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사슴 임금과 한 사나이 석존께서 왕사성의 영취산(靈鷲山)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설법하고 계실 때의 일이었다. 대제석군(大帝釋軍)이라고 부르는 왕이 하라나시 나라를 통치한 일이 있었다. 이 왕의 대에는 오곡이 잘 익고 나라는 부강하여 태평성대를 구가하였다. 국왕이 왕비는 월광(月光)이라고 부르며 대단한 미인으로 더욱이 정숙하였기 때문에 백성들로부터 국모로서 추앙을 받고 있었다. 이 왕비가 꿈을 꾸는 것은 언제나 바른 꿈으로 사실로 나타나거나 또는 사실로 현존하거나 반드시 사실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놀라운 것이었다. 이 나라의 어느 산과 들에 천 마리의 사슴을 통솔하고 있는 사슴 왕이 있었다. 이 사슴 왕의 털과 가죽은 황금빛으로 찬란한 데다 그 체구와 모양은 보는 사람마다 놀랄 정도로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이 사슴의 왕 자신도 그 보기 드문 빛깔을 갖추고 있는 것을 자각해서인지 항상 사냥꾼들의 사격에 주의를 기울여서 쉽사리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어느 날 같은 야산에 살고 있는 짐승들이 모여서 서로 이야기 꽃을 피운 일이 있었다. 그때 한 마리의 때까치가 금빛의 사슴 왕에게 가서, “당신은 내가 보건대 풀을 먹는 데에도 물을 마시는 데에도 항상 사방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겁을 내고 있는데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물었다. “나의 털 빛깔이 금빛을 띠고 있기 때문에 만약 사냥꾼에게 보이면 곧 사살당하게 될 것이므로 그것이 두려워서 끊임없이 주의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에게도 그러한 불안과 고통이 있습니까? 우리들도 밤이 되면 미미스쿠가 습격해 오지 않나 하고 밤중에 한잠도 자지 못하고 밤을 새우고 있습니다. 그럼 앞으로 낮에는 제가 높은 나무에서 사냥꾼이 오는 것을 감시하고 위급 할때에 는 당신에게 알려드릴 터이니 밤이 되면 당신은 저를 보호해서 서로 위험을 방지하도록 하면 어떻습니까?”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그럼 그렇게 하자.” 이러한 협상이 사슴의 왕과 때까치 사이에 약속되었다. 사슴 왕이 살고 있는 야산 가까이에 큰 강이 있었다. 어느 날 이 강가에서 적인 두 사람의 사나이가 싸움을 시작했다. 한 사나이가 약한 사나이를 쓰러뜨리고 손과 발을 묶어 드디어 강물 속으로 던졌다. 강물은 급하게 흘러갔기 때문에 묶인 사나이는 격류에 휩쓸려 익사하게끔 되어 있었다. “사람 살려! 누구든지 살려 준 사람에게는 은혜를 갚고 하인으로 일해 줄 테니 살려 주시오.” 하고 부르짖으면서 떠내려갔다. 감시하고 있는 사슴과 함께 그 강가에 와 있던 사슴 왕은 그 부르짖는 소리와 묶인 모양을 보자 자연히 자비심이 일어나서 급류에 몸을 던져 곧 빠져 죽게 된 사나이를 구조하려고 했다. 그때 이미 위험을 방지해 주기로 약속한 때까치는 나무 위에서 이것을 보고 날아왔다. “이 머리가 검은 사나이는 은혜와 의리를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구조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만약 물에서 빠져 죽지 않을 때에는 뒷날 반드시 당신에게 원수가 될 것이 틀림없다. 구조하는 것도 사람을 보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라고 충고했다. 그러자 자비심이 풍부한 사슴의 왕은 뒤에 닥쳐올 수난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고 때까치의 충고도 받아들이지 않고 강에 들어가서 빠진 사나이를 등에 업고 강 언덕으로 돌아와 입으로 손과 발의 끈을 풀고 사나이가 다시 살아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신을 잃었던 사나이는 점점 숨을 쉬게 되었다. 그것을 본 사슴 왕은 그 사나이를 향해서, “당신은 지금 곧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 하고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 주었다. 구조된 사나이는 사슴 왕의 앞에 꿇어앉아 손을 모으면서, “저는 당신 때문에 생명을 보전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당신은 나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평생 당신의 하인이 되어 은혜를 갚고자 합니다. 집에 돌아갈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고 말했다. 그때 사슴 왕은, 나는 사람을 하인으로 둘 만큼 일이 필요치 않다. 이곳에서 나를 만난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지 마라. 만약 사람들이 들으면 곧 찾아와서 나를 죽일 것이다. 나의 은혜를 안다면 다만 그것만을 지켜다오. 