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重淹 1474 1504 昌寧 季文 晴湖
李荇 1478 1534 德水 擇之 容齋, 滄澤漁叟, 靑鶴道人 文獻, 文定
용재집 제4권 / 조천록(朝天錄) 경신년에 질정관(質正官)으로 중국에 갔다. / 순부(淳夫)와 계문(季文)에게 주다.
객지에서 세찬 비를 만나노니 / 客裏逢逢雨
시름겨운 나머지 시를 읊조린다 / 愁邊費一吟
건곤 사이 쓸쓸히 지내는 신세 / 乾坤身落莫
세월 속에 세어버린 머리털이여 / 歲月鬢蕭森
외진 바닷가로 삼 년간 이별하니 / 瘴海三年別
요동 하늘 위 만리의 마음이로세 / 遼天萬里心
속절없이 구름을 바라는 눈으로 / 空將望雲眼
날 저물녘 다시 높은 곳에 오른다 / 日暮更登臨
[주-D001] 계문(季文) :
조선조 문신 성중엄(成重淹)의 자이다. 이때 성중엄 역시 정희량과 마찬가지로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의주 근처인 인산(麟山)에 유배되어 있었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하 (역) | 1999
容齋先生集卷之七 / 海島錄
余自竄居海島。數與子眞,直卿,公碩諸公。相唱酬往復。自念三數年。忘形之交。天禍人殃。凋喪幾盡。在而不得見者。獨南士華,權叔達而已。今因諸公唱酬之什。聯次爲語。悼故傷生。情亦自至。非曰詩乎云也。十首。
毀譽紛紛萬口騰。此公心地不摸稜。楚江何處尋遺佩。願寄纏筒五彩繩。鄭淳夫。壬戌五月五日。自沈江而歿。
斯人合在白雲鄕。一謫塵區海變桑。痛哭廣陵今已絶。此生無復聽峨洋。朴仲說。甲子六月十五日。遇禍。
橫衢白刃獨能前。天遣妖氛翳日邊。半夜夢魂如夙昔。數行淸淚濕寒氈。權通之。甲子冬。與余▒係獄。▒▒傋至。一日。極余手指天曰。日下有白氣亘空。子亦見之乎。余曰。未也。通之。仰天良久曰。噫。▒其死矣。正爲吾也。是年十二月初一日。被禍。近夜。連夢通之如平生。故幷及之。
澹若秋空白露漙。剛如支柱鎭奔瀾。百年名行伽倻記。要倩宜春灑素紞。金仁老。癸亥九月。病卒。甲子之禍。亦與焉。仲說。嘗草仁老名行記。欲請士華筆跡以傳之云。
乃翁高節倚秋明。經術文章漢更生。門地終隨一網盡。㜸狐寧復忌天晴。李寧之。宗姓也。甲子四月日。遇禍。其父朱溪公。嘗以直言忤奸臣。是年秋。亦及於禍。闔門無敢遺免者。
憔悴西南歲月重。風霜變盡紫髥茸。竹山路上蒼黃面。烈火終摧百丈松。成季文。戊午秋。以史事謫義州。庚申夏。遷河東。甲子冬。遇禍于遷所。余於甲子六月。被繫詣京獄。遇季文於竹山路中。蓋以事。又追杖還配也。瘁形羸面。相目不之識。因叱馬作聲。方認爲季文也。揮淚噓息而別。
文成之後是淸門。詩禮風流自有源。生死保身知汝獨。高墳四尺漢南村。安善之。高麗文成公珦之後也。甲子後四月。以病卒。
南塞難逢西雁來。夜床風雨謾相催。白頭湖海唯君在。懷抱無因得再開。南士華。謫在陽德。
商山迢遰隔千岑。濟水汪洋過萬尋。公建池邊一杯酒。幾時文字更㪺深。權叔達。謫在尙州。去年秋。余別叔達於公達池上。有公建池邊一杯酒。西風爲助生離悲之句。
秋來陰雨不逢晴。愁殺東籬黃菊莖。九死一身心尙在。擬將餘齒看河淸。
용재집 제7권 / 해도록(海島錄)
내가 찬축(竄逐)되어 섬에 살면서부터 자주 자진(子眞), 직경(直卿), 공석(公碩) 등 제공(諸公)과 함께 서로 시를 주고받아 창수(唱酬)하였는데, 스스로 생각해 보니 근래 이삼 년 사이 망형(忘形)의 교분을 맺은 벗들이 하늘과 인간의 앙화(殃禍)로 거의 다 세상을 떠나고, 살아 있는데도 만나지 못하는 이는 남사화(南士華)와 권숙달(權叔達)뿐이다. 이제 제공(諸公)들이 창수한 시편들에 따라 연구(聯句)로 차운하여 심회를 말하매 옛날을 애도하고 오늘을 상심하는 중 정이 절로 복받쳤으니, 그저 시를 짓는다고 지은 것은 아니다. 10수(十首)
분분한 비방과 칭찬이 들끓건만 / 毁譽紛紛萬口騰
이 공의 마음은 모릉하지 않았지 / 此公心地不摸稜
초강 어드메서 남긴 패물 찾을꼬 / 楚江何處尋遺佩
원컨대 오색 끈으로 묶은 밥통을 부치고저 / 願寄纏筒五彩繩
정순부(鄭淳夫)가 임술년 5월 5일, 스스로 강에 빠져 죽었다.
