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천의 아침>
춘천시가지 도심을 가로 지르며 흐르는 “공지천”
(일부 시민은 '석사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이 확 달라졌다.
아름답게 달라진 공지천에 많은 춘천시민이 동트기 전부터 나와서
저녁 늦게 까지 걷고 달리고 자전거를 타고 운동기구로 운동을 한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여름에는 발가벗고 수영과 고기잡이를 하고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타고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던 맑고 깨끗한
하천이 였었는데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가 팽창 하면서
생활하수가 흘러 들어와 오염이 심각 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꾸준한 노력으로 오수 하수관거를 묻어 하수처리장과
분뇨처리장으로 유도하여 생활 오폐수가 하천에
유입 되지 않게 하고 공지천 상류부터 하천변 둔치를 덮고 있던
콘크리트 구조물을 제거하여 자연 친화적 하천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곳에 자연석을 쌓고 깔아서 물고기들이 산란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고 잔디를 심고 꽃을 심어 아름다운 하천을
친환경적인 자연 휴식처로 제공하고 시민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운동시설과 산책로, 자전거 도로를 멋지게 만들었다.
이것은 춘천시에서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연계한 4대강
지천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공지천에 정부의 국비등 300억원을
지원을 받아 상류인 태백교에서 하류 공지천교 까지
5.6km를 영구적인 생태 치수 하천으로 정비 한 것이다.
이렇게 아름답게 가꾸어 놓은 공지천이 갈수기 때는 수량 부족으로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춘천시에서는
내년부터 춘천시 동면 소양취수장에서 소양강 원수를 끌어 관로를
통해 공지천 상류인 신촌천과 약사천에 하천수를 공급하여 공지천의
하천 건천화를 예방하여 수질을 개선하고
생태계를 회복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춘천 공지천" 하면 외지인들이나 춘천시민 일부는 근화동
에디오피아집 부근의 공지천 유원지를 그냥 공지천이라고 부른다.
택시 기사도 공지천으로 가자고 하면 이곳으로 안내한다.
공지천의 유래를 살펴보면『춘천의 지명 유래』의 기록에는
“원래 공지천을 "곰지내"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은 가끔 외가가 있는
춘천에 와서 머물렀다. 그곳이 지금의 퇴계동(退溪洞) 부근
(금호, 한주아파트 부근)이며 동네 이름도 이때 생겼다고 한다.
어느 날 퇴계선생이 외가에 왔다가 곰지내에서 고기잡이를 한 후
머슴에게 여물을 썰게 한 다음 삼태기에 담아 곰지내에 버렸는데
여물로 쓴 짚이 공지고기(진어(珍魚)라고도 부른다.)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 하천에 공지가 산다고 하여 이 하천을
공지천(孔之川)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공지 고기는 聖人이 있는 곳에서 사는 것으로 전해 오고 있는데
지금은 멸종되고 없는 민물고기이다.
공지천에서 본 대룡산의 해돋이
지방하천 공지천의 표시간판
춘천시 도심 중간을 가로 질러 흐르는 공지천의 항공사진
정비된 공지천의 조감도와 정비전의 사진
정비가 시작되는 상류 지점인 태백교 위에서
거두교 위↑와 거두교 아래↓
석사교 위↑와 석사교 아래↓
소하천인 퇴계천과 공지천의 낙차로 생긴 작은 폭포
남춘천교 위↑와 남춘천교 아래↓
효자교 위↑와 효자교 아래↓
공지교 위↑와 공지교 아래↓
의암호와 접하는 공지천 하류 지점
의암호가 보인다.
하천 제방 비탈면과 둔치에 심은 꽃 단지
동트기 전부터 산책 나온 시민들
구조물도 여러군데 설치하였다.
공지천 하류지역 공지천교 바로 위에 건설한 아취교
온의동 금호아파트 부근에서 삼천동 분수대 까지의 산책로 다리
춘천 만천리에서 집단으로 서식하는 백로 왜가리의 공지천 나들이
백로 왜가리가 고기 잡이에 열중하고 있다.
큼직한 고기를 잡아서 물고 있다.
오리 가족
원앙 가족
고기 때
벽면 오르기 운동 시설
운동시설도 여러곳에 설치했다.
공지천유원지의 자전거 대여소
옹벽 제방 벽면의 벽그림
거두교 우측 교각 벽면의 타일 사진-춘천 사진
석사교 교각 벽면의 타일 사진- 춘천사진
거두교 좌측 교각 벽면의 타일 사진- 옛 춘천 사진
공지천 하류의 공지천교
공지천의 상징인 "어린이와 물고기" 조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