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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well-dying) ; 새털보다 가볍게 살기(지리산 화대종주기
몇 달 전 시골집에 들렀을 때 부모님의 안부를 물어보던 중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요즘 아버지께서
밤에 잠도 잘 못 주무시고 잘 드시지도 못한다고 하신다.
어디 편찮으시냐고 여쭤봤더니 ‘죽는 게 두렵다는’ 생각 때문에
잠도 편치 않고 먹는 것도 그다지 즐겁지 아니하다고 에둘러 답을 하신다. ‘아, 우리 아버지도 죽음을 두려워하고 계시는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의 막내고모부님께서는 서울 모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여러 의료기구들에 의지한 채 생명을 이어가고 계신다. 몇 주 전 중환자실에 갔을 때는 의식이 있고 그나마 상태가 나아져서 대화도 하고 했는데 지금은 약물에 의지한 채 24시간 내내 강제적인(?) 수면상태에 있다. 기구들 중 하나라도 떼게 되면 바로 세상을 하직하신다. 사촌동생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고모부님께서는 주사바늘이나 산소호흡기라도 꽂을라치면 화들짝 놀래면서 두려워하셨다고 한다.(고모부님께서는 이 글을 작성한지 5일 후인 6/24일 새벽에 죽음 너머의 세상으로 운명을 달리하셨다.)
나도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죽음과 마주치는 일들이 많아진다. 친구의 죽어가는 순간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기도 하고 처남의 죽음도 목격했다. 친구 부모님의 장례식때 달구질은 물론이고 이제는 망자의 시신을 보고 만지는 것도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며 경사보다는 조사를 쫓아다니기에 바쁘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무병장수,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기원전 221년 중국대륙을 통일한 진시황도 불로장생을 염원하여 불로장생 연구가인 방사(方士) 서복(徐巿)을 동남동녀 수천 명과 함께 동쪽 한반도로 보내 불로초를 구해 오도록 한다. 하지만 그토록 갈구하던 불로초는 없었고 황제에 오른 십여 년 후에 죽음을 맞이한다. 영생을 얻고자 고대에 불사의 단약(丹藥)으로 믿었던 수은을 먹고 죽은 술사들도 부지기수로 많았다. 그런가하면 인간의 살아서의 영생을 내걸고 1980~90년대를 풍미했던 영생교 교주 조희성도 결국 심장마비로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최근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SF영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내용에서도 웨이랜드그룹의 회장 피터 웨이랜드(가이 피어스분)가 무려 1조달러를 투자해서 만든 탐사선 프로메테우스를 타고 서기 2093년에 인간을 창조한 시원으로 추정되는 LV-223 혹성으로 가서 인간을 만든 엔지니어를 만나 영생불멸에 대해 답을 구하고자 했으나 도리어 그에게 허망하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처럼 비단 인간만이 아니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죽음을 피할 방법이 없다.
지난 2003년 초반부터 불어 닥친 웰빙(well-being)열풍은
그 기세가 대단했었다. 이에 따라 웰빙형 가전이나 건강보조식품 등은 물론이고 각종 요가나 명상센터들도 문전성시를 이루었는데 따지고 보면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풍요롭고 건강한 삶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웰빙의 사전적 의미는
건강하면서도 편안한(well) 생활과 상태(being)를 유지하자는 것,
즉 물질적인 가치나 명예를 얻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보다는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유지하는 균형 있는 삶을
행복의 가치로 삼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원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나만’또는‘나와 내 가족만’
잘 먹고 잘살자는 의미로 뒤틀려서 받아들이게 되었고
점점 더 개인주의 성향으로 치닫는 웰빙으로 변질되어
흘러왔던 것이 현실이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물질적 풍요속의 과도한 배금주의와 개인주의 성향에서
벗어나려는 동기가 강했기에
웰빙을 추구하는 방식도 정신건강과 행복,
여유 및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났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국의 내츄럴마케팅연구소가 2000년 처음 발표한 ‘건강과 지속성장성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개념의 로하스(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 LOHAS)다. 건강을 추구한다는 면에서는 얼핏 웰빙과 비슷해 보이지만 로하스는 개인의 건강과 더불어 타인,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환경까지 고려한다는 점에서 한층 더 발전된 개념이다.
즉 웰빙이 ‘개인의 잘먹고 잘살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로하스는 ‘더불어 잘먹고 잘살기’에 대해 사유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세대까지도 고려하여
한계에 이른 지구환경을 보호하자는 데에 그 가치를 두고 있다.
