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시에 신인상 당선작]
계간 『시에』 2014년 봄호 신인상
입양 외 2편 / 문숙자
낯선 차를 타고 떠난 막내를 잊고 우리는 쑥쑥 자라는데 엄마는 점점 야위어가요
밥풀처럼 싸락눈이 내리는 오늘 밥풀밥풀 내리는 그것을 받아먹는데 세상이 온통 밥풀인데 왜 이렇게 배가 고픈지
먹고 싶은 먹고 싶은 먹고 싶은 것만 아른거려요
막내를 데려간 웃음의 무늬가 걸어와요, 저기
나를 안아주세요 나를 선택해주세요
웃음의 무늬는 정말 따뜻해 엄마의 출렁이는 슬픔에서 멀어지기 쉬워요
집도 잘 지키고 엄마처럼 주인에게 순종적인 어른이 되겠어요
잊지 않을게요 산갈나무숲에 겨울이 내려앉는 날 나의 생일이라는 것 안녕 엄마 안녕 누이들
사소한 웃음
한동안 소식 끊겼던 사람에게서 카카오톡이 왔다
한겨울 느닷없이,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냐 묻는다
언젠가 마트에 가면 아이스크림은 꼭 사세요
하던 말이 생각났다
대답도 하기 전에
바닷가 풍경 사진 한 장이 날아왔다
물결치는 바다를 배달했으니
무엇을 줄 수 있냐고 묻는다
속이 깊은 바다와
걸음이 예쁜 구름이 하늘을 지나는 풍경을 전송하고
지구에서 가장 푸르게 출렁이는 것을 주었으니
그대는 내게 무엇을 더 주실 수 있는지요? 물었다
빙수가 먹고 싶은데 어떡하느냐 딴소리를 한다
기온이 뚝 떨어져 바닷물이 꽁꽁 얼면
짭쪼롬하고 달큼한 빙수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그가 킥킥 웃는다
나도 붉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동그랗게 웃었다
달빛으로 푸른빛이 도는 이마가 시릴 때까지
우리는 킥킥거리다 헤어졌다
무거운 두뇌가 갑자기 가벼워졌다
가난한 저녁
지는 해를 삼키며 수억 만 개의 물비늘이 밀려오는 시간
바다를 닮은 하늘가에 서 있으면
노을이 발목까지 차오르는 날 있다
노을로 물든 신발을 신고
마주칠 사람 없는 마을을 거닐다
바다와 눈이 마주치면 꿍 닫힌 마음이 열린다
해가 머무는지 지는지 바라보는 일
쌀은 떨어지지 않았는지 연탄은 들여놓았는지
삶이 위태로운 한 사람을 생각하는 일처럼 무겁고 슬프다
오늘처럼 추운 날엔
적막이 밀어 올리는 파리한 풍경으로는
영하의 밤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삶이 편하지 않을 때 해는 빨리 떨어지고
바람은 문풍지를 뚫고 들어와
주인처럼 앉아있는 가난한 저녁
문숙자
경기도 구리 출생. 『소요문학』 편집장, (사)한국작가회의양주지부 『아름다운작가』 편집장.