이 사람은 응당 백운향에 있어야 할 몸 / 斯人合在白雲鄕
한 번 세상에 귀양 와 상전벽해 되었구나 / 一謫塵區海變桑
광릉산이 이제 끊겼음을 통곡하노니 / 痛哭廣陵今已絶
이승에서 다시는 아양곡 들을 수 없어라 / 此生無復聽峨洋
박중열(朴仲說)이 갑자년 6월 15일, 화를 당했다.
흰 칼날 비낀 한길에 홀로 나아갔나니 / 橫衢白刃獨能前
하늘이 요기를 시켜 해 주변을 가리었지 / 天遣妖氛翳日邊
한밤 꿈속의 그 모습 옛날과 같으니 / 半夜夢魂如夙昔
몇 줄기 맑은 눈물 차운 이불 적신다 / 數行淸淚濕寒氈
권통지(權通之)가 갑자년 겨울, 나와 더불어 재차 옥에 갇혀 갖은 고문을 다 당하였다. 하루는 그가 나의 손을 잡아당겨 하늘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해 아래 흰 기운이 허공에 뻗쳐 있는데, 그대도 보이시오?” 하였다. 내가 “못 보았소이다.” 하자, 권통지가 하늘을 우러러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아, 누군가 죽을 것이니, 바로 나일 것이다.” 하였는데, 그해 12월 1일 화를 당하였다. 근자에 밤마다 연이어 꿈에 권통지를 보았는데 마치 생시의 모습과 같았기에 앞에서 언급하였다.
담박하기는 가을 하늘 흰 이슬 맺힌 듯 / 澹若秋空白露漙
굳건하기는 지주가 거센 물살에 서 있는 듯 / 剛如支柱鎭奔瀾
평생의 명행기는 가야객이 짓고서 / 百年名行伽倻記
의춘자에게 청하여 흰 깁에 쓰게 했지 / 要倩宜春灑素紈
김인로(金仁老)가 계해년 9월, 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갑자년 사화(士禍) 때 그도 관계되었었다. 중열(仲說)이 일찍이 김인로의 명행기(名行記)를 짓고 사화(士華)에게 청하여 붓으로 써서 후세에 전하고자 하였다.
그대 부친 높은 절개는 가을 하늘처럼 밝았고 / 乃翁高節倚秋明
경술과 문장은 한나라 선비가 다시 태어난 듯 / 經術文章漢更生
문중이 마침내 재앙의 그물에 모두 걸렸으니 / 門地終隨一網盡
간사한 소인배가 어찌 맑은 하늘 두려워하랴 / 㜸狐寧復忌天晴
이영지(李寧之)는 나의 종성(宗姓)으로, 갑자년 4월 모일(某日)에 화를 당했다. 그의 부친 주계공(朱溪公)이 일찍이 직언(直言)으로 간신의 비위를 거슬렀는데 이해 가을 역시 화를 당하고 말았으니, 온 집안에 화를 면한 이가 없었다.