근래에 들어서는 지속되고 있는 웰빙과 더불어 웰다잉에 대한 관심도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대학원이나 사회교육원 같은 데서 웰다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난 2010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60여명의 웰다잉 전문지도사들이 배출되기도 했다. 예전같으면 꿈도 못꾸었던 일이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로 부상했다는 의미이다.
지난 5월 21일, 경북 고령군보건소는 삶과 죽음을 조명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 웰다잉(well-dying)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프로그램은 6월13일부터 7월4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진행되며 관내 만40세 이상을 대상으로 죽음준비교육의 필요성, 의미를 발견하는 삶, 건강한 삶과 웰다잉, 버킷리스트 영화감상 및 나의 버킷리스트(bucket list,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리스트) 작성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얼핏 보면 웰빙과 대비되어 보이는 웰다잉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름답고 품위 있게 인생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 즉 아름답고 품위 있는 생의 마무리를 위해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고, 소중한 가치를 추구함으로서 행복을 찾아가는 ‘웰빙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누가 말했듯이 역설적이게도 최고의 웰빙은 웰다잉이고, 웰다잉하기 위해서는 웰빙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웰빙만으로 웰다잉에 이를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3차원적인 시각에서 웰다잉을 바라본 것에 지나지 않으리라...
지난 6/14(목)일 구르뫼산악동호회에서는 6월 문화활동의 일환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함으로써 삶을 더욱 의미있게 살도록 만들어주는 뮤지컬 <퍼펙트맨>을 관람하였다. 첫번째 에피소드인 '죽음의 이유'부터 다섯번째 에피소드인 '러브라인 엑스포'까지 인간 군상들의 각양각색 죽음들이 무대에서 펼쳐진다. 회식하는 술집 화장실에서 과로사한 40대 직장인, 목욕탕에서 헤어 드라이어에 감전돼 죽음을 맞은 20대 여성, 자신이 사랑한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자 자살한 남성 등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케끔 하였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이라고 해서 마냥 어둡거나 무거운게 아니라 오히려 주식회사 퍼펙트 직원들의 발랄한 캐릭터가 극중 분위기를 밝고 재미있게 만들어주는데 특히 죽음을 맞은 여성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저승의 규율을 어기고 다시 한 번 삶의 기회를 주는 퍼펙트 직원 ‘X4’의 인간적인 모습은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반면 눈물을 흘리게 되는 대목도 있는데 자신이 곧 죽을거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를 위로하는 소아암 어린이(나영)의 모습에서 객석은 대부분 흐느끼고 있었다.
극중에서 보여주는 죽음과 실제 현실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극중에서 자신이 사랑한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자 자살한 남성에게 퍼펙트맨(저승사자)이 다가가 ‘행복하냐’고 묻는다. 자살한 남자는 행복하다고 대답한다. 또한 다시 한 번 삶의 기회를 부여받은 여인은 행복하게 살다가 늙어서 자신이 죽을 때가 되자 자신을 데리러 온 퍼펙트맨을 아무 미련 없이 따라 나선다. 어린아이인 나영이의 경우 천진난만한 모습 그대로 퍼펙트맨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이것 저것 질문하며 같이 떠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 죽음에 대해 크나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실제 죽음의 양태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아마도 지구상 70억의 인구 중에서 죽음을 순순히 또는 기쁨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죽음은 그저 두려운 것, 생각조차 말아야할 것, 터부(taboo)시해야할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우주의 모든 것들이 탄생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을 피할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죽음에 대해 생각조차 떠올리기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죽음 이후의 세계, 즉 죽음 너머의 세상을 모르기 때문이다. 죽음 너머의 세상에 대해 전혀 무지하기 때문에 죽음을 인간 존재의 완전한 소멸로 ‘죽으면 모든 게 끝’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한다.
