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사제모임 장소변경
8일부터 시작된 쌍용차 매일 미사로 인해서
15일(월) 사제모임 장소가 군산 수송동성당에서
서울 해방촌성당으로 변경되었습니다.
4월 사제모임
4월15일(월) 15시 | 서울 해방촌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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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매일 미사 집전순서
9일(화) 인천교구 10일(수) 마산교구
11일(목) 의정부교구(예정) 12일(금) 예수회 |
2013_04_08_월 |
+++ 함께 해 주신 사제
주례 : 나승구 신부(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강론 : 최영민 신부(예수회)
인천교구: 박요환, 김윤석, 장동훈, 이현수, 장세윤, 김동건 신부
서울교구: 함세웅, 이영우, 나승구, 김도훈 신부
의정부교구: 맹제영, 김영철 신부
청주교구: 김인국 신부
대전교구: 김유정 신부
마산교구: 하춘수 신부
예수회: 김정대, 조현철, 최영민, 김정욱, 정만영, 박종인 신부
작은형제회: 유이규 신부
꼰벤뚜알: 서영섭 신부
바오로: 황인수 신부 |
+++ 함께 해 주신 수도회
베네딕도회
성 바오로딸 수도회
성가소비녀회
예수수도회
예수의 까리따스 수도회 등 |
글라렛선교수도회 |
돈, 권력 그리고 꽃보다도
인간이 먼저 임을 알려 준
쌍용차 노동자들 고맙습니다
매일 미사를 시작하며...
나승구 신부(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며칠 전 쌍용차 분향소가 참혹하게 깨져 나가고 나서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랐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열심히 힘을 키워서 저 무지막지한 공권력에 대항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도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열심히 마음을 다해서 기도를 하면 하느님의 뜻도 이곳에서 이루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매일 미사를 봉헌하기로 급박하게 결정을 하고 신부님들께 알렸는데 많은 신부님들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식 듣고서 많은 수녀님들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마 누가 주인이 있어서 손님으로 우리들을 이 자리에 부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서로를 불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부름에 기꺼이 응답하고 그 응답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습니다.
확실하게 정한 것들은 사실은 앞으로 사태가 안정될 때까지 매일 미사를 6시30분에 봉헌하겠다, 8시까지 이 자리를 지키다가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그 정도 수준에서만 정했습니다.
또 모임을 갖고 추후에 어떤 일들을 해야 될지 논의한 후에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이 자리를 지켜왔던 쌍용차 노동자들,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늘 아픈 사람들은 늘 그냥 그렇게 당하는 것이 세상이야 라고 생각할 것을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법보다 돈보다 권력보다 그리고 오히려 꽃보다도 인간이 먼저 임을 알려 주심에
고마움 드립니다.
이 고마움이 우리 모두의 삶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죽지 않고 세상의 길을, 인간의 길을 열어 가겠습니다"
쌍용차 노동자 이야기
김정욱 쌍용차 대외협력부장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작년 이맘 때 대한문 앞에 자리 잡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1년이란 긴 시간동안 쌍용자동차 24명의 주검을 모신 그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이야기 하는 모든 사람들이 숨을 쉴 수 있는 허파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이 땅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모든 이들이 이곳에서 희망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 땅 평화의 촛불이 지난 1년 동안 이곳에 모였다고 생각합니다.
1년이라는 긴 시간 돌아보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여전히 촛불을 밝히기를, 이곳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머물지 않기를 원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상황만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아침 9시쯤 중구청에서 사람들이 왔습니다.
지난 주말에 비가 왔습니다.
날씨가 몹시도 추웠습니다.
천막을 뺏기고 추위와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비닐 한 장을 쳤습니다.
이곳에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깔고 있던 깔개와 비닐천막을 오늘 아침에 또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어서 영장 실질 심사가 진행했습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탄원서 4천여장을 모아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시간상 다 출력하지 못했던 마음들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4시 넘어 영장 실질 심사가 끝났습니다.
저는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앉아 있었습니다.
지부장님이 마지막으로 재판장에 하고 싶은 말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밖에서 들었을 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해고노동자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처럼 우리가 누려야 될 일상을 돌려달라는 울부짖음이었습니다.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도 오늘 아침에 김밥 한줄 먹고 겨우겨우 다시 대한문에 와서 미사 시작되는 줄 알면서도 배가 너무 고파서 밥 한 끼 먹고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은 우리 모든 민중들이 국민들이 함께 누리고 세상을 살아갈 땅입니다.
대한문 이곳 또한 마찬가집니다.
가진 자들에게 우리가 더 이상 뺏기고 우리가 소외받고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국민들이 이야기 합니다.
이 땅의 주인은 우리 국민들이라고.
우리 국민들이 저 권력을 가진 사람들, 공권력에 의해서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이런 삶을, 이런 민중들의 아픔을 언제까지 겪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 대한문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으로부터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것을 희망하기 때문에 4년이라는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여전히 여기 서 있습니다.
저희 지부장님의 말씀처럼 저희 결코 죽지 않고 뚜벅뚜벅 세상의 길을, 인간의 길을 열어 가겠습니다.
< 어느 아이의 편지 낭독>
우리 아빠들이 힘들지만 이 고생스러운 길을 가는 이유는 우리 아이들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곳의 아픔이 전달되지 않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 갈수 있도록 우리가 힘을 모으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함께 길을 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너무 뜻 깊고 미래가 저희들에게 밝아지는 희망의 촛불인 것 같습니다.
오늘 함께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힘내겠습니다.
