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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마세러피, 우리한테도 있었다
요즘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는 단어가 ‘아로마세러피’다. 향기를 의미하는 아로마(aroma)와 요법(치료)을 의미하는 세러피(therapy)의 합성어로, 번역하자면 ‘향기요법(香氣療法)’이다. 말 그대로 향을 이용하는 치료법이다. 그런데 향을 이용하는 건 사실 우리에게 낯선 문화가 아니다. 여전히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향이 놓이기도 하고, 장례식장에 가면 향부터 피운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향은 좀 더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다. 각종 문헌기록과 유물을 통해 우리 조상들이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향 문화를 누려 왔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단군신화(檀君神話)부터 사실 향 문화의 시작이다. 단군신화에는 우리 민족의 첫 주거지라고 하는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神檀樹)와 마늘, 쑥이 등장한다. 여기서 태백산은 지금의 묘향산(妙香山, 향내가 묘한 산)을 가리킨다. 단(檀)은 우리나라 토종 향나무인 자단(紫檀)과 백단(白檀)이다. 자단과 백단 그리고 마늘과 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향 식물이다.
지금도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제사를 올릴 때 쑥을 사용하는데, 고대 제천의식(祭天儀式)에서 연기나 향은 신(神)과 교감하는 매개체로 인식했다. 이러한 인식은 동서양에 모두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향의 영문 표기 ‘Perfume’은 라틴어의 ‘per fumum(through smoke)’이 어원으로, ‘연기를 통하여’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동양에선 ‘香’의 발음이 ‘향할 향(向)’ 자와 같아, ‘신에게로 향하다’는 의미에서 향(香)이 되었다고도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향이 등장한다. 중국 양(梁)나라에서 신라(눌지왕)로 보낸 향물(香物)을 보고, 묵호자(墨胡子)가 ‘향(香)’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것을 태우면 꽃다운 향기가 나며 신께 올리면 그 정성이 신에게 사무치게 되는 것이다. 거룩한 신께 올리는 공양으로는 향(香)보다 더 나은 것이 없으니, 만일 그것을 태워서 소원을 빌면 반드시 영험이 있으리라”라고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한 향 문화
삼국시대 향 문화를 한눈에 짐작할 수 있는 유물이 있는데, 바로 국보 제287호 백제 금동대향로(百濟 金銅大香爐)이다. 뚜껑은 중국의 영산(靈山)인 박산(博山)을 형상화했는데, 그 중앙에는 날개를 활짝 편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정교한 연꽃무늬를 새긴 몸통은 한 마리의 용이 솟아오르듯 받치고 있다.
향을 사르면 봉황의 가슴과 뚜껑에 난 12개의 구멍으로 향이 피어오른다. 중국의 박산향로(博山香爐) 형식이지만, 조형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중국을 뛰어넘는 수작(秀作)이다. 이 향로는 불교에서 사용된 향 문화의 일면을 보여 주는 예이며 그 외에도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향로나 신라의 향료무역에 관한 기록을 볼 때 삼국시대에 이미 다양한 향 문화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왕실과 귀족 중심의 고려 ‘향’
고려의 향 문화는 왕실과 귀족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불교행사와 국가적인 의례(儀禮)에서 향을 피웠고, 귀족들도 일상에서 다양하게 향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1123년(인종 1년)에 고려를 방문했던 송나라 서긍(徐兢)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는 외국인의 눈에 비친 고려의 향 문화가 기술되어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고려는 외국 사신을 맞이할 때나 공적인 모임에서 향을 피웠으며, 귀부인들도 향낭(香囊)을 지니는 것을 좋아한 것으로 보인다. 왕실과 귀족을 중심으로 향의 사용이 일상적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는 근거다.
