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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어떻게 운전할 것인가?>
역대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자동차 운전에 비유한 유머가 있지요. 이승만 대통령은 국제면허 운전, 박정희 대통령은 과속운전, 최규하 대통령은 대리운전, 전두환 대통령은 난폭운전, 노태우 대통령은 초보운전, 김영삼 대통령은 무면허 운전, 김대중 대통령은 음주(뺑소니) 운전, 노무현 대통령은 역주행 운전이라고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운전으로 비유될는지 궁금합니다.
다사다난했던 2010년도가 방금 전에 지났습니다. 201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인생을 운전에 비유한다면 지난 한 해 동안 여러분의 운전은 어떤 운전이었습니까? 다 모범적인 안전 운전을 해오셨습니까? 새해에도 무사고로 즐겁고도 안전한 운행을 하시길 바랍니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토끼해인 신묘년(辛卯年)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적으로나 사업적으로, 가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요.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새해를 맞는 우리의 자세입니다. 새해 첫 시간을 맞은 우리는 어떤 자세로 한 해를 살아야 할까요?
<신앙경주에서 승리하려면>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운동 경기에 비유합니다. 고린도 전서의 주 무대인 고린도는 아테네에서 아주 가까운 도시였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아테네는 올림픽의 발상지가 아닙니까? 그러니 고린도 역시 올림픽 경기와 무관하지 않았겠지요. 특히 고린도에서는 올림픽 다음으로 큰 운동경기인 ‘이스티미아’라는 경기가 3년마다 열렸다고 합니다. 이 운동 경기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종목이 육상 경기, 즉 달리기와 권투 시합이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사도 바울은 그 당시 고린도 교인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던 운동 경기, 그 중에서도 달리기와 권투 경기에 신앙생활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운동 경기를 잘 해서 우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분명한 목표를 정하는 일과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피눈물 나는 훈련을 하는 것이지요.
첫째로, 새해에는 목표를 분명히 정하십시오.
운동을 할 때, 물론 취미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단지 여가 선용을 하기 위해, 건강해지기 위해, 혹은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바울이 운동 경기를 말할 때에는 올림픽과 같은 세계적인 경기를 의미합니다.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말을 하지만, 그냥 ‘한 번 참가해보자’ 이런 정신으로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선수들은 금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 참여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국위를 선양하기 위해 국제 경기에 나가는 것이지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먼저 24절을 봅시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100미터 달리기 시합에 열 명이 참가했다고 해도 우승해서 금메달을 받는 선수는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열 명의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는 목적은 하나이지요.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역시 새해에도 열심히 신앙의 경주를 해나가야 하는데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이지요. 히브리서 12장 2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는 달리되 예수님을 바라보며 달려야 합니다. 예수님 이외에 다른 것을 보고 달리면 우리는 넘어집니다.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고 달릴 때 거기에 구원이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목표로 해서 달려 나가되 우리는 세부적인 목표도 잘 세워야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아무 목적이 없이 빈둥거리며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꿈도 희망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루어 놓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집중력이 있습니다. 지혜와 에너지를 그 목표 달성에 두기 때문에 놀라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어떤 장애물과 시련이 있어도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저 역시 미국에서 유학할 때 경제적인 어려움을 비롯한 숱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새해에 우리 교회 앞에는 '성전 건축'이라는 중요한 목표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목표를 놓고 기도하고 헌신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이제 여러분 개인과 가정과 직장과 사업에도 목표를 분명히 정하십시오. 예를 들면, “금년에 나는 성경을 세 번 통독하겠다.” “다섯 명을 전도하겠다.” “새벽 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겠다.” “성경을 필사하겠다.” 혹은 “하루 삼십 분씩 운동을 하겠다.”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와 같은 외국어를 배우겠다.” 목표를 분명히 정하십시오. 그리고 그 목표를 놓고 기도하고 실천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시골에서 잔칫날 돼지를 잡았습니다. 왜 하필 돼지를 잡았을까요? 주인이 소를 잡으려고 하니 소가 말합니다. “주인님, 제가 죽으면 밭농사는 누가 하지요?” 개를 잡으려고 하니 개가 말합니다. “제가 죽으면 집은 누가 지키지요?” 고양이를 잡으려고 하니 말합니다. “제가 죽으면 쥐는 누가 잡지요?” 주인은 할 수 없이 돼지에게 갔습니다. 돼지는 쿨쿨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목적도 사명도 없는 돼지를 잡았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오늘 이 시간 새해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분명히 정하십시오.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목표를 정해놓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힘써 기도하시고 전진해나가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목표의 중요성을 본문 26절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100미터나 200미터, 마라톤과 같은 모든 달리기 시합에 있어서 결승 테이프, 즉 목표지점을 향하여 달려 나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권투 시합을 하는데 점수를 많이 딸 수 있는 상대편 선수의 신체 부위에 펀치를 날리는 것이 중요하지요. 아무리 쇠뭉치 주먹을 강하게 날린다고 해도 허공을 겨냥하면 자기 힘만 빼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신묘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금 이 시간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이 송구영신 예배 때부터 힘차게 출발하십시오. 반드시 목표에 도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새해에는 더욱 더 절제와 훈련에 힘쓰십시오.
