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일록 제2권 / 갑오(甲午, 1594) / 봄 2월
○ 봄 2월〔봄二月〕1일 경술(庚戌)
바람이 불고 비가 잠깐 내렸다. 나는 대수(大樹)로 가서 현경(玄卿)과 사고(士古)를 만나 보았다.
○ 2월 2일 신해(辛亥)
익호장군(翼虎將軍) 김덕령(金德齡)과 문별장(文別將) 안희(安憙)가 군(郡)에 이르렀다. 장군의 명령은 한결같이 간단하고 쉬워서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 진주(晉州)에 사는 상사(上舍) 이곤변(李鯤變)과 향당(鄕堂)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군(李君)의 자는 자거(子擧)이다.]
○ 2월 3일 임자(壬子)
병사(兵使) 성윤문(成允文)이 거짓말을 함부로 만들어 성주(城主)를 모함하고 계문(啓聞)을 지어 올렸다. 고을 사람들은 통분(痛憤)함을 이기지 못해 간단한 초고를 작성하여 동궁에게 드렸다. [드리지 못하고 돌아왔다.]
○ 2월 5일 갑인(甲寅)
좌상(左相) 윤두수(尹斗壽)가 군(郡)에 이르렀다. 팔거(八莒)로 향해 가던 길이었다. ○ 도사(都事) 김영남(金穎男)이 군(郡)에 이르렀다. 도사(都事)는 변란 초기부터 군계(郡界)에 이르러 은혜를 많이 베풀고 남은 백성들을 보존하는 데 힘썼으니, 공이 적지 않다. 그러나 다만 판시(判寺)에 올랐을 뿐이었다. 상벌(賞罰)의 착오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통탄할 만하다. ○ 사근 찰방(沙斤察訪) 이정(李瀞) 어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 2월 7일 병진(丙辰)
익호장군(翼虎將軍)이 군사 이백여 명을 거느리고 군(郡)에 이르렀다. 왼쪽에는 충용기(忠勇旗)를 세우고, 오른쪽에는 익호기(翼虎旗)를 세웠다. 또 삼군사명표(三軍司命標)를 세웠다. 군(軍)은 충용군(忠勇軍)이라 하고, 군관(軍官)은 부절사(赴節師)라 부르고, 아병(牙兵)은 첩평려(捷平旅)라고 불렀다. 군의 모습이 매우 엄숙했고, 호령이 엄정하고 분명하여 참으로 옛 양장(良將)의 풍모가 있었다.
상사(上舍) 방극지(房克智)가 또한 장군의 막하(幕下)로 와서 관아에서 잠시 이야기하였다.
○ 2월 8일 정사(丁巳)
장군이 남문 밖에서 진법을 익히도록 명령하였다. 나는 공간(公幹)ㆍ지부(志夫)ㆍ사고(士古)ㆍ위서(渭瑞)와 함께 장군을 뵙고, 잠시 동안 이야기하였다. 장군(將軍)은 철립(鐵笠)을 쓰고 두 겹의 갑옷을 입었으며, 철혜(鐵鞋)를 신었고 철상(鐵裳)을 둘렀다. 칠척(七尺)의 장검(長劍)을 쥐고 말 위에 올라 성(城)을 나갔다. 말에 뛰어올라 앞서 달리면서 스스로 진법(陣法)을 펼치고 몸소 지휘한 연후에, 산으로 올라가 명령을 내려 싸우고 달리고 격돌하는 것을 익히게 하니, 그 진법은 그가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장군의 사람됨이 매우 침중(沈重)하여 말이 적었으며, 완력이 뛰어났다. 날랜 용맹은 비할 데가 없어서 사람들이 그 한계를 알지 못했다.
○ 2월 9일 무오(戊午)
장군이 경기(輕騎) 서넛만 거느리고 갑절의 속도로 도원수(都元帥)의 막하(幕下)에 달려가 왜적을 토벌할 일을 의논하였다.
○ 2월 12일 신유(辛酉)
독운 어사(督運御史) 윤경립(尹景立)이 군(郡)에 이르렀다가 팔거(八莒)로 갔다.
○ 2월 13일 임술(壬戌)
좌상(左相) 윤두수(尹斗壽)가 군(郡)에 이르렀다. 성윤문(成允文)이 남형(濫刑)한 사유에 대해 계문(啓聞)하였는데, 말이 너무 알맹이가 없어서 가소로웠다.
○ 2월 16일 을축(乙丑)
익호장군(翼虎將軍)이 하빈(河濱)으로부터 돌아왔다. ○ 이자반(李子胖)이 나를 찾아왔기에 함께 잤다.
○ 2월 17일 병인(丙寅)
장군이 교외(郊外)에서 진법(陣法)을 익혔다. ○ 위무사(慰撫使) 권협(權恊)이 군(郡)에 이르렀다가 곧바로 호남(湖南)으로 향해 갔다.
○ 2월 21일 경오(庚午)
장군이 소 두 마리를 잡아서 군사들에게 고기를 보내 위로하였다.
○ 2월 23일 임신(壬申)
이준룡(李俊龍)을 만나 회포를 털어놓으며 시간을 보냈다. [준룡(俊龍)의 자는 운백(雲伯)이요, 장성(長城) 사람이다.] 사람됨이 자상하고 단아하며 깨끗하였다.
○ 2월 24일 계유(癸酉)
나는 정사고(鄭士古)와 함께 향교로 가서 군기(軍器)를 만드는 일에 대하여 의논하였다. ○ 학록(學錄) 김정룡(金廷龍)ㆍ찰방(察訪) 조존선(趙存善)과 서로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 사고(士古)ㆍ현경(玄卿)과 함께 향교에서 잤다.
○ 2월 25일 갑술(甲戌)
바람이 불고 비가 왔다. 오후에는 겨울처럼 싸락눈이 내려 평지에는 몇 치나 쌓였다. 3월에 눈이 오니, 어찌 작은 변고이랴.
○ 2월 26일 을해(乙亥)
비가 오더니, 오후에 비로소 개었다. 나는 사고(士古)ㆍ극수(克修)와 함께 김 장군(金將軍)을 뵈었다. 이어서 사평(司評) 최언욱(崔彦勗)과 서로 이야기하고, 또 개령(開寧)의 최기준(崔琦準)ㆍ서천(舒川)의 김윤명(金允明)을 만났다.
○ 2월 27일 병자(丙子)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산음(山陰)으로 갔다. 오후에 큰비가 내렸다.
○ 2월 29일 무인(戊寅)
나는 평안도(平安道)에 사는 김내성(金乃成)과 함께 잠시 시냇가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D001] 이곤변(李鯤變) : 구암(龜巖) 이정(李楨)의 손자. 호는 백인재(百忍齋).[주-D002] 아병(牙兵) : 대장군 밑에 있는 군사.[주-D003] 알맹이가 없어서 : 원문은 ‘헐후(歇後)’. 뒷부분을 생략한다는 말이다. 성어에서 뒷말은 생략하고 앞말만으로 전체의 뜻을 나타내는 일을 지칭함. 헐후는 맺음말을 흐려 본뜻은 숨기고 말하지 않는 것.[주-D004] 학록(學錄) : 성균관(成均館)의 정9품(正九品) 벼슬.[주-D005] 사평(司評) : 노비의 부적(簿籍)과 노비 관계의 소송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장례원(掌隷院)에 소속된 정6품 관직.[주-D006] 김윤명(金允明) : 1541~1604. 조선 중기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김녕. 자는 수우(守愚). 호는 정양당(靜養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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