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어깨동무'는 동심의 세계에서 마음껏 나래를 펼치게 만들었던 꿈과 희망의 메시지였다. 마땅한 소년소녀지 하나 없던 그 시절에 전래 동요인 어깨동무를 굳이 어린이들의 잡지 이름으로 쓴 데에는 이 동요가 의미하는 노래가사를 보면 적이 이해하고도 남는다.
"어깨동무 씨동무 보리가 나도록 씨동무~ 어깨동무 씨동무 보리가 나도록 놀아라~."
이는 씨앗처럼 소중한 친구들이 추운 겨울을 잘 지내고 봄에 보리가 피어날 때 건강히 다시 만나자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이었다. 안동에 있는 도산서원과 인접한 두메산골, 아름다운 분강촌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봄이면 온 동네에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가 만발하였다. 그야말로 벽촌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서울 어느 부자 국민학교가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어깨동무' 과월호 기증품을 천사들의 하사품인 마냥 애지중지 다루며 깊이 깊이 열독하곤 했다. 당시 어린이들에게 어깨동무의 위상과 인기는 우리 고향 분강촌과 웃토계에 있는 양(兩) 이 대감댁 솟을대문 보다도 더 높고 '표준전과' 보다도 더 소중한 비할 데가 아예 없는 최고의 잡지인지라 반장이 차례대로 순번을 정한 다음 대여 기한까지 엄격히 관리하던 몸값이 만만찮은 대단한 책이었다.
어깨동무 표지에는 <반포국민학교 기증> 이라는 오백원 동전 크기만한 파란색 둥근 큰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져 있었다. 나는 유년시절 어깨동무를 읽으며 또 다른 세상을 보았다. 만화는 단연 최고로 재미나는 대목이었고 동물원 사진과 과학상식, 동화, 동시들 등등 정말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을 정도로 내용이 다채롭고도 흥미진진 했다. 이 외에도 지금은 단지 노란색과 빙상부만 생각나는 '리라국민학교' 아이들의 사진도 뇌리에 오랫동안 남아 있다.
대학에 진학하여 서울에 입성한 뒤로도 마치 누가 알아나 주듯이 내가 유년시절 벽지에서 자랐지만 어깨동무를 읽었으며 반포국민학교와 리라국민학교를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뿌듯하게 자랑삼아 여기며 무엇인가 큰 일을 해낸 것 같은 여전한 동심에 지금도 빙그레 웃을 때가 많다. 그런 생각이 다소 이치에 맞지않더라도 무슨 상관이랴. 그냥 그런 생각을 떠올리면 추억의 편린으로 나부끼는 한 때의 동화 같은 마음들이 이 풍진 세상에 나를 선하게 만드는 힘이 되고 위안을 주는 듯해서 마냥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여느 때는 어깨동무를 읽느라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한 때도 있었다. 반장이 대여 기한을 이틀로
못박아놓았으니 언제나 아쉬운 마음으로 책을 반납하곤 했다. 나는 어깨동무를 읽으면서 "반포국민학교는 도대체 얼마나 부자학교이길래 이런 잡지를 우리 학교에 보내줄까" 하면서 무한한 동경과 고마운 마음을 가졌었다.
세월이 유수처럼 굽이굽이 흘러흘러 어느날 아내의 국민학교 졸업장에서 눈을 번쩍 뜨게 하는 반포국민학교를 발견하고는 그냥 아무 말없이 그녀를 한참 동안 꼭 안아주며 왠지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난다. 영문도 모르는 아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대뜸 "거기 반포국민학교! 부자 학교예요?"
"아니, 우리 학교는 공립인데요."
"고마웠어요."
"???......"
공립이든 사립이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립과 사립이라는 말의 의미도 모르던 시절이었는데......
그리고 얼마 지난 후에 반포초등학교를 찾아가서 정문에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뒤늦게나마 허리를 굽혀서 정중하게 했다. 그리고 아내의 손을 꼭 잡고 함께 운동장을 거닐며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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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동무에 얽힌 아내와의 인연입니다. "Thank you. Banpo Elementary School. And I love you~". [사진출처: 반포초등학교는 "doopedia"/어깨동무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아내는 결혼할 때까지 서래마을에서 살면서 바로 옆 반포본동에 있는 반포국민학교와 세화여자중학교를 졸업했다. 영상은 아내가 연주한 "반포국민학교 교가"이다. 어깨동무와 반포국민학교 그리고 아내와의 인연이다.
첫댓글 "어깨동무"잡지가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네~
표지를 보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
예전에 가보았던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에 추억의 소품들이 문득 생각나네~
https://m.cafe.daum.net/andongdosan/hVtr/79?svc=cafeapp
그시절
책이라곤 "교과서"와 "전과" 그리고 "어깨동무"...
어깨동무 책을 표지가 헤질때까지 돌려 보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