25절을 보세요.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세상의 운동 경기, 예컨대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하면 면류관을 받습니다. 월계관을 머리에 쓰지요. 그런데 이런 면류관은 금방 시들고 맙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목표로 해서 달려 나가는 신앙 경주에서 우승하면 영원히 시들지 않고 썩지 않는 면류관을 얻습니다.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얻습니다. 우리는 이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 신앙 경기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 신앙 경주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절제입니다. Self-control, 자기 통제이지요. 자기를 자유롭게 다스릴 수 있는 힘이지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마지막 열매가 절제입니다(갈 5: 23). 하지만 이것은 아주 고되고 가혹한 훈련입니다.
지난 번 아시안 게임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금메달을 많이 땄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피눈물 나는 훈련이 있었습니다. 때로 체중 감량을 위해 먹을 것을 줄여야 할 때도 있었고,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다 포기해야만 할 때도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평소 훈련 시간에 흘리는 땀 한 방울이 전쟁시에 흘리는 피 한 방울을 막아준다는 말이 있듯이, 이와 같은 절제와 훈련은 반드시 경기가 있을 때 그 대가를 지불받습니다.
여러분, 새해에 아름다운 목표를 많이 세우셨습니까? 그 목표는 절대로 거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훈련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어디 성경 읽기가 거저 됩니까? 새벽기도에 참석하는 일이 거저 됩니까? 하루 30분씩 기도하는 일이 그냥 되지 않습니다.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절제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영적인 목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기분 내키는 대로 뭐든지 다 하면서 경건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운동을 하고 공부를 하고 돈을 버는 일에 있어서도 때로 좋은 것 포기하고 잠을 줄이고 맛있는 음식도 포기해야 합니다. 옳습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절제해야 합니다!
제일 먼저 말을 조심해서 합시다. 생각이 난다고 아무 말이나 막 하지 맙시다. 설화(舌禍)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필경 화를 입고 말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지요. “하늘에 구름이 끼지 않는 날은 있어도 아내의 잔소리가 없는 날은 없다.” 저도 나이를 먹을수록 잔소리가 많아지는데 잔소리가 너무 많아서야 어디 되겠습니까? 이런 말이 있지요. “남편은 집에 두면 근심 덩어리, 데리고 나가면 짐 덩어리, 마주 않으면 원수 덩어리, 혼자 내보내면 사고 덩어리, 그리고 며느리에게 맡기면 구박 덩어리.” 아무리 남편이 아내가 자식이 원수 덩어리라고 해도 항상 좋은 말만 씁시다.
이왕 언어에 대한 절제 이야기가 나왔으니 유머 몇 마디만 더 합시다. 한 마을에 바보 삼 형제가 살았답니다. 그 마을 산 속, 동굴에는 마시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샘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샘물을 마시려면 동굴에 들어가서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만일 한 마디라도 할 경우 금방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보 삼 형제는 영원히 살고 싶어서 그 동굴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먼저 형이 말을 했습니다. “여기서 절대로 말을 하면 안 돼!” 큰 형이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이어서 둘째도 바보인지라 “거봐, 말하지 말랬잖아”하고 죽었습니다. 그러자 셋째가 “야! 나만 살았다!”면서 죽었습니다.