둘째는 지구상의 각종 종교에서 심어놓은 사후생에 관한 그릇된 믿음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죽으면 살아서의 업보 또는 행보에 따라 천당(극락)이나 지옥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사람이 완전무결한 신이 아닌 이상 죄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죽으면 지옥에 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죽음을 터부시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셋째는 수십만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인류의 전승이나 집단무의식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죽음은 무섭고 두려운 것이라고 대대손손 전승되어 왔고, 그것이 굳어져서 집단무의식의 형태로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마도 인류 역사상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기술한 책 중 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는 에마누엘 스베덴보리(Emanuel Swedenborg, 1688 ~ 1772)의 저작들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57세 이후 27년간 영계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지옥과 천국을 체험했고, 그 모든 것을 낱낱이 기록으로 남겼다. 그의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권 번역되어 나왔는데 그 중에서도 지난 2009년에 발간된 ‘스베덴보리의 위대한 선물’은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2000년대 들어 여러 분야에서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각종 임사체험자들의 체험기와 더불어 정신분석학자들의 최면요법을 이용한 전생퇴행사례연구로서 브라이언 와이스 박사의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 김영우 박사의 ‘전생여행’ 등 많은 저서들이 출간되었다. 그 중에서도 마이클 뉴턴 박사의 ‘영혼 시리즈(영혼들의 여행, 영혼들의 운명 1/2, 영혼들의 기억)는 특히 참고할 만하다.
그러면 스베덴보리나 임사체험자들, 전생퇴행을 통해 과거를 거슬러 올라갔다 온 분들이 얘기하는 내용들이 죽음 너머의 세상을 대변할 수 있는가. 사실 그 문제에 대해 제대로 답할 분들이 얼마나 계실지 모르지만 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모든 것을 다 합쳐도 ‘죽음 너머의 세상’의 빙산의 일각도 안될 것이라고 추측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137억년 전에 생성된 미카엘우주)에서 점보다도 작은 지구별 안에서 살고 있는 인간의 제한된 인식범위로 인해 3차원계를 벗어나서 다른 차원계를 다녀왔다 해도 그것은 코끼리 엉덩이 만지기도 안될 것이다. 사실 이 우주도 제대로 파악 못하고 있는 인간이 그 보다 높은 차원계의 비밀을 임사체험이나 전생퇴행을 통해 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아이러니일 것이다.
전 우주를 통틀어 모든 존재는 탄생이 있으면 죽음을 회피할 수 없다. 우주는 성주괴공(成住壞空)하고 사람은 생로병사(生老病死)하며 생각은 생주이멸(生住異滅)하듯이 그 무엇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또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인류보다 훨씬 앞선 생명체나 지성체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인간은 살아서의 수행의 결과에 따라서 죽음 이후에 가는 세계가 차이가 있다고 한다. 철저하게 수행을 많이 해서 우주의 철리를 깨달은 존재는 5차원계 이상으로 가게 되고, 나름대로 세상을 살아온 경우에는 일단 다른 차원계로 갔다가 때가 되면 윤회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고 한다.(물론 2012년 12월 21일 이후 지축이 바로 서게 되면 지구를 감싸고 있는 윤회도 없어진다고 하는 말도 있으나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죽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능동적인 죽음인데 오랜 동안 수련과 수행을 해 온 분들의 죽음으로서 때가 되면 주체적으로 육신의 탈을 벗는 것이다. 고승들이 자신의 죽음이 이르면 제자들을 모아놓고 게송을 남기고 유체를 육체에서 이탈시킴으로서 다른 차원계로 전이해 가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동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육신의 탈을 벗기우는 것이다. 우리 인간 모두가 고승대덕이나 뛰어난 요기처럼 수련을 할 수는 없기에 앞선 문명이 전하는 바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죽음 너머의 고차원의 세계로 전이하기 위해서는 죽는 순간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열쇠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일체의 집착을 놓아버리는 것, 즉 살아 생전의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이 가장 필요불가결하다고 한다. 쉽지 않은 얘기지만 살면서 조금이라도 실천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요구된다 하겠다.
예로부터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죽음을 맞이한 분들이 적지 않지만 중국 당나라시대의 방거사 가족의 일화는 깊이 음미해볼 만하다. 방거사(龐居士, ?∼808)의 이름은 온(蘊)으로 마조스님과 석두스님의 회상(會上)에서 연마하여 깊은 뜻을 깨닫고, 약산유엄스님과 단하천연스님 등과 더불어 지기지우(知己之友)가 되어 일생을 선사 못지않게 철저히 수행하다가 간 분이다. 원래 부호(富豪)로 잘 살다가 견성오도한 후에 전답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가재도구는 동정호(洞庭湖)에 내던져 버렸다. 그리고 초가삼간에 몸을 담아 돗자리를 짜고 집신을 삼아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슬하에 남매를 두었는데 견성 후에 처자도 참선을 시켜서 사자굴중무이수(獅子窟中無異獸, 사자 굴에는 사자만 산다)라는 말과 같이 일가가 도인 아닌 사람이 없었다.