“주님은 올바른 사람들을 굽어보시고,
그들의 간구를 들어 주십니다”
(베드로 3,12)
소희숙 스텔라 수녀(서울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최영민 신부님께서 강론에서 ‘두려워 하지마라’ 하셨는데 두려워하지 않을 근거를 제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늘 복음에서 와 닿는 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
이 말씀 믿습니까?
믿어요?
저는 아니에요.
저 개인으로는, 하느님을 굳게 믿습니다.
유대인들이 아우스비츠에서 죽음의 고통을 받고 있던 중에, 그들은 재판을 하기로 했답니다.
이 상황을 만든 ‘하느님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그래서 재판이 열렸고, 삼일 밤낮 격렬한 논쟁 끝에 마침내 결론을 맺었습니다.
“하느님은 유죄!”
땅땅땅!
“자, 모두 기도하러 갑시다!”
저도 이 수준의 신앙입니다.
제 개인적 삶에 하느님께서 개입하셔서 이끌어주시고 함께 해 주심을 너무 많이 체험했기 때문에 그분을 모른다고 말 못합니다.
하느님이 진짜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 속에서,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이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는
“하느님께서 진짜 개입하시는가?”
저는 “그렇다”라는 말이 선뜻 안 나오더라고요.
여러분이 어떠세요?
저는 확신이 안 섭니다.
창피하지만 진짜 고백합니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하느님께서 개입하시는 것을 믿어요?
제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확신을 갖고 “그렇습니다”라고 힘 있게 말을 못하겠어요.
지금 이 시대, 우리 현실에서, 두 눈을 벌겋게 뜨고 있는데도 얼마나 많은 불의와 부정이 폭력적으로 판치고 있습니까?
사실 부정으로 박씨가 당선된 것에 걸맞게 아직까지도 정부를 제대로 구성하지도 못하하며 우왕좌왕 하면서 성공적으로 적으로 일을 추진 한 것이 있어요.
뭐냐 하면 이 나라 경제기반을 튼튼히 하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노동자를 마치 살인강도처럼 체포해 가는 것입니다.
엊그제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아마도 어둠이 짙은 것 보니깐, 새벽이 가까이 온 것 같습니다.
여기에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고통이 많은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거리미사가 굉장히 오래 되었습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고, 안 되는 것이 없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개입이 보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악의 연대성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보통 연대해서 힘을 키워서 서로서로 물귀신 작전으로 함께 싸우기 때문에 우리처럼 서로를 위해 계획하지 않는 사람들이 물리치기에는 너무나 큰 힘 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렇게 모여서 기도 합니다.
개인으로 안 되니까, 각자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해서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안 되니까, 이렇게 뭉쳐서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하느님께 빛을 주십사고 매달립니다.
‘하느님이 이 일은 원 하신다’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개입을 해주십사하고 간청하러 이 자리에 모이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는 엄동설한에도 여기에 왔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여기 왔던 이유는, 우리 힘으로 안 되기 때문에 하느님께 매달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러 모였을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서로에게 지치지 않는 힘을 받고, 격려를 받고, 믿는 바가 옳다고 확신이 되는 이 자리이기 때문에 이 자리가 거룩하고 귀중한 것 같습니다.
불의를 불의라고 외치고, 하느님의 뜻인 생명과 사랑과 정의를 외치고, 그 길로 돌아오라고 회개를 호소도 하고, 악을 쓰기도 합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외로워하지 말라. 희망을 가져라. 연대하는 우리가 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하느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르다”
그들이 조그만 희망이라도 갖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가 모이는 것 같습니다.
강론이 좋으면 힘을 받습니다.
그러나 강론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닙니다.
강론에 따라서 모이는 숫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 우리가 여기에 오는가?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는 것 같습니다.
권력이 없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사회의 약자입니다.
도저히 우리가 이룰 수 없는 일에 하느님께서 직접 개입해 주십사고 옵니다.
부자들의 욕심에 희생이 되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사회에서,
사람이면 누구나, 생명을 가진 누구나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사회를 이루어주시길 간청하기 위해서 오는 것 같습니다.
엊그제 노동자들 잡아가는 것 보면, 개를 잡아가도 그렇게 잡아가지는 않을 겁니다.
안 잡혀가려고 발버둥 치는데, 저 유니폼을 입은 경찰 대여섯 명이 한사람을 잡아끌고 가요.
경찰들이 서너 겹으로 통로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저지하지 못하게 하고 끌고 갔어요.
21세기에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이 일을 보며 무력한 나 자신 때문에 너무 비참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마 여러분도 같은 심정일 거예요.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내 나라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시겠습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는 가치들은 권력이나 돈이나 수단이나 재능, 어쩌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서 권력을 갖고 행복하게 살려는 물신만능주의가 판치는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과는 다른 가치,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뜻하신바, ‘생명과 사랑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가 하느님의 나라일 것 같습니다.
그 나라는 죽어서 가는 저 먼 천국이 아니라 바로 이 땅위에 세워져야할 사랑과 생명과 정의의 하느님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이 말은 새로운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루에도 수없이 외우는 ‘주의 기도’의 내용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이루어지게 하소서.”
저는 예수님의 말씀에 속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진심으로 간청해서 하느님께서 마음을 좀 바꾸셨으면 좋겠습니다.
“박근혜가 쌍차 한번 해결해라”
한마디만 하시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나 봅니다.
말 안 해도 알아서 기는 구청공무원들과 이 경찰들이, 박근혜가 한마디만 하면 얼마나 잘 해결하겠어요.
하느님의 마음을 바꾸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그 외침을 들었다. 오냐, 내가 가마, 내가 해결하도록 도우마!” 하고요.
불의를 막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하느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베드로 3장 12절의 말씀으로 끝맺겠습니다.
“주님은 올바른 사람들을 굽어보시고, 그들의 간구를 들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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