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열왕기상 3장 1-3절「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하탄)”
하탄은 “결혼으로 국가간 동맹관계를 형성하다”란 뜻으로서, 솔로몬과 바로의 딸과의 결혼이 국가적인 정략 결혼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처럼 솔로몬은 내부의 적들을 제거한 뒤, 외국과의 동맹을 통해 왕국을 강화하려 했다. 그래서 솔로몬은 정략 결혼을 통해 애굽과 동맹 관계를 맺은 것이다. 이스라엘이나 애굽이 강력한 국가라는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의 딸을 맞이하고” 솔로몬이 애굽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 자체가 율법에 위배된다고는 볼 수 없었다 율법은 전쟁시에 취한 이방 여인과 결혼도 허용했다.
신명기 21장 11-13절「네가 만일 그 포로 중의 아리따운 여자를 보고 그에게 연연하여 아내를 삼고자 하거든 그를 네 집으로 데려갈 것이요 그는 그 머리를 밀고 손톱을 베고 또 포로의 의복을 벗고 네 집에 살며 그 부모를 위하여 한 달 동안 애곡한 후에 네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의 남편이 되고 그는 네 아내가 될 것이요」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바로의 딸이 궁전이 지어지기까지 임시적으로 거주한 다윗 성은 고대 예루살렘성을 가리킨다. 이는 여호와의 궤가 위치한 영역으로 보이는 다윗 궁과는 구별되는데, 역대하 8장 11절에 따르면, 바로의 딸은 다윗 궁에 거할 수 없었다.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데리고 다윗 성에서부터 그를 위하여 건축한 왕궁에 이르러 이르되 내 아내가 이스라엘 왕 다윗의 왕궁에 살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궤가 이른 곳은 다 거룩함이니라 하였더라」
다윗 궁은 특별히 거룩한 곳으로 선포되었고, 따라서 솔로몬은 이방 여인인 바로의 딸이 그것에 거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바로의 딸은 다윗 성으로 불리운 예루살렘성에 거주하기는 했지만, 다윗 궁 안에 거주한 것은 아니었다.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솔로몬은 즉위 4년 즉 B.C. 966년 경에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즉위 11년 B.C. 959년 경에 완공하였다. 이처럼 7년에 걸쳐 성전 건축을 완공한 다음 솔로몬은 바로 궁전 건축에 착수하였다. 즉 솔로몬은 즉위 11년 즉 B.C.959년에 궁전 건축을 시작하여 즉위 11년 즉 B.C. 946년에 궁전 건축을 완공하였다. 따라서 궁전 건축에는 13년이 걸렸다. 결국 솔로몬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20년의 기간에 걸쳐 완공되었다.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유일한 제사를 위한 성전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산당 제사를 했다는 것이다. 솔로몬 시대에 산당 제사가 보편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엘리 시대에 블레셋 족속들에게 법궤를 탈취당한 이후, 그 법궤가 실로 놉, 기브온, 예루살렘 등으로 옮겨 다닌 결과 백성들은 제사의 구심 장소를 상실하고 각자 나름대로 산당을 만들어 제사드렸기 때문인 것이다.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아헤브)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아헤브는 친구간의 사랑으로서 애정을 갖다, 사랑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라는 말은 잘못 번역된 것으로, 여호와가 솔로몬을 사랑하고 라는 말이다. 즉 여호와의 사랑을 받는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사랑을 받는 솔로몬이지만, 아버지의 법도는 잘 따랐지만,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산당에서의 제사를 금하지 못한 것이다. 그 이유는 성전이 건축되지 못한 것이다. 다윗 시대는 하나님이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므로, 다윗 궁 안에 성소를 마련하여 제사를 드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복 당시 여호와께로부터 가나안 족속의 산당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이후 열왕기에서 산당은 우상 숭배와 밀접히 관련된 부정적 의미로 나타난 것을 볼 때, 솔로몬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혜롭게 대처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통치자들은 너무나 오래도록 산당 제사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선왕들 조차도 산당을 훼파하는 데 소홀히 했으며, 이로 인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당으로 말미암아 우상 숭배 행위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솔로몬 자신도 산당에서 분향하며, 제사했다고 한다.
열왕기상 3장 4절에서는「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라고 하므로, 솔로몬이 기브온의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
열왕기상 3장 15절에서는「솔로몬이 깨어 보니 꿈이더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모든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하였더라」라고 하므로, 솔로몬은 언약궤 앞에서 제사를 드린 것이다.
다윗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는 고난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다윗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도록 특별히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이다. 열왕기상 8장 16절「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다만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솔로몬은 영적으로 부활생명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진 것이다. 이는 예배가 성전에서만 한다는 것이 사라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예배가 돌 성전이 아니라, 마음의 성전으로 바뀌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할 때,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솔로몬이 드리는 영적 제사가 산당, 언약궤, 돌성전, 나아가 심령 속의 성전으로 전환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