방거사는 장주(莊主, 농장주인)의 호화스런 생활을 버리고 일개 오두막집에서 돗자리를 짜면서 보림하고 가족들을 직접 지도하였다. 그가 장주로 있을 때에는 수백 명의 하인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항시 체한 사람처럼 답답했는데, 오히려 오두막집에서 살면서 도인들과 청담(淸談)을 나누며 돗자리를 짜는 일은 사심 없고 속박 없는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더우기 부인도 알뜰히 정진하고 남매도 천진을 잃지 않고 날마다 높은 경지에 올라 만족한 생활을 하였다.
만년에는 딸 영희(靈照)를 데리고 호북(湖北) 양주라는 고을의 동굴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구가하면서 지냈고 부인과 아들은 수십 리 떨어진 산중에서 황무지를 개간하여 곡식을 심으면서 살았다. 하루는 방거사가 암굴에서 살면서 갈 때를 짐작하고서 산나물을 뜯어다가 다듬는 딸을 불렀다.
“얘 영조야” - 네 아버지.
“정오가 되거든 알려다오” - 정오에 뭘 하시려구요?
“아니다. 그저.....” - 네 알았어요.
부녀간의 문답은 여기서 멎었고 거사는 방안에서, 딸애는 뜰에서 각자 자기공부에 들어갔다. 시간이 정오가 이르자
“아버지, 한낮이 된 것 같은데 일식을 하는지 해가 잘 보이지 않아요”
거사는 직접 정오를 확인하려고 뜰로 나왔다. 그 사이 영조는 방으로 들어갔다. 딸을 따라서 방안으로 들어간 거사는 “영조야” 하고 불렀으나 대답이 없다. 그녀는 자기자리에 단정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얘야”하고 또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어 딸애를 흔드니 이미 가고 없었다. 몇 분 사이의 일이었다.
- 내가 속았구나. 너한테 기선(機先)을 빼앗기다니...
평소에도 영조는 총명하여 아버지는 물론 찾아오는 사대부와 선사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하루는 탁발승이 그의 집 앞에서 요령을 흔들며 염불을 하므로 밖으로 나와서는
“무엇을 구하십니까? - 보리를 얻으러 왔소.
“스님 보리는 어떻하구요?”
탁발승은 대답을 못하고 홍당무가 되어 물러갔다. ‘보리(菩提)를 구하다니? 자기 마음속에 충만한 보리는 어떻게 하구요’라는 뜻이다.
또 한 번은 객승이 석양에 문전에 와서는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하룻밤 새우고 갈 방 하나를 얻고자 합니다”
- 삼계가 원래 공한 것인데 무슨 방을 구하시렵니까?
선을 모르는 객승은 말을 잇지 못했다.
선기가 날카로운 영조는 정오가 되면 알리라는 아버지 말에 짐작하고 먼저 갔던(別世) 것이다.
- 할 수 없구나. 딸애가 나보다 솜씨가 빠르니 나는 이레 뒤에 갈 밖에...
거사는 영조의 껍데기를 거두어서 손수 다비(茶毘)해 주었다. 죽음을 예고하고 여의치 않아 또 7일을 연기하는 도인... 방거사는 생사를 자유자재로 하는 도인이었다.
드디어 기다리는 일주일 후가 왔다. 이때 양주 태수로 우적(宇頔)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역시 선에 깊이 통달한 거사였다. 평소 마음을 주고받은 사이라 마침 이때 방거사를 심방했던 것이다. 도담(道談)을 나누다가 방거사가 갑자기 피로한 듯하더니
“내가 좀 피로하이” - 그런가. 좀 눕게나.
“자네 무릎을 좀 벨까?” - 그렇게 하게나.
방거사가 태수의 무릎을 베고 눕더니 태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무언의 작별을 나누는 것이었다. 한참을 누어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 큰소리로 외친다.
“공화(空華)의 그림자는 어지러이 떨어지고 양염(陽焰)의 파도는 거세게 물결치는구나”... 이 한마디를 남기고 정좌하여 대적삼매(大寂三昧)에 드는 것이었다.
태수는 방거사의 조사열반에 깊이 감동하여 다비를 치르고 유골을 방거사의 부인에게 보냈다. 방노파(龐老婆)는 일시에 남편과 딸의 유골을 받고도 조금도 애통해 하는 기색도 없이 한마디 내 뱉는다.