상상의 뱀 외 2편 장자순
걸을 때마다 거리에 찍히는 얼굴들 얼굴에 달라붙는 눈동자 그리고 눈동자 틈에 걸린 거미줄의 목, 빠져나올 수 없는 하늘, 바람에 꺾어진 편지지, 녹슨 기찻길의 반짝임, 과거의 시간으로 미끄러지는 레일의 뱀대가리, 청춘이 금 간 길에 깔린 헛기침, 새벽의 잔소리, 벽에 붙은 껌의 혓바닥, 날아간 아침 공기 사이로 걸어들어오는 그녀의 물소리, 오늘을 지우는 밥수저, 더 갈 곳이 없는 먼지의 공간 그들만의 추억이 이상한 아침을 걷고 있다 그 틈 사이로 세상은 떠오른다 마비된 태양이 구름에 걸려있다 내 심장을 기어가고 있는 호흡은 살아있다고, 살아있다고
새들은 일요일에 약속을 하지 않는다
모든 타종이 나뭇잎을 흔들었다
10시의 태양이 구부러진다
고개 숙인 일요일 오전, 누가 아침을 쓸고 갔는지
뒷골목의 바람도 걸음이 한 템포씩 처져있었다
하루도 가끔 하늘을 쳐다보는 날이 있는가 보다
새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전봇대와 전봇대의 간격이 길어져 있었다
새들은 일요일 아침에 약속을 하지 않는다
날아가는 뒷모습, 아침 그늘이 묻어있었다
오랜 시간 일요일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오후는 지워진 듯했다
일요일 오전을 읽고 있는 빈 페이지가 궁금했다
내가 일요일인가 누구도 묻지 않았다
나라는 동백
동백꽃 붉은 입술이 빈 페이지에서 혼자 서 있다 주변은 경계가 없어 경계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그 안에 살아있는 꽃송이 하나 누가 점을 찍고 갔을까 지상의 낙관이 흔들렸다 피 한 덩어리가 고여있다 붉은 살점 하나가 온몸으로 서 있다 다가오는 말은 실어증이 되어 언덕 너머로 가벼운 구름은 이해를 한 듯 풀잎처럼 어깨를 두드리고 길따라 흐르고 있다 무거운 돌들은 구름이 되지 못하고 이끼만 끼어 있다 동백꽃이 지기에는 장소가 길어질 것 같다 꽃 떨어진 시간은 어디에 있는지 냄새도 졸고 있다 깨어보니 지층과 지층 사이 꽃잎만 붉었다 별자리는 어디에 묻혔는지 떨어진 동백꽃은 기억의 등이 보일 것 같다
나라는 동백
장자순
충남 연기 출생. 충남대학교 화학공학과 및 동대학원 박사 졸업. 현재 대전대학교 환경공학과 겸임교수.
달맞이꽃 외 2편 정경용
포장마차 불빛이 아슴아슴 피어난다
귀가를 서두르지 못하는 어깨들이
디귿 자 목로에서 술잔을 기울인다
부모에게 집칸이나 물려받은 직장동료 반장은
몽골 색시에게 장가도 가는데
깡통 집주인 은행빚에 전세금을 날리고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진 친구 민국이의
안부가 궁금하다
전세금은 환장하게 뛰고
나라가 어디까지 가려는가?
오뎅 국물 같은 시간을 마시다 보면
보듬어 들일 수 없는 애인이 불안하다
살림 차릴 방이 없어 장가 못 가는 그의
넋두리는 생 쌀밥처럼 설익어간다
색시감만 있다면 월세가 대수인가
바람도 바닥에 곤두박질치면
회오리로 일어서지
연애 한번 못 해본
백수의 호기가 자정을 넘어간다
아픔을 비다듬는 달도 이지러진
포장이 펄럭이고
삼십 촉 전구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서로가 캄캄한 등을 다독이며
취기가 돌아도 붉어지지 못하는 관자놀이에
달맞이꽃 아슴아슴 피어난다
물금을 읽다
거룻배가 강의 물금을 훤히 읽고 있듯
강도 그의 손금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저녁의 푸른 이내에 첫 별이 떠오를 때
정맥 같은 그물을 치고
새벽 놀 빛에 끝별이 질 때
동맥 같은 그물을 걷는 거룻배
물속 부력은 어족들의 길이고
수면의 경계는 그의 길이고
물 밖 양력은 새들의 길이다
먹구름이 물고기자리를 지우고
강물도 배가 불러 붉덩물이 뱃길을 삼킨 날
굳은살 앉은 지문에 번개가 긋는 고뇌로
그도 강을 떠나고 싶은 듯
눈빛에 자욱한 물보라가 인다
등 굽은 아버지가 정성으로 그물을 치면
생의 죄표로 떠오른 하얀 부표에
은빛 아가미의 입 맞추는 파문이
사방 무늬결로 물비늘을 퍼트린다
우주를 당겨 말갛게 비친 천문의 마음으로
허다한 허물을 덮는 물금
일급수의 샘물체에 맑게 씻은 눈으로
거룻배의 손금을 거룩하게 기록한 물금을 읽다
강아지풀잎 나라
개구리 잡아 메쳐 기절시켜본 적 있는가? 번질거리는 배에 강아지풀 잎으로 십자가 만들어 교차로에 침 뱉고 깨나기를 기원한 적 있는가? 눈 희번덕거리는 폭군이었다가 가슴 졸이는 거룩한 사제였다가 생명줄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사이 어머니 부르는 소리 못 들은 척 그림자는 길어졌다
왕은 어디에 있나?
