탈출 명령(8~10절)
1) 너희는 바벨론 가운데에서 도망하라(8절)
“[8] 너희는 바벨론 가운데에서 도망하라 갈대아 사람의 땅에서 나오라 양 떼에 앞서가는 숫염소 같이 하라”
갈대아 사람의 땅에서 나오라 - 바벨론의 종말이 가까웠기 때문에 이제 포로되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유롭게 될 것이며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의 귀환 대열에서 앞장서게 될 것임을 뜻합니다.
2) 정복당하는 바벨론(9~10절)
(1) 여호와께서 북쪽에서 ‘큰 민족의 무리’를 일으켜 바벨론을 쳐들어오게 합니다(9절).
“[9] 보라 내가 큰 민족의 무리를 북쪽에서 올라오게 하여 바벨론을 대항하게 하리니 그들이 대열을 벌이고 쳐서 정복할 것이라 그들의 화살은 노련한 용사의 화살 같아서 허공을 치지 아니하리라”
큰 민족의 무리를 북쪽에서 올라오게 하여. - 예레미야의 예언 선포 당시 바사는 앗수르 제국이 멸망하자 메대 남부 엘람의 한 지방인 안산(Anshan)에서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당시로서는 바사가 강대국 바벨론에 대항할 연합국의 주체 세력이 될만한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미래에 되어 질 일을 미리 아실 뿐 아니라 역사의 흐름을 당신의 계획하시는 방향으로 이끄셨습니다.
즉 B.C. 640년 고레스 1세가 안산의 왕으로 옹립되면서부터 안정된 기반을 구축해 던 바사는 캄비세스 1세의 뒤를 이어 고레스 2세가 등극하면서 메대를 점령함으로, 중근동의 대권을 이어받을 준비를 갖추었던 것입니다(B.C 550년). 이후 바사는 바벨론의 나보니두스 왕과 동맹을 맺었으며, B.C. 539년 나보니두스가 아랍 원정을 간사이 당시 섭정 왕 벨사살이 치리하고 있던 바벨론을 침략하여 완전 점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2) 명사수들의 화살 앞에 바벨론 군대가 궤멸당하고, 점령당한 바벨론이 약탈에 넘겨집니다(10절)
“[10] 갈대아가 약탈을 당할 것이라 그를 약탈하는 자마다 만족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를 약탈하는...만족하리라. – 앞절에서 설명된 숙련된 용사들은 바벨론 파괴를 즐길 정도까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풍족한 전리품과 노획물에 침략자들이 흡족해 합니다.
많은 나라를 쳐들어가서 약탈한 전리품과 조공으로 물자가 넘치던 바벨론이 침략군의 좋은 먹이가 됩니다.
마지막의 ‘여호와의 말씀’은 다시금 북쪽에서 내려오는 침략군에 의한 바벨론의 멸망이 여호와의 결정에 속함을 보여줍니다.
강대국의 군사력이 아니라,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민족들의 운명과 역사를 결정하는 주체이십니다.
하나님께 위임받은 권한은 넘으면 패망합니다.
자비와 긍휼을 잃은 권력은 안하무인으로 잔인한 권력을 휘두르다가 패퇴합니다.
왕도(王道)는 하나님께서 승인하지만 패도(覇道)는 멸절(herem)하십니다.
어떤 권력도 하나님 앞에 영원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권력의 도’를 먼저 알기에 권력을 향해 그 한계를 알려줄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공명정대하게 판단하시며 사사롭게 봐주거나 편들어주지 않으십니다(1~3절).
언약 백성도 심판하셨기에, 한때 주님의 일을 수행했다 해서 바벨론의 악을 눈감아주실 리 없습니다.
그들은 유다와 열방의 악을 제거하는 징벌의 칼을 받았지만, 그 칼을 무자비하게 휘둘렀습니다.
막강한 힘을 자랑하며 자고했지만, 그 힘은 그들의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맡기신 힘을 되찾아 가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악행에 면죄부를 주지 않습니다.
더 겸손하게 주님의 뜻을 살피고, 더 신중하게 맡겨주신 주님의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2) 유다를 해방하십니다(4,5절).
유다는 울면서 돌아올 것입니다.
형량을 채우고 자유를 얻은 사람처럼, 옛 일을 회개하고 새 백성이 되리라 결단하며 돌아올 것입니다.
갈 곳을 찾지 못해, 다시 아버지의 집을 향했던 탕자처럼 그들도 시온의 아버지 집 앞에서 통곡하며 아버지를 부를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외면치 않으시고 영원한 언약으로 그들을 맞아들이십니다.
3) 유다 백성을 잃어버린 양 떼로 여기십니다(6절).
비록 범죄하여 징계를 받고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지금 그들이 겪는 비참한 현실은 악한 목자들이 그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양 떼를 방치한 악한 목자의 죄를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목자를 따른 양도 재앙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나도 무지한 양처럼 악한 목자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말씀에 늘 귀를 열고 순종해야 합니다.
4) 길 잃은 양 떼를 학대한 대적 바벨론을 벌하십니다(7~10절).
그들은 ‘범죄한 양 떼이니 죽여도 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무자비한 학살과 만행을 정죄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죄에 대한 마땅한 처벌이 필요하지만,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한 비인격적이고 무자비한 공격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범죄입니다.
기도
공동체-쉴 만한 물가와 안전한 목장으로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의 음성을 늘 듣고 따르게 하소서.
열방-베트남의 기독교 마약 중독 재활원에서 중독자들이 마약 중독을 고치고 복음도 받아들이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기독교 재활원을 통해 많은 중독자들이 삶의 희망과 의미를 찾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