“무심한 부녀로다. 한마디 고별인사도 없이 가버리다니...”
아들은 산중에서 개간을 하다가 아버지의 부음을 전해 듣고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손등으로 땀을 닦으면서 “먼저 가셨군요”하더니 괭이를 지팡이처럼 집고 선 그대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심부름꾼은 한동안 좌탈입망하고 하직하는 모습을 처음 보는 터라 엉겁결에 방 노파에게 전하니 그녀 역시 “참 못난 자식이로다”하고 뇌이면서 아버지 옆에 묻어주었다. 고향에 내려가 친척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하고 어디론지 사라져 그녀의 거취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와 딸은 앉아서 가고, 아들은 서서 갔으니 그 노파는 어리석고 못난 짓이라고 꾸짖었는데 그녀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갔을까?
방거사가 공부하는 사람에게 준 게송이다.
但自無心於萬物(단자무심어만물) : 다만 온갖 만물에 무심하다면
何妨萬物常圍繞(하방만물상위요) : 만물이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 무엇이 방해가 되겠는가.
鐵牛不破獅子吼(철우불파사자후) : 쇠로 만든 소가 사자의 포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같고,
恰似木人見花鳥(흡사목인견화조) : 나무로 만든 사람이 꽃을 보고 새를 보는 것과 꼭 같네.
木人本體自無情(목인본체자무정) : 나무로 만든 사람은 본래 자체에 마음이 없으며
花鳥逢人亦不驚(화조봉인역불경) : 꽃과 새도 나무로 만든 사람을 만나도 놀라지 않는다.
心境如如只遮是(심경여여지차시) : 마음과 경계가 여여하면 다만 이러할 뿐인데
何處菩提道不成(하처보리도불성) : 깨달음 이루지 못한 것을 무엇 때문에 염려하겠는가.
인간은 항상 자기 자신만의 프레임(틀)을 통해 대상을 바라본다. 뿐만 아니라 그 프레임을 통해서 본 것을 토대로 대상 자체를 규정지어버린다. 죽음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닐지니 인간의 프레임으로 규정지어 놓은 제대로 된 죽음과 그렇지 않은 죽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다음은 차길진법사가 운영하는 인터넷신문 [후아이엠]에서 옮겨온 글이다.
한 스님이 찾아와 자기가 모셨던 대선사의 구명시식(救命施食)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연유는 이랬습니다. 열반하신 대선사는 생전에 덕망 높고 별같이 지혜가 빛났기 때문에 득도자로 추앙받았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눈 오는 날 이름 모를 길가에서 동사(凍死)했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겁니다. 자기 죽을 날을 꿰뚫고 선방에서 조용히 정좌하여 이승을 정리할 줄 알았는데, 행려병자처럼 객사하여 주검을 통보받다니... 절에서는 이런 사실을 쉬쉬하며 성대한 다비식을 치렀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대선사의 객사문제로 큰 의문에 빠졌습니다. 저승에서 편히 계시는지도 걱정이 컸던 것입니다.
구명시식에 나타난 대선사 영가는 예상대로 스님을 크게 꾸짖었습니다. “객사라니? 네 놈이 밥만 축냈지 닦은 바가 전혀 없구나. 한심한 놈 같으니라고,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아는 자에겐 객사란 없다. 안방에서 죽더라도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 그것이 객사요, 두엄에 코를 묻더라도 내 방향을 알면 열반이다.”
구명시식을 청한 스님은 객사를 일정한 장소, 일정한 형식으로 분별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스님은 머리를 조아리고 돌아갔다.
일정한 장소에, 일정한 용모와 복장을 하고, 일정한 절차를 밟았다고 모두 출가가 아닙니다. 단지 분별심의 자기만족일 뿐이지요. 출가란 자기를 발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마음이다. 마음의 출가가 진정한 출가다. 번듯한 먹장삼에 목탁을 두드려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자는 가출 아닐까요.
작년에 법정스님이 열반에 드신 후 그를 기리는 ‘법정스님의 의자’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된 적이 있다. 나는 그 영화를 보다가 ‘천화’라는 말에 귀가 번쩍 띄였다.