향구(香具)에 관한 기록도 있다. 은(銀)으로 만든 ‘향합(香盒)’과 ‘정형향로(鼎形香爐)’, ‘은제자모수로(銀製子母獸爐)’, ‘산예출향(猊出香)’, 옷에 향 연기를 쏘이는 ‘박산로(博山爐)’ 등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소개되어 있다. 그중 ‘산예출향’은 기록된 묘사를 볼 때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60호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와 유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근래 보령 원산도, 태안 대섬, 진도 명량대첩로 해역에서 수장되어 있던 청자 향로가 인양됐는데, 그중에 사자, 기린, 오리, 원앙, 용 등이 장식된 유물이 있어, 당시 고려인의 고급스러운 취향을 짐작게 한다. 서긍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지만, 현존하는 청자 향로 중 백미(白眉)는 국보 제95호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다. 뚜껑은 구형인데, 칠보(七寶) 무늬를 투각하고 몸통에는 꽃잎을 하나하나 붙여 활짝 핀 연꽃을 형상화했다. 꽃잎에는 섬세하게 잎맥까지 표현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선비와 민가에도 퍼진 향 문화
조선시대에는 향 문화가 제도화되는 한편 매우 활성화됐다. 궁중에서는 각종 제례(祭禮) 등 국가행사에서 향을 피웠으며 전향별감(傳香別監)을 통해 지방으로 향을 보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궐내에 항상 침향(沈香)을 피우고, 설날 아침에는 임금이 직접 향을 피워 그해 나라가 평안하기를 기원했다. 때로 관료들에게 향을 하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늘어나는 향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궁궐 안에는 향료의 수급과 관리를 전담하는 ‘향실(香室)’이라는 조직이 있었으며, 향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향장(香匠)’도 존재했다. 왕실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는 전반적으로 향 문화가 퍼졌는데, 특히 선비들의 향 문화가 두드러졌다. 선비들은 책을 읽거나, 시를 지을 때 그리고 차를 마시거나 손님을 맞이할 때 옷을 단정히 하고 향을 피웠다.
그래서 선비가 사는 집을 ‘난 향기가 나는 집’이라는 의미로 ‘난형지실(蘭馨之室)’이라 부르기도 했다. 특히 책을 읽기 전에 향을 피워 정신을 맑게 하는 행위를 훈목(薰沐)이라 지칭하며 생활화했다. 여인들도 향을 즐겼다. 향을 담은 주머니 ‘향낭(香囊)’이나 ‘향갑(香匣)’ 같은 장신구를 애용했고, 향료를 넣은 물로 머리를 감거나 목욕을 하며, 옷에 향을 쐬는 등 향을 생활화했다. 향낭 같은 경우는 남자들도 사용했는데, 승지가 임금을 대면할 때나 부모의 처소에 문안드리러 갈 때 향낭을 차는 것이 법도로 정해질 정도였다. 예를 갖추는 중요한 품목으로 여긴 셈이다.
혼례에서도 향은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향로 앞에서 부부가 백년해로를 서약했으며, 부부의 침실에는 으레 사향(麝香)을 사르고 난향(蘭香)의 촛불을 켰다. 사향은 응혈된 피를 용해시키거나 토사곽란을 진정시키는 구급약으로도 효용이 있었으며, 조정(助情) 효과도 뛰어나 애용되었다.
특히 19세기의 백과사전인 『규합총서(閨閤叢書)』에 향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때 당시 민가에서도 쉽게 향을 만들어 애용하였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으며, 이는 곧 향의 대중화를 말해준다. 향 문화가 널리 퍼지면서, 향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향구(香具)도 함께 발달했다.
향로뿐만아니라 막대형의 선향(線香)을 꽂아 사르는 향꽂이, 향을 감싼 향낭(香囊), 향갑(香匣), 향유병(香油甁), 향을 담아두는 향합(香盒) 등이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현재 고궁박물관에는 왕실에서 사용하던 향로와 향합, 향낭, 향갑노리개 등이 소장되어 있는데, 국가의례에 사용하거나 왕실 여인들이 사용하던 것으로 조형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난 유물이다.
다시, 우리들의 전통 향이 피어나길
이처럼 한반도에서 ‘향’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였다. 그러나 대한제국의 멸망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전통 향 문화는 거의 단절되었다. 광복 후에도 생활방식의 변화로 향 문화는 위축되어 발전하지 못했다. 특히 구한말부터 전해지기 시작한 근대 개념의 알코올 향수는 우리 국민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 우리의 근현대 향 문화는 발전하지 못했다.
다행히 1990년대 후반 들어 유행한 웰빙(well-being) 문화와 함께 천연재료를 이용한 고급 향과 이를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다양한 색상과 향기를 지닌 향초(香燭), 디퓨저(diffuser) 등 향을 즐기는 새로운 방법과 도구가 등장했고, 지금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이다.
이처럼 향과 향구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향으로 주변을 정화하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향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 그리고 점차 그런 문화가 확산되고 있어 고무적이다. 아직은 전통 향과 접목이 미흡해 아쉽지만 근래 전통문화에 관심이 고조되면서 우리 향에 관심도 높아지고 있으니 앞으로의 변화를 기대해 본다.
글. 최영숙(문화재감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