서남쪽에 귀양 가서 세월을 보냈나니 / 憔悴西南歲月重
모진 풍상에 검은 수염 죄다 변했지 / 風霜變盡紫髥茸
죽산 길에서 창황히 서로 만났더니 / 竹山路上蒼黃面
열화에 백 길의 솔이 마침내 꺾였구나 / 烈火終摧百丈松
성계문(成季文)이 무오년 가을, 사초(史草) 사건으로 의주(義州)로 유배되었다가 경신년 여름, 하동(河東)으로 배소를 옮겼고, 갑자년 겨울, 배소에서 화를 당하였다. 내가 갑자년 6월 포박된 채 한양의 감옥으로 가던 중 죽산(竹山)의 길에서 성계문을 만났으니, 그도 옥사(獄事)로 뒤미처 곤장을 맞고 다시 배소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모습이 초췌하고 얼굴이 여위어 보고도 누구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말을 나란히 세우고 소리 질러 부르고서야 비로소 성계문인지 알았으며, 눈물을 뿌리고 크게 탄식하고는 이별하였다.
문성공의 후예라 맑은 가문이니 / 文成之後是淸門
시례의 풍류 본시 연원이 있었지 / 詩禮風流自有源
사생간에 몸 보전한 이 그대뿐 / 生死保身知汝獨
한남촌에 넉 자 높이 외로운 무덤 / 孤墳四尺漢南村
안선지(安善之)는 고려 문성공(文成公) 안향(安珦)의 후손인데, 갑자년 사화(士禍)가 일어난 지 넉 달 뒤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쪽 변방엔 서쪽 기러기 만나기 어려워 / 南塞難逢西雁來
밤 침상에 풍우만 속절없이 몰아치누나 / 夜床風雨謾相催
백발의 몸 호해에 그대만이 있건만 / 白頭湖海唯君在
다시 만나 회포 풀 길은 정녕 없고나 / 懷抱無因得再開
남사화(南士華)가 양덕(陽德)에 유배 중이다.
상산은 아스라이 천 봉우리에 막혔고 / 商山迢遰隔千岑
제수는 질펀하여 만 길도 너머 깊어라 / 濟水汪洋過萬尋
공건지 가에서 한 잔 술 기울였나니 / 公建池邊一杯酒
그 언제나 만나서 글을 깊이 음미할꼬 / 幾時文字更㪺深
권숙달(權叔達)이 상주(尙州)에 유배 중이었는데, 지난해 가을, 내가 공건지(公建池) 가에서 권숙달과 이별하며 “공건지 가에서 한 잔 술을 마시노라니, 생이별의 슬픔을 돕는 듯 서풍이 부누나.[公建池邊一杯酒 西風爲助生離悲]”라는 시구를 지었다.
가을 들어 비 내려 갠 날을 못 만났으니 / 秋來陰雨不逢晴
동쪽 울 밑의 국화 줄기 몹시도 시름겹군 / 愁殺東籬黃菊莖
구사일생 이 한 몸 마음은 외려 남아 있어 / 九死一身心尙在
남은 나이로 황하가 맑아지는 것 보련다 / 擬將餘齒看河淸
[주-D001] 모릉(摸稜) :
책상 모서리를 만진다는 뜻으로, 일이 잘못되면 자신에게 그 책임이 돌아올까 두려워 가부를 결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것이다. 당(唐)나라 소미도(蘇味道)가 재상이 되었을 때 누가 “천하의 일이 많은데 공은 어떻게 다스리겠소?” 하자, 그는 아무 말 없이 책상 모서리만 만지고 있었다 한다.
[주-D002] 초강(楚江) …… 찾을꼬 :
순부(淳夫) 정희량(鄭希良)의 죽음을 초(楚)나라 충신 굴원(屈原)의 죽음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3] 오색 …… 밥통 :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을 제사할 밥을 담은 대나무 통을 말한다. 소식(蘇軾)의 〈화황노직식순차운(和黃魯直食筍次韻)〉에, “오히려 삼려대부(三閭大夫)에게 밥을 올릴 수 있으니, 밥통을 오색실로 감쌌다오.[尙可餉三閭 飯筒纏五采]” 하였다.
[주-D004] 백운향(白雲鄕) :
신선이 사는 하늘 나라로, 《장자》 천지(天地)에 “저 흰 구름을 타고 제향(帝鄕)에 노닌다.” 하였다.