<고승열전>의 저자 윤청광 씨가 생전에 법정스님에게 흔적도 없이 생을 마친 고승들은 어떻게 생을 마친 것이냐고 묻자 법정스님께서 그건 ‘천화(遷化)’라고 답을 하셨다. 윤청광씨가 전한 바에 따르면, ‘천화’란 임종을 앞둔 고승이 홀로 깊은 산속으로 걸을 수 없을 정도까지 걸어가 어느 지점에서 쓰러지면 스스로 나뭇잎을 주워 모아 바닥에 깔고 다시 그 몇으로 자신을 덮어 생을 마치는 형태라고 하는데 깊은 산속에서 홀로 생을 마감하는 이런 죽음은 아무도 알 수 없어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천화는 불교에서 말하는 스님들의 죽음중 가장 고귀한 방법으로서 일종의 회향(回向/廻向, 자기가 닦은 공덕을 자신이나 중생에게 널리 베풀어 깨닫도록 하는 것) 정신의 하나로 사체 처리 측면에서 풍장(風葬)과 비슷하나 천화는 자의적으로 풍장은 타의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다르고 한다.
천화를 듣는 순간 ‘아, 저런 고결한 죽음도 있었구나, 어렴풋이 꿈꾸던 나의...’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때린다.
천왕봉부터 내리던 비가 중봉에서 그치더니 써리봉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해가 나가 시작한다. 해가 비치자 산을 가득 메웠던 안개들이 올라가서 뭉치더니 구름을 만들고 그 구름이 뻥뻥 뚫어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운해와는 차원이 다른 비경을 선사한다.
문득 고려말~조선초의 3대 화상인 지공-나옹혜근-무학자초의 법맥을 이은 함허득통(涵虛得通, 1376~1433)선사의 게송이 떠오른다.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태어남은 한 조각 구름이 생겨남이요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흩어짐이라
아, 우리네 인생도 저와 다르지 않으리...
근자에 생을 가장 긍정적으로 마감한 사람은 천상병 시인이 아닌가 한다. 시인 천상병(千祥炳, 1930~1993)은 욕심없이 살다 간 사람이다. 그는 자식도 돈도 없이 마치 산허리를 지나는 구름처럼 그렇게 살다 간 사람이다. 그는 동백림 사건 때 누명을 쓰고 폐인이 될 정도로 고문을 받아 심신이 성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좋다! 참 좋다.”는 말을 하곤 하였다. 그는 ‘귀천(歸天)’이란 제목의 시를 통해 세상살이를 ‘소풍’에 비유하였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아침 이슬 더불어 손에 손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화대종주를 마치고 대원사로 내려오는 길... 걷는 내내 화엄사의 원찰인 연기암 적멸당에서 보았던 글귀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사람은 무거운 짐을 싣고 가는 마차에 짐을 더 얹어 쓰러지게 만들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다 놓아버릴 뿐이다.
마음의 문을 열면 천하가 다 내 것이요, 마음의 문 닫으면 천하가 다 나와는 멀어지는 것,
모든 것을 다 놓아버려라
그대가 이 세상에 올 때 빈 마음으로 왔으면 갈 때도 빈 마음으로 떠나면 본전인 것을
무엇을 그렇게 채우려만 하는가
돈 명예 부귀는 있다가 없어지면 허망하고 고통만 안겨줄 뿐, 괴로움과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부처님 법은 왜 모르고 사는가
마음이 고요해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면 극락과 지옥이 따로 없거늘
무엇을 그렇게 집착하고 헐떡이며 방황하고 있는가
지금 자신을 보라
헐떡거리는 그 마음만 쉬고 놓아버리면 행복은 바로 그 곳에 있거늘...(끝)
화대종주란 전남 구례의 화엄사를 출발해 경남 산청의 대원사 주차장까지 이르는 총 46.3Km에 이르는 구간을 종주하는 것이다. 여기에 노루목에서 반야봉까지 왕복 2Km를 합치면 48.3Km가 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도상거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걷는 실제 거리는 훨씬 길다.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코스 화대종주!!!
화엄사-7k-노고단-3.2k-임걸령-1.3k-노루목-1k-반야봉-1k-노루목-1.8k-화개재-1.2k-토끼봉-3k-연하천- 2.1k-형제봉-1.5k-벽소령-2.4k-선비샘-3.9k-세석-3.4k-장터목-1.7k-천왕봉-0.9k-중봉-3.1k-치밭목-1.8k-삼거리-4.4k-유평리-1.6k-대원사- 2k-대원사 매표소(우리가 걸었던 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