이제 이 사실을 알게 된 동네 사람들이 삼 형제의 시신이라도 가져오려고 동굴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장님이 동네 사람들에게 “여러분, 이곳에서 말을 하면 절대 안 됩니다!”고 말하자 동네 사람들은 “네!” 대답하고서는 모두 죽고 말았답니다.
더위를 못 참는 남자가 에어컨이 고장 난 버스를 탔는데 안 떠나고 손님을 기다립니다. 이 때 열을 받은 손님 하나가 한 마디 합니다. “이 똥차 왜 안가!” 운전자가 뒤를 돌아보며 하는 말이 “똥이 차야 가지!”
옳습니다. 기분 내키는 대로 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다가는 신앙경주에서 우승할 수 없습니다. 이웃도 해치고 자기도 불행하게 될 것입니다.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 언어생활에 있어서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참된 진리의 말, 생명의 말, 위로와 격려의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
또 한 가지 먹는 일에 절제합시다. 옛날과 달리 요즈음은 너무 많이 먹어서 탈입니다. 잠언서 23장 2절에 보면 식탐을 이렇게 경계합니다. “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무작정 식탐이 동할 때마다 목에 칼을 댈 정도로 조심하라는 경고이지요. 비료가 식물을 잘 자라게 만들지만 너무 많이 줄 경우 역효과가 일어나 오히려 병들어 죽게 합니다.
금년 한 해에는 우리 음식을 잘 조절합시다. 전문가의 조언에 따르면 약 80% 정도만 먹고 20%는 비워 두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말 못하는 돼지도 정량의 70%만 먹는다는 보고가 있지요. 잘 먹는 사람을 ‘꿀돼지’라고 부르는데 그 꿀돼지도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주어도 자기 정량의 70% 이상을 먹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돼지보다 더 많이 먹어서 안 되겠지요. 옳습니다. 질병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식탐을 조절합시다.
그 밖에 우리는 감정 절제에도 특별한 공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 잠언서 16장 32절은 말씀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세상에서 가장 묘한 것이 감정입니다. 들쑥날쑥 정함이 없습니다. 아침에 좋았다가 점심 때 싹 변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감정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인생을 산다면 필경 인간관계는 깨질 것이고 불행해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있지요. “인생은 냉철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희극이고 기분 내키는 대로 느끼는 사람에게는 비극이다.” 새해에는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감정을 따라 살지 말고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삽시다. 우리 자신을 쳐 주님의 뜻에 복종시켜서 신앙경주에서 승리합시다.
<신발깔창을 파고 들어온 모래 한 알과 씨름하며>
신묘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해에는 여러분의 신앙이 한층 더 자라나게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격이 더 성숙해지질 바랍니다. 여러분의 살림살이가 더 풍요롭게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간관계가 더 깊어지고 윤기가 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신앙경주에서 한 분도 낙오하는 일이 없이 다 우승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주 머나먼 거리를 도보로 걸어온 사람에게 기자가 여행길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물 없는 광야를 홀로 외롭게 걸었던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가장 가파르고 험한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갔던 것입니까?” “아닙니다.” “혹시 발을 헛디뎌 개펄에 빠졌을 때가 아닙니까?” “아닙니다. 사실, 저를 가장 괴롭게 했던 것은 제 신발 속에 들어온 작은 모래 하나였습니다.”
새해에도 우리를 괴롭힐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적인 위기도 아니고 경기 침체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신발깔창을 파고 들어온 모래 한 알, 자갈 한 알이 우리의 경주를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래 하나, 자갈 하나가 우리로 하여금 더욱 더 하나님께 붙어 있도록 만드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작년에도 우리를 보살펴주셨던 하나님의 은혜가 금년에도 여러분과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어려움이 금년이라고 해서 없을 리 만무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으십시오. 삶의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절제와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의 삶이 올 한 해 동안 더욱 더 성숙하고 풍요롭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주께 가까이' 라는 CCM입니다.
앨토 색소폰으로 연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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