하고 노래하고 다시, “그와 같이 괴로움 일을 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이 산과 들에서 금빛의 사슴 왕을 보았다는 이야기만은 절대 비밀로 해다오. 만약 사냥꾼에게 알리면 나는 곧 죽게 될 것이다. 은혜를 갚거나 은혜를 생각한다면 이것만은 사람에게 알리지 말아다오. 그것이 나에 대한 은혜의 보답이다.” 하고 그 사나이에게 거듭 부탁했다. “그러시다면 말씀 잘 듣고 돌아갑니다만 당신이 있는 곳은 이목이 달아나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입 밖에 내지 않겠습니다. 그 의리에 대해서는 안심하십시오.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고 그 사나이는 눈물을 흘리고 감사의 뜻을 나타내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후의 일이었다. 대제석군 왕(大帝釋軍王)의 왕비인 켓코오는 오욕(五欲)의 환락에 심신이 피로함을 느끼고 정신없이 잠자리에 들자 그날 밤에 몸과 털이 금빛으로 모양이 단정하고 고운 사슴 왕이 사자의 자리에서 모든 국왕 및 백성들을 향해서 길고 미묘한 가르침을 연설하고 있는 꿈을 꾸게 되었다. 이를 본 왕비는 이 꿈은 사실과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뻐함과 동시에 꿈은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이 꿈에 대하여 왕에게 이야기하자 왕도 그 꿈은 사실과 틀림없다고 믿었으나 사슴이 있는 곳에 사자의 자리가 있고 서민을 위해서 가르침을 연설하고 있다는 것은 좀 괴상하다고 생각했다. 자기의 꿈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는 켓코오는 이 세상에도 드문 금빛의 사슴 왕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대왕, 제발 제가 그 금빛의 사슴 왕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듯이 요청했다. 대왕은 사랑하는 왕비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신하를 불러서 국내의 사냥꾼들을 전부 왕궁에 급히 소집하도록 했다. 신하는 재빨리 사냥꾼 소집을 위한 영장을 발송했다. 영장을 손에 받은 사냥꾼들은 또 대왕의 사냥 놀이인가 하고 생각하면서 왕궁에 와 보니, “나의 영토의 산과 들에 금빛의 사슴 왕이 살고 있는 것 같으므로 지금부터 곧 사로잡도록 하라.” “대왕님의 어명이시나 우리들은 연중 산과 들에서 사냥하고 있지만 아직 금빛의 사슴 등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만약 대왕께서 그 사슴이 있는 곳을 알려 주신다면 목숨을 걸고 반드시 잡아 오겠습니다.” 이와 같이 사냥꾼들이 말하자 대왕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대왕은 급히 신하들에게 명령해서 북을 치고, “금빛의 사슴 왕을 본 적이 있는 자는 속히 나오라. 상으로 오백 마을을 준다.” 고 하는 영(令)을 내렸다. 이 대왕의 칙령(勅令)이 방방곡곡에 전해 졌을 때 앞서 사슴 왕으로 인해서 목숨을 건진 사나이는 국경에 살며 그날그날의 생활도 곤란을 받는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때에 이와 같이 많은 상을 준다는 칙령을 듣게 되었다. 그때 그 사나이는 현재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려면 대왕에게 사슴 왕이 있는 곳을 알려서 상을 받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거처를 간곡하게 부탁하던 생명의 은인인 사슴 왕의 말을 지켜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매우 고민했다. ‘이익을 좇자니 은혜와 의리를 잃고, 은혜와 의리를 지키자니 궁핍한 생활을 벗어날 수가 없다’고 하는 상반되는 생각이 착잡하게 얽혀 어떤 길을 택해야 할 것인가, 그는 판단할 수가 없었다. 오욕(五浴)에 사로잡혀 악인 줄 알면서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이 사나이도 여러 가지로 고민한 결과 은혜와 의리에 고민하는 것보다 이때에 생명을 보호하고 향락을 누리는 것이 선결 문제라고 생각했다. 오욕에 사로잡힌 이 사나이는 드디어 왕궁에 가서 칙령을 듣고 왔다는 뜻을 전했다. 대왕은 기다리고 있던 터이므로 재빨리 궁전 앞에 불러들였다. 그 사나이는 두려워하면서, “대왕께서 찾고 계시는 금빛의 사슴 왕은 많은 꽃과 나무 열매가 달려 있는 아무 곳의 산과 들에 천 마리의 사슴을 통솔하고 살고 있습니다. 저는 그 산과 들을 잘 알고 있으므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그 사나이의 보고에 따라 왕비가 꿈속에서 보았다는 것이 사실로 존재하는 것이고 또한 그곳을 알았으므로 대왕은 매우 기뻐하면서 곧 모든 신하를 불러서 군사들을 정돈하고 그 사나이를 앞세우고 대왕 자신이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외국의 사신도 국왕의 이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 있는가 하고 그 뒤를 따랐다. 