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 만리 시조 104 이달균
연화열도蓮花列島 지나며
이달균
남으로 달려오던 소백은 허기져/욕지도 인근에서 그예 드러누웠다/열도의 지치고 지친 등뼈가 외롭다//벗이여 옹이 맺힌 노래를 어쩔거나/찢겨 우는 바람의 생채기를 어쩔거나/자욱한 해무 속에서 그만 줄을 놓아라//부질없는 약속과 이름을 지우고/바다에 곤두박인 유성처럼 아득히/욕망의 수첩에 적힌 별자리도 지워라//봄 간다 섬섬옥수, 썰물도 쓸려 간다/절창의 가락 속에 꽃 진다 하염없이/심해에 닿을 수 없는 저 일몰의 낙화여
「열도의 등뼈」(작가, 2020)
이달균 시인은 경남 함안 출생으로 1987년 시집 ‘南海行’과 1995년 시조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장롱의 말’, ‘북행열차를 타고’, ‘늙은 사자’, ‘열도의 등뼈’ 등과 영화에세이집『영화, 포장마차에서의 즐거운 수다』가 있다. 그는 스케일이 큰 시인이다. 흔히들 시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라고 말하는데 그런 점에서 그의 시조 세계는 독보적이고, 하나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오롯이 작품으로 체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인의 장래성은 등단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출발점에서 어떤 생각과 시각으로 시작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면밀히 살피면 그 시인의 미래가 충분히 예측된다. 물론 등단 이후 가멸찬 노력으로 변모와 일신이 가능하기는 하다.
연화열도는 욕지도 동쪽에 위치한다. 연화도를 비롯하여 우도와 그밖에 여러 개의 작은 무인도 및 암초들로 구성된다. 우도에서 연화도의 용머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개의 섬과 암초들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일렬로 줄지어 있어 선상배열이 뚜렷하다고 한다. ‘연화열도 지나며’는 그 광경에 대한 소회다. 국토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다. 남으로 달려오던 소백은 허기져 욕지도 인근에서 그예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본다. 그 순간 열도의 지친 등뼈가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벗이여, 하고 부르면서 옹이 맺힌 노래를 어쩌면 좋을지 묻는다. 또한 찢겨 우는 바람의 생채기를 어쩔거나, 하면서 자욱한 해무 속에서 그만 줄을 놓아라, 라고 말한다. 그리고 부질없는 약속과 이름을 지우고 바다에 곤두박인 유성처럼 아득히 욕망의 수첩에 적힌 별자리도 지워라, 고 외친다. 봄 간다 섬섬옥수, 썰물도 쓸려 간다면서 절창의 가락 속에 꽃 진다 하염없이, 라고 읊조리다가 심해에 닿을 수 없는 일몰의 낙화를 바라보면서 남으로 달려오던 소백의 허기짐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이렇듯 우리 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보임으로써 역사 속의 한 존재로서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를 깊이 성찰케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는 단시조 ‘다시 가을에’에서 또 한 번 삶의 자세와 위의를 천명하고 있다. 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정신이다. 또다시 늑대처럼 먼 길을 가야겠다, 라는 초장을 통해 전율을 느낀다. 또한 늑대의 먼 길이라는 대목에서 비장하고도 결연한 의지를 읽는다. 사내대장부가 드문 시대에 그러한 면모를 지닌 한 자아와 만난다.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화자는 사람을 줄이고, 말수도 줄이겠다고 다짐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을 줄이겠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그러나 사람을 줄임으로써 자아가 충일해질 수 있을 터이니 바람직한 길이다. 말수 역시 그렇다. 다변은 내밀한 삶을 사는 데 훼방꾼이다. 그리하여 이 가을, 외로움이란 얼마나 큰 스승이냐, 라면서 고독을 자초하고자 한다.
어느덧 1월이 막바지다. 봄의 문턱이다. ‘연화열도 지나며’를 다시금 음미하면서 우리나라의 앞날이 더욱 창창하기를 빌어본다.
이정환(시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