개구리를 손아귀에 넣어다가 살려주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던가? 직장에서 해고통지서를 받은 다음날 내 마음의 풀밭에 개구리가 뛴다 해가 뜨면 뛴다 이력서를 들고 뛴다 뛰는 줄도 모르고 눈이 튀어나오도록 뛴다 세상을 향해 펄쩍 뛰고 나면 가슴이 벌렁벌렁 숨을 고른다 움츠린다 더 높이뛰기 위하여 운다
비가 오면 운다 정당하게 운다 자본도 폭군도 사제도 아랑곳하지 않고 운다 높낮이가 없이 고즈넉이 운다 기절한 영혼이 깨나기를 기원하며 성호를 긋는 강아지풀잎의 나라 잔잔한 물가 푸른 초장은 있기나 한가?
정경용
충북 충주 출생. 2012년 월명문학상 대상 수상.
2014년 시에 신인상 시 부문 심사평 / 지속적인 시 작업만이 좋은 시로 나아가는 길
해가 바뀔 때마다 문단은 신춘문예 당선작에 시선이 집중된다. 그동안 신춘문예는 한국문단에 첫 발을 내딛는 권위의 표상처럼 여겨져 왔다. 문예지를 통해 등단을 하였거나 시집을 통해 등단한 기성 문인들도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신춘문예의 권위와 명예는 예전 같지 않다는 게 문단의 대체적인 시각인 것 같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신춘문예가 갖는 여러 가지 문제가 엄연히 존재한다는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중 하나는 신춘문예 양식을 들 수 있고, 또 하나는 심사위원의 양식에 맞는 작품이 대부분 당선작으로 뽑힌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신춘문예 응모는 마치 대학 입시생이 자기가 가고자 하는 대학의 양식에 맞는 공부가 이루어지고, 그 양식에 맞는 모범답안을 갖추어야 된다는 데 있다. 간간이 일고 있는 표절 시비는 부차적인 문제 같다. 표절 시비는 신춘문예뿐만 아니라 문예지도 존재하는 사실이니까.
문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데는 신춘문예나 문예지로의 등단, 시집 출간 등 여러 가지 양식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등단의 지면이 아니라 작품의 개성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일회적인 등단의 요식적인 행위의 글쓰기가 아니라 지속적인 글쓰기 역량이 갖추어져 있는가가 관건이다. 2014년 『시에』 시 부문 심사에서 전자보다는 후자에 관심을 두고 심사위원들은 투고된 작품을 정독하였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10여 명의 100편이 넘었다. 그중 문숙자 씨의 「입양」 외 2편, 장자순 씨의 「상상의 뱀」 외 2편, 정경용 씨의 「달맞이꽃」 외 2편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이 세 분의 시편들은 위에서 언급한 “일회적인 등단의 요식적인 행위의 글쓰기가 아니라 지속적인 글쓰기 역량이 갖추어져 있는가”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투고된 10편이 편차가 없는 가편으로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이는 그동안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면서 꾸준한 시작활동을 쉼 없이 해온 결과라 여겨진다.
문숙자 씨의 시편들은 시 언어에 대한 자의식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따뜻하면서 또한 예리한 점에 주목하였다. 장자순 씨의 시편들은 개성이 강할 뿐만 아니라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 탁월한 점에 주목하였다. 무엇보다 시적 대상을 현대의 언어 감각에 맞게 구사할 줄 아는 미덕을 높이 샀다. 정경용 씨의 시편들은 시적 소재가 평이하게 느껴졌지만 시를 이루는 언어가 사회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민중서정을 잃지 않은 점을 높이 샀다.
시뿐만 아니라 문학은 자신만의 색채를 구축하는 양식이다. 그때 언어와 정신을 어떻게 결합시켜 자신의 존재를 시로 드러낼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세 분의 당선을 축하한다. 모쪼록 지속적인 시 작업만이 좋은 시로 나아가는 길임을 잊지 말고 정진, 또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공광규(시인) 김선태(시인, 목포대 교수) 양문규(시인, 본지 주간) ―계간 『시에』 2014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