얼마 후에 대왕의 군사들은 사슴 왕이 살고 있는 산과 들에 도착했다. 왕은 사슴 왕이 도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군사들을 거느리고 사면팔방(四面八方)을 엄중히 둘러쌌다. 서로 적이 습격해 오는 것을 감시해서 위난을 미연에 방지하기로 굳게 약속한 늙을 때까치는 대군이 차례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나무 위에서 보았다. 그런데도 사슴 왕은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싼 병사들은 한꺼번에 큰 고함 소리를 냈다. 갑작스런 함성을 듣고 놀란 사슴들은 겁에 질려서 도망치려고 비명을 지르면서 사방으로 뛰어 돌아다녔다. 이와 같이 불의의 습격을 받았을 때 사슴 왕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여기서 내가 도망쳐서 숨어 버리면 많은 군사들은 나를 찾아내기 위해 무고한 사랑하는 부하 사슴을 살생할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여기서 죽더라고 부하들의 생명을 손상해서는 안 되겠다.’ 이와 같이 많은 수의 희생을 내는 것보다 스스로 희생하겠다고 각오한 사슴 왕은 대왕이 있는 곳으로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조용히 걸어갔다. 그때 사슴 왕에게 구조된 그 안내하는 사나이는 사슴 왕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두 손을 들어, “대왕님, 저기 오는 것이 금빛의 사슴 왕입니다.” 하고 가리켰다. 악독한 업을 짓는 자는 내생을 기다리지 않아도 그 악보(惡報)가 다가오는 것인지 손을 쳐들어 사슴 왕을 가리킨 그 사나이의 손은 놀랍게도 곧 땅 위에 고스란히 떨어져 버렸다. 이와 같이 갑자기 그리고 놀라웁게도 눈 앞에서 일어난 일을 본 왕은 크게 괴이하게 생각해서 “두 손이 땅에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물었다. 그 사나이는 울면서, “담을 넘고 집을 허물어 남의 재물을 훔치는 자를 이름하여 적은 도둑이라고 하고, 은혜와 의리를 저버리고 악으로 은혜를 갚으려는 것을 이름하여 큰 도둑이라고 하오.” 하고 시(時)로 왕에게 대답했다. “그대의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데 어떤 뜻인가?” 하고 왕은 다시 물었다. 그때 그 사나이는 지난날의 일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고백했다. 다 듣고 난 왕은, “이 은혜를 모르는 녀석!” 하고 갑자기 노여움을 나타낸 왕은, “은혜의 보답을 모르는 물에 빠진 자는 피의 보답으로 인해서 그 몸이 땅속에 들어가 그리고 2백 개로 찢기리라. 금강이 무슨 까닭으로 큰 칼로 너를 죽이지 않겠나. 모든 귀신이 어째서 너를 때려 죽이지 않겠나, 은혜와 의리를 모르는 악한에게 어떻게 악의 보답을 적게 내리랴.” 하고 그 악덕 행위에 대하여 크게 꾸짖음과 동시에 대왕은 이 사슴의 왕을 대보살(大菩薩)로 큰 위덕(威德)이 있음을 알고 모든 신하들을 향해서, “많은 사슴과 이 사슴 왕에게 위해(危害)를 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너희들은 재빨리 도로에 맑은 물을 뿌리고 방울을 달고 진기한 향을 피우고 사슴 왕을 위한 큰 설회를 준비하도록 하라. 나는 사슴 왕과 더불어 왕궁으로 돌아간다.” 하고 명령했다. 모든 신하들은 왕의 명령을 받들어 곧 포위망을 풀고 급히 돌아가서 준비를 하게 되었다. 대왕은 금빛의 사슴 왕을 앞세우고 스스로 그 뒤를 따르고 여러 신하와 백관(百官)들은 또 그 뒤를 따라 하라나시성으로 나아갔다. 왕궁의 문 앞에는 여러 가지 장엄한 모습으로 꾸며져 있었다. 왕은 사슴 왕을 불러들여서 사자상(獅子像)의 자리에 앉히고 왕과 왕비와 후궁(後宮)의 여자 관리 및 왕자와 여러 신하들은 그 둘레에 자리를 잡았다. 이때 사슴 왕은 둘레에 모인 사람에게 묘한 교법을 연설했다. 가르침을 다 들은 많은 사람들은 다시 사슴 왕에게 원하여 오계(五戒)를 받았다. 대왕은 이 숭고한 광경을 보고 사슴 왕을 향해서, “나의 영토 안의 산림(山林)과 넓은 들은 모두 사슴 왕인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나는 앞으로 살생하지 않고 또 국민에게도 사냥을 엄금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동물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안심하고 살 수 있기를 나는 충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하고 살생을 엄금한다는 서약서를 썼다. 사슴 왕은 대왕의 이와 같은 각별한 말을 매우 기쁘게 들었다. 이때의 금빛 사슴 왕은 오늘날의 석존이며, 이른바 은혜를 모르는 사나이는 지금의 데바닷다이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 제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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