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편지 107 : 입학사정관제도 도입의 문제점
안재오
서론 : 서남표 총장의 혁신적인 정책
최근 KAIST 총장 서남표씨가 그 학교의 입학생을 뽑을 때 각종 경시대회 경력도 보지 않고 또 특목고나 과학고도 아닌 일반고 학생들 중에서 오직 면접을 통해서만 150명을 뽑는다고 하여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어떻게 보면 명문고 출신들에게 역차별을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이런 발언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워낙 특목고나 과학고의 등급이 높게 평가되어 있고 특목고나 과학고의 경우 학생들의 타고난 재능보다는 열성과 자본에 의한 성적 향상이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종 올림피아드(경시대회) 의 경우에도 개인의 독창적인 재능보다는 주로 사설학원들의 영향력이 승부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서남표의 개혁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하나의 교육적 실험이다.
철저한 학습과 반복된 교육을 통해서 길러진 한국의 영재들은 막상 개인의 재능과 능력을 발휘해야 할 대학교나 대학원 혹은 연구실에서는 신통한 업적이 없다는 것이 수년간의 경험에서 귀결되는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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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남표 효과'인가.
▲ '서남표 효과'인가.
서남표KAIST 총장이 무시험·면접으로 신입생 150명을 뽑겠다는 획기적 입시안을 발표한 이후 각 대학들이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확대하는 등 공교육 살리기 입시제도를 속속 내놓고 있다. (조선 3.12)
이는 그간 사교육의 영향력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기만 했던 대학입시의 관행에 일대 단절을 선포하는 쾌거로 보인다. 서남표씨는 “사교육(私敎育)은 사교육(死敎育)이다” 라고 평소의 지론을 주장하며 대학입시에서 사교육의 영향력을 제거하기를 원하고 있다.
본론 : 입학사정관제도의 문제들 - 객관적인 평가와 주관적인 평가
면접만으로 신입생을 뽑는다는 한 학교의 입시전형 개혁이 한국 교육 방향에 얼마나 충격을 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후 포항공대를 비롯한 국내 유수의 대학들이 무더기로 이런 입학사정관을 통한 대학입학허가를 발표하여 올해부터의 대학입학시장을 뜨겁게 달구어 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기대와는 달리 학교 일각에서는 서남표식 개혁의 반작용과 역효과의 우려가 떠다니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 진학지도를 담당하는 교사들과 수험생들을 어떻게 입학시험을 대비해야 할지를 모르고 방황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특히 실기시험을 보지 않고 미대입학 허가를 결정한다는 홍익대학교의 선언은 근처 학원가와 학생들에게도 큰 충격과 혼란을 야기 시킨 바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의 중요한 모멘트는 미국식 대학입시제도의 도입에 있다. 이는 대학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다. 위에서 거론된 입학사정관을 통한 대학입학 허가제도란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진다.
대학 입학 업무를 전담하는 전문가인 입학사정관(admissions officer)이 전형 과정을 총괄하는 입시. 입학사정관은 전국 고교의 특징을 파악해 정보를 축적하고 수험생이 제출한 자료를 평가하거나 현장조사를 통해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내신과 수능성적 등 객관적 자료를 위주로 뽑는 일반 전형과는 달리, 입학사정관의 정성적(定性的) 평가로 합격을 가린다. (조선일보)
KAIST의 서남표 총장은 사교육에 물들지 않는 천부적인 인재를 학교성적이나 수능시험성적, 각종 수상경력 혹은 고교등급제 등의 기존의 평가의 척도를 포기하고 오직 면접시험 하나를 통해서 인재를 뽑는다. 그러나 면접만으로 어떻게 공정하게 인재를 구별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나라처럼 학벌주의가 심각한 경우 좋은 대학 입학은 바로 사회적인 성공과 직결되는 것으로 믿는다. 거기다가 문제는 교육의 국가주의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는 사립대학의 자율성을 거의 이해할 수 없다.
대학의 자립과 자율성이 철저히 보장된 미국에서는 각 대학들이 어떤 인물을 뽑든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예전의 경험으로 알 수 있듯이 명문사립대학의 입시를 결코 그 학교만의 문제로 보지를 않는다. 말이 사립대학이지 그들의 입시는 철저한 사회적인 주의와 감시를 받는다. 가령 어떤 좋은 대학이 미스코리아를 대학입시 없이 선발한다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 한국이다. 그러므로 입학 면접을 담당하는 입학사정관에게 선택의 자유를 크게 허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면접 사정관은 시험성적이나 수상자료 같은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데이터보다는 자신의 가치관과 평가의 기준이 더욱 중요하다. 즉 입학사정관을 통해서 신입생을 뽑는다는 것은 주관적인 선택을 객관적인 기준보다 더 중시한다는 말이다. 물론 입학사정관도 단순한 자신의 경험이나 판단력이 아니라 여러 가지 객관적인 데이터를 보고서 입학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객관적인 자료들은 사정관의 주관적인 판단에 객관성을 부여하기는 하지만 최종적으로 수험생의 당락을 결정하는 것은 사정관의 주관적인 판단이다. 이를 “정성적(定性的) 평가” 라고 에둘러 규정한 것이다.
흔히들 점수 몇 점 차이로 어떻게 재능을 판별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의 주관적인 평가가 그 수능시험 몇 점 혹은 소숫점 이하 몇 점을 대신할 정도로 엄밀성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이 입학 사정관제도의 본래의 뜻이다.