[주-D005] 광릉산(廣陵散)이 이제 끊겼음 :
삼국 시대 위(魏)나라 혜강(嵇康)은 광릉산이란 곡을 잘 연주하였는데, 이 곡을 남에게는 전수하지 않았다. 그가 후에 참소를 입고 죽음을 당할 때 소금(素琴)으로 이 곡을 연주하면서 “광릉산이 이제는 끊기는구나.” 하였다. 《晉書 卷49 嵇康列傳》
[주-D006] 아양곡(峨洋曲) :
〈아양곡〉은, 춘추 시대 백아(伯牙)가 타면 그의 벗 종자기(鍾子期)만이 알아들었다는 금(琴)의 곡조로, 백아가 금을 타면서 고산(高山)에 뜻을 두자 종자기가 “높디높기가 마치 태산과 같도다.[峨峨兮若泰山]” 하였고, 또 유수(流水)에 뜻을 두자 “넓디넓기가 마치 강하와 같도다.[洋洋兮若江河]”라고 했던 고사에서 유래한다.
[주-D007] 가야객(伽倻客) :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을 가리킨다. 그의 관향이 가야산(伽倻山)과 인접한 고령(高靈)이므로 이렇게 부른 것이다.
[주-D008] 의춘자(宜春子) :
남곤(南袞)을 가리킨다. 그의 본관이 의령(宜寧)인데 의령의 또 다른 이름이 의춘(宜春)이므로 이렇게 부른 것이다.
[주-D009] 사생간에 …… 그대뿐 :
화를 당하기 전에 병으로 죽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10] 밤 …… 몰아치누나 :
벗이 가장 그리울 때를 뜻한다. 성어(成語)로 풍우대상(風雨對牀), 즉 비바람이 치는 날 벗끼리 나란히 침상에 누워 밤을 보내는 정겨운 시간을 뜻한다.
[주-D011] 동쪽 울 밑의 국화 :
도연명(陶淵明)의 〈잡시(雜詩)〉에, “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하였다.
[주-D012] 황하가 맑아지는 것 :
《문선(文選)》 운명론(運命論)에, “대저 황하가 맑으면 성인이 태어나고, 이사(里社)가 울면 성인이 나온다.” 하였다. 여기서는 어진 임금이 출현하여 시대가 바뀜을 뜻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하 (역) | 1999
서포집(西浦集) 곽열(郭說)생년1548년(명종 3)몰년1630년(인조 8)자몽득(夢得)호서포(西浦), 포옹(浦翁)본관청주(淸州)특기사항민순(閔純)의 문인.
西浦先生集卷之六 / [西浦日錄] / [詩話]
李容齋荇。燕山甲子。竄巨濟。感念存沒。作十絶。各有註。詩曰。
毁譽紛紛萬口騰。此公心地不模稜。楚江何處尋遺珮。願寄纏筒五綵繩。鄭希良壬戌五月。自沉江而死。
斯人合在白雲鄕。一謫塵區海變桑。痛哭廣陵今已絶。此生何處聽峨洋。朴誾仲說。甲子六月被禍。
橫衢白日獨能前。天遺妖氛翳日邊。半夜魂夢如夙昔。數行淸淚濕寒氊。權達手通之。甲子冬。繫獄。日下有白氣。噫。吾其死矣。十一月被禍。
澹若秋空白露溥。剛如砥柱鎭奔瀾。百年名行伽倻記。要倩宜春灑素紈。金千齡仁老。癸亥九月病卒。
乃翁高節倚秋明。經𧗱文章漢更生。門地終須一網盡。孽孤寧復忌天晴。李幼寧寧之。甲子四月。遇禍。父朱溪君甞忤姦臣。是年亦及於禍。
憔悴西南歲月重。風霜變盡紫髯茸。竹山路上蒼黃面。烈火終摧百丈松。成季文。戊午。以史事謫義州。甲子冬。遇禍。
文成之後是淸門。詩禮風流自有源。生死保身知汝獨。高墳四尺漢南村。安善之。甲子四月。病卒。
南塞難逢西鴈來。夜床風雨謾相催。白頭湖海唯君在。懷抱無因得再開。南衮士華。謫陽德。
商山迢遞隔千岑。濟水汪洋過萬尋。公建池邊一盃酒。幾時文字更斟深。權叔達謫在尙州。余別叔達於公建池上。
秋來陰雨不逢晴。愁殺東籬黃菊明。九死一身心尙在。擬將餘齒看河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