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2년 준비한 ‘통일 독트린’, 매우 실망입니다
: 정부는 대화와 토론이라는 민주적 가치 되새겨야
정일영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사상 초유의 반쪽 광복절 경축식이 열린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추진한 새로운 통일 비전이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2년간 준비한 통일 미래의 비전은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그 한계는 무엇일까?
윤 정부 통일 독트린, 무엇을 담고 있나?
윤석열 대통령은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에게 완전한 광복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서 한반도 전체에 국민이 주인인 자유·민주·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이라며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다.
통일부가 제공한 해설자료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의 통일 독트린은 ‘3-3-7’의 구조 즉, 3대 통일 비전과 3대 통일 추진 전략, 그리고 7대 통일 추진 방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3대 통일 비전은 미래 통일 대한민국의 모습으로, ① 자유와 안전이 보장되는 행복한 나라, ② 창의와 혁신으로 도약하는 강하고 풍요로운 나라, ③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나라를 제시했다.
다음으로, 3대 통일 추진 전략으로는, 국내와 북한, 그리고 국제사회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추진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국내에서는 자유 통일을 추진할 자유의 가치관과 역량을 배양하고 둘째, 북한에서 북한 주민들의 자유 통일에 대한 열망을 촉진하며 셋째, 자유·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7대 통일 추진 방안(action plan)으로, ① 통일 프로그램 활성화, ②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다차원적 노력 전개, ③ 북한 주민의 ‘정보접근권’ 확대, ④ 북한 주민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인도적 지원 추진, ⑤ 북한이탈주민의 역할을 통일 역량에 반영, ⑥ 남북 당국 간 <대화협의체> 설치 제안, 그리고 ⑦ <국제 한반도 포럼>을 창설해 국제사회의 자유·통일에 대한 지지를 견인한다는 것이다.
장고 끝 허무한 통일부 업무계획 ‘복붙’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통일부는 2024년 ‘민족공동체통일방안 30주년’을 계기로 새로운 ‘통일방안 발전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연장선상에서 2023년 통일부 업무계획은 각계 권위 있는 전문가로 구성된 ‘통일미래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가칭 '新통일미래구상'을 연내에 발표하겠다는 일정을 제시한 바 있다.(관련 기사: 통일은 당위 아닌 ‘선택’... 정부 주도 통일안 구상에 반대한다, https://omn.kr/22vhy)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제시한 소위 ‘통일 독트린’은 지난 2년간 준비한 논의의 결과였다. 이런 이유로 필자 또한 새로운 통일 비전에 대한 나름의 기대를 안고 경축사를 기다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새로운 통일 비전은 없었다.
필자가 윤석열 대통령의 통일 독트린 내용을 본 이후 든 생각은 “어! 이거 통일부 업무계획 아니야?”였다. 사실이 그렇다. 앞서 정리한 ‘통일 독트린’의 내용을 보면 대부분 2024년 통일부 업무계획을 ‘복붙’(복사해 붙임)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관련 자료: 2024년 통일부 주요정책 추진계획).
2년간 준비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실한 결과물이다. 국내외 통일환경의 변화에 대한 고민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계승과 발전에 대한 고민도 찾아보기 어렵다. 제대로 된 통일 비전이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급하게 통일부 업무계획을 활용해 급조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이유이다.
진정성 없는 대화 제안 속에 진영 편 가르기에만 몰두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2023.12)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우리 국민의 응답은 43.8%로 역대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반대로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29.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특히 20~30대의 경우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대답이 ‘필요하다’는 응답보다 더 높았다.(관련 자료: 2023 통일의식조사) 이는 북한의 대남도발에 따른 대북 인식 악화가 원인이기도 하지만, 우리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결합 된 결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는 대북 강경정책을 고수해 왔다. 남북대화를 위한 진정성 있는 모습 또한 보여주지 못했다. 윤 대통령의 경축사에서 남북 당국 간 대화 협의체 설치와 인도적 지원 제안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남북대화에 진심이라면 9.19 남북군사합의 복원과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등 남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전향적 조치가 제시됐어야 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통일 비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가짜 뉴스’를 언급하며 ‘반자유, 반통일 세력’ 운운한 점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은 ‘가짜 뉴스’이고, 정부를 비판하면 ‘반자유’, ‘반통일’ 세력이라 비판하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의문이다.
만약 윤석열 정부가 처음부터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정당, 사회단체와 함께 새로운 통일방안을 논의하는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면 어땠을까? 대화로 서로의 견해를 확인하고, 토론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절차라는 점에서 이번 통일 비전 논의와 결과가 못내 아쉽기만 하다.
*글쓴이 정일영씨는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으로, <한반도 오디세이>, <한반도 스케치北>,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등 집필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