입학사정관(admissions officer)이란 영국이나 미국처럼 공립교육보다는 사립교육의 전통이 강하고 보편교육보다는 엘리트교육, 수월성의 교육이 강한 지역에서 적용되는 하나의 사회적-역사적 제도이다. 이런 배경지식이 없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엘리트들은 미국식의 입학사정관제도를 실시하는 대학들에게 230억원의 학교지원금을 준다고 하며 이 제도의 도입을 재촉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대학들 역시 그런 교육부의 정책에 맞추어 다들 우후죽순격으로 면접과 입학사정관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포항공과대학은 수능시험 성적을 배제하고 신입생 전부를 입학사정관제로 뽑겠다고 나섰습니다. 뒤이어 한양대 천여명, 고려대 880여명, 한국외대 670여명, 성균관대 620여명 등 앞다퉈 입학사정관제를 통한 학생 선발 정원을 확대했습니다. 가장 파격적인 안을 내놓은 홍익대는 2013년까지 미술대학 입시에서 실기시험을 폐지하고 심층면접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입학사정관제를 활용한 대학은 16곳에 불과했지만 올해부터는 최소 49곳으로 늘고 정원도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KBS뉴스 3.15일)
미국의 사립대학들은 입학정원이나 학과의 생성과 통폐합 등에 있어서 전혀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공립대학도 마찬가지이다.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역할은 재정지원이나 통계 작성에 국한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대학 입학정원이나 입학 전형 방식 혹은 학교 조직에 있어서 각 대학들은 자유를 누린다. 이런 미국 대학의 상황과 전제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그 시스템의 일부인 입학사정관제도를 한국에 도입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만을 떼어 물위에 띠우려는 것과 같이 무모하다. 이주호씨를 비롯한 정부의 교육관리들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엘리트주의를 지향하는 미국의 교육시스템이 한국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의 미국발 금융위기가 보여준 것처럼 명문대를 나온 미국의 사회주류와 엘리트들은 도덕적 우수성도 산업적-기술적인 우수성도 부여주지 못한 점이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한국 교육의 모범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결론 : 혼합정책의 부조화
위의 KBS보도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각 대학들은 입학정원의 일부를 입학사정관제도를 통해 뽑겠다고 한다. 이는 가뜩이나 복잡한 기존의 입시전형제도에 또 하나의 혼란을 더하는 효과를 지닌다. 즉 지금도 대학입시는 수시와 정시가 있고 그것도 부족하여 수시 I, II, 정시 I, II 등이 있고 전형 양식도 내신, 논술, 수능 등의 다양한 형태가 있다. 거기다가 입학사정관제도가 첨가된다면 학생들의 진학지도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해진다. 복잡한 입시전형은 일반 학교의 진학지도를 어렵게 하고 반사적으로 사설학원들의 유리한 조건이 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입시제도가 바뀔 때마다 이익을 보는 것은 대형입시학원들이다. 학원공룡기업으로 성장한 메가스터디 기업이 그런 경우이다. 조만간 메가스터디를 비롯한 대형입시학원들이나 강남의 학원들로부터 <입시사정관 면접 노하우>를 가르치는 광고가 나올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시험이나 사교육은 필요악으로 등장한다. 수능이면 수능 사교육, 논술이면 논술 사교육 등등. 그리고 이미 면접 내지 구술면접, 심층면접의 사교육은 자리를 잡고 있는 지경이다. 사교육을 방지하기 위한 입시제도는 항상 실패를 해왔다.
벌써 면접은 대학입시 전형의 중요한 방법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심층면접 역시 각 대학들이 오랫동안 사용했다. 그런데 입학사정관들은 또 무슨 종류의 면접을 통해서 공정한 심사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입시정원의 일부는 사정관 면접으로 뽑고 다른 일부는 수능시험 성적과 내신성적으로 뽑고 또 일부는 논술고사와 구술-면접으로 뽑고 등등. 정말 대학의 입학담당 교수들은 그토록 전능한 천재들일까? 한국 대학들의 학술적 수준은 그렇게 높질 않는데 입학전형은 그토록 세밀하고 복잡하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차라리 미국처럼 입학사정관이 모든 입학지원들을 획일적으로 규제한다면 말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들은 일본대학이 개발한 논술, 미국대학이 개발한 입학사정관 면접 그리고 한국 고유의 수능시험 등을 총망라하여 인재를 뽑는다고 한다. 그간 인재를 뽑지 못해서 대학수준은 낮고 청년백수는 우글거리는가? 인재를 제 마음대로 뽑지 못해서 교육의 질과 국가의 도덕성이 그토록 저급하다는 변명은 제발 하지 않으면 좋겠다.
필자의 관점에서 한국의 현재 과학적, 기술적, 경제적, 도덕적으로 발전이 안 되는 것은 지나친 입시위주의 교육 때문이다. 입시를 어떻게 바꾸고 전형방법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켜도 근본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입시제도의 변화가 매번 그런 것처럼 이번의 입학사정관 제도 역시 부작용과 혼란만을 야기하기 쉬울 것 같다. 그리고 미국의 경우를 보면 고교성적 우수자들은 여러 대학에 지원서를 제출한다. 그래서 한 대학에서 낙방하더라도 다른 대학에서는 입학이 성공할 수가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입학기회가 적게 주어지는 경우 면접으로만 승부를 노리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이런 여러 가지 관점에서 입시사정관 제도와 면접을 통한 명문대 입학은 한차례 큰 사회적인 물의만을 야기하고 논술과 같은 정도의 자리매김도 받지 못하고 추락할 위험이 크다고 판단된다.